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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07화 (207/849)

〈 207화 〉 #29. 주아vs로즈 (1)

* * *

뭐라 말해야 할지 막막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는데, 주아 누나가 말했다.

“네가 다른 여자 만나고 다니는 건 상관없어. 근데 이제부턴 단속 좀 할게.”

“단속…?”

“태양이 아빠인데 나 그럴 자격은 있는 거잖아.”

꿀꺽­

절로 긴장 되는 말이다.

“어떤 여자를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여태까진 긁어 부스럼이란 생각에 언급 안 했는데, 이젠 더 이상 외면하지 않으려고.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괜찮겠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추궁하려는 게 아니라 태양이 엄마로서 내 여자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법이 허락했다고 해도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내 여자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테니 말이다.

“괜찮냐고 묻기 전에 엄마랑 그런 짓 한 걸 들키질 말았어야지?”

“윽! 미안미안. 잘못했어.”

주아 누나가 내 옆구리를 쿡쿡쿡 찔러온다.

“어우, 아픈 거 맞아? 내 손가락이 더 아픈데? 운동을 얼마나 한 거야?”

“꾸준히 했지. 체력 관리 안 하면 큰일 나니까.”

주아 누나가 내 옷을 슥­ 올려보더니, 예전보다 훨씬 선명해진 복근에 감탄사를 뱉었다.

“원래도 몸매가 좋았는데, 이런 몸이 가능해? 너 음식 조절도 잘 안 하잖아.”

몰래 먹을 거 다 먹고 다닌다.

“먹으면 살찌는 애들이 많아서 걔네들이랑 될 수 있으면 메뉴 맞춰서 먹었어.”

“이런 야한 몸으로 여자를 얼마나 꼬시고 다녔을 거야?”

“아이, 왜 그래에.”

“몇 명이야?”

“…….”

단숨에 숫자가 나오질 않는다.

그런데 누나가 오해를 했는지 찌릿 눈이 사나워진다.

“몇 명인지 세어봐야 할 정도라 이거지?”

“아, 아니야. 3명이야.”

“3명? 생각보단 적네. 후우~.”

“…….”

적다고 말하는 사람치곤 상당히 화가 난 표정이다.

한숨을 쉬는데 그 한숨에서 깊은 빡침이 느껴지고 있었다.

만약 조안나, 메이린과 정리를 하지 않았다면 5명이라고 했어야 할 텐데,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소개시켜 줄 수 있어?”

“누나가 원한다면. 근데 왜 심경의 변화를 느낀 거야.”

“나도 이제 일 시작할 거잖아. 너도 바쁘고, 나도 바빠질 텐데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미루고 미루다가 문제 생기는 것보단 낫지.”

내가 사회 생활을 권유했던 게 나비효과가 되어 올 줄 몰랐다.

“진지한 관계인 거지?”

“으응….”

여기서 누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너무 찌질할까?

누나에게 말하기에 좀 껄끄러운 사람이 있다면 아무래도 복순 누나와 아현이다.

허니 엔터에서 연습생 생활을 해서 이아현과 복순 누나를 알고 있는 누나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안면은 있지 않을까?”

“역시 연예인이구나. 예상했어. 일하면서 자주 마주치면 그럴 수도 있지. 누구인지 알려줘. 여자 아이돌 가수야?”

“아니, 누나. 나 그런 사람들이랑은 안 엮였어. 안면이 있다고 했던 건 누나가 연습생 할 때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알고 지내던 사람? 설마 너 연습생이랑 만나?!”

“정확히는 연습생이었던 사람. 그리고….”

???

한민영과 이아현은 로즈의 짐작대로 죽이 잘 맞았다.

“너희 그러다가 절친 되겠다?”

“앗! 저랑 친하게 지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아, 아니에요. 저야 말로….”

“아잇! 지금 둘이 팔자 좋게 그런 소릴 하라고 한 말이 아니잖아!!”

둘 다 진해솔에 관해서는 한없이 죽이 잘 맞는 이아현과 한민영.

