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24. 해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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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널리 퍼져가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아현은 복순과 만나 술 대작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대화 주제는 당연하지만 ‘진해솔’이었다.
해솔을 그리워하다가 얼굴을 보여주지 못할 만큼 바쁜 그를 원망도 했다가, 돌연 서로 누가 더 사랑하는지 대결을 하고, 그러다가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으나 야한 얘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잠자리 얘기들은 이내 경악으로 이어졌다.
사실 저번에 해솔이의 휴가 때 함께 여행을 가서 자연스럽게 3P를 했던 지라 함께 야한 얘기를 하는 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수위가 선을 넘나들다가 문득 로즈가 말했다.
“걔 우리 말고 다른 여자 더 있는 거 같지?”
“…눈치 챘어요?”
“정력이 장난이 아니야. 우리 둘로 만족할 만한 녀석이 아닌 건 애저녁에 알았다고. 에휴~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아무런 말도 못하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아?”
“암고양이처럼 남의 남자 훔쳐간 게 언니잖아요! 지금 저한테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거에요?”
“갑자기 왜 또 그래. 그 문제는 푼 거 아니었어?”
“씨이, 갑자기 울컥했거든요?”
진짜 이 여자랑 왜 자꾸 만나지?
항상 만남이 끝나면 다신 저 언니랑 안 만난다고 다짐을 하곤 한다.
불쑥불쑥 치솟는 질투심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결심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또 다시 로즈 언니와 술대작을 하고 있다.
저 여자도 좀 이상한 게, 자신이 만나자고 하면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언니 친구 없죠?”
“…네가 나 싫어하는 건 알겠다.”
“그러니까 자꾸 나랑 만나는 거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자꾸 만나서 사이좋게 얘기를 나눌 만한 사이가 아닌데도요.”
“뭐어~ 자꾸 만나봐야 정이 생기지 않겠어?”
“미쳤나봐! 저랑 왜 정이 생겨요? 전 싫어요!”
아현이 질겁을 했다.
하지만 로즈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진해솔이랑 결혼할 거야. 넌 아직 어려서 해솔이랑 헤어질 수도 있겠지. 근데 나는 나이가 있거든. 학원이 좀 안정 되면 슬슬 아기도 갖고 싶어.”
“!!”
“사귀는 사이일 때야 다른 여자가 내 남자한테 들러붙는 거에 질투도 하고 화도 낼 수 있지. 근데 나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서 다른 여자랑 반목하는 것보단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했어. 그래야 해솔이가 나랑 결혼해줄 테니까.”
“겨, 결혼을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 결혼을 하기엔 해솔이 나이가 너무 어리잖아요.”
아현은 위기감이 들었다.
물론 자신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남편은 당연히 진해솔이 될 거다.
다른 남자는 상상도 안 해봤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탓에 결혼에 대한 걸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내가 낳을 아이의 아빠는 해솔일 것이라는 상상이 전부였을 뿐.
그런데 그녀가 알지 못하는 사이 라이벌이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미래를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니!
역시나 저 여자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살갑게 대한 게 아닌 것이다.
“역시 속셈이 있었던 거잖아!! 갑자기 언니라고 부르라는 둥, 잘 지내보고 싶다는 둥 했던 말들 전부 다 거짓말이었어!!”
“후후후! 귀엽기는. 전부 다 거짓말은 아니었어. 너랑 잘 지내고 싶다는 건 진심이었거든. 너도 생각 잘해. 자꾸 여자들끼리 싸우면 남자가 질려한다? 더군다나 그이한테 여자가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우린 싸울 게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다른 여자들을 견제해야지. 적의 적은 아군 아니겠니?”
분하지만 라이벌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연륜이라는 걸까?
아현은 나이가 어려 미숙한 면이 많다는 것에 굴욕감을 느꼈다.
어쩐지 앞으로도 그녀를 이기는 날은 없지 않을까 싶다.
“나도 결혼할 거에요. 아니!! 내가 언니보다 먼저 결혼식 올리고 아이도 가질 거에요!!”
“…너도 참 너다.”
