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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74화 (174/849)

〈 174화 〉 #23. 스케줄스케줄스케줄 (8)

* * *

“후우, 찜질방에 가서 뜨겁게 몸 좀 지지다가 맥반석 달걀 먹고 시원한 식혜로 갈증 해소한 다음에 다음날 12시까지 푹 자고 싶다.”

“아빠가 해준 갈비찜 먹고 싶어. 야들야들한 살점을 한 입 베어 물면 달콤 짭짜름한 갈비살이 샤르륵 떨어지는데 거기에 흰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냠냠냠 먹고, 잘 익은 김치까지…읍!”

“그만해라. 미칠 것 같으니까.”

남은규의 입을 막아서 그의 폭주를 막은 강준이 다시 축 늘어졌다.

“요즘 체력이 팍팍 떨어지는 게 느껴져.”

“음식이 안 맞잖아.”

“이 나라 음식 너무 느끼해! 김치 먹고 싶다! 으아악!”

멤버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깡체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

평소보다 체력이 더 떨어지는 것을 느낀 멤버들의 입엔 홍삼이 물려 있었다.

“쭈웁, 쭈웁­”

“쟤는 홍삼이 맛있나?”

“이게 다 체력인겨. 포션 몰라 포션?”

“오오냐아~ 포션 먹어서 좋겠수!”

“너 오늘 분량 홍삼 먹었어?”

“아니, 써서 먹기 싫어.”

“쯧쯧! 애도 아니고. 그러다가 쓰러진다. 누나가 억지로 먹이기 전에 그냥 스스로 먹고 광명 찾는 게 나을 걸.”

“으으으!”

이런 거라도 먹어서 힘을 받아야 버틸 수 있기

윈푸오에서는 익숙한 해산물 요리와 자극적이지 않은 향신료 덕분에 먹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자오에서는 음식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향신료 냄새만 맡아도 역해.”

심지어 물도 문제였다.

“물맛이 너무 이상해요.”

“이래서 스타 연예인들이 물을 따로 구해서 다니는 구나 싶다니까.”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를 서포터해주고 있기는 했지만, 자오에서 큰 인기를 얻은 상태도 아닌 우리에게 많은 돈을 투자할 수는 없었다.

버는 것과 쓰는 것의 조화가 필요한 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우리가 차로 이동하는 게 아닌 비행기로 지역을 옮겨 다닐 수 있는 것도 멜리사의 투자가 있은 덕분이었다.

그녀의 투자금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차에 타서 이동하면서 활동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자오는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땅덩어리가 컸다.

“우리 언제 돌아가는지 아직도 안 나왔어요, 형?”

리더 제키가 매니저 누나에게 소식을 가장 먼저 받아보기에 애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제키에게 물어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키에게서 나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스케줄이 계속 생기는 중인데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엄마 보고 싶어여.”

“아이구~ 우리 애기 엄마 보고시퍼쪄여?”

“으악! 징그러워여! 형!!”

애들이 그래도 젊어서 그런지 깡체력으로 잘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촬영하는 거나 무대 서는 건 괜찮은데 진짜 이동하는 것 때문에 체력이 다 닳는 것 같아.”

“그냥 앉아만 있는 건데 왜 체력이 쭉쭉 떨어지는 걸까?”

“그러게나 말이야.”

“그래도 보람은 있잖아.”

“흐흐, 그렇지.”

자오에서 활동하며 우리에게 아시아의 왕자님들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처음에는 가면싱어에서 나온 나를 미끼로 이곳저곳 기웃거려 얼굴을 알렸고, 점점 우리들의 실력이 알려지자 탄력을 받아 점차 스케줄이 늘어갔다.

이젠 윈푸오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오에서도 에어플레인의 팬덤이 굳건해진 상태였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우리 팬덤 이름 참 예쁜 것 같아.”

에어플레인의 날개가 되어주겠다고 지어진 팬덤 이름 ‘wing’.

이제 어엿한 거대 팬덤이 되었다.

“아악!!”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때, 제키가 돌연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축 늘어져 있던 멤버들이 다들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씨. 스케줄 하나 더 늘었대.”

“아….”

“…….”

털썩!

그리고 제키의 말에 애들이 다시 쓰러지듯 누웠다.

“귀국하고 싶다아아아아~!!!”

“집이 그리워!!!!!!!!!!”

