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28. 싱글 (8)
* * *
“꺄아아악!!”
“에어!! 플레인!! 사랑해!!”
“아아악! 오빠, 너무 잘 생겼어요!!!”
“우연아 예쁘다아아아악!!”
“제키야, 사랑해!!!!”
“남은규!! 내꺼하자!!!”
“카리스마 강경태!! 나랑 결혼해줘!!”
어디를 가든 팬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들은 활동 시작 전에도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대박을 터트렸다.
2주를 넘어 3주째로 접어드는 현재.
우리의 노래는 여전히 차트의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중이다.
나와 제키가 만든 곡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게 굉장히 기뻤다.
“여기도 우리 노래 나와요!”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새삼.”
길거리에만 나가도 우리 노래가 대박이 났다는 걸 쉽게 알 수가 있었다.
가게에서 틀어진 노래가 길거리에 흥을 돋운다.
유명한 안무가를 비싼 돈 주고 의뢰를 넣었다고 하더니 이번 무대의 춤도 화제가 되어 팬들 사이에서 커버 영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영상 또 올라왔어. 중학생이라는데 춤 동아리래.”
“나도 보여줘!”
우리 멤버들은 현재의 인기를 마음껏 즐기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즐기고 좋아해주는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기에 모두 설레고 기뻐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 종일 유티비를 뒤져서 커버 영상이 올라 올 때마다 꼭 확인하고 흐뭇해하는 멤버들이 귀엽다.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은 건 맞지만, 그만큼 쏟아지는 스케줄에 체력이 빠르게 닳아가고 있었다.
유티비를 보던 것도 잠시.
멤버들은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기절하듯이 쿨쿨 잠에 빠져들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신나게 무대를 하고 다시 또 이동해서 무대를 하고 내려온다.
그런 우리를 졸졸 쫓아다니는 팬들도 생겼는데, 놀랍게도 그 중에는 외국인 팬도 있었다.
해외 활동을 한 번 하고 온 게 확실히 팬층을 다양하게 만들긴 한 것 같다.
“우리 태양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 하루도 쉬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다가 겨우 하루 시간이 났다.
딱 하루 있는 휴식 날이었기에 숙소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만만이었지만 태양이가 눈에 밟혀서 도저히 침대에서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태양아, 아빠 왔네? 아빠 다녀오셨어요, 해야지?”
“으우웅?”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걱정을 가득 담아 태양이를 바라보는데 다행스럽게도 태양이가 나를 향해 배시시 웃어준다.
“꺄하하!”
“아이구~ 아빠 와서 좋아요? 태양이가 기분이 엄청 좋은가 보네~!”
“태양아~~ 너무 보고 싶었어! 아빠 기억나는 거 맞지? 언제 이렇게 컸어! 어구, 몸무게도 확 늘었네?”
아기 냄새를 듬뿍 마시니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돌아 올 집과 아내 그리고 아들까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유부남이 되면 결혼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다니는 남자가 대부분인데,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아 누나도 잔소리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예쁜 여자가 잔소리를 해서 그런가?
아니면 미안한 마음이 더 커서 그런가?
딱히 거슬렸던 적이 없다.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 그럼 당당하게 다닐 수 있을 텐데.’
태양이와 당당하게 다닐 수 없는 아빠라는 게 미안하고 속이 그렇게 상할 수가 없다.
길거리를 다니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웃에게 아빠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정화씨와 누나가 이웃과 잘 어울리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들은 애아빠가 뭘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아는 게 없었다.
“그렇게 걱정 되면 진작 자주 좀 오지 그랬어?”
“미안해, 누나.”
“그래도 영상통화를 자주 해서 아빠인 걸 알아보는 거야. 전화라도 자주해. 알았지?”
“당연하지. 나도 태양이가 자꾸 눈에 밟혀서 힘들었어.”
“아? 아아바바! 헤헤헤!”
태양이의 웃음을 보고 있으니 피로가 살살 녹아내린다.
내 아들이긴 하지만 정말 잘 생겼다.
“누가 납치해가면 어떡하지? 왜 이렇게 귀여워.”
