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78화 (178/849)

〈 178화 〉 #24. 해후 (3)

* * *

“내 걱정 하지 말고 자렴. 호텔 들어와서 방 잡았어. 응응, 그래. 주아 좀 잘 달래줘. 내 걱정은 정말 안 해도 돼. 난 괜찮으니까. 그래, 부탁해.”

해솔이가 걱정이 됐는지 늦은 새벽에 조심스럽게 전화로 안부를 물어왔다.

아마 주아가 잠들자마자 전화를 걸었을 거다.

참 다정한 남자다.

그래서 주책 맞게 욕심을 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남정화는 불안해하는 그를 능숙하게 다독이고 전화를 끊었다.

“하아~ 저질러버렸네.”

사실 해솔이가 재회의 기쁨에 격하게 키스를 했을 때 진심으로 그를 뿌리쳤다면 주아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정화는 반항하는 시늉만 할 뿐, 진심으로 그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았다.

‘잘한 거야. 지금보다 기간이 더 길어지면 주아가 받을 상처만 깊어졌을 테니까.’

각오를 한 일이었지만 주아가 우리의 모습을 보며 뭐하는 것이냐고 경악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돼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남정화, 너 정말 나쁜 년이다.”

자식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해솔이를 만나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의 답은 항상 같았다.

그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

그는 마약과도 같은 남자다.

아예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았으면 몰라도, 이미 그 맛을 알아버린 이상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최선의 방법은 주아로부터 그와의 관계를 인정받는 것이었다.

“내가 저지른 일인데도 아프네. 바보 같긴.”

그가 자신에게 달려와 키스를 한 순간 본능적으로 머리가 돌아갔다.

태양이를 낳아 산후 조리를 끝낸 주아가 최소한의 상처로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지금밖에 없다고.

그와의 은밀한 만남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주아는 더 많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자신을 기만한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남정화는 덜덜 떨리고 있는 자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스스로가 한 짓이지만, 아예 안 놀라는 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꼴에 충격 받았다고 떨기는. 나쁜 년이면 나쁜 년 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주아의 충격 받은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어떻게 설명을 할지 전부 생각해뒀는데 해솔이가 중간에서 끼어드는 바람에 하나도 써먹지 못했다.

과연 주아가 언제쯤 이성을 차리고 자신에게 연락을 해올지 걱정이 됐다.

“꼭 했어야 할 말들을 하나도 못했는데….”

저 혼자서 견뎌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에게 들켰을 때 이후에 대한 말을 자세히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던 거다.

해솔이가 먼저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무릎을 꿇을 줄도 몰랐고, 성욕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덮친 것이라는 말을 할 줄도 몰랐다.

“해솔이는 그 사람이 아닌데, 바보 같은 착각을 했어.”

진해솔은 여자의 뒤에 비겁하게 숨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 보는 눈 없다며 은근히 제 아빠와 결혼한 걸 비난하던 딸아이에게 할 말이 없을 듯했다.

‘저렇게 멋진 남자를 데리고 오다니. 내 딸이지만 정말 대단하잖아?’

그녀의 전남편이 새로운 여자를 데려올 때 매번 그렇게 행동해서 해솔이도 당연히 그렇게 할 줄 알았던 거다.

전남편은 저 여자가 유혹을 해서 넘어가버렸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 상대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시켰다.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비난을 참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여자들도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남자’에게 분노하기보단 대하기 쉬운 여자에게 모든 증오의 화살을 돌릴 수밖에 없다.

‘버림받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짓밟아도 되는 사람을 짓밟은 거야.’

솔직히 그녀는 다른 집처럼 새로 들어오는 여자를 크게 핍박한 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남편은 그녀의 노력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세상은 남성의 숫자가 너무도 부족했고, 법적으로는 남자가 여러 여자를 만나는 걸 제제할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더 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때문에 그녀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법으로 강제가 되는 일인가?

전남편과의 일로 그녀의 속이 까맣게 썩어갔었다.

그러다가 해솔이와 만났다.

딸아이의 남자친구로 말이다.

‘요즘에도 그런 책임감 있는 남자가 남아 있을 줄은 몰랐어.’

선뜻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준 해솔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든든하다.