로즈는 이아현의 철없는 앙큼한 포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행동을 볼 때마다 내가 애 데리고 뭐하는 건가 자괴감이 들곤 하는 로즈였다.
“일단 지금 당장 결혼하는 건 무리야. 해솔이도 계약 끝나는 7년 후를 말했으니까.”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5년 조금 더 남은 시간이다.
아직 결혼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 할 때는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해솔이가 만나고 있는 다른 여자를 만나보는 거야. 어떤 여자인지 만나서 견적을 내봐야 앞으로 어떻게 할지 감이 잡히지 않겠어?”
“굳이 만나야 할까요? 전 만나기 싫어요. 끔찍하다고요.”
아직 아현은 자기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더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할 만큼 정신이 단단하질 못했다.
“마음 단단히 먹어!! 그런 태도로는 다른 여자들한테 휘둘릴 뿐이라고!”
“언니도 저 휘두르잖아요!!”
“…….”
찔리는 게 많은 로즈가 원망이 담긴 아현의 눈을 외면했다.
잔뜩 약이 오른 아현이 꿀꺽꿀꺽 술을 마셨다.
“너 술이 점점 는다?”
“이게 다 언니 때문이잖아요. 언니랑 만나기만 하면 술을 마시니까!”
“내가 순진한 애를 타락시키고 있는 건가?”
“흥! 암튼 됐고, 더 말해 봐요. 혹시 해솔이가 만나는 여자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는 거에요?”
“해솔이한테 비밀로 해준다고 약속하면 말할게.”
로즈의 의미심장한 말에 아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여자가 자신을 데리고 휘두르려는 심산임이 분명했지만 애석하게도 알면서 당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진짜진짜 싫어 죽겠어.”
“호호호!”
“비밀로 할게요. 약속해요. 그러니까 빨리 말해 봐요. 누군지 아는 거에요?”
“응. 확실해. 해솔이가 웹드라마 했었잖아. 거기 여주인공인 한민영!”
여자의 이름이 나오자 아현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한민영 그 여자가 해솔이랑 사귄다고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분하지만 여배우답게 굉장히 예쁜 여자였다.
왜 여태까지 뜨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의 아름다운 여배우.
아현은 반짝반짝 빛나던 그녀의 모습을 새삼스레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우연이었어. 해솔이가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에 메시지를 보냈더라고. 근데 그 내용이 가관이지 뭐니?”
아현이의 귀가 쫑긋 세워진다.
“뭐라고 하는데요?”
“자지를 빨고 싶대.”
“헉!”
“정액 먹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고 말이야.”
“그, 그런 말을 메시지에 보낸다고요? 변태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이 먼저 올라간다고, 딱 그 꼴이더라니깐? 어쩜 그렇게 얼굴이랑 다르게 앙큼하던지! 그 여자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돼.”
“설마 헤어지게 만들려고요?! 그게 가능해요?”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 해솔이한테 들키면 큰일 날 거야. 말했잖아, 나 결혼해야 한다니까? 내가 말하는 건 서열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운이 좋으면 우리 존재를 알고 충격 받아서 떨어져나갈지도 몰라.”
“그렇게 됐음 좋겠어요.”
“기대는 하지 마. 내 생각에 얘, 보통이 아닌 것 같거든. 그런 운 좋은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너는 대충 내 옆에서 맞장구만 쳐. 스스로 제일 서열이 낮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어야 돼. 너도 그런 애한테 휘둘려서 서열 꼴찌 되고 싶은 건 아니잖아.”
당연하다.
해솔이를 다른 여자들과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도 열불이 터지는 일인데, 여자들 사이에서 서열 꼴찌를 해야 한다니?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현이 로즈를 째려보며 물었다.
“근데 좀 이상한 게 있는데요? 우리 둘 서열은 어떻게 되는 거에요? 제가 왜 자연스럽게 두 번째인 거에요? 제가 첫 번째죠!”
“후후, 네가 그 여자 앞에서 서열 정리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왜 못 할 거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어요!”
“흐응~? 정말 나보다 애도 먼저 가질 거야? 결혼도 먼저 하고? 아기를 낳으면 그 아이를 위해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개인적인 시간이 전부 사라지는 거야. 친구도 더 이상 만나지 못 할 걸?”