두 사람은 이미 로즈의 예상을 뛰어넘어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한민영은 자신과 이아현이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 못 마땅해 하는 로즈가 신경 쓰였다.

민영은 해솔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다.

그러니 해솔과 계속 만나기 위해서 그의 여자들에게 인정을 받아내야 했다.

‘혹시 밉보였다가 해솔이가 마음 상해서 나 버리면 어떡해.’

다행이 두 명의 여자 중 한 명은 민영을 마음에 들어 했다.

이제 문제는 나머지 한 명인데….

‘무섭게 생겼어!’

몸매가 굉장히 좋아 보이는 로즈라는 여인.

만약 자신이 무명 생활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기억이 없었다면 당장 눈부터 깔았을, 포스 있는 여자였다.

‘이 여자를 공략해야 확실해질 것 같은데, 쉬워보이질 않네.’

일단 로즈 언니라고 부르는 것부터 성공시켜보자고 두 주먹을 꽈악 쥐었다.

‘용기 내! 넌 예전의 한민영이 아니야!’

외형이 바뀌었다고 해서 한민영이라는 사람이 바뀐 건 아니었기에 성격이 많이 달라지지는 못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어서 그나마 겉으로는 찐따미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이 인기가 언제 사라져버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더 컸다.

해솔이와 헤어지면 그녀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도 모두 사라질 거라고 확신하는 그녀.

때문에 한민영은 진해솔의 여자라고 하는 로즈와 이아현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나도 얘기는 많이 들어봤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레 경험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의 서열전.

정말 살벌하게 싸우는 곳도 있어서, 자살하는 여자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잘 할 수 있어. 극단에서 언니들 비위 맞춰본 게 한 두 번이야? 잘 할 수 있잖아.’

많이 해본 일이다.

긴장하지만 않으면 된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심호흡을 한 뒤 가식적인 미소를 듬뿍 담아 말했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러고 싶어요?”

“네! 언니로 모시게 해주세요. 사실 처음 봤을 때 너무 예쁘셔서 친하게 지내고 싶었거든요.”

민영은 자신의 말에 실수가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해솔이가 특별하게 바꿔준 얼굴 때문에 더는 못 생긴 한민영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보다 몇 배는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가 너무 예뻐서 언니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얘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로즈는 열심히 가꾼 몸매가 대단한 편이었지, 얼굴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물론 해솔의 입장에선 그녀의 얼굴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이 세계는 워낙 미인이 많은 곳이 아닌가?

수많은 미인이 있는 세계에서 독보적인 외모로 여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 한민영에게 예쁘다는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기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꼬아서 생각하지 말자. 쟤는 그렇게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여우 같은 스타일이 아니야.’

만약 한민영이 조금이라도 여시같은 느낌을 줬다면 지금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로즈는 한민영이 돌려 까는 짓을 할 만큼 대단한 성정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래,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줘야지. 꼬아서 듣고 뭐라고 한들 나만 나쁜 년인 거잖아.’

누가 봐도 지금 한민영은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까.

‘이아현 쟤는 왜 덩달아 내 눈치를 보는 거야? 기분 잡치게!’

자신이라도 기강을 다지기 위해 너무 유한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진해솔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듣게 될 줄도 모른 채 말이다.

???

“만나봤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요.”

“만나봤으면 하는 사람? 누군데?”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날.

바쁜 진해솔이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로즈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라고 이아현과 낑겨서 데이트하는 게 좋을 리 없다.

오랜만에 진해솔을 온전히 자신이 차지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던 그녀는 카페에 와서 음료를 마시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나이가 드니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좋았다.

서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떠들었는데, 진해솔이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봤으면 한다고 말을 해온 것이다.

‘민영이를 소개시켜주려고 하나?’

이미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던 로즈가 이어진 해솔이의 말에 굳어버렸다.

“제 아이를 낳은 여자가 있어요.”

“…어?”

“제 첫 여자이기도 해요.”

“어?”

“제 여자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얘기하는 거에요.”

한민영이 임신을 해서 애를 낳았어?

너무 당황한 탓일까?

속마음이 필터도 없이 그대로 입밖에 튀어나왔다.

