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08화 (208/849)

〈 208화 〉 #29. 주아vs로즈 (2)

* * *

왜 휴식이 휴식 같지가 않은 건가.

눈 깜짝 할 사이에 휴가가 녹아버렸고, 나는 또 다시 일에 치여 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휴가 때 주아 누나의 명령(?)으로 할 일이 추가되기까지 해버렸다.

이 모든 게 내 업보로 만들어진 일이었기에 투정을 부릴 수도 없는 일.

겨우 시간을 내서 가장 어려운 상대부터 공략하기로 한 건데…….

‘어떡해야 되냐, 이거. 골 빠게지겠네.’

갑자기 임신을 해야겠다고 선언을 해온 복순 누나.

의도하지 않게 생긴 축복이었다 해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수락은 시간문제의 일밖에 되지 않았고, 내가 고민해야 할 건 이 문제를 주아 누나랑 상의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해도 되는 일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허락이 쉬운가, 사고치고 용서가 쉬운가.’

누가 봐도 후자를 선택하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일 것이다.

허락보다는 용서가 쉬운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역시 말하는 게 맞아.’

주아 누나는 내 첫 여자이자 태양이의 엄마이다.

그녀에게는 이런 일을 상의 할 자격이 있었다.

고민에 결정을 내린 나는 주아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니었으나 시간이 나질 않았기에 부득이하게 전화로밖에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임신을 하고 싶다는 소릴 했다고?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임신이 왜 나와?

“태양이 얘기를 했거든.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까 평소에도 생각을 하고 있었나봐. 날 배려해준다고 말 안하고 참고 있었는데, 태양이가 있다니까 자기도 참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야.”

­그 여성 분 나이가 30대라고 했지?

“응. 내 입장에선 그 사람이 그러는 게 공감이 돼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

누나도 확실히 나이 부분에서 복순 누나에게 여유가 없음을 납득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굉장히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풀린 상태였다.

“…기분 나빠졌어?”

­좋을 수는 없지. 근데 사정은 이해가 되기는 해. 나이가 있으면 다급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젊은 나이에 임신을 했을 때도 몸이 축나는데,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임신하면 얼마나 위험하겠나?

내 몸도 중요하지만, 태어날 아기에게도 큰 위험이 되는 게 바로 노산이다.

­역시 만나봐야겠어. 선생님으로 봤던 거랑 네 여자로 만나는 거랑 느낌이 다를 거잖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결정할게. 그리고 나한테 의견 물어줘서 고마워.

“당연히 그래야지. 누나가 내 마누라인데. 근데 잘 할 수 있겠어? 싸우거나 그러진 않을 거지?”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한 여자들 사이에서의 일들이 사회적인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다.

요즘 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 얘기가 그런 것들이다.

여자들끼리의 질투심 때문에 생긴 각종 괴롭힘과 갈굼.

방법이 어찌나 다양한지 볼 때마다 영화보다 더 한 일도 많더라.

‘얘기를 들어보면 진짜 기상천외하던데….’

언급하기도 꺼려지는 일들을 내 여자들이 얽히는 건 정말 끔찍했다.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라고 특별할 건 없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버리는 거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까지는 주아 누나를 믿어봐야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코인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들로부터 얻었던 코인들이 있기에 사용하는 것이 아깝지는 않지만 웬만하면 생활에 코인이라는 이질적인 이능을 쓰고 싶지 않았다.

‘비앙카 경우를 생각해보면 함부로 사용할 능력이 아니야.’

비앙카와 한 몸을 사용하게 되면서 잠잠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아찔했던 순간들이 많다.

멜리사는 결국 기억을 모두 수정시키고서야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오직 나와 비앙카만 아는 일이 된 것이다.

실비아에게 세뇌가 된 멜리사는 나와 얽히는 미래를 바랐겠으나, 세뇌 당하지 않은 상태의 멜리사는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섣부르게 코인으로 구매한 아이템을 사용했다가 그녀들의 기억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큰 문제가 생기는 걸 바라지 않는다.