“…….”
아이를 키우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로즈는 아현이 아직 준비 되지 않은 상태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주지시켰다.
결국 아현이 항복을 했다.
분하지만, 로즈가 하는 말들은 아현이 반박하기 힘들 정도의 논리적인 이유들이었다.
말로는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직접 한민영을 상대할 때 로즈 언니처럼 당당하고 도도하게 굴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정말 싫지만, 이런 일에 적합한 건 내가 아니라 로즈 언니이긴 해.’
결국 아현은 해솔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들끓는 질투심을 꾹 누르기로 했다.
“좋아요. 제가 두 번째로 할게요. 대신 언니가 서열 정리 잘 해주셔야 해요. 앞으로 더 생길지 모르는 여자들까지 전부요.”
“당연하지!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그럼 우리 동맹 맺은 겸 짠할까, 짠?”
“…짠!”
이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한민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조강지처 진주아가 있다는 사실을!
그뿐만이 아니라 진주아의 친엄마인 남정화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
“누나, 다다음주에 들어가는 거 맞죠?”
“어? 어어! 맞아.”
“이러다가 스케줄 또 생기는 건 아니죠?”
“진짜 들어가는 거 맞다니까. 속고만 살았냐?”
“네~!!!! 속고 살았어욧!!!!”
매니저 누나의 말에 기우연이 끼요오옷! 공룡 소리를 내며 억울함을 외쳤다.
실제로 매니저 누나는 이번 주 월요일에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금요일인 현재, 우리는 아직도 자오에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너희들이 너무 잘난 걸 나보고 어쩌라고! 자오에서 너희들 인기가 미쳐버린 수준인 걸!! 지금도 계속 스케줄 들어오는데 다 쳐내고 있는 중이란 말이야.”
매니저 누나는 항변했다.
그녀의 말처럼 윈푸오에서도 인기가 심상치 않더니 자오로 넘어오자 더 엄청나졌다.
자오의 팬클럽 수가 국내 팬클럽보다 3배 이상 넘어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돈을 벌려면 자오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출연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돈도 어마어마했다.
우리의 몸값은 어느새 억대를 넘어갔고, 회사에서는 당연히 호화로운 인기를 누릴 수 있을 때 다 누려놓기 위해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이외의 시간을 전부 스케줄로 굴렸다.
“솔직히 누나가 스케줄을 너무 빡빡하게 잡긴 했어요. 결국 강준 쓰러졌잖아요. 휴가 안 주시면 저희 더 못 버텨요.”
체력을 쥐어짜며 버티다가 결국 강준이 쓰러지고서야 돈에 눈이 뒤집혔던 회사가 제정신을 차렸다.
쓰러진 강준도 문제지만, 다른 멤버들이라고 멀쩡한 체력을 가진 건 아니었고 결국 회사에서 우리에게 휴가를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드디어 3개월 아니, 거의 4개월 만에 우리는 제대로 된 휴가를 얻게 된 것이다.
“며칠 후에 정산금 나오는 거 알지? 이번 정상금도 두둑하겠지만, 다음 정산금이 대박일 거야. 억대는 가뿐이 넘을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서로 좋자고 열심히 일한 거잖아.”
억대의 정산금.
말만 들어도 설레어지는 단어다.
체력이 다 떨어져도 정산금만 생각하면 없던 체력이 다시 솟을 지경이다.
“정산금 흐흐흐!”
“형들!! 정산금 받으면 뭐할 거에요?”
“부모님 드려야지.”
“전부 다 드릴 거에요?!”
“뻥치지마, 강준. 난 게임기 살 거야.”
이번에 받게 될 정산금이 두둑하다고 했으니 나도 사고 싶은 것들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장 먼저 사고 싶은 걸 떠올려보자면 일단 태양이 장난감들이다.
그리고 나서 내 여자들에게 선물 하나씩 안기고 싶고, 가장 마지막으로 차 한 대를 사고 싶었다.
그 정도 목돈이 들어올지 알 수 없었기에 지금은 희망구매 목록을 만들어두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군대 전역날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참 더디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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