“김치이이!!!!!!!!!!!!!!!!!!”

해외로 나온 지 2달 째.

기어코 멤버들이 향수병을 앓기 시작했다.

물론 나라고 해서 사정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보고 싶다. 무진장 보고 싶다.’

태양이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주아 누나도 보고 싶고, 정화씨도 보고 싶었으며, 저번 주에 나에게 보고 싶다며 울었던 아현이도 너무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복순 누나와의 폰섹스는 짜릿하긴 했으나 그녀에 대한 갈증만 더 깊어지게 만들었고, 민영 누나는….

‘슬슬 가서 정액 가져다줘야겠네.’

황당할 수밖에 없는 약속을 지키느라 고생 중이라서 민영 누나에 대한 감정은 참 오묘하다.

나는 내가 했던 약속을 지켰다.

정액을 택배로 보내겠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게 온전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정액을 택배로 보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엽기적인 일이잖아.’

더군다나 그걸 일일이 화물로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꾀를 냈다.

내겐 공간이동이 가능한 아이템이 있었고, 그 아이템이면 1초도 되지 않아 지정 된 장소로 이동할 수가 있었기에 직접 택배를 가져다주기로 한 것이다.

숙소로 몰래 이동해서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서 정액을 체취한 후 그걸 택배 붙여 민영 누나에게 보내는 식이었다.

‘태양이도 잔뜩 보고 와야겠다.’

사실 민영 누나의 택배는 내가 국내로 들어오는 이유 중 하나일 뿐, 전부는 아니었다.

태양이가 커가는 것을 일 때문에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 억울해서 이렇게 국내로 들어올 때마다 몰래 보러 가곤 했다.

다소 수상해 보일 수 있는 행동이긴 하지만, 안경을 끼면 태양이를 가까이에서 봐도 들키지 않았기에 문제없었다.

태양이를 보며 겸사겸사 그 곁에 있는 정화씨와 주아 누나도 볼 수 있으니 일석 삼조라 할 수 있다.

‘멀리서 지켜보면 더 외로워지긴 하는데….’

몰래 지켜보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그리움을 참지 못할 테니 말이다.

‘포니 자식만 아니었어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알려줬을 텐데.’

아쉽지만 포니의 경고를 무시할 순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 특별함을 들키는 순간 그 사람들의 기억이 조작 될 것이고, 내게 주어진 혜택도 많은 부분을 빼앗기게 될 테니까.

‘저번에 왔을 때 엄청 바빠 보이던데 착실하게 경고는 하고 갔단 말이지.’

애초에 내가 먼저 부르지 않고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녀석이 포니지만, 요즘에는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불러도 단숨에 오질 않았다.

아직도 내가 꼰질렀던 불법 개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사건이 훨씬 컸던 거지.’

원래 수상하고 질 나쁜 것들은 서로 이리저리 엉켜 있어서 하나를 쑥 빼내면 이것저것들이 주륵주륵 매달려서 끌려나오는 법이었다.

신고를 넣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땐 포니가 나한테 ‘네가 신고자지?’라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이 많았는데, 이젠 그런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녀석은 내가 ‘신고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눈치였으니 말이다.

“형형형!! 여기 근처에 한식 음식점이 있대요!”

언제쯤 시간을 내서 국내로 들어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기우연이 와다닥 달려와서 말했다.

제법 솔깃한 얘기였다.

“한식 음식점이 있다고?”

“네네네네! 우리 거기 가요!”

“언제? 시간이 날까?”

“오늘 당장이요! 오늘밖에 스케줄 빈 날이 시간 없잖아요. 스케줄 또 생겼다던데, 언제 여기 떠나야 할지 모르니까 마음먹었을 때 후딱 다녀오자고요.”

“흠, 애들은 다 간대?”

“당연하죠. 한식이라구요! 한식!!”

눈이 돌아간 녀석들은 굶주린 짐승처럼 날뛰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휴, 알았어. 가자.”

“오예!! 해솔이 형도 간대요!!!! 아싸!!”

“잘했어! 기우연!!”

“하여튼 영악한 자식들.”

내가 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같이 가겠다는 말에 저렇게 좋아하는 거였다.

물론 내가 동행한다고 해서 얼굴을 안 가릴 순 없다.

하지만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칭칭 감아야 하는 것과 간단하게 모자를 쓰는 것으로 끝나는 건 굉장히 다르다.

