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77화 (177/849)

〈 177화 〉 #24. 해후 (2)

* * *

“흐으으으읍!! 하아~~!”

“공기부터가 다르다, 공기부터!”

“너무 피곤해여~~”

“자자,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2주 후에 숙소로 모이는 거야. 다들 수고 많이 했고, 휴가 중에 특이사항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하는 거 알지?”

“네에에에!!!”

“오예, 오예! 가자가자.”

“엄마! 어디야? 나 공항 도착했어.”

멤버들이 다들 신나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헤어졌다.

차를 타기 위해 움직이는 멤버들과 달리 나는 화장실 쪽으로 빠졌다.

굳이 차를 타고 이동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 많은 공항답게 화장실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아이템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가 곧장 공간이동을 했다.

눈을 뜨자 보이는 곳은 주아 누나의 집!

곧장 비밀번호를 눌러 집으로 들어갔다.

“태양아~~~ 아빠왔다아!!!!!”

흐애애애앵!!!!

나를 반기는 태양이의 울음소리!!

태양이를 울렸다고 등짝을 맞을 수도 있지만, 나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어서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해솔아!”

집에는 정화씨 혼자 있었다.

“정화씨!!!”

“오늘 온다더니 벌써 온…우웁!”

단숨에 정화씨를 품에 안고, 그녀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날렸다.

“흣, 자깐…움, 쪼옥, 쪽! 웁!”

“하아, 너무 보고 싶었어요. 춥, 추웁, 쯉!”

정신없이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흐우응?”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태양이가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로 내 가슴을 툭툭 때렸다.

‘아빠가 해후 중이니까 좀만 봐줘라, 태양아! 네가 아빠 아들이라면, 지금 이 순간은 방해하면 안 되는 거야!’

남자대 남자로 진지하게 부탁하며 그녀의 혓바닥을 열심히 빨았다.

태양이가 품에 안겨 있는 것 때문에 정화씨가 자꾸 벗어나려고 해서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콱 잡아버렸다.

나는 정말 태양이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알았으면 안 그랬지.

“…둘이 뭐해?”

“!!!”

“!!!”

철렁!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심장이 뚝 떨어진다.

순간 굳었다가 입술을 떼고 뒤를 돌아보니 주아 누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었다.

주아 누나는 집에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던 것 뿐.

고로 나는 X 됐다는 거다.

? ? ?

일단 무릎을 꿇는다.

태양이가 주아 누나의 무릎 위에서 천진난만하게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태양아! 오랜만에 보는 건데 아빠가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잠깐 안 보는 사이 또 훌쩍 커버린 태양이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그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나 몰래 붙어먹고 있었다는 거네?”

“…미안해. 내 잘못이야.”

“태양이 임신하고 있을 때니까, 내가 제대로 네 성욕을 풀어주지 못했던 때구나. 하! 이럼 할 말이 없네.”

“주아야.”

“엄마는 입 닫아. 입 뻥긋도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성욕을 참지 못하고 정화씨에게 손을 댔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아 누나는 나한테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모든 분노는 정화씨를 향하고 있었다.

의외인 것은 정화씨가 그런 주아 누나의 반응을 예상하고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는 거다.

덕분에 나는 욕을 듣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함께 있는 기분이라 차라리 아싸리 터져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마가 다 설명할 게. 아니, 설명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시끄러!! 목소리 듣기 싫다니까?!”

“그래도 엄마한테 설명을 듣는 게 나을 거야. 해솔이 너는 자리 좀 피해줄래?”

“아뇨! 저도 있겠습니다.”

“네가 있으면 주아가 화를 못 풀어내. 그러니까 날 믿고 맡겨주지 않을래?”

“하! 지금 내 앞에서 뭐해, 엄마? 딸 뒤통수 까더니, 이젠 진짜 빼앗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태양이 내 호적에 안 올렸으면 어쩔 뻔했냐. 아들도 뺏기고 남편도 뺏기는 거였네?”

“!!”

말의 수위가 좀 셌다.

정화씨와 섹스를 하고 나서 주아 누나와 관계를 들키면 난리가 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욕 처먹을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욕먹는 대상이 당연히 내가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누나가 나한테 화를 안 낸다.

그게 날 미치게 만들었다.

잔뜩 욕먹고나서 무릎이 닳도록 사과를 할 생각이었데 말이다!

