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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71화 (171/849)

〈 171화 〉 #23. 스케줄스케줄스케줄 (5)

* * *

“떽!!”

어림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내쳤다.

아무리 울어도 이건 절대 봐줄 수 없다.

세상에, 정액을 보내달라니?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

‘이대로 냅뒀다간 사고치겠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어르고 달래는 건 소용이 없었으니까 다른 방법을 써야지.’

당근이 안 먹힐 때는 채찍을 들어야 하는 법.

제대로 결심을 하고 뾰족한 어투로 말했다.

“누나는 나 뭐 때문에 만나요?”

흠칫!

민영 누나가 내 말투에서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꼈는지 눈이 뎅그래진다.

물론 그런다고 퉁퉁 부은 눈이 커지는 건 아니었다.

‘시바, 그래도 예쁘네.’

내가 만들었지만 참 잘 만든 얼굴이다.

“그, 그게 무슨 이상한 소리야? 당연히 사랑하니까 만나지.”

“아닌 것 같은데.”

“으응?!”

“내가 저번에도 분명 말했던 것 같은데 또 이러네요?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고의 아닌가?”

“내, 내가 뭘했다구 그래?”

“누난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죠? 울기나 하고!!”

진해솔이 가불기(S)를 시전했다!

“으응? 갑자기 왜 그래에….”

“왜 그러냐고요? 정말 그걸 몰라요?”

누나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간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사실 화 안 났다.

그래도 선즙필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분노필승

“난 네가 너무 갑자기 해외를 나간다고 하니까 서운해서 운 건데 왜 그래에. 누나가 잠깐 술에 취해서 주정 부린 것 때문에 화났어?”

“그건 화 안 났다고 했잖아요! 제가 그 정도도 이해 못해줄 만큼 속이 좁은 줄 알아요? 정말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어.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밟았다!

내가 설치한 지뢰를 제대로 밟은 그녀에게 회심의 미소를 보이며 와다다다 잔소리를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한 번 해보고 싶긴 했었거든.’

잘 대화하다가 갑자기 삐지더니 ‘오빠가 뭘 잘못했는지 정말 몰라?’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던 나날들.

왜 나는 항상 당해야만 하는가! 억울해 하곤 했었는데, 그 한을 지금에서야 푼다.

적어도 나는 끝까지 이유를 말 안 해주던 전 여친들과 달리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나라고 해외 나가서 오랫동안 누나 못 보는 게 좋은 줄 알아요? 꾸역꾸역 참고 있는데 누나가 돼서 울기나 하고 말이야! 거기다가 정액을 배달 시켜달라구요? 제가 놀려고 해외 나가요? 일하러 가는 거잖아요!”

“미, 미안해!”

민영 누나가 잽싸게 무릎을 꿇고 사과 자세를 한다.

‘오, 젠장! PTSD 올라 그러네.’

나는 꾹 인내하고 참으며 화난 척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누난 내가 좋아서 가지 말라는 게 아니라 내 정액 먹어야 하는데 못 먹으니까 가지 말라고 투정 부리고 있는 거잖아요. 내가 몰라서 말 안 한 건지 알아요?”

“아니야!! 그런 거 절대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

“그럼 왜 내 정액을 배달시켜 달라는 건데요? 아까 다시 못 생겨질 거라면서 울었잖아요. 내 정액 못 먹으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무서우니까 나한테 집착하는 거잖아요! 이런 체질이 아니었으면 누나가 날 만나기나 해줬겠어요?”

당연히 만났을 거다.

이 얼굴을 가진 이후부터 누군가에게 차여본 적 한 번도 없으니까.

“어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자꾸 그런 소리를 해!! 그만해. 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

아직 기세가 살아 있는 누나가 반전을 노리며 반박했다.

나는 어림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로 새침하게 그녀를 노려봤다.

“됐거든요? 내가 진짜 애랑 사귀지. 애랑 사겨! 섹스 좀 못한다고, 정액 좀 못 먹는다고 우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요? 창피해서 친구한테 말하고 상담도 못 받아요!! 알아욧!?”

“하아~”

“지금 한숨 쉬었어요? 정작 한숨 쉬어야 할 사람은 누나가 아니라 나라구요!”

“미안하다. 진짜 미안해. 내가 너무 철이 없었어. 정신 차릴게. 진짜 잘못했어.”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했는데 또 믿어요?”

“믿어줘. 이젠 안 그럴게. 정말이야.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

말은 이렇게 하고 있어도 약쟁이 누나가 진심으로 중독에서 벗어나는 걸 바라고 있지 않다.

