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27. 나의 주인님 (1)
* * *
“정산 받은 걸로 뭐했냐?”
“오토바이 샀어.”
“미친?”
“오토바이 피규어. 흐흐.”
“장난감? 에씨, 깜짝 놀랐잖아. 진짜 오토바이 산 줄 알고.”
“장난감 아니거든? 피규어거든?”
“용케 차는 안 샀네.”
“생각보다 이것저것 쓸데가 많더라고. 아직 차를 살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참았지. 다음 정산 때는 이번보다 더 많이 준다고 하셨으니까 그때 사지 않을까?”
멤버들이 모이니 내가 굳이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정산금에 대한 화제가 나왔다.
애초에 애들이 숙소에 돌아올 때 다들 짐이 한 가득인 채였다.
“나 너희들 주려고 선물 사왔는데.”
경태 형이 가장 먼저 ‘선물’을 꺼내와 안겨주었다.
놀랍게도 한 명도 빠짐없이 애들 모두가 멤버들에게 주겠다며 선물을 사왔다.
“와~ 우리 무슨 마니또도 아니고…. 이게 다 뭐람!”
“그러게. 다들 선물 사올 줄 몰랐어.”
“그러니까. 안 사왔으면 오히려 뻘쭘 할 뻔.”
“진짜 별 거 아닌 거 사와서 엄청 민망한데….”
“나도 그냥 놀러갔다가 거기 기념품 사온 거야.”
“전 먹을 거에요!”
선물을 까보니 경태 형은 잠옷을, 은규는 담요를 선물했고, 기우연은 초콜릿 세트를, 강준은 외국에서 구매한 황금복고양이 저금통, 제키는….
“우와아아!!”
“대에바악.”
“제키형 플렉스!!!”
무려 금으로 된 반지를 선물해줬다.
금반지 태에는 Airplane이라는 글귀가 멋들어지게 새겨진 상태였다.
“미래에도 이렇게 잘 될지 모르니까 만약 나중에 망해서 돈에 쪼들려지면 팔라고 금으로 맞춘 거야.”
제키가 환호하는 멤버들을 보며 쑥스러웠는지 괜히 아닌 척 퉁명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이미 금반지에 눈이 돌아 간 멤버들은 제키를 연신 연호했다.
“이거 찍어서 SNS에 올리자!!”
“일단 마지막으로 해솔이 형 것도 보고.”
“오키오키.”
금반지를 받은 멤버들은 잽싸게 반지를 착용했다.
“완전 멋있다.”
“촌스럽지도 않고 제키 형이 엄청 잘 고른 듯.”
가장 마지막으로 드디어 내 선물도 까졌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후드티였다.
언제 어딜 가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후드티만큼 범용성 좋은 옷이 없다.
“후드티! 남색 마음에 들어! 감촉 좋은데?”
“나 좋아하는 색이다!”
“남자는 핑크져!!”
각자 좋아하는 색으로 고른 후드티.
“이거 입고 반지 낀 거 찍어서 SNS에 올리면 완벽할 듯!”
“완전 웃기겠다.”
애들은 좋다고 꺄르륵꺄르륵대면서 사진 찍을 구도를 열심히 구상했다.
나는 허허 웃기만 하다가 말했다.
“근데 너희들 정산금 어떻게 하기로 했어?”
“저는 엄마줬어요!”
기우연은 엄마에게로.
“나는 그냥 통장에 넣어뒀는데.”
“나도.”
남은규와 강경태는 통장에.
“난 이미 거의 다 썼어.”
준이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남은규가 경악해서 물었다.
“헉! 그 많은 돈을 벌써? 어디다가 썼는데?”
“집!”
“집을 샀어?!”
“설마 그 돈으로 집을 샀겠냐? 원래 모아뒀던 돈이랑 내 돈을 합쳐서 집을 샀다는 거지.”
“아~ 깜짝 놀랐네.”
다행이도 돈을 허투루 쓴 애는 없어보였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우리들 나이가 아직 어린데, 너무 큰돈이 들어왔잖아. 어른들 도움을 받지 않는 경우에는 좋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어서 미리 주의를 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려고 말 꺼낸 거야.”
“형은 정산금 어떻게 했어요?”
“나는 반 투자하고, 반은 사치에 썼어.”
멤버들이 돈을 허투루 쓸까봐 걱정 된다는 사람이 정산금의 반이나 사치에 썼다고 하자 멤버들이 우우우~ 하고 야유를 한다.
“뭐에요, 그게~!”
“나는 또 막 엄청 알차게 잘 사용한 줄.”
“돈을 잘 쓴다는 게 뭐야?”
“네?”
“잘 사용한 줄 알았다고 했잖아. 내가 어디다가 돈을 썼으면 잘 썼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질문에 멤버들이 골똘하게 생각을 한다.
“돈이 돈을 번다라는 말이 있잖아. 그런 것처럼 돈이 돈을 벌게 하도록 쓰는 게 잘 썼다는 거 아닐까?”
