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01화 (201/849)

〈 201화 〉 #28. 싱글 (3)

* * *

진해솔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해솔을 만난 조연주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다른 멤버들이 있을 때는 그래도 티를 내진 않을 수 있었는데 단 둘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 참을 수가 없어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다.

“핸드폰 찾으러 왔습니다.”

진해솔도 멤버들과 있을 때는 티가 나지 않았는데, 둘이 있으니 표정에 어색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있음이 티가 났다.

‘나만 안절부절 못한 게 아니었구나.’

진해솔이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니 어쩐지 조연주는 마음이 사르르 풀리면서 긴장도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진해솔이 너무 귀여웠다.

“여기 있어요. 소파 틈 사이에 끼어있더라고요. 아마 바지에서 흘렸다가 거기로 빠졌나 봐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거는 아닌데, 감사 의미로 사온 거에요. 따듯할 때 드세요.”

진해솔이 커피잔을 책상 위에 올렸다.

“커피 아니고 루이보스 허브티에요.”

“고마워요. 커피보다 은은하게 향이 나는 따듯한 허브티가 마침 마시고 싶긴 했거든요.”

조연주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핸드폰을 진해솔에게 넘겨주었다.

찌릿­!

흠칫!

핸드폰을 건네주는 손과 핸드폰을 건네받는 손이 살짝 닿는다.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었던 작은 접촉.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천둥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엄청난 여파를 만들었다.

둘 모두 티가 날 정도로 과하게 화들짝 놀라버린 것이다.

“…….”

“…….”

서로가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깨달은 둘.

마침내 둘만 남은 방 안에서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잘 지냈어요?”

“…예, 활동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재능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뭔가를 배우면 오래 익히지 않아도 대단한 성과를 보인다고요.”

멍청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소리를 했다.

자신이 한 말이 진해솔에게 어떻게 들렸겠나?

다행스럽게도 진해솔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지 덤덤하게 대답한다.

“네, 열심히 노력했으니까요.”

“처음에 진해솔씨를 두고 우려했던 일들이 모두 쓸모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 일은 사과할게요. 주변에서 천재라서 대단하다고 말할 테지만, 저는 천재라고 불린다고 해서 노력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생 많았고, 그 노력에 제대로 보답을 받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기분이 좋네요.”

시작이 많이 늦은 상황에서 비주얼 멤버로 그룹에 들어와 실력 좋은 멤버들과 지내면서 질투심을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해솔은 보란 듯이 그녀의 예상을 깨트렸다.

실력 좋은 멤버들과 비견 될 정도로 실력을 올려버린 것이다.

‘가왕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진해솔은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 상승에 성공했다.

때문에 주연주는 그날 일을 후회하면서도 후회하지 않게 됐다.

그 밤이 없었으면 진해솔을 놓쳤을 테니 말이다.

‘회사로서 큰 손해였을 거야.’

이렇게 재능 넘치는 친구가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게 의문이지만, 곧 데뷔조가 정해지는 상황이었으니 마음이 급하긴 했을 거다.

‘또 그런 짓을 할까봐 걱정 많이 했는데 의외로 방송 관계자들이랑 거리를 둔다고 했지?’

조연주가 가장 걱정했던 건 진해솔이 얼굴값을 할 때였다.

특히 멜리사라는 투자자가 등장했을 때, 많이 긴장했다.

‘그런 쪽으로 생각이 있으면 정말 먹음직스러운 사람이니까.’

헌데 진해솔은 투자자한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으로 조연주는 진해솔에게 가진 의구심을 완전히 털어냈다.

그날이 진해솔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의 반칙이었음을 확신한 것이다.

“천재라는 이유로 노력을 부정 당하는 건 좋지 못한 일이에요. 사실 나도 왕년에 제법 천재 소리 듣고 살았던 사람이거든요.”

지금이야 당연한 절차인 것처럼 ‘해외 활동’을 얘기하지만, 과거에는 ‘해외 활동’이라는 말을 하면 바위에 계란치기, 멘땅에 헤딩하기보다 무모한 일로 취급받았었다.

실제로 그게 맞기도 하다.

인프라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없는 길을 개척해 가야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레드위치와 함께 길을 개척해나갔다.

성공한 나라도 있지만, 무관심으로 무시당한 나라도 수두룩.