애초에 그녀가 멀쩡해지길 바랐다면 중독성을 넣은 정액을 제공하지도 않았을 거다.

아직은 믿음 하나로 그녀를 놔주기엔 불안한 요소가 많았다.

‘내가 너무 예쁘게 만들었어.’

저런 미인을 남자가 많은 연예계에 던져두고 해외에 나가 있으라고?

다른 남자에게 빼앗겨도 할 말 없는 무책임한 짓이다.

“좋아요, 이번 한 번만 더 믿어드릴게요.”

“헉! 정말? 고마워, 해솔아! 누나가 앞으로 더 잘 할게!”

“정액도 보내드릴게요. 택배로.”

“사랑해!!!”

와락!

용서해주겠다는 말에 활짝 웃던 그녀가 정액을 택배로 보내준다는 말에 사랑한다며 나를 꽉 끌어안았다.

‘시바, 진짜 정액 땜에 나랑 사귀나?’

정액한테 질투해야 하는 건가 자괴감 들려고 그런다.

“흠흠, 대신 누나는 제가 해외 나가 있는 동안 다른 남자랑 막 놀러다니고 그럼 안 돼요. 알았죠?”

“당연하지!! 누나 못 믿니?”

“네.”

“해, 해솔아?”

“마지막으로 믿는 거에요. 정액 때문에 집착하는 나쁜 누나지만, 정액도 나이긴 하니까 날 사랑하는 걸로 치죠, 뭐.”

“진짜 아닌데….”

아니긴 뭐 아니야? 정액 택배로 보내준다니까 사랑한다고 한 년이.

“변명은 됐고, 나 섰으니까 누나가 달래줘요. 오늘 삐진 것까지 다 풀어줘야 해요.”

민영 누나가 사랑한다며 나를 안는 순간 꼴려서 자지가 서버렸다.

오늘 내 성욕을 그녀에게 모두 풀고 가리라 다짐하며, 그녀의 윗옷을 벗겨버렸다.

? ? ?

휴가가 시작되기 전날 민영 누나와 하룻밤을 보내고, 휴가 첫째 날은 주아 누나네로 가서 이삿짐을 옮겼다.

나는 정화씨와 주아 누나가 적극적으로 만류해서 태양이를 안고만 있고, 대부분의 일들을 정화씨와 주아 누나 그리고 이삿짐 센터 직원분들이 해주셨기에 몸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이사하는 걸로 순식간에 하루가 전부 가버리고, 다음날까지 태양이와 놀다가 오랜만에 주아 누나와 섹스를 했다.

그녀가 잠든 새벽엔 정화씨가 침대로 숨어들어서 날이 밝을 때까지 섹스를 했던 것 같다.

휴가 마지막 날에는 아현이랑 복순 누나와 함께 바다를 보러 당일치기로 움직였다.

그녀들과 3P 섹스로 3일의 휴가를 해치운 나는 다음날 오후 3시에 숙소에 도착했다.

휴가가 휴가가 아니었기에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뻗었는데, 멤버들은 잘 쉬고 왔는지 다들 살이 쪄서 와선 부지런히 짐을 싸고 있었다.

“짐 싸냐? 형 것도 대신 좀 해줘 봐.”

“놉.”

“막내야~ 형이 넘 피곤해서 그래~”

“놉! 휴가 받고 뭘 했기에 피곤해 죽으려고 해요? 쯧쯧! 오늘 저녁 8시 비행기로 가야 하니까 미리미리 싸놓으세여. 시간 돼서 허겁지겁 챙기다가 물건 빼먹고 가지 마시구여. 저 시켜먹을 생각 마세요! 제 꺼 다 챙기면 밥 먹으러 갈 거에요.”

“단호한 녀석! 흑흑. 형은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아~!!!”

“에베베~”

우연이가 부지런히 짐을 싸는 걸 보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서 슬금슬금 일어나 짐을 챙겼다.

솔직히 나는 별로 챙길 게 없었다.

쉬는 날이면 꼬박꼬박 여자들 집에 가서 잠을 자고 나오는 터라 내가 생활하는데 쓰는 짐들 대부분이 숙소가 아닌 그녀들의 집에 있었다.

그나마 챙겨야 할 게 있다면 옷가지들 정도?

“형, 지렁이에요?”

“지렁이고 싶어.”

휴가 3일을 너무 빡세게 보냈더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일명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다리를 뻗어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서 대충 캐리어에 구겨넣었다.

기우연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형, 저랑 얼굴 바꿀래요? 제가 형 얼굴이었으면 엄청 부지런하게 잘 살 수 있는데.”

형도 부지런하게 살고 있어, 인마.

그 부지런이 전부 여자 만나는 거에 써서 문제일 뿐.