쪽쪽쪽쪽쪽쪽쪽!
“아앙!”
“흐구흐구, 그래쪄요. 아구 좋아요.”
연애할 때도 안 나왔던 혀 짧은 소리가 태양이 앞에서는 너무 쉽게 나온다.
주아 누나는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찰칵
“이렇게 찍어두니까 둘이 완전 붕어빵이다, 붕어빵.”
“잘 나왔어?”
“한 번 봐봐.”
태양이와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이 찍혔는데, 웃는 모습이 너무 닮아 있다.
그게 신기해서 나는 또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었다.
“내 새끼니까 닮은 거지! 그리고 누나도 많이 닮았어. 누나 예쁜 거 다 닮아서 태어났다니까?”
“너무 예뻐서 그런지 다들 남자 아이라고 생각을 안 하더라고. 오해를 하면 굳이 정정해주지 않고 있고. 덕분에 안전해질 거잖아.”
이 녀석이 크면 여자를 얼마나 울려댈까?
나는 누나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기발한 생각이 나서 말했다.
“그냥 아예 여자 아이로 키워버릴까? 어릴 때는 남자 아이를 여자 아이인 척 치마 입혀서 키우는 경우도 있잖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남자 아이인데….”
“안전을 위해서 못할 게 뭐가 있어? 여자 아이는 납치 범죄에서 안전하잖아.”
“아무래도 남자 아이보다야 훨씬 안전하긴 하지.”
남자 아이를 여자 아이처럼 키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며 주아 누나가 솔깃해 한다.
과일을 가져 온 정화씨도 내 말에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태양이가 예쁘게 생겨서 아무도 모를 거야.”
“그건 지금도 그래. 여자애로 키우면 애들이 태양이를 가만히 내버려둘까?”
“애들? 그건 무슨 소리야?”
“여기 동네 엄마들 모임 있거든. 거기 애들이 우리 태양이를 너무 좋아해.”
애들도 예쁜 거 다 안다.
“근데 남자 아이라는 걸 알아서 부모가 여자 애들을 좀 자제를 시켜주거든. 근데 태양이를 여자아이처럼 키우면 그런 걸 못 바라잖아.”
“아빠 닮아서 그런 건데 어쩌겠어, 감내해야지. 그리고 주아 너도 어릴 때 애들 사이에서 인기 많았어.”
“정말? 나도 인기 많았어?”
“그러엄~! 애들은 여자 남자 그런 거 모르니까. 그냥 예쁘면 다 좋아해. 해솔이도 그랬지?”
아니요.
하지만 이 얼굴로 살아갔다면 인기가 없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충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누나와 정화씨는 내가 던진 제안을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치마를 사야겠다느니 뭐니 얘기를 나눴다.
나는 태양이를 번쩍 들어서 우쭈쭈 둥가둥가 해주면서 힐링하느라 바빴고.
“이제 며칠 후면 해외로 나가는 거지? 지금도 살이 많이 빠졌는데, 해외 나가서 또 고생하느라 몸 축나면 어쩌니?”
“적응 돼서 괜찮아요.”
주연주 이사님이 미리 예고를 했듯이 스케줄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도 있었다.
국내에서 3주 활동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출국해서 자오와 윈푸오에서 싱글 앨범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연예인들 바쁘다는 건 들어왔는데 상상 그 이상으로 바쁘네. 넌 도대체 언제 쉬어?”
“지금이 막 터진 상황이라서 이곳저곳 안 부르는 곳이 없어. 다 거절하면 안 되니까 골라서 스케줄을 하고 있어도 시간이 빠듯하네.”
“사람이 어떻게 휴식도 안 주고 굴리니? 허니 엔터도 너무했어.”
스케줄만 나가면 돈이 쌓이는데 회사에서 우리를 놀릴 리가 없다.
우리는 이번 활동 때 푸쉬를 엄청 받아서 프로모션 값까지 모두 뽑으려면 열심히 굴러야 했다.
“열심히 일해야 돈을 벌지.”
“돈 많이 모았어?”