다른 나라 출신의 가수가 난데없이 자기 나라에 진출해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걸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시절인 것이다.

아등바등 고생에 고생을 하다 보니 진출해서 ‘돈’이 되는 나라가 생겼다.

오히려 국내보다 더 많은 인기와 더 좋은 대접을 해주는 나라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이쪽 업계 사람들에겐 ‘신화’ 혹은 ‘전설’로 불리게 되는 업적을 쌓았다.

‘날 천재라고 부르는 걸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불가능이란 없다.’ 라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은 그녀.

그때는 귀한 인재들을 데리고 뭐하는 짓이냐며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녀를 향해 ‘천재’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댔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녀는 천재가 아니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던 것 뿐.

더불어 레드위치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날만큼 대단한 재능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우리의 노력은 제대로 봐주지도 않고, 쟤네는 천재라서 가능했던 거지라는 말로 폄하하는 놈들이 제일 역겨워.’

조연주는 잠시 길에서 이탈하긴 했지만 바른 길로 걸어가고 있는 진해솔이 잘 되기를 바랐다.

그녀에겐 다른 멤버들보다 진해솔이 더 특별할 수밖에 없었고, 조연주에게는 진해솔을 위해 힘을 써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해솔씨는 저한테 바라는 게 정말 없나요?”

“…바라는 거요?”

“아깐 멤버들이 있어서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조연주는 이대로 진해솔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그에게 솔깃할 말을 내뱉었다.

한편….

나는 조연주 이사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시방석도 아니고…. 바로 나가고 싶었는데 왜 자꾸 말을 시키는 거야.’

하필이면 핸드폰을 여기다가 흘릴 게 뭐란 말인가?

잠금을 확실하게 해놓기는 했지만, 내 핸드폰에는 중요한 정보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잃어버리면 정말 곤란했다.

배경화면에 해놓지는 않았지만 갤러리에 태양이 사진이 가득하고, 나와 만나는 여자들의 개인적인 사진도 굉장히 많았다.

‘그러고 보니까 이걸 안 들킨 게 더 용한 일이었네. 조심해야겠다.’

이번에 한 번 잃어버리고 핸드폰의 중요성을 깨달은 나는 곧장 코인 아이템을 하나 구매했다.

[잃어버린 내 반쪽(스티커)]

부착시킨 물건을 언제, 어디서든 소환할 수 있습니다.

이 스티커를 붙여놓으면 언제 어디에 있든 원할 때 곧장 소환할 수 있다.

‘비싸지도 않은데 진작 사둘 걸!’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는 순간 바로 소환할 수 있으니 위험한 정보를 가득 들고 있는 갖고 다녀도 잃어버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지금 같이 어색한 순간을 억지로 참아내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딱히 없습니다. 아까 한 말 모두 진심이었어요. 멤버들도 모두 만족하고 있고요.”

다른 회사는 정산 한 번 받으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3년 동안 일한 금액이 2천만원 이하인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여기 허니 엔터는 우리에게 벌써부터 억대 정산을 해주고 있었다.

아직까지 관리에 큰 실수를 한 적도 없고 깔끔하게 정산도 잘 받고 있으니 불만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세계라고 해서 이쪽 업계의 불공정한 노예계약이 없는 게 아니다.

“정말 저한테 바라는 게 없는 건가요? 저 스스로 말해야 해서 좀 쑥스럽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음…그럼 숙소를 좀 더 넓고 보안이 잘 되는 곳으로 바꿔주실 수 있나요?”

계속 바라는 걸 말하라고 하니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질러봤다.

지금의 숙소도 지내기 나쁠 건 없지만 솔직히 성인 남자가 룸메까지 데리고 지내는 게 편하지는 않았다.

특히 나는 혼자 지내던 시간이 길다 보니 집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지곤 했다.

조연주 이사가 그렇게 대단하다면 숙소 쯤은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담아 바라보니 놀랍게도 조연주 이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네요. 바로 그런 걸 말하길 바랐어요. 보안 좋고, 방 넓은 숙소로 구해볼게요.”

“어…정말요?”

“그럼요. 바라고 말한 거 아니었어요?”

“솔직히 돈 한 두 푼이 드는 게 아니니까 안 된다고 하실 줄 알았어요.”