‘서로 잘 맞아야 할 텐데.’

사실 이아현이나 한민영은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아 누나와 복순 누나의 사이는 걱정이 됐다.

주아 누나가 순순히 복순 누나에게 지고 들어갈 사람이 아니고, 복순 누나라고 주아 누나에게 지고 들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확실한 것은 주아 누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복순 누나의 태도가 달라질 거다.

­내가 어떻게 하길 바래?

“말 할 게 있어? 당연히 잘 지냈으면 하지.”

­남자가 여자 일에 끼어드는 것만 하지 않으면 돼. 네 의견은 알겠으니까 그 이상 참견은 하지 마.

“…누나만 믿고 있을게.”

내가 혹여나 참견해서 만류할까봐 걱정한다기 보단 여자 일에 남자가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여자들의 사이가 더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걸 경고하는 것이었다.

남자가 편들어주는 여자를 다른 여자들이 곱게 볼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흥, 진짜로?

“진짜. 누나를 안 믿으면 누굴 믿어. 우리 마누라 믿어야지.”

­아닌데, 목소리에 불안감이 가득한데에?

“믿는다니까, 왜 그래.”

주아 누나가 농담을 하고 웃는 걸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아마 일부러 내게 농담을 한 걸 거다.

말하기 어려웠을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말이다.

“항상 고마워요, 누나.”

­가서 일해. 바쁘다며.

“응. 아직 휴식 시간 남았어. 태양이는?”

­태양아~ 아빠한테 일 열심히 하고 돈 많이 벌어오세요~ 해.

­아바바바!!!!

바깥이었기에 평소처럼 주책 맞게 호들갑을 떨 순 없었다.

“아빠 일하고 올게요~”

다정하게 태양이의 목소리에 대답을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보다 주아 누나가 임신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물론 사람 속을 내가 전부 어떻게 알겠는가?

‘티를 안 내도 속으로는 많이 속상해 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아니, 속이 안 상하는 게 더 이상한가?’

최대한 빨리 시간을 내서 누나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해줘야겠다.

누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 적이 언제인지 생각해보니 태양이를 낳고 나서가 전부였던 것이다.

이후로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아 누나와 로즈 누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질 않아 걱정이 사라지질 않았다.

“형, 혹시 고민 있으세요? 유난히 실수가 잦은 것 같은데….”

“심각한 일이야?”

고민이 있다는 걸 멤버들이 눈치 챌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고민을 멤버들과 나눌 수는 없었다.

여자 문제를 얘네들과 상담해봤자 제대로 상담이나 되겠는가?

“별 거 아니야. 집중할게. 미안!”

사과를 하고 다시 안무 연습을 시작했다.

해외 활동을 끝내고 돌아오면 우리는 본격적으로 콘서트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연습도 모두 콘서트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 중 하나였다.

연습에 온전히 다 집중을 해도 부족할 판인데 계속 다른 일에 한 눈을 팔고 있을 순 없었다.

‘최대한 티 안 낸다고 한 거였는데, 티가 났나보네. 집중해야 되겠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콘서트 먼저 생각하자.’

주아 누나와 복순 누나와의 일도 중요하지만 콘서트도 물러설 수 없이 중요한 일.

나중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현재는 콘서트 준비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 ? ?

한편, 주아는 엄마 남정화와 함께 대책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걱정을 드러내는 주아에게 정화가 은근한 제안을 해왔다.

“엄마가 같이 나가줄까?”

“됐어. 엄마랑 같이 나가면 내가 뭐가 돼. 절대 싫어.”

아쉽지만 주아는 대차게 도움을 거절했다.

자신의 자리를

“얘는? 뭐라고 하긴. 그렇구나 해야지. 나도 해솔이 여자인데.”

맞는 말이라서 조금 분해져버렸다.