당장 눈앞에 있었다면 키스를 퍼부어주었을 것이다.

남정화는 홀로 집을 나와 호텔방을 잡고 누웠지만 하나도 외롭거나 무섭지 않았다.

곁에 없지만, 해솔이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남자.’

찌르르­!

그녀는 심장이 욱신욱신 저렸다.

손 떨림도 어느새 잦아들고, 새로운 감각이 찾아 온 것이다.

스르륵­

잠옷을 챙겨오지 못해 그녀는 편하게 잠을 자기 위해 옷을 모두 벗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순간적인 충동에 몸을 맡기는 것이 무척 쉬웠다.

진해솔을 생각하면 그녀의 몸은 자연스레 애액을 분비했다.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를 잡아먹고 싶은 암사마귀의 마음을 가진 정화는 치솟는 성욕을 참지 않았다.

쯔걱! 쯧! 쯧! 쯔걱!

“하읏! 흣!”

외롭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음은 외롭지 않으나 몸이 외로웠다.

해솔이가 오늘 들어온다는 말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충동적으로 행동한 결과 외로운 밤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대하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그의 품에서 잠들 수 있을 줄 알았다.

‘두 사람, 집에서 하고 있겠지?’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그가 오랜만에 돌아 온 것인데, 외롭게 밤을 보내진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 상황 때문에 해솔이에게 집착하며 몸을 섞었을 거다.

정화 그녀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고, 주아가 그녀의 딸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에서 딸과 사위가 몸을 섞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본격적으로 본인의 몸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내일 당장 집으로 가서 주아와 단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야 해솔이와 몸을 섞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달그락­ 달그락­

쏴아아아~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음.

보글보글보글­

익숙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가 요리를 하는 소리였다.

‘누나가 일찍 일어난 건가?’

어젯밤 화끈하게 누나를 위해 봉사했다.

쾌감증폭 덕분에 나도 충분히 즐기긴 했지만, 오로지 누나를 위한 섹스였기에 나보다는 누나가 더 좋았을 건 분명하다.

일명 ‘접대섹스’인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게 효과가 좀 있었는지 누나는 화가 많이 풀린 상태로 잠에 들었다.

누나가 푹 잠들고 나서야 정화씨에게 연락을 넣었고, 그녀가 근처 호텔로 가서 방을 잡았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심하고 잠들었던 것 같다.

‘일찍 일어났네.’

이대로 밥을 다 차릴 때까지 누워 있을 순 없었기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내 옆에 익숙한 존재감이 있었다.

“엥?”

이불을 치워 얼굴을 확인하니 꿀잠자고 있는 누나가 보인다.

‘그럼 이 소리는 누가 내는 거야?’

자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서 고민하다가 뒤늦게 고용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신빙성 있는 추측이 떠올랐다.

정화씨도 요리를 못하는 편이고 (본인은 그걸 숨기려고 하지만 이미 들켰다.) 주아 누나도 정화씨보다는 낫지만 썩 잘 한다고 볼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집이 너무 커서 관리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기에 실비아한테 사람을 고용해서 보내라고 말해뒀었던 것도 같다.

이 정도 되는 집을 유지하려면 제법 돈이 드는데, 실비아에게 그 문제를 해결시킨 것이다.

다만 누나는 내가 집에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했었는데, 해외를 간 이후 사람을 쓰기 시작한 게 틀림없었다.

“안경을 쓰고 내려가야 하나?”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어제 대충 던져놓은 안경을 쓰고 바깥으로 나왔다.

“잉?”

그리고 바깥에 나와 보니 고용인이 아니라 정화씨가 웃으면서 음식을 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일회용 용기들로 보아 다행히(?)도 정화씨가 직접 만든 요리는 아닌 듯했다.

“일어났네?”

“언…제 오셨어요?”

여긴 엄연히 정화씨와 주아 누나 그리고 태양이의 집이니 왜 왔냐고 물을 순 없어서 언제 왔냐고 묻는 걸로 대신했다.

“얼마 안 됐어. 가서 주아 좀 깨워줄래? 밥 먹을 시간이 지났거든.”

“…괜찮을까요? 누나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았을 텐데.”