애들한테 이 소식을 말하면 아마 좋아서 뒤집힐 거다.

“저는 좀 더 개인적인 소원을 빌 거라고 생각했는데, 멤버 모두를 생각하는 해솔씨가 기특해서요. 아주 좋은 곳으로 구해볼게요. 그리고 추가로 벤도 바꿔줄 거고요.”

“!!!”

조연주 이사의 플렉스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만약 그녀와 껄끄러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펄쩍펄쩍 뛰면서 껴안았을지도 몰랐다!

“가, 감사합니다.”

“대신 콘서트 준비 잘 할 수 있죠?”

“당연하죠. 다른 애들도 엄청나게 열심히 할 거에요.”

“우린 여러분들을 서포터 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서로 잘 해봅시다.”

조연주 이사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아까 전의 찌릿했던 정전기의 감촉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압도적인 플렉스에 정신이 쏙 빠져서 일까?

어쩐지 더 이상 그녀가 불편하지 않아질 것 같았다.

? ? ?

만세!! 만세!!

멤버들에게 ‘핸드폰 구출 작전’의 성과를 알려주니 다들 손을 번쩍 들고 좋아서 난리가 났다.

그리고 우리는 괜히 조연주 이사님이 대단한 역사를 쌓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불과 며칠 후.

쌔~끈한 벤 한 대가 우리의 앞에 도착했던 것이다.

차가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는 건가 싶긴 한데, 조연주 이사님이 능력껏 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의 엄청난 실행력은 벤으로 끝나지 않았다.

“벌써 숙소가 결정 됐다고요? 말 들은지 이제 겨우 일주일인데요?”

“조연주 이사님이 실행력이 엄청나셔. 뭔가 일을 맡았을 때 질질 끄는 걸 제일 싫어하시거든.”

매니저 누나는 그래서 대단한 사람인 거라며 조연주 이사님을 향한 존경심을 표했다.

“이쪽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조연주 이사님은 전설이야. 전설. 너희들이 편하게 해외 활동 하는 게 다~ 그분 업적 덕분인 거지. 다음에 또 만날 기회 생기면 감사 인사 제대로 해야 한다?”

“네!”

“숙소 어때요? 가보셨어요?”

“너희들이랑 같이 가야 돼. 근데 너희들이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걸? 거기에 연예인들이 많이 살거든.”

“헉! 진짜요?”

연예인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건 그만큼 보안이 잘 되어 있는 곳이라는 뜻이 된다.

사생이나 파파라치들 때문에 고생을 하는 연예인들이 선택한 집이 아닌가?

사생에 의한 피해는 예전부터 경험해오고 있는 중이었기에 보안이 좋은 곳이라는 희소식에 다들 입이 찢어지려고 했다.

“형! 진짜 감사해요.”

“핸드폰 잘 잃어버렸어.”

“맞아, 거기서 핸드폰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숙소랑 벤도 없었을 거 아냐.”

“그땐 왜 그게 생각 안 났는지 몰라.”

조연주 이사님이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는데, 그때 그런 거 없다고 사양을 했었는데, 이제 애들도 마냥 사양을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크흠! 원래 이런 건 알아서 챙겨야 하는 거야. 바라기만 하면 절대 입 안에 안 넣어준다.”

사실 나도 숙소 얘기를 했을 땐 안 들어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 질러본 거였기에 얻어 걸린 거다.

하지만 며칠 동안 멤버들이 내 업적에 고마워하며 설거지 당번에서 빼주는 권력 아닌 권력을 누린 탓에 콧대가 높아진 상태였다.

“빨리 이사가고 싶어요!”

“숙소랑 벤까지 받았는데 연습 열심히 할 생각을 해야지. 회사에서 받은 거 전부 공짜 아닌 거 알지?”

회사에서 우리에게 돈을 썼다는 건 그보다 더 큰 돈을 뽑아 낼 자신이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 ‘돈 뽑을 곳’은 높을 확률로 ‘콘서트’가 될 것이다.

결국 숙소에서 다시 뻗고 잘려면 콘서트를 잘 치러야 한다는 뜻이 됐다.

“다시 연습 시작하자!!!!”

콘서트를 대비하여 데뷔곡부터 시작해서 싱글 앨범 곡까지 쉴 틈 없이 연습에 매진해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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