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 #28. 싱글 (5)
* * *
“내가 만든 노래 들어줘!! 저번에 네가 보내 준 곡을 베이스로 해서 만든 거거든.”
“아니, 왜 이런 거에 경쟁심을 느끼는 건데?”
“빨리이!”
아현이는 만나자마자 자기가 그동안 만들어놓은 노래 중 수작에 해당하는 것들이라며 내게 들려주느라 바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현이가 들려주는 노래들 모두가 대단히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해서 절로 입이 쩍 벌려졌다.
“너 진짜 재능 있는 거 맞는 것 같아. 노래 엄청 좋은데?”
언제 이렇게 실력이 좋아진 거지?
“정말? 괜히 나 기분 좋으라고 빈소리하는 거 아니고?”
“당연히 진심이지! 이러다가 수준차이나서 공동작곡 못 하는거 아니야?”
“절대 아니지! 나는 너랑 같이 하는 게 좋아. 그리고 네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실력이 늘지도 못했어.”
“확실히 그걸로 요즘 나도 실력이 많이 늘긴 했지.”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는 질과 다른 가르침.
학원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현역 프로에게 배우는 지식은 초보들을 가르쳐야 하는 학원에선 배우기 힘든 내용들이 많은 것일 뿐.
“회사전속은 생각 없어? 회사에 들어오면 선생님한테 직접 배울 수 있을 텐데.”
“내가 노래를 팔 수 있었던 건 네가 도와줘서야. 나 혼자서는 아직 부족해. 그리고 주변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작곡가는 회사에 들어가면 안 좋다고 하더라고.”
“아, 그거 잘 말했다. 그렇지않아도 너한테 말해주고 싶었는데, 선생님 말로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던데?”
“아니라구?”
작곡가가 회사에 들어가면 선배한테 곡을 빼앗기거나 원하는 장르의 작곡이 아니라 공장 돌리듯이 시키는 대로만 작곡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는 그녀.
그런데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그런 회사도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적어도 허니 엔터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네 말로는 회사 들어가면 수익이 안정 돼서 좋긴 한데, 원하는 작곡을 할 수 없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고 들었댔지?”
“응. 그 외에도 엄청 고생해서 계약기간 겨우 채우고 나와서 은퇴한 사람들 얘기도 많이 들었어.”
“선생님은 계속 회사 전속 작곡가였잖아. 그런데 한 번도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대. 자기는 회사에서 시키는 노래도 만들지만, 만들고 싶은 노래도 만들고 다른 회사에 판매도 한다고 하더라고.”
“정말? 그런 얘긴 처음 들어.”
“허니 엔터가 특별한 건가?”
“그렇지 않을까?”
“근데 그게 사실이면 아무도 전속 작곡가를 안 하려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거잖아. 근데 선생님이 전속 작곡가 뽑을 때 경쟁률이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내 말에 아현이가 혼란스러워진 모양이다.
“오히려 회사에 소속 되면 체계적으로 작곡도 배울 수 있고, 인맥도 쌓을 수 있다고 적극 권장 하셨어. 재능이 많으면 그걸 더 살려주려고 하지 억누르는 짓은 안한다고 말이야. 재능이 있으면 더 대우를 해줘서 어떻게든 잡으려고 한다는 거지.”
“선배들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던데….”
“말은 그렇게 하고 뒤로는 면접 보러 다니고?”
“그럴 사람들 아니야.”
아현이가 너무 순진해서 걱정이 크다.
“에이, 설마….”
아닐 거라고는 하는데 어째 아현이의 표정이 애매하다.
“그건 일단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닌 것 같으니까 말 안 할게. 근데 내가 보기에 선생님이랑 네가 잘 어울린 것 같아. 그 아래에서 좀 더 배우면 좋을 것 같거든?”
“전속으로 들어가면 그분한테 배울 수 있는 거야?”
“아마 바로 배울 수 있지는 않을 걸? 그래도 인맥으로 내가 부탁을 드려볼 순 있어.”
“…너한테 부담 되는 거 아냐?”
“전혀! 네가 작업한 거 들려주면 가르쳐주고 싶어 하실 걸?”