더군다나 이 나라는 치안이 좋지 않아서 언제 납치를 당할지 몰라 경호원이 항상 곁에 있어야 했다. 밤에는 어디에서 났는지 알 수 없는 총소리도 가끔 들렸기에 함께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나를 옆에 두고 다니는 것이 필수 아닌 필수였다.

“맛있어!!!!!!!!!”

“맛집이네, 맛집이야.”

경호원들을 데리고 한식집까지 찾아간 우리들은 오랜만에 벨트 풀고 포식을 했다.

나야 가끔이라도 국내로 들어가서 음식을 먹었지만, 멤버들은 그렇지 못해서 오랜만에 먹는 한식에 눈이 뒤집혔다.

김치를 먹는 것에도 감격해서 눈물을 글썽일 지경이니 오죽할까.

“많이들 먹어요.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요. 서비스로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맛있어요!”

“이게 집밥이지!”

알고 보니 한식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같은 동향 사람이었다.

사장님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원래 타향살이 할 때 고향 사람을 만나면 친근감이 팍팍 드는 법 아니겠나?

서비스를 팍팍 받아 푸짐한 음식을 다 먹고 나니 향수병을 조금은 떨쳐낼 수 있었다.

“아참! ‘버스킹?버스킹!’은 어떻게 됐대? 반응 알아본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네.”

문득 생각나 물으니 재빠른 소식통 기우연이 말했다.

“반응 엄청 좋아요!”

“정말? 좋다고?”

“당연하죠! 우리가 기가 막히게 부르고 왔잖아요. 아이돌의 반전매력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가 노래 잘 부르는 게 신기한지 기사가 엄청 나왔더라고요. 팬분들도 오랜만에 우리 얼굴 봐서 엄청 좋았대요.”

“가수가 노래 잘 부르는 게 뭐 대수라고….”

기우연의 말에 반응한 건 제키였다.

그는 당연한 걸 새삼스럽게 주목한다며 퉁명스럽게 말한 것이다.

기우연이 노노! 하며 검지를 휙휙 흔들었다.

“지금까진 해솔이 형 실력만 화제를 모았잖아요. 근데 버스킹? 버스킹! 덕분에 우리 그룹 전체가 다 실력이 좋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 거죠!! 이제 사람들이 우리보고 실력 없는 그룹이란 소리 절대 못 할 거에요.”

기우연의 말에 핸드폰으로 버스킹? 버스킹!의 반응을 뒤늦게 검색해봤다.

기우연은 우리 그룹 전체가 다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좋아했지만, 진실은 좀 달랐다.

골고루 주목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지만 방송이 그렇게 친절하지가 않다.

이번에도 유난히 주목을 많이 받은 멤버가 있고, 그렇지 못한 멤버가 있었다.

나는 예외로 두고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멤버는 제키였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방송에 고스란히 찍힌 덕분이었다.

아무래도 작곡을 하는 멤버라는 점이 피디의 픽이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다음은 기우연.

워낙 성격이 밝고 이것저것 참견하는 걸 좋아하는 예능캐라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편이다.

그리고 이번에 보컬로 주목을 받은 강준.

나 못지않은 실력자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특히 강준의 매력적인 음색은 나 또한 때때로 놀라곤 했기에 새로운 발견이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평소에는 장난기가 많은데 낯선 사람이 있는 곳에선 갑자기 낯을 가리는 남은규와 래퍼라서 프로그램 특성상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경태 형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그래도 촬영 끝에 가서는 제법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다 편집 됐나보네.’

서로 티를 내진 않지만 멤버들 중에서도 인기 멤버가 있고, 그렇지 못한 멤버가 있는 법이다.

‘그래도 은규가 자오에서는 제일 인기 있는 멤버니까.’

이번 해외 활동이 우리 그룹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있다면 바로 고른 인기를 얻게 됐다는 점이다.

남은규의 얼굴이 자오에서 좀 먹혀(?)주는 얼굴인지 유난히 이곳에서 팬들을 많이 이끌고 다니더라.

물론 나를 예외로 쳤을 때 말이다.

남은규가 이 나라 말을 할 줄 알아서 마이크를 자주 잡았는데, 그 효과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들은 그렇게 향수병을 꾸역꾸역 억누르며 해외 활동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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