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00화 (200/849)

〈 200화 〉 #28. 싱글 (2)

* * *

조연주 이사를 눈앞에 둔 멤버들은 잔뜩 긴장해서 몸이 뻣뻣하게 굳은 상태였다.

긴장을 안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보여주는 포스가 예사롭지 않았다.

해외지사의 실질적인 총 책임자라 볼 수 있는 조연주 이사.

우리들의 해외 활동도 알게 모르게 분명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해외에서 워낙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그녀는 이사를 넘어선 영향력과 권력을 갖고 있었다.

‘나를 데뷔조에 단숨에 꽂아줄 정도로 말이지.’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기억.

이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고, 처음으로 섹스를 한 사람.

이 몸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그녀가 내 동정을 떼어주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만날 때마다 껄끄럽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연주 이사가 그날 일을 꺼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다.

덕분에 나도 그날 일을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만약 조연주 이사가 그날 일을 빌미로 계속 접근을 해왔다면 많이 곤란했을 거다.

그런 점에서 포니는 완벽하게 그날 계약을 지켰다.

‘그 계약을 완벽하게 지키려고 날 강제로 아이돌로 만들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포니가 했던 협박은 역시 뻥카였던 게 분명해.’

날 협박할 정도로 반드시 지키려고 했던 계약.

어쩌면 조연주 이사가 그날 이후로 귀찮게 굴지 않은 것도 무언가 알 수 없는 포니의 안배가 있어서가 아닐까?

‘어찌됐든 조연주 이사랑은 안 엮이는 게 제일 좋은데.’

역사를 쌓았던 사이인지라 편하게 대할 수가 없다.

물론 다른 멤버들이라고 해서 조연주 이사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에어플레인?”

“네!”

그래도 제키가 리더라고 조연주 이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다른 멤버들은 한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상황.

조연주 이사가 무슨 일로 우리를 부른 건지 의문을 담아 기다렸다.

“아주 잘 해줬어요. 차세대 허니 엔터 간판 스타가 되기 부족함이 없어요. 오늘 1층 로비에 여러분들 얼굴이 중앙에 걸릴 거에요.”

“헉!”

“우와!”

허니 엔터의 간판 스타라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로비 1층 중앙 자리.

그곳에 드디어 우리 얼굴이 걸린다는 건 굉장한 영광이었다.

배우도 이름순서 문제로 하차를 결정하는데, 가수라고 그런 일이 없겠는가?

1층 로비 중앙에 걸린 상징성이 그만큼 대단했고, 우리들에겐 엄청난 영광이었다.

“에어플레인은 몇 년이나 중앙 로비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참고로 레드위치가 7년 동안 차지하고 있었던 게 최고기록이었어요.”

전설적인 1세대 시조 아이돌 레드 위치.

7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을 확인하니 절로 존경심이 치솟는다.

더불어 도전 욕구도 함께 말이다.

‘7년이 최고기록이면…해볼 만하지 않나?’

지금과 같은 인기가 이어진다면 7년 이상을 유지해서 기록을 세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느덧 데뷔한지 3년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년도 시상식에선 들러리가 아닌 상을 기대해도 좋을 상황.

7년 계약기간만 잘 넘긴다면 우리라고 새로운 기록을 세우지 말란 법이 없을 것 같았다.

‘음,’

근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7년만 하고 이 바닥 뜨겠다고 생각해왔었다.

더군다나 계약이 끝나면 주아 누나와 결혼도 해야 한다.

태양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일까지 해야 했기에 7년이라는 시간을 정상에서 버틴다는 건 어려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엔 아쉬웠다.

“지금까지 잘 해줬어요. 소속사에서는 여러분들이 과도기를 무사히 지났다고 보고 있어요. 시류에 올라탔으니 이제부터 여러분은 열심히 노만 저으면 돼요. 고생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노력을 회사 높은 사람이 알아주니 기분이 묘했다.