주아가 인상을 팍 찌푸리자 남정화가 호호호 웃음을 터트렸다.

“준비 단단히 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며. 더군다나 널 가르쳤던 선생이었으니까 분명 널 아래로 보려고 할 거야.”

“응. 내가 만날 사람은 알고 지내던 로즈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나도 엔터 그만뒀고, 선생님도 그만뒀으니까 선생님 대접 해줄 필요 없는 거잖아.”

“맞아. 우리 딸 야무지네. 그 사람 입장에선 널 과거처럼 대하고 싶을 테니, 처음에 잘 해야 돼. 기선제압! 알지?”

“응. 엄마가 해오던 거 다 봤는데 설마 딸 못 믿어?”

“믿지! 누가 키웠는데.”

야무지게 잘 할 것임을 확신한다.

그도 그럴게 남정화가 여자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보고 자랐던 주아이지 않은가?

나중에 딸도 성장하게 되면 분명 그녀의 경험이 도움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노하우를 숨기지도 않았었다.

가정을 구성하는 건 남자에게 있지만, 그 가정을 유지시키는 건 여자에게 있다는 것이 평소 남정화의 지론이었다.

때문에 정화는 딸아이가 훌륭히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고,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 마음이라는 게 이성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아직 모르네.’

태양이를 낳아 철이 많이 든 주아이지만, 여전히 엄마 앞에서는 아기일 뿐인 것이다.

고민을 하던 정화가 괜찮은 생각을 떠올리고 주아에게 제안했다.

“차라리 집으로 부르는 건 어떠니?”

“응? 집으로?”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일인데, 따져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굉장히 좋은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집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여자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을 거다.

해솔이가 구해준 비싼 집이라서가 아니다.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염두 해두고 있는 거다.

해솔이가 태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의 양 옆에는 정화와 주아가 다정하게 앉아 있는 사진을 말이다.

“저 사진부터 딱 기선제압이 되잖아. 네가 움직이는 것보다 그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도 의미가 있어. 강아지도 제 영역에선 기세등등한 법인데, 네 영역으로 불러들이면 얼마나 편하겠니? 그 사람은 여기 오는 것 자체로 부담이 팍팍 될 걸?”

“다른 곳에서 만나도 잘 할 수 있어. 굳이 그 여자한테 태양이까지 보여줘야 해?”

괜스레 자존심을 부리는 주아.

하지만 곧 엄마의 제안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임을 인정했다.

“태양이를 보여주기 싫어? 왜?”

“그럼 태양이를 그 여자한테 보여줘?”

“응! 그래야지. 보란 듯이 말이야. 요즘 아들 낳은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잖아. 너는 나한테 절대 안 된다는 걸 눈으로 확인시켜주란 말이야.”

첫 여자이자, 첫 아이를 낳았는데 무려 남자아이다?

이건 이길 자가 없다.

정화는 딸을 낳았어도 첫 애를 낳았다는 이유로 조강지처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헌데 주아는 자신보다 훨씬 대단한 걸 해낸 아이다.

그러니 절대 꿀릴 것이 없고, 그냥 누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태양이를 이용하는 거잖아. 싫어.”

“그게 왜 이용하는 거야? 자랑하는 거지. 나는 너 낳았을 때도 당당하게 소개시키고 다녔어. 내가 낳은 딸이라고.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그 사람 아이고, 내 아이라는 걸 말이야.”

“…….”

“나는 그럼 널 이용한 거니?”

“그건 아니지.”

“그래. 똑같은 거야. 이용한 게 아니라 그 여자들한테 자랑한 거야. 보라고. 내가 낳은 딸이 얼마나 예쁘고 귀엽고 깜찍한지. 이런 딸이 있는 이상 너희들은 나한테 안 된다고 말이야.”

어릴 적 아빠의 여자들에게 자신을 소개시키던 엄마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는 주아는 차마 자신을 이용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태양이에게도 고스란히 적용이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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