“근데 어떻게 돈이 돈을 벌게 해?”
“투자?”
“주식?”
“그거 위험한 거잖아요. 울 엄마가 주식했다가 아빠한테 쫓겨날 뻔했는데.”
우연아, 네 돈 괜찮은 거 맞지?
“근데 주식이나 투자 외에는 돈으로 돈을 벌 방법이 없잖아.”
“그냥 예금해두는 게 최고 아님?”
“다음 정산금은 이번에 받은 것보다 더 많다는데, 그때도 그냥 은행에 넣어두게? 은행에서도 그러지 말라고 막 어디 펀드니 뭐니 제안할 걸?”
“아~ 그런가?”
얘네들도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이것저겄 주변에서 주워 들은 게 있기는 한 모양이다.
“보통 너희들이 말한 것처럼 돈을 불려줄 테니까 돈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을 거야.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해서 돈을 잃고 지인들을 잃게 돼.”
“지인은 왜 잃어요?”
“나한테 사기 치는 놈은 꼭 지인이거든.”
“!!”
사는데 ‘돈’에 대한 고민은 안 할 수가 없다.
돈이 없으면 없어서 고민하고, 돈이 많으면 많아서 고민하는 법.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외면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내가 사치에 쓴 건 내 평생소원인 물건이야. 누구나 가슴에 묻어 둔 나만의 로망이 있잖아. 이제 이걸 샀으니까 속이 후련해져서 당분간 사치는 안 부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남은 반은 알고 지내는 분한테 투자해달라고 맡긴 거고.”
“그러다가 투자금 다 잃으면 어떡해요?”
“내 지인이 재벌들 투자금 맡아서 굴리는 사람이거든. 내가 맡긴 돈은 진짜 별 거 아니라서 친분으로 겨우 맡긴 거야. 그래서 너희들한테도 물어 보는 거야. 만약에 돈을 굴려서 벌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랑 같이 그분한테 맡기자고. 적어도 후회는 안 할 걸?”
내 말에 선뜻 그러마 대답하는 멤버는 없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그러겠다고 대답했으면 한참 잔소리를 해야 했….
“제 돈 맡아주세여!!”
“…우연아 너는 엄마한테 줬다며.”
“엄마한테 다시 달라고 하면 돼요. 어차피 엄마한테 맡겨봤자 통장에 넣어두는 것밖엔 없거든요. 아님 옛날 못된 버릇 튀어나오든가. 좋은 기회라는데 믿고 맡길게요! 크게 바라는 거 없고 원금만 잘 지켜주세요!”
따악!
“악!”
“자, 이런 식으로 친분을 통해 접근해서 돈을 맡기면 어떻게 된다?”
“바보 기우연.”
“사기 당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돈 거래는 함부로 하는 거 아니죠.”
“만약 내가 아는 지인이 사기쳐서 도망이라도 치면? 나랑 우연이 관계는 어떻게 될까? 나도 당한 피해자인데.”
“파탄 나는 거죠. 형도 피해자라지만, 내 돈이 사라졌는데 형을 어떻게 원망 안 하겠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지인 관계라고 해서 바로 믿지 말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돼. 그 사람이 믿고 있는 말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이마를 맞은 기우연이 울상이 되어서는 항의한다.
“뭐에요! 그럼 아까 재벌들 돈 맡아서 투자한다는 지인 얘기는 다 거짓말이었어요?”
“아니, 그건 진짜야.”
“엥?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오! 진짜 재벌 돈 맡아서 굴리는 사람이야?”
“투자하면 얼마나 불려준대?”
방금 전에 지인이 하는 말을 무작정 믿지 말라고 했는데, 이놈들이 순진하게 홀딱 넘어온다.
이래서는 분명 어디서 코 베이고 올 확률이 매우 높았다.
“쯧쯧쯧, 이래서 해솔이 형이 잔소리한 거구나?”
가만히 애들이 하는 걸 듣고 있던 제키가 혀를 차더니 말한다.
“1분 전에 함부로 지인들 믿지 말라고 했는데 얘네들 왜 이러냐?”
제키는 오래 전부터 작곡가 활동으로 돈을 벌고 경제 활동을 해왔기에 갑자기 많은 돈이 생겨도 걱정이 되지 않는 멤버였다.
“저건 어쩔 수 없어. 몇 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거든. 형이 귀에 피가 나도록 말해봤자 한 번 경험해보는 거에는 못 당한다.”
“그래도 동생들이 사기 당할 때까지 지켜보는 건 좀 그렇지.”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 둬. 나중에 급해지면 형 찾아올 걸? 그때 잔소리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돈이야 또 벌면 되는 거잖아.”
이 자식아…돈이 벌고 싶으면 벌 수 있는 거냐?
쟤는 자기 능력으로 잘난 척을 하는 건 아닌데 좀 교묘하게 사람을 짜증나게 할 때가 있다.
