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28. 싱글 (1)
* * *
“이상함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한 달이라는 공백기에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고요.”
“그래.”
실비아가 완벽하게 확인을 하고 오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아이템 성능을 의심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지만, 확실하게 확인을 해보지 못해 안심이 되지 않았었다.
‘멜리사랑은 이제 완전히 끝이구나.’
멜리사는 실비아와 있었던 일을 모두 잊고, 나와 얽혔던 일도 모두 잊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녀와 있었던 일들 모두가 사라진 것이 잘 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내 기억 속에 그녀와 함께 했던 밤이 생생한데, 멜리사에게는 영원히 기억내해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술사의 요술봉 (1회용)]
기억을 편집할 수 있습니다.
*보정1 – 어색한 기억을 보정하여 기억합니다.
*보정2 – 편집 된 기억에 의문을 느끼지 않습니다.
*보정3 – 기억에 의해 문제가 생길 시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기억이 추가 됩니다.
“주인니임….”
사용이 끝나 영롱한 초록빛을 잃은 요술봉을 상점에 넘겼다.
기능을 잃은 아이템은 상점에 10분의 1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
“왜 불러.”
“히이잉.”
“네 뜻대로 되니 좋아?”
“…잘못했어용. 다신 안 그럴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으면 간 떨려서 살겠냐.”
나는 실비아에게 그녀가 이런 일을 벌인 이유에 대해서 모두 전해들은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다소 강제적인 명령이 들어갔음은 당연한 사실.
멜리사는 무사히 돌아갔지만, 비앙카는 그러질 못했다.
“이제 비앙카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 영원이 이 몸에서 함께 사는 거에요.”
복잡하게 꼬였던 일이 드디어 정리가 됐다.
실비아는 정말 영악했다.
내 명령을 이용해서 자신의 사리사욕도 채우려고 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곰돌이 인형에 봉인 되어 있는 비앙카를 굳이 몸에 되돌려 넣으려고 하는 건지 이해를 못했다.
허나 설명을 들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 정말 몸을 빼앗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좋은가 보네.’
실비아가 비앙카를 한 몸에 넣고 융합되길 바란 이유.
바로 그렇게 하면 실비아는 영원히 비앙카의 몸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실비아는 항상 분홍 곰돌이에 깃든 비앙카의 정신력이 회복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걸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해봐라.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정신력은 계속 회복 된다.
아차하는 찰나의 실수로 몸을 빼앗기게 되면 다시 인형을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실비아는 비앙카와 융합 되면서 그 두려움에서 해방 되는 것이 진정한 목표였던 것이다.
‘자기 살 길 찾으려고 한 행동이라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멜리사를 제자리로 되돌려 보내는데 성공했으니 이제 비앙카와의 일만 남았다.
“융합은 어떻게 하는 거야?”
“주인님의 허락이 필요해요.”
분홍 곰돌이를 꺼내든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내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융합하는데 준비해야 할 게 있어요.”
“천천히 해.”
사실 실비아는 당장 비앙카와 융합 되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고 멜리사가 제대로 일상으로 복귀했는지 확인하고 오도록 했다.
본인이 벌인 짓이니 완벽하게 수습이 된 것을 확인하고 오라는 뜻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전부절 못하면서도 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아침까지 뜬 눈으로 기다린 실비아가 아침부터 멜리사의 집에 찾아 간 이유였다.
“헉!”
실비아는 섬뜩하게도 자신의 손을 칼에 그어 피를 내고, 그 피로 종이에 괴상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진 같은 거야?”
“네, 맞아요. 제작자님께서 가르쳐주신 거에요. 계속 사람처럼 살고 싶으면 이런 방법도 있으니까 기회가 되면 사용하라고요.”
인형을 만든 제작자이니 자기가 만든 인형의 앞날이 사람보다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저런 방법도 있다고 알려준 거겠지.
실비아는 자신의 손목에도 종이에 그린 것을 똑같이 그린다.
종이에 피로 그린 마법진 위에 분홍 곰돌이를 올려놓고, 곰돌이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실비아가 나를 향해 기대감을 담아 말했다.
“주인님, 융합 되는 걸 허락해주시겠어요?”
“어? 어어! 허락한다! 이렇게 말하면 돼?”
나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며 허락한다는 말을 했고, 실비아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 눈을 스르륵 감았다.
융합인가?!
생각보다 간단하면서도 섬뜩한 방법이다.
나는 기대감을 담아 실비아를 지켜봤다.
그리고….
파아아앗!!!