‘미치겠네. 차라리 날 욕하라고! 제발!’

누나는 날 원망하지 않고 정화씨를 죽일 듯이 바라보고 화를 냈다.

이러다가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원망의 대상이 내가 되어야지, 정화씨가 되어선 안 된다.

거기다가 아무런 욕을 듣지 않고 있다고 해도 내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왜 나한테 화를 안 내지? 보통 이런 경우엔 모든 원망이 나한테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아마 많이 실망스럽고 분노했을 것이다.

낯선 여자와 그런 모습을 보여줬어도 화가 났을 텐데, 장모님과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나?

절대 두 사람끼리 해결하게 둘 수 없었다.

욕을 먹어도 내가 먹어야 하고, 원망의 말을 들어도 내가 들어야 했다.

“미안해, 누나. 사과한다고 누나 마음이 풀리진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진심으로 미안해. 여기서 내가 나간다고 해서 두 사람끼리 잘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 문제에 나를 배제하진 말아줘. 내가 잘못한 게 맞고, 나 때문에 두 사람 관계가 나빠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지금은 그냥 좀 가만히 있어주면 안 돼? 너한테 험한 소리 하기 싫어서 이러는 거잖아!”

“내가 잘못한 거니까 하면 되지. 나한테 험한 소리해도 돼. 뭐가 걱정 돼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해? 다 해도 돼.”

“…….”

“누나 남편이잖아. 얼마든지 화도 내고, 때려도 괜찮아. 잘못했으니까 혼나는 게 당연한 거잖아.”

“남자한테 화내면 여자가 욕먹어.”

또 그놈의 남녀역전이 문제인 거야?

여자는 남자가 잘못해도 화도 못낸다고?

이건 성별을 따질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전부 개소리였다.

“지금 상황 알면 누구나 누나 편 들어줄 거야. 어떤 새끼가 누나를 욕해? 욕하는 사람 나오면 내가 그 사람한테 꺼지라고 해줄게. 그러니까 다 해도 돼. 나한테 마음껏 퍼부어.”

“후우, 너 변태야? 기껏 참고 있는 사람한테 왜 욕을 해달래?”

“잘못한 거 알고 있고, 누나한테 용서 받고 싶으니까.”

솔직히 지금 상황에선 차라리 욕을 먹는 게 덜 힘들다.

“후우, 후우.”

주아 누나가 빨개진 얼굴로 힘겹게 심호흡을 했다.

혈압이 올라서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았다.

저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마음이 쫄렸다.

“…나 머리 아파. 마음 같아서는 두 사람 다 나가라고 하고 싶은데, 그럼 둘이 같이 있을 거 아냐? 그건 보기 싫으니까 해솔이 넌 집에 남고 엄마가 나가줘.”

화를 내라고 돗자리를 깔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주아 누나는 끝까지 큰소리 한 번을 내지 않았다.

대신 주아 누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며 정화씨를 바깥으로 내쫓아버렸다.

정화씨는 순순히 납득을 하고 지갑만 챙겨서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가 걱정이 됐지만, 그걸 주아 누나 앞에서 티낼 순 없었다.

정화씨가 집을 나서고 나서야 힘이 쭉 빠졌는지 주아 누나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이제 난 어떡하지?’

천진난만한 태양이가 주아 누나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애교를 부렸으나 주아 누나의 얼굴엔 미소 한 점 보이지 않은 사막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자리를 피해주는 것보단 미워도 곁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녀의 등 뒤에 살포시 누웠다.

“나쁜 놈.”

내 기척을 느꼈는지 주아 누나가 대뜸 내 욕을 해왔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욕을 해! 더 심한 욕도 괜찮다니까?’

욕을 해도 다 받아주겠다고 했기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 고작 욕하는 게 ‘나쁜놈’인 주아 누나가 귀엽고 안쓰러웠다.

쌍욕을 해도 정말 괜찮았는데 말이다.

‘적어도 머리 한 움큼은 뜯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어떻게 하는 말이 고작 나쁜 놈 하나일 수 있지? 하, 진짜 미안하네.’

화를 안 내니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진다.

“울지 마, 누나.”

“안 울어. 내가 왜 울어? 흥!”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있어서 우는 줄 알았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확실히 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는 또 다시 한참 말없이 누워 있던 주아 누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엄마가 많이 좋아했어?”

