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94화 (194/849)

〈 194화 〉 #27. 나의 주인님 (3)

* * *

“노래 좋은데요?”

둠칫둠칫 리듬을 타던 프로듀서가 이어서 말했다.

“이걸 진해솔이 만들었다고요?”

“네. 괜찮죠?”

“묻어두기엔 너무 아깝네요. 조금만 손을 대면 더 좋게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곡 쓰실 겁니까?”

“그 부분은 제키가 하기로 말을 맞춰놨대요.”

“그럼 저한테 이걸 보여주신 이유가 뭐죠?”

“해솔이요. 이런 재능을 그냥 내버려두기 아까운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한 번 키워볼 생각 없으신가요?”

“해솔이를 제가요? 흐음….”

“번듯한 제자 키워놓으면 여러모로 좋잖아요.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해솔인데.”

진해솔.

아름아름 이쪽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하지만 천재라는 게 워낙 자주 쓰이다 보니 다들 시큰둥한 태도.

그럴듯하게 꾸며진 수식어가 얼마나 의미 없는지 이 바닥에 몇 년 만 굴러도 모를 수가 없었다.

허나 쭉정이들 사이에 살이 통통 오른 진퉁은 있는 법.

진해솔은 퉁퉁하게 살이 오른 진퉁이었다.

가면싱어를 통해 뛰어난 실력을 알렸고, 이젠 그 재능을 다방면으로 뽐내기 시작한 상황에서 한 숟가락 푹 찍어 맛을 볼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중에 스케줄 때문에 안 된다는 소리 못 합니다. 프로듀싱을 배우는 게 장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건데요.”

“호호호! 당연히 그래야죠. 가르쳐만 주신다면야 무조건 협조해드릴 거에요.”

전담팀 직원은 그동안 해솔이가 ‘지식’을 빨아들이는 속도를 알고 있었기에 자신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프로듀싱을 배우기 시작하면 오래지 않아 그의 노하우를 쪽쪽 빨아먹을 것이라는 걸!

“대신 전체적인 프로듀싱을 배우게 했으면 좋겠어요. 다 가르치고 나면 혼자서도 프로듀싱 할 수 있을 정도로요.”

“…진짜 진지하게 프로듀서로 키울 생각이에요?”

“이 친구의 끝은 어디인가 궁금할 정도로 모든 방면에서 배우기 시작하면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내더라고요. 그래서 이 친구는 끝까지 끌고 가고 싶어서 이것저것 키워보는 중인 거죠.”

아이돌이 프로듀싱을 한다?

만약 어림도 없는 녀석을 붙였다면 인상을 팍팍 쓰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정색을 했을 터다.

하지만 진해솔을 가르친 스승님 타이틀을 얻는 것은 그에게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거 아무래도 내 노하우를 쏙 빼먹고 싶다는 뜻인 것 같은데…. 슬슬 회사에서 나갈 준비를 해야 되는 건가? 로즈 트레이너도 독립하고 진해솔로 홍보해서 바짝 돈 땡긴다던데, 나도 그렇게 해봐?’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할 정도는 벌지만, 창업을 해서 대박이 났을 때 벌 수 있는 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이 바닥은 ‘감’을 잃으면 순식간에 일차리를 잃을 수 있는 곳.

회사에서 노골적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빼먹고 버리기 위해 각을 잡는 상황에서 순진하게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미래를 생각할 때가 오긴 했어.’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젊고 재능 넘치는 신인들.

그들을 위에서 누르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더군다나 진해솔에게 네 노하우를 가르치라는 회사의 방침까지 나온 상황.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미래를 위해서는 모욕을 당해도 눈을 딱 감고 참고 인내해야 할 때가 있는 법.

아등바등하며 자리를 유지하기보단 이 상황에서 빼먹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다 빼먹어야만 했다.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겨서 나가야지. 특히 진해솔을 홍보로 쓸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선 안 돼.’

로즈 트레이너의 성공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가슴이 쿵덕거렸다.