‘자기가 잘난 건데 다른 사람도 다 할 수 있는 줄 아는 줄 안단 말이지.’
그래서 얘기를 하다보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비참해지곤 한다.
‘이게 안 된다고? 왜? 이 쉬운 게 정말 안 돼? 말도 안 돼. 에이~ 장난치는 거지?’
마른 사람한테 뚱뚱하다고 놀리는 거랑 진짜 뚱뚱한 사람한테 뚱뚱하다고 놀리는 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느낌이 많이 다르지 않은가?
진짜 안 되는 사람한테 왜 이거 안 돼? 하면 염장 지르는 것밖에 안 된다.
지금처럼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우리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말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굉장히 모멸적인 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잇, 그래서 맡아주겠다는 거에요, 말겠다는 거에요?”
“다른 사람이 투자해줄 테니까 돈 달라고 하면 줄 거야?”
“형이니까 믿고 맡기는 거죠! 다른 사람이었으면 저도 무서워서 못해요.”
“정말이야?”
“네!”
기우연이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이라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너는 왜 나한테 돈 맡기는 건 안 무섭냐?”
“만약 제가 맡긴 돈을 다 날려도 형이라면 책임져주려고 할 테니까요.”
마냥 어리게만 봤던 우연이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행동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형 믿어!”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돈을 맡긴 거잖아. 해솔이 형이 못 믿을 사람한테 돈을 맡긴다는 게 말이 안 돼.”
“아~ 돈을 좀 아낄 걸 그랬나. 나도 넣고 싶은데.”
“넌 집 샀으니까 된 거야.”
“그래도 투자할 기회가 생겼는데 나만 못한다고 하니까 아쉽고 그러네.”
뭐야, 진짜 다 나한테 돈을 맡기겠다는 거야?
“진짜 맡기려고?”
물론 나한테 돈을 맡기는 게 애들한테 좋은 일이긴 할 것이다.
실비아가 허투루 내 돈을 운용하진 않을 테니까.
나와 함께 자금을 움직이면 분명 큰돈을 벌 것이다.
하지만 그걸 얘네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하는 확신만큼 얘네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예금해둘 바에야 형한테 맡기는 게 낫지.”
“다들 맡기는 분위기네. 그럼 나도 맡겨볼까?”
하지만 집을 사서 돈이 없는 강준 빼고는 제키까지 나서기 시작한 건 정말 의외였다.
“나 신뢰의 아이콘이었어?”
“몰랐어?”
“형은 믿음직 하지.”
“솔직히 경태 형보다 더.”
“야, 가만히 있는 나는 왜 때리는데?”
“솔직히 맞잖아. 형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크흠!”
아무래도 내가 사회 경험이 있다는 게 티가 났던 모양이다.
멤버들이 나에 대한 신뢰가 생각보다 깊었다.
‘난데없이 감동 받게 되네.’
결국 돈을 다 쓴 강준을 빼고 나머지 애들이 전부 나와 함께 투자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돈은 나중에 몇 배로 커져서 멤버들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 ? ?
애들 돈을 투자해 넣은 날로부터 며칠 후.
“형한테 맡기길 잘한 것 같아요. 와~ 남의 얘기인 줄 알았는데, 저한테 투자 좀 해보라면서 접근을 하는 사람이 진짜 있더라고요. 돈 번 걸 어떻게 알았지?”
생활하면서 필요한 돈을 빼고 전부 투자에 넣은 덕분일까?
아이들은 갑자기 생긴 큰돈에 스트레스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 돈 전부를 투자해서 넣었다는데 없는 돈을 어떻게 받아가겠는가?
“나중에 정산금 받으면 그것도 형이 책임져주세요. 너무 큰돈은 무서워서 못 갖고 있을 것 같고, 엄마한테 맡기는 건 이제 말도 안 되는 일이라서요. 믿을 건 형밖에 없어요!”
특히 우연이는 식겁했던 일이 있었다.
엄마한테 맡겼던 돈이 하마터면 눈처럼 녹아내릴 뻔한 것이다.
그 돈을 예금해둘 줄 알았던 엄마가 아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고세 주식에 투자해 넣었단다.
우연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당장 빼라고 난리를 쳐서 어쩔 수 없이 원금을 조금 손해보고 뺐는데, 다 빼고 나자마자 그 주식이 곤두박질을 친 것이다.
그 충격적인 그래프에 우연이는 며칠간 악몽까지 꿨다고 한다.
더불어 그날 이후 우연이는 나만 보면 은인이라면서 연신 아부를 떨어댔다.
"나도 진짜 어이없는 일 있었어. 기억도 잘 안 나는 애가 갑자기 전화를 해선 돈 좀 달라고 하더라니까?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야."
우연이의 일이 있은 이후로 나머지 애들도 돈의 무서움에 대해 알게 됐는지 투자 계약을 할 때 “이자 값 벌어도 괜찮아.” 라고 하더라.
많은 돈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제키는 소용없을 거라고 했지만, 애써서 잔소리를 한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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