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26. 아현테라피 (3)
* * *
“으음.”
머리가 아팠다.
지끈거리는 통증에 절로 신음이 나온다.
멜리사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짜증을 내며 눈을 떴다.
아직 밤인지 주변이 어두컴컴했고, 시야가 흐리기까지 해서 그녀는 잠을 쫓아내기 위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약이 어디 있더라?’
두통도 두통이지만, 온 몸이 아팠다.
누구한테 두들겨 맞은 것 마냥 말이다!
오늘은 마사지를 받으러 가야겠다 생각하며, 두통약을 찾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읍!? 으읍!!!”
하지만 그녀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뭐야? 나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두통과 잠기운에 몰랐던 진실.
그녀는 지금 무언가에 의해 몸이 꽁꽁 묶여 있었다!!
더군다나 아주 차가운 땅바닥에 온 몸이 밧줄로 묶인 채 누워 있었다.
‘아파!’
평생 침대 위에서 잠을 자던 그녀였기에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아팠다.
주변에는 차가운 회색 시멘트 바닥과 손바닥 만한 작은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 뿐.
더 충격적인 것은 목구멍으로 삼키지 못할 크기의 동그란 무언가가 입 안을 꽉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입 주변에는 당연히 테이프에 꽁꽁 묶여 있었기에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절대 움직이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모든 것을 차단해둔 것 같았다.
‘누구지?’
완벽하게 사지가 묶여버린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몰라왔다.
유일하게 자유가 허락 된 눈으로 희미하게 비춰주는 불빛에 의지해 주변을 살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누군가가 일부러 치워두었는지 회색의 시멘트 바닥에 철문과 의자만이 덩그러니 있는 좁은 창고였다.
철문 옆에 작은 의자 위에는 뜬금없이 분홍색 곰돌이 인형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분홍 곰돌이의 존재는 그녀를 조롱하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쓸데없이 예쁜 분홍 곰돌이는 다급한 그녀가 신경 쓸 존재가 되지 못했다.
눈을 깜빡이며 한참 공포를 떨치기 위해 노력하던 멜리사는 가쁜 숨을 쉬면서 머리를 굴렸다.
‘납치인가?’
그녀가 가진 재력을 생각하면 납치가 마냥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어떻게 자신을 납치했느냐다.
지끈거리는 두통 속에서 납치당하기 전까지 자신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려봤다.
‘비앙카! 맞아, 비앙카랑 와인을 마셨어. 해솔씨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서 날 불렀고, 다짜고짜 와인을 마시라고 해서 마셨는데...그 이후에 어떻게 됐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와인을 마신 후가 깔끔하게 삭제 된 것이다.
비앙카가 술에 취한 자신을 아무곳에나 버려뒀을 리가 없었기에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가 납치당했다면 비앙카라고 해서 멀쩡하진 못할 게 분명했다.
납치했을 때 가치가 높은 사람은 자신보단 비앙카일 테니 말이다.
‘비앙카도 함께 납치를 당한 거라면 가문에서 움직일 거야.’
가문에서 버려진 자신이야 어디서 죽어도 신경 쓸 사람이 없으나 비앙카는 사정이 달랐다.
그녀의 실종은 금방 알려질 것이고, 가문의 어르신들도 결코 이 사건을 대충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에 자신은 최대한 몸을 사렸다가 이득을 취하면 되는 거다.
비앙카가 구출 될 때 그녀도 함께 구출 되는 것이다.
가문을 완전히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면 가문에서 해결을 해준다.
온 몸이 묶여 무력화 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인내하고 사건이 해결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밖에는 없었다.
1시간…2시간…3시간….
“으으으읍!! 읍으으으읍!!!!”
도대체 언제 나타나는 거야!!
아무리 기다려도 납치한 범인이 나타나질 않으니 미칠 것 같았다.
차가운 바닥 때문에 입이 돌아가 버릴 것 같았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배가 고프기도 했다.
제발 범인이 와서 아무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방치할 거면서 납치를 왜 했냔 말이다.
억울하고, 힘들어서 눈물이 울컥 나왔다.
“흐으으…흐으으으…흐우우우…!”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여기 사람있어요!! 살려줘!! 살려달라고!!!
곱게 자란 멜리사다.