동료의 성공에 자신도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가 뭔가 싶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진해솔이라는 핫한 스타가 홍보에 도움을 준다면?

‘성공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지.’

“일단 가서 진해솔부터 데려와요. 싹수가 어느 정도인지 봐야겠으니까.”

“제대로 가르쳐주시겠다는 뜻인 거죠?”

“당연히 제대로 가르치죠. 다만 학생이 똑똑하지 못하면 저도 답이 없습니다.”

허니 엔터의 수석 프로듀서의 가르침은 쉽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교육이 될 것이기에 관련 된 지식이 없으면 공부 자체가 굉장히 힘들 수밖에 없다.

‘기초부터 가르치면 1년쯤은 훌쩍 지나가겠지. 그 정도면 명분을 쌓기 충분하고.’

회사에선 자신의 기술을 공짜로 진해솔에게 넘기길 바라고 있지만, 그걸 누구 좋으라고 공짜로 가르친단 말인가?

더군다나 프로듀싱 배우라며 스케줄도 빼줄 회사도 아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진해솔은 한 번 배우기로 마음먹은 분야는 배움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노래와 춤 그리고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몇 년을 연습한 연습생의 실력을 추월한 진해솔이다.

그리고 그러한 천재성은 프로듀싱 분야에서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 ? ?

회사에서 뜬금없이 프로듀싱을 배워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제키도 어려워하는 프로듀싱을 나한테?

조금 의아하긴 했으나 거부할 이유가 없는 기회였다.

더욱이 내가 프로듀싱을 배우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거다.

‘자유시간이 생긴다!’

다음 활동을 싱글 앨범으로 결정 내리고 난 후.

우리들은 휴가를 보내느라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연습실을 오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똑같은 연습에 연습이 이어지니 지겨워질 수밖에 없었고, 때마침 그 시간에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오자 거부를 못하겠더라.

음악 프로듀싱.

앨범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기획자를 말한다.

지금은 작곡만 하고 있지만, 아현이라면 프로듀서가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녀의 재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더 기껍게 여기는 중인 거다.

만약 그녀가 좀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한다면 내가 미리 배워두는 것으로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흐흐, 이 오라버니가 널 위해 열심히 공부해주마!’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곧장 수업시간이 잡혔다.

“안녕하세요, 한피디님.”

한용구 피디는 흔치 않은 남성이다.

프로듀싱 팀의 유일한 청일점이지만,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 좋아하는 직원은 없었다.

실력은 좋은데 성격이 굉장히 까칠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는 두툼하게 살이 오른 팔을 휘적이며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후우~ 여기 앉어.”

“옙.”

뿌연 연기와 담배 냄새가 베인 작업실이었다.

“오늘부터 나한테 프로듀싱을 배우게 될 텐데, 네가 그렇게 똘똘하다며? 나 기대해도 되냐?”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안 되지. 열심히 ‘잘’해야지. 난 멍청한 애들이 딱 싫거든. 가뜩이나 새로 들어오는 신인 프로듀서들 때문에 스트레스 잔뜩 받는데 널 가르치면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거든. 네가 천재라는 거 믿고 가르쳐보겠다고 한 거야.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지?”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수업이 쫑나는 걸까?

‘진짜 까칠하네. 확 안 한다고 해버려?’

하지만 아쉬운 사람은 나다.

대형 기획사 수석 프로듀서 자리를 차지하고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은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인 투자 없이 바라는 걸 얻는 게 어디 쉽겠나?

나는 어쩔 수 없이 코인을 좀 투자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오호~ 그래그래. 그동안 이렇게 시원하게 대답하는 놈이 한 명도 없었는데 마음에 드네. 자, 그럼 수준부터 확인해볼까?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다룰 줄 알아?”

할 수 있다고 말한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모르는데요?”

“!!!”

애석하게도 나는 미디도 찍을 줄 모르는 야매 작곡가였다.

? ? ?