‘성과 대박쳐서 사장님께서 친히 보너스 주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묘한 기분을 느끼며 조연주 이사의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이번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제가 여러분들을 맡기로 했어요. 컴백을 하면 기본적으로 글로벌 마케팅을 통해 해외 시장을 노리게 될 거에요.”

“국내 활동도 하면서 해외 활동도 함께 한다는 뜻인가요?”

“그래요. 이제 여러분들은 굳이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팬들이 찾아보는 수준에 왔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섭외가 올 거에요. 그리고 콘서트를 준비 중이에요.”

“콘서트!!!”

“완전 좋아요!”

“꼭 해보고 싶었는데!!”

우리도 드디어 콘서트를 하는구나!!

물론 콘서트 비스 무리한 것을 해외에서 해오긴 했지만, 공식적인 콘서트를 한다는 건 특별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싱글앨범 준비랑 콘서트 준비, 잘 할 수 있겠어요?”

“네!”

“완전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전국 투어부터 시작해서 해외까지 쭉 이어질 수 있게 해보는 거에요.”

“네!”

굵직굵직한 소식을 전해준 조연주 이사가 마지막으로 우리의 안부를 챙겼다.

“혹시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어…딱히 없어요.”

“맞아요. 일이 술술 잘 풀려서, 헤헤.”

“전담팀은 어때요?”

“잘 해주세요.”

“유닛 활동을 하고 싶어 했다고 들었어요. 서운하진 않았나요?”

“다음에는 하게 해준다고 하셔서요.”

“유닛 활동을 할 땐 좀 더 여러분들 의견을 참고해서 만들 수 있게 해줄게요.”

“오! 감사합니다.”

“멤버들끼리 사이는 어때요?”

조연주 이사는 세심하게 여러 가지 사항들을 물어봤다.

“은규랑 준이가 투닥대기는 한데, 크게 싸운 적은 없어요.”

“어…정말 그러네? 우리들끼리 크게 싸워본 적이 없지?”

“응. 없을 걸? 우리 모르게 싸운 사람 있어?”

“없는데.”

“나도 없어.”

“그럼 없는 거네.”

친구 사이에도 한 번 이상은 싸우는 날이 생기는 법.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싸움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숙소에서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한 번도 감정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은규랑 준이가 좀 아슬아슬하긴 한데, 서로 선은 잘 지킨단 말이지.’

기우연은 너무 애기라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되질 못하고, 경태 형은 나이가 제일 많아서 덤비는 사람이 없었다.

나름 연장자 대우랄까?

제키는 언급할 것도 없다.

특유의 포스가 있고, 진중한 성격이라서 티격태격 댈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나마 애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게 나인데, 남은규와 강준이는 서로에게 어그로를 끄느라 나와 티격태격 할 겨를이 없었다.

결국 우리 그룹은 싸움 한 번 하지 않은 그룹이 된 것이다.

“사이가 좋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조연주 이사는 흐뭇하게 웃었다.

얼마 후.

이사님의 방에서 나온 우리들은 서로 말을 잘 했는지 되새김 해봤다.

“생각보다 별 거 없네. 괜히 쫄았어.”

“이사님이 신경을 쓸 만큼 우리가 대단해졌다는 거지!”

“흐흐, 콘서트 기대 된다.”

“완전 웅장하게 하자. 나 평소에 콘서트 하면 어떻게 해야지 생각해둔 거 있거든?”

“벌써부터 설레어요!”

“일단 싱글 앨범 준비가 먼저야.”

콘서트는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싱글 앨범 컴백과 동시에 준비를 해야 한다.

벌써부터 개고생 할 생각에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느낌이다.

그래도 우리가 바라는 개고생이니 누구에게 힘듦을 토로하겠나.

“다들 오늘 이사님 만나느라 고생했어.”

“누나!”

“우리 기다리고 있었어요?”

“응, 너희들 오늘 좀 바뻐.”

“스케줄 없잖아요.”

이사님 방에 나오자마자 매니저 누나가 우리를 데리고 회의실로 데려간다.