“응. 많이 모았어. 누나가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한 달에 한 번씩 내 돈을 맡고 있는 실비아에게 돈이 어떻게 굴려지고 있는지 보고를 듣는다.
오래 굴린 건 아니지만, 벌써 내가 맡겼던 돈의 2배가 되어 있어서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른다.
“누나는 요즘 어때? 이제 슬슬 활동 시작할 생각 없어? 몸매 보니까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주아 누나는 어느새 몸매가 임신하기 전으로 아니, 전보다 더 좋게 돌아와 있었다.
누가 그녀를 애 엄마라고 볼까?
부적을 통해 임신의 부담감을 최소화 한지라 이제 슬슬 활동을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누나를 집에 두게만 할 순 없지 않은가?
지금은 누나만 책임을 지고 있는데, 같이 사고를 친 사이이니 함께 책임을 나눠야 했다.
“벌써 일하라고?”
“벌써는 아니지. 태양이가 이만큼이나 자랐는데.”
사실 자랐다기엔 아직 한줌인 태양이다.
하지만 계속 누나를 집에 두게 하는 건 이 나라 연예계의 큰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정화씨가 누나 대신 잘 돌봐줄 텐데 굳이 주아 누나가 집에서 쉴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태양이한테는 아직 내가 필요하지 않을까? 엄마가 있으니까 괜찮다는 건 아는데…. 그래도 태양이가 나랑 떨어지는 걸 싫어해서.”
“누나 꿈은?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은 일이잖아.”
주아 누나라면 충분히 대단한 여배우가 될 수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허니 엔터도 누나의 가능성을 알고 내보내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지 않았는가?
“그래, 해솔이가 말 잘 했네. 네 나이면 한참 활발하게 바깥에 돌아다녀야 하는 게 맞는 거야. 태양이는 엄마한테 맡기고 네 일 시작해. 태양이 낳은 후로 친구들도 안 만나고, 집에 붙어서 태양이만 돌봤잖아. 그 정도면 엄마로 할 일 충분히 잘 했어.”
아이를 낳고 오랫동안 쉬는 사람이 어디 있나?
먹고 살려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게 가장의 무게였다.
“내가 놀고 먹는 게 싫다 이거지?”
“누나!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닌 거 알잖아.”
“치! 농담이야, 바보야. 알았어. 진지하게 생각해볼게.”
“잘 됐다. 사실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쪽 일에 대해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있어서 물어봤거든. 배우 일을 하고 싶으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말이야.”
내가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당연히 한민영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무명 생활을 거쳐왔기에 이쪽 바닥의 일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럼 나 그 사람 소개시켜줘.”
“어…그 사람이 요즘 많이 바빠서 당장 만나는 건 힘들지 않을까? 내가 한 번 자리 만들어볼게.”
“바쁜 거면 되게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 부담 되는 거면 안 그래도 돼.”
“아니, 부담은 안 돼.”
“…부담이 안 돼? 누군데 약속을 따로 잡는 게 부담이 안 될 만큼 친한 사이인 걸까?”
갑자기 촉이 왔는지 누나의 목소리가 스산해진다.
별 생각 없이 한 말에서 위험신호를 느낀 누나의 예리함에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벼, 별 건 아니야. 나랑 같이 웹드라마 했던 한민영씨야.”
“아~ 정말? 요새 그분 되게 자주 나와! 되게 예쁘시던데.”
나도 알고 있다.
CF를 엄청 찍었더라고.
내가 만든 얼굴이 대중들에게 먹히는 걸 보니 스스로도 굉장히 뿌듯했다.
“너.”
“…왜?”
누나는 새침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솔직히 말해. 지금 말하면 화 안 낼 테니까. 찔리는 거 있는 사이 맞지?”
“…누나.”
억울해 미칠 것 같다.
내 말 어디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추궁을 한단 말인가?
‘내가 표정 관리를 못했나? 아닌데, 나 표정 관리 잘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누나가 눈치 챈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중에 다 소개시켜 줄 사이인데 아니라고 딱 잡아 뗄 수도 없다.
주아 누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더군다나 정화씨와의 관계를 숨겼던 일이 있는지라 더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기 부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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