[낯선 프로그램을 프로처럼 –심화편 (도서)]

[기획 음악의 꽃, 프로듀서, 프로로 대성하기 상급 (도서)]

[기계의 기능을 한 눈에! (안경형)]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올렸던 능력이 보조를 해주었기에 기초부터 시작한 프로듀싱에 대한 지식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다.

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눈부터 어질어질해졌던 나는 이제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곡 하나를 만들 수준이 되었다.

다만 프로그램 교육은 한피디님이 해주지 않고 인터넷 강의 듣고 기초부터 배우고 오라면서 날 내쳤기에 독학을 해야 했다.

‘기억력은 진짜 꿀능력치야.’

기억력 능력치는 생활을 하는데 자주 필요한 능력치였기에 꾸준히 올려왔는데 미디 프로그램을 배우는데 뛰어난 기억력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기초를 모두 배우고 오자 한 피디님은 그제야 심화 과정을 가르쳐주시더라.

단축기라는 위대한 기술이 손에 익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내가 기초도 모르는 놈이라는 걸 안 한피디님은 수업을 때려치우려고 했다.

내가 3일 만에 기초 떼고 오겠다고 하니까 그제야 마지못해 어디 한 번 해보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진짜 3일 만에 기초 떼고 왔지.’

기억력의 보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프로듀싱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노골적으로 나를 무시하고 골치 아픈 녀석으로 취급하던 한피디님의 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어갔다.

그의 노하우를 쪽쪽 빨아먹어야 했기 때문에 좀 과할 정도로 열심히 했더니 괴물 취급을 받게 되어버린 것이다.

지이잉­

[분홍 곰돌이 : 주인님!! 보여드릴 게 있는데 시간 좀 내주세요!!]

[나 : 일요일 가능?]

[분홍 곰돌이 : 당연하죠! 그럼 일요일 날 뵐게용~ 기대 많이 해주세요!]

“뭘 보여준다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뭘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 물어보려 했으나 때마침 목적지에 도착했기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

똑똑똑­

“선생님!”

그와 수업을 진행하면서 어쩌다가 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이 있는데, 피디님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좋아하기에 계속 부르게 됐다.

“아이씨, 너 또 왔냐?”

“왜 그러세요, 서운하게~”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헤헤.”

은은하게 담배 냄새가 베인 작업실.

골초인 선생님을 떠올리게 만드는 냄새가 이젠 정겹다.

처음에 나를 내쫓았던 건 너무 기초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걸 응용해서 곡을 만들어봤어요. 들어봐주세요!”

“하, 시발. 그걸 벌써 응용해서 곡을 만들었다고? 저번이랑 비슷한 퀄리티냐?”

지금 그가 나를 피하는 이유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

“아마도요.”

히죽 웃으며 대답하자 환장하겠는지 선생님이 이마를 짚었다.

“시발, 그래! 어디 한 번 보자! 봐보자고! 얼마나 잘 뽑아왔는지!!”

그가 이를 바드득바드득 갈면서 내가 가져 온 USB를 연결한다.

선생님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에 만든 곡은 영감을 받아 쓴 것이기에 저번에 가져왔던 것보다 훨씬 잘 뽑힌 곡이었다.

내가 만든 곡이 재생되고.

♪~♪! ♪~♪!

“…….”

“…….”

수업에서 배웠던 기술이 응용 된 세련 된 리듬에 선생님의 고개와 발이 절로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만든 거라서 이런 말하기 참 뭐하지만, 이번 곡은 좀 잘 뽑힌 것 같지 않아요? 확실히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걸 응용해서 만드니까 훨씬 세련 된 게, 촌스러움이 사라졌더라고요.”

“투박하지 않게 음을 잘 처리했네.”

인상을 팍팍 쓰던 선생님이 기어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한숨을 깊게 쉬며 중얼거린다.

“…시발, 괴물새끼.”

선생님은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더니 뻑뻑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진짜 천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고작 몇 주 만에 그의 평생이 담긴 노하우를 쪽쪽 빨리면서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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