고통의 역치가 낮은 그녀에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온 몸이 꽁꽁 묶인 채로 버텨야 하는 상황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제일 힘든 것은 생리현상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쌀 것 같아!!’
비앙카와 와인을 제법 많이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진해솔에게 했던 선전포고를 전해 들었는지 비앙카가 자신을 놔주지 않고 술에 잔뜩 취하게 와인을 계속 먹였다.
그래서 그녀의 방광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젖 먹던 힘까지 다 해서 최선을 다해 버텨보지만….
쉬이이
“흐으으으응…!”
결국 멜리사는 참지 못했다.
축축해진 하체.
그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찝찝함과 자괴감 그리고 두려움 분노 등 온갖 감정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끼이이이익!!!!
그녀가 결국 포기하고 실례를 해버린 상황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철문을 통해 환한 빛이 창고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멜리사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범인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회유를 해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치, 침착하자! 섣불리 범인을 자극하지 않고 버티면…!?’
“미안미안! 수습 좀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네? 역시 급하게 짠 계획이라서 그런지 실수를 많이 했더라고. 수습하는데 엄청 고생했지 뭐야?”
"!!!!"
범인의 태연한 목소리.
멜리사는 범인을 확인한 순간 더 이상 차분하게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 온 범인은 그녀가 예상한 범위의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멜리사에게 너무 익숙한 목소리였고, 이런 일을 저지를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오죽 가까웠으면 멜리사가 납치범의 이름과 얼굴 사는 곳까지 전부 다 알고 있을까!
때문에 멜리사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됐다.
도대체 왜?
“음!! 으으읍!!! 으으으음!!!!! 으음!!!”
납치범의 정체를 확인한 멜리사는 두려움과 공포 대신 분노와 경멸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살인충동을 느꼈다.
이건 선을 넘은 장난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그녀의 남자를 건드리겠다고 했어도, 보복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결코 웃으면서 넘어가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범인을 기다리던 멜리사는 이미 꼴사납게 오줌을 지려버린 상황이었다.
‘절대 가만 안 둬!!’
멜리사는 분노에 부들부들 떠느라 미처 알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범인은 그녀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멜리사의 소중한 사람인 비앙카는 대수롭지 않게 스쳐지나쳤던 분홍 곰돌이에 갇혀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여자는 껍데기를 빼앗은 분홍 곰돌이.
분홍 곰돌이에게 몸뚱이의 피가 이어진 친동생의 사정을 봐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살려 비앙카의 멘탈을 전부 깨트려버릴 작정을 한 상황이었다.
“아이궁, 그걸 못 참고 여기다가 쉬야를 한 거야?”
분홍곰돌이가 히죽, 껍데기의 동생을 향해 미소 지었다.
? ? ?
한편.
멜리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나는 아현이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명명한 아현테라피.
체구가 작은 아현이는 섹스를 할 때 들박하기가 참 좋았고, 가뿐하게 그녀를 들어 올려 정신없이 허리를 놀리는 중이었다.
“헤윽, 헥! 학!”
아현이는 두 팔을 내 목에 두르고 매달린 채로 흔들렸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덜미에 내 코가 묻어지고, 그녀의 체취를 듬뿍 맡을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체취를 맡으며 하는 섹스는 힐링 그 자체!
그래서 ‘아현테라피’라고 말한 것이었다.
이 행위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행복감을 준다.
더군다나 새로운 능력인 쾌감공유는 우리 모두에게 최상의 섹스를 선사해줬다.
‘좋았어?’ 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녀가 좋으면 나도 좋은 것이고, 내가 좋으면 그녀도 좋은 거니까.
‘복순 누나랑 할 때는 사용하면 안 되지만.’
고통을 쾌감으로 받아들이는데 재주가 있는 복순 누나는 예외로 두어야 한다.
누나에게는 쾌감이지만, 나에게는 고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현이가 헥헥헥 혀를 빼물고 거칠게 숨을 쉬었다.
찌르르 찌르르!
아현이로부터 전달되었을 쾌감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좀 더 열심히 허리를 놀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쾌감이라는 것을!
팡, 팡, 팡, 팡, 팡!
“아흣! 흥~! 으웅! 아앙! 해소라…힉!”
“여기 좋지? 이렇게 쿡쿡 찔러주는 거 좋아하잖아.”
“응응! 좋아, 아흑! 거기…아읏!”
