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11화 (211/849)

〈 211화 〉 #29. 주아vs로즈 (5)

* * *

“자아, 두 사람 다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눴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정식으로 제가 소개를 다시 한 번 할게요. 이쪽은 진주아 누나 이쪽은 로즈 누나에요.”

“서로 통성명 다 했어.”

“정식으로 소개 하는 거잖아요. 앞으로 서로 잘 지내줬으면 좋겠어요. 주아 누나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느라 오랫동안 집에서 쉬었어요. 로즈 누나가 사회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조언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주아 누나는 배우를 지망하고 있거든요.”

“흠, 그래? 확실히 주아가 회사를 나갈 때 아까워하는 사람이 많긴 했었어. 조금만 더 끈기 있게 버티면 될 게 분명한 아이인데,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 같아서 재능이 아깝다고 말이야.”

“로즈 누나는 주아 누나한테 조언을 많이 받아야 할 테니까 서로서로 돕고 지내면 좋을 거에요.”

“내가 쟤한테 무슨 도움을 받아? 딱히 받을 만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없는 사이 둘이 엄청 싸웠다더니 앙금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복순 누나의 목소리에서 얹짢음이 가득하다.

자신이 도움을 받을 일이 정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정말 없을 것 같아요?”

“뭐야, 궁금하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말해줘.”

“임신이요. 아기 낳고 싶다면서요. 주아 누나가 그거에 있어서는 도움이 많이 되주실 거에요. 경험자잖아요.”

“!!”

그건 생각을 못했는지 로즈 누나가 화들짝 놀란다.

주아 누나는 내가 이미 ‘임신’에 동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표정이 좋지 못했다.

위로와 미안함을 담아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서로 도와가면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는 사이잖아요. 저랑 만나기 전부터 아는 사이이기도 했고요.”

“…….”

“…….”

“로즈 누나는 이쪽으로 인맥이 굉장히 넓어서 저보다 좋은 선생님을 알아봐주실 수 있을 거에요.”

민영 누나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던 일이지만, 아무래도 학생 입장보단 같은 동료 입장인 복순 누나가 추천하는 선생님이 더 신뢰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바로 써먹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 시작해서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누나한테 도움을 받을 게 많을 거에요. 그리고 로즈 누나는 임신하게 되면 주아 누나한테 조언을 받을 게 많지 않겠어요?”

직접 경험한 사람이니 임신을 하고 나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뿐인가?

앞으로 아이가 자라가면 육아에 대한 고충을 서로 공유하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주아 누나는 정화씨라는 든든한 협력자가 있어서 로즈 누나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누나가 임신했을 때 곁에서 나 대신 옆을 지켜주었던 그녀가 아닌가?

내가 부탁한다면 로즈 누나에게도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알려주니 당황스러웠는지 서로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 수그러진 듯 했다.

“쟤가 나한테 도움을 받으려고 할까? 내가 보기엔 절대 안 받으려고 할 것 같은데.”

“아이고~ 우리 누나들 마음이 단단히 상했나보네.”

가운데 낀 내가 애교라도 부려줘야 분위기가 풀릴 것 같았다.

그녀들의 몸을 슬쩍슬쩍 터치하면서 꽁해진 기분을 풀리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정신연령이 몇 살인지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기에 기꺼이 연하의 매력을 듬뿍 발산해주었다.

“얼마나 피곤한지 몰라요. 특히 개념 없는 사생팬들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다니까요.”

“네 사생팬이 많아?”

“나도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이번에 우연이한테 엄청 집착하는 사생팬 한 명이 붙었어. 자기 혼자서 상상 연애를 하고 있는 중이거든. 우연이가 차고 나온 반지, 귀걸이, 옷 같은 걸 하고 다니면서 커플템이라고 sns에 올릴 때도 있고 같은 핸드폰은 기본에 합성 사진을 만들어서 올려서 팬들이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정말 혼자서 연애를 하고 있는 거네.”

“응. 왜 그런 사진을 올렸냐, 당장 내려라,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을 함부로 SNS에 올리면 안 된다고 하면 대답이 뭔지 알아? 그쪽이 무슨 상관인데 우연이랑 자기가 사귀는 걸 방해하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온대.”

“고소는?”

“웬만하면 좋게 설득시켜서 해결을 하려고 하는 편인데, 정말 심각한 경우는 법적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지.”