번쩍! 하는 이팩트는 없지만, 놀랍게도 인형에 불이 붙었다.
정확히는 피로 그린 마법진 같은 곳에서 불이 붙었는데, 그 불은 다른 곳에 번지지 않고 종이와 곰돌이 인형만 깔끔하게 태우고 사라졌다.
불길이 모두 사라졌을 때가 되어서야 곰돌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있던 실비아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실비아?”
어딘가 몽롱해 보이는 눈빛에 나는 조심스럽게 실비아를 불렀다.
실비아는 내 부름에 답하지 않고 멍한 채 서 있다가 몇 초 후에 느릿하게 반응을 했다.
“주…인님.”
“괜찮아? 된 거 맞아?”
“…기분이 정말 묘하네요.”
실비아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다리도 움직여보고, 팔도 움직여보면서 정상적으로 움직이는지 확인을 하고 있는 듯했다.
‘비앙카인가?’
비앙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빼앗은 원인인 나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비앙카?”
“이제부터는 비앙카라고 불러주세요. 더 이상 실비아와 저를 다른 존재로 지칭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제가 실비아고, 비앙카입니다.”
“두 사람이 융합 된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겠어.”
“기억이 합쳐지고, 생각이 합쳐지는 거에요. 불안정 했던 존재가 온전한 한 명의 사람으로 탄생한 겁니다. 다만 실비아가 메인으로 융합 됐으니 실비아를 대하듯이 해주시면 주인님께서도 편하실 겁니다.”
“그럼 비앙카는?”
“이름으로만 남게 되겠죠.”
실비아는 이름을 잃었지만, 온전한 사람이 되었고 비앙카는 이름을 남긴 채 실비아에게 흡수 되었다.
나는 실비아를 대하듯이 하면 된다는 말에 긴장감이 풀리는 것 같았다.
“사실 비앙카 입장에서 날 썩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 됐었어.”
“비앙카가 메인이 되었어도 주인님을 거스르는 일은 없었을 거에요.”
비앙카와 융합되긴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차이가 크게 없는 듯하다.
실비아는 여전히 실비아였고 비앙카의 모습을 찾아보는 건 어려웠다.
다만 한없이 가볍고 방방 뜨던 실비아의 성격이 비앙카 덕분인지 차분해졌다고나 할까?
실비아의 성격이 부담스러웠던 나에게는 환영할 만한 변화였다.
“주인님, 이제 완벽하게 준비 됐으니까 해드려도 될까요?”
“뭘 해?”
갑자기 뭘 한다는 건지 이해를 못해서 멀뚱멀뚱 눈을 뜨고 물으니 실 아니, 비앙카가 섹스럽게 웃더니 입술을 모아서 가볍게 허공에 뽀뽀를 날리더니 말했다.
“어젠 멜리사 때문에 저는 제대로 해보질 못했잖아요. 완벽해졌으니까 어제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에요.”
“…….”
실비아가 아무리 메인으로 섞였다고 해도 이런 것까지 남아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기승전결 또 섹스냐.’
실비아+ 비앙카는 결국 섹스로 끝나는 아이러니한 답을 확인한 나는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 ? ?
“안녕하세요.”
“꺄아아아악!!!”
“아니, 언니가 비명을 지르면 어떡해요?”
“여기 청취자 분들도 저랑 똑같이 비명을 지르고 계실 걸요? 그렇죠?”
실시간 채팅이 우수수 쏟아진다.
라디오 ‘박세연의 오후 데이트’에 출연한 ‘에어플레인’.
휴가를 끝내고 처음으로 시작 된 스케줄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해외에서 활동했다는 건 들어서 아는데, 언제 국내로 들어오신 거에요?”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해외 팬들이 어마어마해졌다고 들었어요.”
“사실 전 이 친구들이 데뷔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을 했었습니다. 잘 될 것 같은 친구들이라고요.”
“경이씨, 그건 나도 알겠다. 무려 가왕이 계신 그룹이잖아.”
“아~ 정말 그렇죠. 난리 났었잖아요. 해솔씨! 얼굴도 잘 생겼는데 노래도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비법이 뭐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서 출연하는 내내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정체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멤버들은 알아보더라고요.”
배워서 익힌 언어가 편한들 모국어보다 편하겠는가?
오랜만에 편하게 국내에서 활동을 하니 어깨가 가뿐했다.
멤버들 한 명씩 근황 토크를 잠시 하다가 노래 한 곡을 듣고 온 후, 본격적으로 라디오가 시작 됐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 에어플레인 멤버들은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시청자의 사연을 듣고 고민 상담을 해주는 코너.