“평생 얼굴 안 보고 살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얼굴보고 풀어야지.”

“알겠어요. 깨워서 데려올게요.”

사람은 배가 든든하면 너그러워지는 법.

일단 밥부터 먹인다는 방법은 나쁘지 않을 듯하다.

다만 아침부터 살벌한 기운이 흐를 걸 생각하니 심장이 쫀득거린다.

“누나, 일어나. 밥 먹어야지.”

“으으웅…더 잘래.”

잠투정 부리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방 밖으로 나왔다.

누나는 잔뜩 풀어진 얼굴로 걸어나오다가 주방에 정화씨가 있는 걸 보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뭐야? 엄마가 와서 한 거야?”

“응, 일찍 오셔서 음식 하셨나봐.”

“어디서 급하게 사서 포장해온 거 다시 데운 거겠지. 엄마!! 엄마는 내 말이 우스워? 얼굴 보고 싶지 않다니까 아침부터 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엄마가 하는 일이 뭐겠니? 밥 차리는 거지. 와서 밥 먹어.”

“엄마 얼굴 보면서 밥을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싸늘하다.

심장이 수선댄다.

“그럼 먹을 수 있지. 못 먹을 게 뭐야? 이런 일로 밥 못 먹었으면 엄마는 진작 굶어 죽었어. 빨리 앉아!”

“…….”

주아 누나가 분하다는 듯 이를 까득 갈았다.

과연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아 누나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는 당당함이라니!

주아 누나는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나는 분위기를 좀 풀어보기 위해 다른 화제를 꺼내기로 했다.

“태양이는요?”

“아침먹이고 다시 재웠어.”

“지금 잠 잘 때 아닌데?”

도대체 언제 집에 들어와서 태양이까지 챙겼는지.

정화씨의 대단한 가사 스킬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심사가 꼬인 주아 누나가 되도 않는 태클을 건다.

“애는 잠이 보약이야.”

“지금 자면 낮잠 안 잔단 말이야.”

“너 어릴 때 잠순이었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네 아들이라 그런지 태양이도 잠돌이더라.”

“…….”

이번에도 정화씨의 승리였다.

과연 연륜을 이기는 게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정화씨가 주아 누나의 엄마라는 점도 승리를 챙기는데 유리한 점 중 하나였다.

주아 누나는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찌릿! 하고 정화씨를 째려봤다.

“엄마 얼굴 뚫리겠다.”

“도대체 왜 그랬어? 왜 하필 해솔이야? 내가 예전부터 아빠랑 이혼하고 좋은 남자랑 재혼하라고 했었잖아. 근데 엄만 계속 됐다고만 했었고.”

“그랬지.”

“근데 왜 해솔이 건드렸어?”

“다른 남자 만나봤자 조금 젊은 네 아빠가 될 뿐이라는 걸 알았거든. 그래서 그땐 괜찮다고 했어. 진심으로 관심 없었으니까. 근데…휴, 변명을 하려던 게 아닌데 자꾸 변명을 하게 되네. 그냥 내가 나쁜 년이 맞아. 너한테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어. 미안해.”

“…엄마 나쁜 년 맞아. 엄마만 아니었어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때렸을 거야. 지금도 자꾸 주먹이 쥐어지고 있거든. 근데 차마 엄마라서 그걸 못하겠어. 그래도 분해 죽겠는 건 마찬가지니까 변명이라도 들어볼래. 변명 해봐. 무슨 말 할지 궁금하니까.”

서늘한 주아 누나의 말이 무섭지도 않은지, 정화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내 딸이라서 그런가? 취향이 비슷했나봐. 해솔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끌렸어. 미친년이 주제도 모르고 지랄을 하는 구나 했지. 당연히 참으려고 했어. 내가 아무리 나쁜 년이라고 해도 모정이 있는데, 딸 남자를 건드리는 미친 짓을 쉽게 했겠니?근데 둘이 섹스 하는 걸 몰래 훔쳐본 후부터는 참을 수가 없어지더라. 진주아 엄마이기 전에 나도 여자였던 거야.”

“!!”

“!!”

주아 누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누나 방에서 숨 죽여 했던 섹스를 정화씨한테 들켰을 줄은 몰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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