“응?”

많이 좋아했냐고?

나는 그녀가 한 질문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 아빠지만, 솔직히 좀 잘난 사람이야. 똑똑하고 잘 생겼거든. 대학 교수이니 오죽하겠니? 거기다가 성격도 쾌활하고 되게 좋아. 근데 엄마는 예쁘긴 했어도 그게 전부였어. 젊은 나이에 날 가져서 키우느라 뭔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거든. 거기다가 아빠를 오래 붙잡아두기엔 주변에 너무 대단한 여자들이 많은 거지.”

“…….”

“그래도 엄마는 아빠 조강지처 노릇을 정말 열심히 했어. 점점 많아지는 여자들끼리 싸우지 않게 서열 관리를 잘 했거든. 아빠도 그걸 알아서 나한테 항상 말했어. 엄마가 제일 편한 사람이라고. 근데 편하다는 게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잖아.”

“…그렇지. 편하다는 말보다는 사랑한다는 말을 해줬으면 좋아하셨을 것 같아.”

“응, 근데 그 말을 한 번을 안 해주더라. 다른 여자들한테는 술술 말해줬으면서. 잘난 사람인 건 맞지만, 남편으로서는 꽝이야. 완전 나쁜 사람!”

결혼을 한다는 건 그 여자를 평생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아 누나의 아버지는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워낙 잘난 사람이라서 버림받은 사람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단다.

“품이 넉넉한 사람이 아닌 거지. 여러 여자를 균등하게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모든 걸 태워버릴 듯이 사랑하다가 금방 식어서 다른 여자한테 마음을 줘버렸어. 버려진 여자는 아빠의 마음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거야.”

이 세계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런 경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손만 내밀면 전부를 다 던져 넣는 여자들.

그녀들을 데리고 노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쉽게 만나고 쉽게 버린 걸 거다.

“엄마는 그걸 여태까지 꿋꿋하게 참아왔어. 버림받은 여자들을 다독여서 아빠랑 다시 붙여도 주고, 너무 외로워하는 여자들은 적절하게 설득해서 헤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면서. 날 키우고 아빠가 버린 여자들을 챙기느라 인생을 다 바친 사람이야.”

“…그랬구나.”

“아직은 못 받아들이겠어. 근데 끝까지 안 된다고는 못 할 것 같아.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옆에서 다 봤잖아. 우리 엄마 솔직히 불쌍해. 동정심도 들고. 하필 왜 내 남자를 엄마가 건드렸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너라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것도 사실이야.”

“…….”

“나는 내가 선택한 남자를 믿거든.”

“고마워, 누나.”

“흥, 됐거든?”

나는 슬쩍 팔을 움직여 누나의 허리에 팔을 얹었다.

다행히 주아 누나는 조금 움찔 했을 뿐 내 팔을 거절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일이 나한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엄마 인생을 봐와서 충분히 이해하고 지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엉망이 되어 버렸네. 데려 온 여자가 내 엄마일 줄 어떻게 알았겠어.”

주아 누나는 내가 여자를 데려올 때를 대비해서 많은 마음의 준비를 해뒀었다고 한다.

나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한 명만 데리고 살기엔 내 남자가 너무 잘 났지.”

“약속할게. 절대 누나를 외롭게 만들지 않을 거야.”

“말은 잘 하네. 나쁜 놈 주제에!”

누나가 휙 돌아서 눕더니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가슴에 이마를 묻은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킁킁거리며 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해솔이 냄새.”

“냄새 나?”

“나쁜 냄새 아니야. 좋은 냄새야. 킁킁­ 이 품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나도 보고싶었어. 무지무지!”

“보고 싶었다면서 오자마자 엄마랑 붙어 있었냐? 잠깐 화장실 가있는 사이에!! 억울해 미칠 것 같아.”

윽!

아무래도 말을 잘못했나보다.

찔끔한 내가 곧장 입을 다물었다.

누나가 침대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앉더니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덥썩 잡았다.

“지금부터 엄마랑 키스한 거 소독할 거야. 마음 풀려서 키스한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아 둬야해. 알겠어?”

“…넵.”

아무래도 방금 얘기 때문에 정화씨와 키스하던 모습이 다시 떠올랐던 모양이다.

내가 순순히 대답을 하자마자 주아 누나가 내 입술을 잡아먹어버리 듯이 돌진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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