멤버들은 각자 스타일에 맞게 조언을 해주면서 라디오 출연 시간을 보냈다.
"와~ 오늘 재밌었다."
"다들 말을 참 잘하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우~뭐 그정도를. 당연한 건데. 호호호! 그나저나가까이에서 라이브로 들으니까 다들 실력이 대단하네요. 콘서트는 언제 해요? 꼭 가야겠다.”
“감사합니다!나중에 콘서트 하면 연락드릴게요.”
“정말요? 나 기대해요?”
“물론이죠!! 꼭 와주세요.”
“호호호!”
라디오가 끝나도 분위기는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좋았던 촬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쿡쿡
"?"
쿡쿡
“왜?”
“형도 느꼈지?”
느꼈냐고?
“…너도?”
“응, 나도.”
시선을 돌려 다른 멤버들을 보니 다들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들은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진 않았으나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우리끼리 있는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경태 형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도 이 바닥에서 좀 먹어주는 것 같지 않냐?”
“형도 느꼈나보네.원래도 잘 대해주긴 하셨는데, 오늘은뭔가 미묘하게 달랐어.”
“솔직히 어깨뽕 들어가지 않냐? 되게 귀한 손님 대하듯이 해주시던데.”
“기분 좋을 수밖에 없지.”
그렇다.
우리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예전에는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해도 우리의 위치가 ‘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처럼 정말 귀한 손님으로 맞이해주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괜히 해외해외 노래를 부른 게 아니었나봐. 대우가 확 달라지네.”
“해외뽕 오짐요!”
기우연이 덩실덩실 엉덩이 춤을 추며 기쁨을 표현한다.
남은규가 기우연의 토실한 엉덩이를 찰지게 때려주며 진정시켰다.
“그럼 우리 이제 계속 이렇게 대우 받는 거겠죠?”
“아마 그렇지 않을까?”
“완전 좋다! 이럼 빨리 활동하고 싶어지는데.”
"아니! 그건 좀 아닌듯."
아직 컴백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를 불러주는 곳이 심심치 않게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한 거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라디오뿐 만이 아니라 특별히 무언가 화제를 모은 것도 아닌데 예능에서 우리를 섭외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강준과 나에게는 주연은 아니지만 제법 괜찮은 조연 자리 제안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우리는 정말 신기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우리?”
“아직 우린 꼬꼬마 신인 아이돌 그룹인 것 같은데….”
“전 저번에 방송국에서 선배님 소리도 들었어요.”
이정도 인지도를 가졌으니 다음 앨범은 적어도 망하진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이제 자신감 있게 어깨를 펴고 다녀도 될 정도가 된 것이다.
매니저 누나도 우리의 이런 얘기를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 너희 제법 잘 나가. 이제 어깨 펴고 다녀도 돼. 근데 너무 피고 다니다가 건방져졌다는 소리 나오면 안 되는 거 알지?”
“저희가 건방이요? 완전 안 어울리는 단어인데요?”
“이 바닥에서 어? 나 좀 대단해졌네? 라는 생각에 풀어졌다가 건방져졌다는 소리 나오는 게 국룰이거든.”
“그 정도로 풀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긴장을 좀 풀어도 되지 않나 했던 건데….”
“사실 어느 정도 그런 소리 나오는 건 감내 해야 돼. 너희가 건방져져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굽신거리면서 다니던 놈들이 신인 딱지 떼면서 정상적으로 돌아간 걸 건방져졌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거든. 이 바닥이 괜히 정글이 아니란다.”
설레어하는 우리들에게 매니저 누나가 웃는 얼굴로 살벌한 얘기를 한다.
“어휴, 그 소리 들으니까 도저히 긴장을 안 풀 수가 없네요.”
“잘못을 안 해도 욕을 듣는 세상이잖니. 잘 나가다가 훅 간 연예인 말해보라고 하면 여기서부터 방송국 정문 끝까지 줄을 세워도 될 걸?”
“…반박할 수가 없네요. 흑흑!”
기우연이 풀이 죽어서 우는 시늉을 한다.
결국 우리들은 대우가 달라진 것에 기뻐하는 걸로 끝내기로 했다.
여전히 인사는 90도로 깍듯이 했고, 인사는 목이 터져라 외친다.
"“안녕하십니까, 에어플레인입니다!!”"
“반가워요.”
라디오 방송이 있었던 날로부터 며칠 후.
우리는 허니 엔터의 조연주 이사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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