내 투정에 누나들이 한껏 걱정을 드러낸다.

“너는 괜찮은 거 맞아?”

“지금은 숙소를 옮겨서 많이 줄었어요.”

“많이 줄었다는 건 여전히 있다는 소리잖아.”

“익숙해질 수밖에 없지. 심지어 저희를 비행기까지 따라와서 말 거는 팬도 있는데.”

내가 좀 앓는 소리를 했던 게 제대로 먹혀들어갔는지, 두 사람 모두 서로에 대한 뾰족한 감정이 많이 사그라든 상태였다.

하지만 이건 임시 방편일 뿐.

언제 또 다시 서로를 향해 뾰족한 가시를 드러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밥은 먹었어?”

“시간이 몇 시인데, 당연히 먹었죠. 누나들은 밥 잘 먹었어요?”

“먹긴 먹었지.”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편하게 먹질 못한 눈치다.

“후식 시킬까요?”

“…콜.”

다행스럽게도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 ? ?

역시 사람이 친해지려면 살짝 술이 들어가는 게 효과가 좋기는 한 것 같다.

후식으로 시킨 치킨과 맥주가 입에 들어가자 여자들의 분위기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태양이를 돌보느라 고생을 한 정화씨도 현재는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시간이 늦어서 태양이는 꿀잠을 자는 중.

덕분에 자유가 된 정화씨가 우리에게 합류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뭐어?! 이분도진해솔 애인이라고? 처음에 엄마라고 소개했었잖아!”

그리고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로즈 누나는 정화씨가 단순히 주아 누나의 엄마가 아니라 내 연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것도 제가 임신한 상황에서 바람이 났다는 거에요. 정말 황당하죠?”

“어떻게 그런 짓을 해? 너 미쳤어?”

“…크흠.”

“아니, 잠깐만! 지금 이렇게 다 같이 산다는 건 결국 둘 사이를 허락했다는 뜻인 것 같은데 맞아?”

“처음에는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어쩌겠어요? 두 사람 다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인데.”

두 여자가 원활하게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순간이었다.

친해지는데 남 뒷담화보다 좋은 게 없다고, 두 사람은 나의 바람기를 지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싸웠다고 들었는데 어찌나 쿵짝이 잘 맞는지 이러다가 절친 되겠더라.

처음에는 진심으로 나한테 불평을 하는 건가 싶어 거북이 목처럼 쫄아 있었던 나는 뒤늦게 그녀들이 하는 말이 진심 반 농담 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두 사람이 나름 서로에게 쌓인 감정을 풀어보려는 행동이었던 거다.

결국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며 인내하기로 했다.

“누나, 난 억울해.”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정화씨에 대한 얘기가 끝나면 또 다른 쪽 얘기로 넘어가서 날 깠다.

다음 순서는 한민영에 대한 얘기다.

“맞아! 그 잘난 얼굴로 얼굴 값 엄청하고 다니면서.”

“촬영장에서 그 예쁜 여자랑 꽁냥꽁냥 댔을 걸 생각하면…아오! 앞으로 또 그럴 거야? 같이 촬영하는 예쁜 여자들 건드리고 다닐 거냐구!”

“안 그래. 그리고….”

그때 한민영은 누나들에 비하면 예쁜 편이 아니었다.

‘다 내가 만들어준 얼굴이라고!’

예쁜 여자를 밝힌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유언비어였다.

바람기에 대해 엄청나게 까이다가 그 다음으로는 내가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것으로 넘어갔다.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기는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투정을 부린 적은 없었기에 이 부분은 나도 많이 미안했다.

“바쁜 건 해솔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아는데, 엄청 서운했어요. 저 임신했을 때 엄마가 곁에 있어줬지, 쟤가 해준 건 없거든요. 아마 로즈씨가 임신을 해도 똑같을 거에요. 미리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해요.”

“그럴 때 서운하게 하면 평생 마음에 남지 않아요?”

“한참 일 때문에 바쁜 사람이니까 제가 이해해줘야지 어쩌겠어요.”

“그래도 사람 마음이 그럴 수가 없죠. 서운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서운한 마음이 사라질 리가요.”

다행이 세 명의 여자 중 한 명 정도는 내 편이 있었다.

바로 정화씨가 두 사람의 앞 담화에 끼지 않고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기분 나빠도 참아.”

