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25. 비앙카 멜리사 실비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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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섹스하자며 덤벼드는 실비아를 진정시키고.
한동안 실비아의 ‘비앙카 멘탈 터트리기’ 작전을 들어주었다.
“악마한테 존경 받을 녀석….”
그걸 다 듣고 나니 절로 드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저 녀석이 비앙카가 싫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실비아는 비앙카가 깃들어 있는 분홍 곰돌이를 매우 애지중지 했다.
그녀가 실비아에게 해준 것처럼 예쁜 옷도 입혀주고, 더러운 것이 묻지 않게 투명 케이스에 넣어 보관하기까지 했다.
그뿐인가?
분홍 곰돌이 전용 집도 만들어주고, 매일 편하게 자라며 분홍 곰돌이 전용 침대 위에 이불을 덮어주어 재우기까지 한다고 한다.
“너는 왜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혀?”
“괴롭히는 게 아니라 사랑해주는 건데요?”
실비아의 삐뚤어진 사랑.
여러분, 얀데레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쌉가능이라고 하지 마세요. 당해보면 피 말린다니까?
“너한테 할 말이 많다.”
“헤헤, 말씀만 하세요! 이제 완전히 적응해서 비앙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저도 다 할 수 있어요.”
분홍 곰돌이로 비앙카의 삶을 지켜보긴 했지만, 그 시간만으로는 비앙카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실비아는 비앙카의 모든 것에 적응했고, 모르는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비앙카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달라진 실비아에 당황스러워 했으나 곧 그 성격에도 점차 적응하고 있었다.
윗사람의 성격 변화를 아랫사람이 진지하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성격이 이상해졌어…역시 노처녀….’ 라는 생각뿐.
“내 돈 재테크 좀 해줄 수 있어? 통장에 그냥 두기 아까워서.”
“어머! 그런 거면 잘 찾아오셨어요. 비앙카가 갖고 있던 재산을 운용하는 유능한 직원이 있거든요. VVIP 대우 해드릴 수 있어요! 투자 실패는 걱정하지 마세요. 원금 보존해드릴 게요.”
실비아는 재테크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역시 돈은 재벌한테 맡기는 게 최고인가 보다.
처음엔 그저 재벌이 나한테 주는 불이익을 막기 위해 손을 쓴 것이었는데, 이렇게 이곳저곳에서 도움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진짜 내가 한 일 중에 잘한 일 탑10에 꼽는다.’
홀가분하게 실비아에게 경제권을 맡기고 본격적으로 멜리사에 관한 일을 얘기했다.
“멜리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거에요. 제키라는 남자가 멜리사한테 엉뚱하게 고백을 했다면서요? 엉뚱한 놈이 낚여서 파닥거리니까 멜리사가 엄청 짜증이 났나 봐요.”
“그것 때문에 한동안 조용했던 걸로 아는데.”
“잠시 웅크리고 있었던 거죠. 단숨에 주인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뭔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야?”
“네~ 주인님 여자한테 접근할 생각인 것 같아요.”
“뭐?!”
내 여자한테 접근한다고?
“주인님을 뒷조사하면서 알게 됐나 봐요.”
“재벌 무섭네. 접근해서 뭐 어쩌겠다는 건데?”
“공적으로 접근했는데 실패했으나 이제 사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의미인 거죠.”
“구체적으로 말해봐.”
나에게 접근하는 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내 여자에게 접근해서 수작을 부리겠다는 말에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생각인 거야, 그 여자는?”
“주인님 여자한테 해코지 하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선물을 안겨줄 생각일 거에요.”
“선물?”
“잘 부탁한다는 거죠. 보통 남자가 안 넘어오면 그 남자의 아내를 노려서 잘 보이는 것도 방법 중 하나거든요.”
“…….”
“내 여자한테 잘 보이면 내가 그 여자를 받아줘야 하는 거야?”
“그보단 추천을 노리는 거에요.”
“추천?”
“대충 이런 거에요. 주인님 여자랑 친분을 쌓아서 소개 받는 거죠. 친분을 쌓은 상대라서 경계심이 낮아질 테니까 친분을 쌓는 게 훨씬 편해질 수밖에 없을 거에요. 더군다나 두 사람은 이미 일로 얽혀서 서로를 알고 있는 상태잖아요? 기가 막힌 우연인 거죠. 그 우연이 인연이 되는 걸 노리는 중인 거고요.”