들박을 너무 오래하면 아현이 몸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적당할 때 내려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절정에 도달하기 전에 침대에 살포시 내려주고 그녀의 다리를 내 허리에 휘감은 뒤 가장 빠른 속도로 피스톤질을 했다.
아현이에게서 숨 넘어 가는 소리가 난다.
그녀와 쾌감을 공유하는 나 또한 절로 토해지는 신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큭! 윽! 후우, 읏!”
“앙…아앙…아아아!”
쾌감공유를 하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파트너와 절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먼저 가버린다거나, 상대방이 빠르게 끝나버리면 아직 성욕이 해결 되지 않은 파트너는 난감해지곤 한다.
그런데 쾌감공유를 하게 되니 그럴 일이 없어졌다.
내가 절정에 도달하면, 파트너도 함께 절정에 도달한다.
시작과 끝이 같아지니 섹스를 끝내는 것이 굉장히 편해지는 거다.
‘나는 만족했는데, 상대방은 아직 만족 못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엄청 편해.’
쾌감공유는 아현이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항상 섹스가 끝날 때마다 자신이 부족하게 했을까 걱정을 하던 아현이가 더 이상 그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쾌감공유를 하지 않았을 땐 “나 한 번 더 할 수 있는데….” 하고 내 눈치를 보곤 했었는데 이젠 그런 일이 없이 당당하게 내게 기분 좋았다며 행복한 미소를 보여줬다.
지금처럼 말이다!
“헤헤, 기분 좋았어. 쪽! 너는?”
“쪽쪽! 나도 엄청 좋았어. 아현테라피 제대로 했네. 피로가 싹 풀렸어.”
내 능력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를 보인다는 건 본능적으로 느끼는 게 분명했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그런 거.
쾌감공유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우리를 끈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언니 퇴근했대. 여기로 오라고 했어.”
“맥주 마실까?”
분명 기대하라고 했으니 복순 누나가 오면 지금보다 더 화끈한 섹스를 하게 될 거다.
하지만 아현이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치킨과 맥주가 제격이었다.
“나 해외에 있을 때 치킨에 맥주 엄청 땡겼거든. 땡초치킨으로!”
“아항항! 그랬어? 거기서도 치킨 먹을 수 있지 않아?”
“밖에서 먹는 건 여기 치킨 맛이 안 나.”
차원이 달라지면서 내가 아는 치킨이 여기서도 똑같은 치킨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해외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고향 음식 그리워지면 정말 답도 없겠더라.
나라 이름만 다른 평행세계인 세상에 떨어져서 정말 다행이다.
아현이가 나를 위해 땡초치킨과 시원한 맥주를 시켜줬다.
치킨과 복순 누나를 기다리는 동안 섹스로 더러워진 몸을 씻었다.
방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때맞춰 치킨과 함께 복순 누나가 아현이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벌써 한 판 했네?”
젖은 아현이의 머리를 보고 복순 누나가 살짝 질투심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서 못 참겠더라고요.”
아현이가 먼저 신호를 보내서 하게 된 거지만, 부끄러울 테니 내가 시작한 걸로 했다.
“언니가 저였어도 했을 거잖아요.”
“후후, 당연히 당장 잡아먹어야지. 아껴뒀다가 남한테 뺏기라고?”
“거봐요!”
“아휴~ 씻으려고 했는데 치킨부터 먹어야겠다.”
식은 치킨은 용납할 수 없는 법!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두 마리 치킨을 뚝딱했다.
누나는 제일 먼저 치킨을 다 먹고 씻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문제는 누나가 혼자서 가지 않고 아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는 거다.
“우리 준비하느라 바쁘니까 여기 치우고 방에 들어가 있어. 나오면 안 된다?”
“…네.”
윙크를 찡긋하며 당부하는 복순 누나.
이 정도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눈치 챌 수밖에 없다.
‘뭔가 제대로 준비한 모양인데.’
아현이를 데려간 걸 보면 혼자가 아니라 아현이까지 끌어들여서 무언가를 하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한 발 쌌지만, 금세 회복해서 쌩쌩한 하체를 손으로 더듬으며 확인하고 주섬주섬 치킨과 맥주 먹은 상을 치웠다.
후다닥 상을 치우고 싱크대에서 이빨을 닦은 후 침대에 누워서 그녀들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시키는 대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