“그럼 부탁할게.”
“ok!”
아헌이가 슬슬 작곡가로 자리가 잡혀 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제키를 소개 시켜 준다는 방법도 있지만….
‘아현이를 뭐라고 소개시켜야 돼?’
애인으로?
친구로?
애매하다.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은 그냥 안 하는 게 낫다.
그리고 저렇게 견제를 해대는데 만나게 한들 사이가 과연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근데 이제서 소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도 좀 민망할 것 같은데…. 이제서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그때보다 솜씨가 훨씬 좋아졌는데 거절할 리가 없지. 자신감 가져도 돼.”
“그럼 역시 나랑 하는 게 더 좋은 거지?”
“…그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어?”
“네가 아직 말을 안 해줬잖아.”
끝까지 듣겠다고 나오는 아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해줬다.
“너랑 하는 게 더 좋아.”
“히히히! 엎드려 절 받기인 것 같은데 기분이 나쁘진 않네!”
만족한 아현이가 히히 웃는다.
그게 또 제법 귀여워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다른 사람이랑 공동 작곡하는 게 그렇게 신경 쓰였어?”
“음…아니라고는 못하겠어.”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현이가 다른 사람과 공동 작곡을 한다면?
‘질투가 나…려나?’
여자 프로듀서랑 작곡하는 건데…그게 질투가 난다?
‘음, 그냥 그러려니 하자.’
내 대답을 들은 아현이가 만족하니 된 거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내가 영감을 받아 자곡했던 곡의 결과물을 받은 나는 아현이에게 했던 말을 취소해야하나 고민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제키가 만들어놓은 결과물이 말이 안 될 정도의 퀄리티를 갖고 나온 것이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제키는 그새 살이 쪽 빠진 상태였다.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는데, 거만하게 콧대를 세우고 팔짱을 낀 채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리듬을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졸라 좋지?”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미쳤는데? 와~ 이게 내가 만든 그 곡이 맞아?”
“맞아. 재료가 환상적이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있으나 쉽게 나온 노래는 아닐 것이다.
요 며칠 연습 때 제키가 유난히 힘들어 하고 수시로 꾸벅꾸벅 졸았던 걸 분명히 기억한다.
“아직 완전히 완성이 된 건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아직도?”
“형이 부족한 거 말해줘야지.”
“음…너무 좋아서 딱히 생각이 안 나는데.”
“진지하게 얘기 해줘. 부족한 부분이 정말 없어?”
“없어. 다시 들어봐도 여기에 뭔가를 더 건드릴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정말로? 아쉬운 부분이라든가 그런 게 전혀 없어?”
“없어, 정말로.”
재차 내게서 확인을 한 제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치고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른다.
“오예!! 끝났다!”
“내가 없다고 하면 끝나는 거였구나.”
“솔직히 내가 만들었어도 이걸 내가 만들었다고? 이런 생각이 들만큼 잘 만든 노래였거든. 그래도 형은 내가 못 본 걸 볼 수도 있어서 물어본 거였고.”
“이런 노래를 만들어놓고 부족한 점을 지적하라는 게 말 안 되는 거였어.”
“흐흐흐! 이거 바로 내자.”
“노래 만드느라 고생 많았다.”
멜로디를 수십 개씩 만들어서 제키에게 숙제로 낸 것은 아무것도 아닐 만큼 고생스러운 작업이었다.
“무조건 이 노래가 될 거야. 이 곡보다 좋은 노래가 나올 리 없어.”
“이 곡으로 컴백하면 차트 씹어먹는 거 아니야?”
“이번엔 오랫동안 1등 자리 지켜보자.”
“우리가 만든 곡으로 그렇게 되면 더 의미 깊겠다.”
만들어진 곡이 만족스러운 만큼 우리들의 기분은 고양 되었다.
이제 곡을 제출하고 평가 받는 일만 남았다.
걱정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
이 노래보다 좋은 노래가 나올 리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요 복덩이들~!!! 됐어!”
“네? 뭐가요?”
“설마…?”