“한민영이 임신을 해서 애를 낳았다고?!”

“엑! 누나가 민영 누나를 어떻게 아세요?”

“아,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걔가 정말 애를 낳았어?”

앙큼한 여우 년이 감쪽같이 우리를 속였어!!

로즈가 분노로 화르륵 타오르려던 순간, 진해솔이 진실을 알렸다.

“누나가 민영 누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말한 사람이 그 사람은 아니에요.”

“여자가 또 있어?”

물론 한민영 말고 더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는 여자를 찾지 못해서 한민영만 깊게 파고든 거였다.

‘그냥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려 애까지 낳은 여자가 있다고? 잠깐만, 그럼 서열은?’

해솔이의 첫 여자이자 아이를 낳은 여인.

반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결혼 약속을 했을 뿐인 여자.

누가 봐도 자신이 많이 딸리는 스펙이었다.

“음, 누나랑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

“…누군데?”

“진주아라고 예전에 허니 엔터에서 연습생이었던 사람이에요.”

“하.”

말이 안 나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선뜻 움직여지질 않았다.

누군가가 그녀의 뒤통수를 세게 때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진해솔이 그녀의 뒤통수를 때린 게 맞긴 하다.

“너 미쳤니? 네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애를 낳아? 그리고 주아라면 나도 아는 애야. 걔 나이가 고작 너보다 한 살 더 많잖아.”

“미칠 정도로 말 안 되는 일은 아니죠. 예상치 못하게 생긴 아이인 건 맞는데, 서로 책임지기로 결정하고 낳은 거에요. 아이 낳고 몸 회복 돼서 슬슬 다시 사회 생활 시작할 생각인데, 그 전에 제가 만나는 여자들이랑 만나서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싶대요.”

“…하, 그렇구나.”

그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을 결심을 했다라….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진짜 보스는 따로 있었구나. 나는 멍청하게 다른 곳에 한 눈을 팔고 있었고.’

한민영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보스는 따로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사람을 보스 취급하고 있었다.

로즈는 젊은 나이에 나이를 낳은 것에 타박을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해솔이 첫 아이는 내가 갖고 싶었단 말이야!!’

나이가 나이인지라 해솔이의 아이는 자신이 제일 처음으로 낳고 싶었다.

해솔이가 사귈 다른 여자들은 모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릴 터.

자신보다 나이 어린 여자를 손윗사람으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 또한 진심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미 그걸 해버린 사람이 있단다.

눈 뜨고 코 베인 꼴이 된 상황에 화가 나고 질투심이 치솟아 로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언제 만나? 지금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어.”

"정말 괜찮겠어요?"

어떤 여자인지 얼굴이라도 봐야겠다.

“대신 나 소원 하나만 들어줘.”

“…소원요? 무슨 소원인데요.”

“나도 임신할래.”

“쿨럭,누나!”

진해솔이 로즈의 상상도 못할 말에 당황한다.

하지만 로즈는 절대 거절 못한다는 듯 틈을 주지 않고 말했다.

“그 여자는아이 낳았다며. 그럼 나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여자는 되고, 나는 안 된다고 할 거야? 나 널생각해서 꼬박꼬박 약 먹으면서 피임 했어.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미 애를 낳은 사람이 있다네? 이럼 내가 참은 이유가 없어지는 거잖아. 나 슬슬 노산이야.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내 아이 갖고 싶어.”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 없다면, 지금 상황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얻어낸다.

그것이 복잡한 머리를 굴려 얻어낸 결론이었다.

진해솔은 로즈의 요구에 한참 고민을 하더니 어렵게 대답을 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나 학원 시작한지 얼마 안 됐지만 빠르게 자리 잡았어. 수익도 안정적이라서 학원 차리느라 대출 받은 거 금방 갚을 수 있을 정도야.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살아도 충분하지만, 대출 다 갚으면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어. 얼마 안 걸릴 거야.”

“학원 일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선생님 고용하면 돼. 내 인맥이 얼만데 선생을 못 구하려고.”

“…….”

빠져나갈 곳 없이 완벽하게 핑계를 차단한 로즈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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