“친구의 남자를 노린다는 거네. 그 와중에 내 여자는 희생 되는 거고.”
낯선 여자가 어떤 목적을 갖고 접근했는지 모른 채 이용당하는 걸 나보고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나중에 밝혀지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재벌 가문인데 뭐가 무섭겠어요? 더군다나 멜리사는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을 걸요? 여자랑 친분을 쌓을 때 돈을 퍼부을 테니까요. 내가 잘해줬으니까 널 좀 이용할게, 괜찮지? 이런 느낌인 거에요.”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인간관계를 돈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는 제대로 된 사람을 사귀지 못할 텐데, 본인은 그걸 모르는 모양이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제가 이 몸에 적응하고 가장 먼저 확인한 게 비앙카와 멜리사의 관계 구도였어요.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가문에서 파워가 센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비앙카가 압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더라고요. 멜리사는 가문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에요. 투자 능력이 좋아서 당연히 가문에서도 입김이 셀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닌 거죠.”
“아마 남자를 자꾸 다른 사람들한테 빼앗겨서 그럴 거야.”
멜리사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것을 빼앗겨도 전혀 분해하지 않는 점이다.
“남에게 자기 것을 빼앗겼는데도 보복을 하지 않는 걸 보고 오죽 답답했으면 비앙카가 대신 복수를 했겠어요. 가문 어른들은 멜리사가 가문을 맡으면 가문이 우스워질 거라고 발언권을 아예 빼앗아버렸대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버릇이 안 고쳐진 거야?”
“천성인 거죠. 고칠 수 없는.”
“비앙카는 그걸 고치려고 했는데?”
“동생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거에요. 그런 충격을 받는다고 멜리사 성격이 바뀔 리 없어요. 걔는 제 생각인데, 걔는 아마도 NTR충이지 않을까 싶어요.”
“!!”
NTR충이라면 남에게 자기 것을 빼앗기는 것에 흥분하는 변태를 말하는 거다.
“멜리사가?”
상상도 못해본 발언이었지만,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의 이상한 행동이 설명이 된다.
“너무 순진해서 그렇게밖에 욕구를 풀지 못하는 거에요. 본인 성향을 자각하지 못했으니까요.”
“…….”
핥짝!
실비아가 요염하게 입술을 혀로 핥는다.
“저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제대로 성향 개발 시켜줄 수 있는데 정말 아쉬워요. 하필 관계가 자매라서…. 사실 안에 든 게 다르니까 상관없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요?”
“하지 마. 그러지마. 너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비앙카가 너무 불쌍했다.
가뜩이나 몸도 뺏겼는데, 동생한테 이렇고 그런 짓을 하는 걸 보게 된다면….
‘백퍼 자살 마렵지.’
나는 비앙카가 그런 고통을 받을만큼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비아가 없었으면 비앙카 때문에 시달리는 건 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삐끗해서 재벌인 비앙카의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했다면?
‘보복이 따랐겠지.’
사전에 막아서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저지르지 않은 죄를 과하게 측정하여 벌을 주는 것에 선뜻 동의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벌어지지 않을 일이잖아.’
그런 끔찍한 짓을 당할 정도로 비앙카가 큰 잘못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비아는 생각이 달랐는지 자기 의견이 제법 괜찮지 않냐며 나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어때요, 주인님? 귀찮은 멜리사도 해결 되고, 비앙카도 따로 신경 쓸 필요 없어지는 일석이조의 방법인 것 같은데요!!”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야.”
“치잇!!”
“치잇은 무슨! 절대 안 돼. 나 분명히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눼에~”
가끔 저렇게 상식에서 빠져나가는 생각을 하는 녀석이지만 내게 도움이 되는 녀석인 것은 확실했다.
“멜리사가 내 여자들한테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싶어.”
“그냥 확 잡아다가 가둬버릴까요?”
“꼭 그렇게 극단적으로 해결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을까?”
“시시한 방법도 있기는 해요.”
“뭔데?”
“가문에서 요즘 멜리사랑 비앙카한테 결혼하라고 압박을 주고 있거든요. 멜리사를 결혼시키면 돼요.”