그리고.

“남의 거니까 그래 보이지, 정작 네 거 되어보면 별 것도 아니야.”

사람은 적응하는 생물체.

잘 생긴 얼굴도 처음에는 흠칫흠칫 했지, 이젠 적응 돼서 그닥 감흥이 안 온다.

내 말을 들은 기우연이 노골적으로 부러워했다.

“형은 옷 잘 못 입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옷 되게 잘 입는 줄 알더라고요.”

“허허.”

“얼굴이 잘 생기니까 옷을 대충 입어도 다 엄청 꾸며서 입은 줄 아는 거죠. 그래서 옷 귀한 줄 모르고 그렇게 구겨 넣는 거고여.”

한심한 형을 보는 기우연의 눈초리가 매우 괘씸해진 나는 다리를 움직여 기우연의 옆구리를 발가락으로 꾹 쑤셨다.

“악!”

“그걸 바로 패완얼이라고 한단다, 얘야. 부러워하지 마. 부러우면 지는 거야.”

“악아아악! 간지러웟! 형! 살려주세여! 악!”

“네가 아무래도 휴가동안 형님에 대한 존경심을 잊은 듯한데, 다시 일깨워주마.”

숨 쉬기도 귀찮지만, 동생 녀석의 정신상태를 고쳐주는 건 못 참는 법.

옆구리가 벌게지도록 괴롭혀 준 뒤, 대충대충 짐을 싸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음, 이거지.’

이 편안함!

그렇게 침대가 나인지, 내가 침대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위이이이이이잉~!!!!!!!!!

“하늘이 맑네.”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본격적으로 해외 스케줄의 시작이었다.

“버스킹 할 때 뭐 부를까요?”

이동하는 와중에 우리 회사는 야무지게 스케줄 하나를 챙겨 넣었다.

「버스킹? 버스킹!」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노래 잘 부르는 가수들이 합심하여 해외나 국내를 돌아다니며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멤버들이랑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몇 곡 정도는 우리 노래 불러야지.”

「버스킹? 버스킹!」이 촬영을 계획한 나라가 마침 우리 그룹이 활동 예정 되어 있는 나라 ‘윈푸이’였다고 한다.

서로 쿵짝이 잘 맞은 거다.

참고로 윈푸이는 지구로 치면 일본이 위치해 있는 나라다.

중국에 위치한 나라 ‘자오’와 일본에 위치한 ‘윈푸이’는 이번에 우리가 활동 예정 되어 있는 나라들이다.

나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지구와는 달리 이세계에서는 서로 경제 교류도 활발하고, 사이가 썩 나쁘지가 않았다.

‘역사도 비슷하면서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많아.’

적응하기도 바쁜데 역사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마음에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실수하기를 몇 번.

결국 이곳의 기본 상식 역사는 알고 있어야 편하다는 걸 알게 되어 공부를 했다.

‘이순신이 누구에요? 라는 끔찍한 짓을 할 순 없잖아.’

이세계에도 이순신, 세종대왕처럼 건드릴 수 없는 역사적 영웅이 있을 터.

그런 상식을 모르다간 큰일날 수 있음을 뒤늦게 인지한 것이다.

뛰어나진 기억력으로 바짝 열심히 공부를 했고, 이젠 상식이 없어서 큰일 날 일은 없었다.

“형은 어떤 노래 부르고 싶어요? 거기서 무조건 형한테 노래시킬 것 같은데.”

“우리가 원푸이에서 얼마나 유명하지?”

“많이들 아시지 않을까요?”

“그래? 그럼 원푸이에서 유명한 노래 몇 곡 외워둘까?”

“오! 그 생각을 못했네요! 그 나라 노래 부르면 엄청 좋아할 거에요. 다들 노래 좀 골라 봐요!”

“그럴까?”

“할 일 없었는데 잘 됐네.”

그렇게 멤버들이 원푸이 베스트 명곡을 뒤지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건 모두들 환영할 일이었다.

“이 노래 알아요?”

“아니.”

“이 노래는요?”

“몰라.”

“와~ 이 곡은 진짜 댕명곡이라 알 듯!”

“…오늘부터 알면 되겠네. 노래 좋다.”

“이 형은 진짜 가수 어떻게 됐지?”

“재능충이라….”

“아오!!!”

“아까 그 곡 부르자. 보니까 노래 엄청 좋네.”

“진짜 이 곡을 처음 들어요?”

“내가 외국 노래에 관심이 없어서.”

“진짜 신기한 형이야. 누가 보면 외계인이라고 생각할 거에요.”

안타깝지만 나는 외계인 맞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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