그곳엔 우리들에게 들어 온 산더미 같은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스케줄을 받아서 얘기를 듣다가 뜬금없이 누나가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제키나 해솔이한테 제안하는 건데, 혹시 작곡한 곡이 있으면 제출해보지 않을래?”

“노래를요?”

설마 작곡가인 제키가 갖고 있는 노래가 없을까.

기회를 주지 않아서 쌓아두고 있을 뿐.

시간이 나면 항상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작곡을 하는 제키다.

“해보고 싶어요.”

“제키 너는 그럴 줄 알았어. 해솔이는?”

“음….”

제키가 있는데 굳이 내가 곡을 낼 필요가 있을까?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제키가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그냥 편하게 도전해봐. 뽑히지 않아도 크게 손해나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저도 해볼게요.”

영감이 오지 않는다면 내지 못하겠지만, 영감이 생긴다면야.

제키가 주먹을 내밀었고, 나는 그 주먹에 내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쳤다.

? ? ?

“후우….”

에어플레인이 방을 나가고 홀로 남은 조연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익숙한 만성두통.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 캘린더를 확인했다.

요즘 국내와 해외를 들락날락 거리느라 비행기 마일리지가 왕창 쌓이는 중이다.

에어플레인의 예상보다 빠른 성공으로 그녀에게 일이 왕창 밀려들었다.

계획에도 없던 귀국을 몇 번이나 했는지….

문제는 이제 그녀가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될 에어플레인이라는 그룹이 그녀에겐 껄끄러운 그룹이라는 점이다.

‘진해솔.’

여전히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는 그날 밤의 기억.

잊어보려 했으나 쉽게 잊히지 않은 기억 때문이다.

‘더 잘 생겨진 것 같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굴었지만, 진해솔을 볼 때마다 몸부터 먼저 반응을 해버려서 조연주는 진해솔을 볼 때면 움찔움찔하는 자신을 감추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정작 진해솔은 자신과의 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린 것 같았지만 말이다.

‘미친년도 아니고, 왜 서운해?’

진해솔과 자신의 나이 차이가 몇인가?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고, 이어져서도 안 되는 인연이다.

‘정신 차리자. 그걸 왜 못 잊는 거야?’

일과 결혼을 했다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하곤 하는 그녀다.

남자는 그녀의 인생에서 필요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진해솔이라는 남자 때문에 그녀의 커리어에 큰 흠집이 생겼고, 마음도 수선스러웠다.

‘앞으로 계속 마주쳐야 할 텐데, 이런 식으로 흔들리면 곤란해져.’

짝짝!

자신의 뺨을 가볍게 때렸다.

“조연주, 정신 차리고 일하자.”

새파랗게 어린 남자애다.

조연주는 몸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억지로 억눌렀다.

♪~♪~♪~♪

“?”

다시 일에 집중하려던 순간.

사무실 어딘가에서 벨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조연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고, 에어플레인이 앉았었던 소파 틈에 핸드폰이 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흘리고 갔나보네.’

에어플레인이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으니 핸드폰의 주인은 에어플레인 멤버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연결시켰다.

“여보세요.”

­아! 핸드폰 주인입니다.

“…사무실에 흘리고 가셨더군요. 진해솔씨.”

­네?

“저조연주 이사에요.”

­아…!

“…….”

하필이면 핸드폰의 주인공이 진해솔일 게 뭐인지.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직원한테 맡길게요.”

­아닙니다. 제가 바로 찾으러 가겠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알겠어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전화를 끊은 조연주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면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분명 자신이 먼저 선을 그었었다.

그런데 정작 그녀 본인이 그 선을 넘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기회가 오지 않았으면 깔끔하게 포기했을 텐데.

'여태까지 잘 참았는데!'

핸드폰 때문에 생긴 예기치 않은 기회에 간신히 가라앉았던 몸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가까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 남자다.

남자를 향한 숨길 수 없는 호로몬의 당김.

노처녀인 조연주에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변화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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