“완전 깔끔하잖아!! 그걸 왜 여태 말 안 했어?”
“시시하잖아요. 우는 사람도 없고 좌절하는 사람도 없는 훈훈한 결말 따위!!”
얘는 도대체 성격이 얼마나 꼬여있기에….
쟤를 만든 제작자가 궁금하다.
원래 자식은 부모를 닮기 마련이 아닌가?
‘하긴, 그 살벌한 문구를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야.’
애초에 제작자가 얀데레 집착의 끝판왕이긴 하지 않았나?
불만이 가득하지만 해도 시키는 게 있으면 착실하게 잘 해내는 편이었기에 걱정하지 않고 멜리사의 일을 실비아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 방법을 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 되는 게 아니에요. 시간이 좀 걸려요. 멜리사가 죽어도 결혼 못한다고 할 수도 있거든요. 걔가 가문에 힘이 없는 만큼 말을 안 들어도 아쉬울 게 없는 애라서요.”
“그럼 가문을 이용해서 결혼을 압박하는 게 소용없다는 거야?”
“주인님 여자한테 접근하는 걸 막지는 못하는 방법인 거죠. 걔는 지금 당장 행동하려고 하는 중이니까요.”
“그럼 그냥 이렇게 하자.”
“?”
“여기로 멜리사를 불러. 그리고 너랑 내가 사귀는 사이가 됐다고 해.”
“!!!”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게 살짝 찝찝했지만 그게 가장 평화롭게 멜리사를 포기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때, 내 말을 듣고 완전히 흥분해버린 실비아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외쳤다.
“당장 부를게요! 주인님 우린 섹스하고 있죠!!”
“이 섹무새야!!! 옷 안 입어?!”
기어코 속옷을 벗어던진 실비아가 나를 덮쳤다!
? ? ?
“하아~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언니는 또 왜 이러는 거야.”
멜리사는 오늘이야 말로 실행일이라 생각하고 계획대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난데없는 비앙카의 호출에 멜리사는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으로 오피스텔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가문에서 그녀에 대한 결혼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함께 왔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 없는데…!!”
가문이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강제로 결혼을 강요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재벌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
본인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 가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공했기에 그녀는 가문이 압박을 하면 할수록 불만이 계속 쌓이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말이다.
가뜩이나 가문의 참견을 꾸역꾸역 참아내고 있는데, 비앙카의 말에 따르면 가문이 무척이나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본격적이라는 건 남자 후보를 골라놨다는 거겠지?’
비앙카는 그녀가 빨리 가정을 이뤄서 나쁜 남성편력이 사라지길 바라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언니라고 동생의 불행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한 듯싶었다.
‘아예 가문에서 나가버리겠다고 선언할까?’
가문을 완전히 등져버리기엔 아쉬운 점이 많았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문의 도움을 아예 안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값이 없으면 투자를 받으려 하지 않는 회사가 수두룩했고, 그럴 땐 가문의 이름을 대서 그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곤 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문과 완전히 등져버린다면 더 이상 소소한 이득을 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나를 곱게 안 보는 년들도 내가 가문을 등졌다는 소문을 들으면 분명 공격해올 텐데.’
역시 가문과 완전히 척을 져버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고, 그 방법은 자연스레 ‘비앙카의 도움’밖에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비앙카한테 뭘 주고 도움을 받지?’
사실 그녀가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비앙카의 도움이 컸다.
가문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비앙카가 미혼인지라 상대적으로 동생인 멜리사가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다.
멜리사는 가문 어르신들의 관심 따위가 전혀 필요 없었기에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성향을 알고 있다는 듯.
가문 어르신 쪽에서는 이처럼 그녀의 일상을 깨부시곤 했다.
‘멜리사 케이는 언제든 이용당할 수 있는 케이 가문의 패’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으라는 듯이 말이다.
‘진짜 싫다.’
깊게 한숨을 쉰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비앙카가 주소를 보내온 오피스텔이었다.
아무것도 받지 않고 도와줄 사람이 아니기에 멜리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뭘 내주어야 비앙카의 도움을 받아 결혼을 미룰 수 있을지.
그녀가 가진 것들을 저울에 올려놓고 넣었다가 뺐다가 하면서, 최대한 아깝지 않은 것을 넘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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