“알아요. 그리고 기분 나쁘지도 않아요. 제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요. 덕분에 오늘 누나가 저한테 서운함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죠. 앞으로 정말 잘 해야겠어요.”

“두 사람, 속닥속닥 뭐해?”

“뭐하긴? 네 흉보는데?”

“엄마아!”

“너는 해솔이 흉 봐도 되고, 우린 흉보면 안 되니?”

“내가 흉 볼 게 뭐가 있는데?”

“후후후! 네가 모르는 그런 게 있어.”

정화씨의 능숙한 어그로에 주아 누나가 홀랑 넘어갔다.

로즈 누나는 주아 누나와 함께 내 흉을 보면서 쌓인 감정을 많이 풀었는지 얼굴이 한결 편해보였다.

“제 흉보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응. 확실히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 너 여자 보는 스타일에 성격 따지니? 어째 하나 같이 다들 순딩이들이야.”

“누나랑도 만났는데, 설마 그럴 리가요. 그냥 연이 닿은 여자가 운 좋게 착한 것뿐이에요.”

“뭐야, 그 말은? 난 안 착하다 이거야?”

“누나 성격이 착한 편은 아니죠. 하하하! 아무리 눈치 줘도 거짓말은 안 할 거에요.”

로즈 누나의 응징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근데, 저 오기 전에 심각하게 싸웠어요?”

“몰라. 나도 말 안 해줄 거야.”

“에이잉~ 왜 그래요.”

“여자들끼리 얘기인데 왜 남자가 끼어들려고 하는데. 그냥 너는 모르는 척 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법이니까. 우리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할 거야.”

“아현이랑도 잘 지냈잖아요.”

“아현이랑 쟤랑 같니? 걔처럼 지내겠다고는 절대 못해.”

당장 두 사람이 머리끄덩이 붙잡고 싸우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현이처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건 아마도 세월이 해결해줄 일일 것이다.

“알겠어요. 욕심 내지 않을게요. 천천히 시간이 흐르면 서로 진심으로 웃으면서 지낼 날이 오겠죠.”

누나는 내 말에 쓴웃음을 짓다가 계속 이 주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았는지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나 임신 정말 해도 되는 거 맞아? 얼렁뚱땅 넘어가서 확답을 아직 못 받았잖아. 나 준비해도 돼?”

“네. 준비하세요. 근데 정말 괜찮겠어요? 전 바빠서 신경을 많이 못 써줄 거에요. 주아 누나도 그랬잖아요. 내 사정 다 알면서도 마음에는 서운함이 쌓였다고. 분명 누나도 그러지 않겠어요?”

“나도 사람인지라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이랑 나갈 때 마음이 다르긴 하겠지. 그래도 욕심을 부리고 싶어. 그렇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되도 아이가 있으면 다 풀릴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네 아들 봤는데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 그 애가 내 아기 같아 보이고 그랬어. 나도 꼭 너랑 내가 낳은 아기랑 가족사진 찍을 거야.”

“누나는 몸 관리를 잘 해서 몇 년 더 늦어진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은 없을 거에요. 임신이라는 게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에요.”

“난 어리지 않아. 이미 내 인생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여물었어.”

로즈 누나는 자신이 할 준비는 이미 끝났다며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그 눈빛에는 어떠한 일도 감당할 자신이 있어보여서 더는 반대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가짐과 누나의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던 것이다.

“누나는 이미 가정을 이루고 태어날 아기를 사랑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네요. 저만 그걸 몰랐어요. 죄송해요.”

이미 준비가 끝난 여자를 내 이기적인 마음으로 한도 끝도 없이 기다리게 할 뻔했다.

“나는 네가 날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뻐. 거기다가 이젠 아이까지 선물해주겠다고 했잖아. 난 이제 더는 바랄 게 없어.”

그녀는 내가 변심해서 자신과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해도 봐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어림도 없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요? 전 누나를 버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요. 다신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누나가 제발 버려달라고 해도 안 놔줄 거에요. 제가 집착이 좀 심하거든요.”

“흥, 나중에 늙은 여자가 주제도 모르고 집착 심하다고 욕하지나 마.”

로즈 누나에게서 태어날 내 아이.

이젠 더 이상 미래의 일로 묻어두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번 더 아빠가 될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태양이가 너무 예뻤으니까.’

해서 나는 두려움보단 로즈 누나로부터 태어날 아이의 탄생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아직 세상에 만들어지지도 않은 아이를 기다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기분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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