“너희들이 낸 노래 통과했어. 너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도 들어봤는데 곡이 너무 좋던데?!”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 예상보다 빨리 들려왔다.
우리의 곡이 싱글 앨범 곡으로 선정 됐다는 소식이었다.
? ? ?
“곡 너무 좋아요!”
우리가 만든 곡은 멤버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전담팀도 그렇고 하나같이 곡을 들은 사람들이 칭찬을 했고, 그만큼 싱글 앨범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조연주 이사님이 이번 활동 때 제대로 돈을 밀어서 크게 할 거라고 하셨는데, 곡까지 잘 나오니 쿵짝이 잘 맞아 느낌이 좋았던 것이다.
“진짜 들어도 들어도 안 질리는 노래는 오랜만인 것 같아.”
“귓가에 계속 맴도는데, 그게 지겹지 않고 흥얼거리게 돼.”
곡이 잘 나오니 절로 흥이 나고, 흥이 나니 진도가 빠르게 나갔다.
최고의 안무가에게 의뢰를 넣어 안무를 만들었고, 관절이 갈려 나갈 것 같은 안무가 완성 되었다.
콘서트 준비를 하면서 싱글 앨범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니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싹뚝싹뚝 잘려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모두 현재를 즐기면서 지냈다.
‘이건 대박이야.’
그룹이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이번에 나온 곡은 우리 그룹의 대표곡으로 손색이 없었기에 그랬다.
“I need some time alone.”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싱글 앨범의 제목이자 곡의 디지털 앨범 표지 시안이 나왔다.
“핑크!”
“남자는 핑크지.”
“예쁘긴 하네요. 저도 이게 좋은 것 같아요.”
“이거 색만 바꾸는 건 안 되요?”
“어떤 색으로?”
“…아니에요. 저도 핑크로 할게요.”
디지털 앨범의 표지는 핑크색이 됐다.
핑크색이 압도적으로 색깔이 잘 나왔고, 디자인도 예쁘게 잘 나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남자 아이돌의 주된 소비자들이 ‘여성 팬’이다보니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색감이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핑크는 팬들에게 선호 되는 색깔임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진짜 이번에 뭐가 이렇게 착착 다 맞는지 모르겠다.”
“또 좋은 일 있어요?”
“응, 너희들 이번에 빈집털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빈집털이요!?”
“응. 컴백하는 그룹 중에 주의해야 할 만큼 엄청난 그룹이 없어. 컴백하면 1등은 따놓은 거나 다름없어.”
“와~ 일이 잘 되려고 하니까 이렇게도 되네요.”
해외 활동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활동할 땐 너무 큰 그룹이 함께 컴백을 해서 1위의 기쁨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내려와야 하지 않았나.
누군가는 빈집털이를 하는 거니 1등을 해도 그 의미가 퇴색 됐다고 말하겠으나, 우리들 입장에서는 기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날먹이로구나!!”
“솔직히 곡이 너무 좋아서 누가와도 안 질 자신 있었는데 아쉽네요!”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1위로 만들어주고 있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하늘 위에서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1위 못하면 알지? 하는 기분이랄까?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성과를 수확하는 일만 남았고, 우리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컴백까지 몸을 열심히 굴렸다.
빈집털이라고 힘을 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빡줘서 말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게 우리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컴백이다!!”
우리의 싱글 앨범 컴백날이 밝았다.
“오늘 6시! 뮤비 나오는 날이에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호들갑 떨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지 않았냐?”
기우연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말똥말똥하게 눈을 뜬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저녁 6시에 곡과 뮤비가 풀리지만 무대는 그 전에 방송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될 예정이었다.
촬영 된 무대는 곡이 발표 되고 난 이후에 방송이 될 거다.
“너무 긴장 돼요!”
“잘 될 거야. 우리 진짜 열심히 준비했잖아.”
“그렇겠죠?”
기우연이 시끄럽게 굴어서 결국 잠에서 깨어나 방 밖으로 나갔는데, 멤버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좀비처럼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그냥 일찍 깨어나졌어.”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
기우연만 긴장감에 바들바들 떠는 줄 알았는데, 다른 멤버들의 안색도 썩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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