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30. 콘서트 준비 (1)
* * *
[상태창 꺼내라. 코인 넣어줄 테니.]
“내가 아직도 상태창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초보인 줄 알아? 상태창이 얼마나 예민한 건데 함부로 보여달래?”
[여태까지 아무 문제없이 보여줬잖아! 그리고 나는 네 담당이야! 상태창 검사 정도는 할 자격이 있다고!]
“웃기지도 않은 수작 부리지 마.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너한테 당하던 사람으로 착각하면 곤란해. 개인 정보는 소중한 거라고 멍청아.”
예전에 뭣도 모를 때는 내 상태창을 저 녀석에게 보여주고 조작할 수 있게 허락했지만, 이젠 절대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태창은 내 신체와 연결이 되어 있는 장치. 나쁜 마음으로 상태창을 조정하면 큰일날 수 있어.’
만약 저 녀석이 나쁜 마음을 먹고 상태창을 조작해서 내 신체 능력을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해봐라.
‘코인으로는 못할 게 없고, 더하기가 되면 빼기도 되니까.’
사실 처음에도 원래 포니 저 녀석이 쓰던 상태창을 내가 선물(?) 받아 썼기 때문에 얼떨결에 조작을 허락 한 거였다.
지금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빨리 내놔. 안 그러면 이번에는 잡아서 우주 보내버릴라니까.”
손을 활짝 펼치고 잼잼 쥐는 모습을 보여주니 포니가 끼야앗! 하고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빙글빙글 정신없이 돌았다.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짓!? 하기만 해봐. 가만히 안 둬!]
“몸 성하고 싶으면 빨리 내놔.”
[나쁜노오오오옴!]
포니가 잔뜩 성을 내면서도 내 협박이 먹혔는지 순순히 코인 지갑을 꺼낸다.
녀석은 주섬주섬 주머니를 열어서 안에 있는 코인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대로 곧장 녀석의 손아귀에서 코인 주머니를 빼앗아버렸다.
작은 녀석의 손에서 주머니 하나쯤 낚아채는 것은 죽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으니까.
휙!
[으악!]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역시 내 성과급 코인 주머니였잖아!”
자기 지갑인 것처럼 말하더니 빼앗고 주머니를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내 성과급 주머니였다.
이렇게 떡하니 ‘[성과급(봉인)] <지급대상 :="" 진해솔="">’이 적혀 있지 않은가?
포니는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파르르 날개를 떨더니 시치미를 뚝 떼기 시작했다.
[워, 원래부터 주려고 했었다! 깜짝 서프라이즈였단 말이다!]
“하여튼 입만 열면 거짓말이 툭툭 튀어나와. 사기꾼 요정놈. 조금만 방심하면 어떻게든 삥땅을 쳐보려고 머리를 굴린단 말이지.”
주머니를 시계로 변해 있는 상태창에 접촉시키니 번쩍 빛이 나며 봉인 되어 있는 주머니가 열렸다.
주머니와 상호작용을 받은 상태창이 떠오른다.
[성과급(봉인)<지급대상 :="" 진해솔=""> 대상이 확인 되었습니다. 코인을 수령하시겠습니까?]
포니에게 상태창을 순순히 조작하도록 내버려두었다면 저 글귀는 내게 보이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중간에 먼저 떼어먹지 못했던 건 주머니가 봉인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말이다.
“당연히 수령해야지. 싹 다 넣어줘.”
[야아!! 이 도둑놈이!]
“와, 미쳤네. 왜 이렇게 많이 줘?”
위에서 내려 온 보상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첫 임신 때도 생각해보면 보상이 나쁘지 않았다.
미션을 해서 코인을 수급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에게 준 500,0000 코인은 첫 번째 임신 때 받았던 보상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왜 갑자기 보상이 뻥튀기 된 거지? 둘째라서 그런 거야, 아님 내부가 한 번 뒤집어져서 원래 줬어야 할 보상이 온 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거 첫 번째 내가 받았던 보상이 빈약한 거고, 지금이 정상적으로 지급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 첫 번째 보상이랑 두 번째 보상이 차이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이 주냐? 원래 이렇게 줬는데 네가 중간에 삥땅친 거 아니야?”
[이이이놈이!!!]
극대노한 포니의 날갯짓 소리가 심상치 않다.
‘과민반응하는 거 보니까 찔리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역시 이놈 저번에도 나 몰래 삥땅쳤고, 이번에도 삥땅치려다가 망한 게 분명해.’
내가 먼저 손을 쓰지 않았다면 50만 코인이 얼마로 줄어들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번 걸려서 당분간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고새 나 몰래 손을 댔다 이거지.’
만약 계획대로 됐다면 자기가 선물로 준 것이라며 얼마나 생색을 내려고 했을까?
괘씸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너 나한테 얼마 주려고 했어.”
[얼마기는! 네가 방금 확인한 금액을 주려고 했지.]
자기는 순수하다는 듯 앙증맞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갸우뚱갸우뚱 고개를 움직였다.
이 녀석의 속은 능구렁이에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지만, 생김새는 요정답게 꽤나 순수하고 귀여워보이는 탓에 제법 잘 어울리는 모양새이기는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걸 다 넘겼을 것 같지 않은데. 솔직히 내 코인에 손대려고 했잖아. 순순히 불지 그래?”
[증거 있어?! 이놈이 어디서 요정한테 누명을 씌워!]
“정말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딱 그 짝의 모습을 보여주는 포니다.
나도 이번에는 좀 성급했다.
‘현장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걸 까발렸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저렇게 가증스럽게 수작질 안 한 척 못했을 거 아냐.’
위에서도 포니의 손버릇이 나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는지 (봉인)이라는 걸로 수작질을 막아두긴 한 것 같은데, 그것으로는 이 녀석의 욕망을 완전히 막진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요정이 나를 담당하는 것도 싫지만, 이 녀석이 중간에 삥땅치는 걸 가만히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결코 내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 일단 아니라는 말 믿어는 줄게. 증거가 없으니까. 근데 자꾸 이렇게 삥땅치려고 하다가 언제 한 번 제대로 걸려봐.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째는 아니다.”
[이, 이래서 인간 놈들은 잘해줘 봤자 소용이 없다니까! 나 갈 거야! 나쁜 놈아! 앞으로 도와달라고 불러도 절대 안 도와줄 거다! 흥!]
저노무 사기꾼 요정 시키가…!
뭐라 더 경고를 하려던 순간.
포니가 내가 진짜 화났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뿅 하고 사라져버렸다.
자기가 불리할 때는 잽싸게 튀는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지가 조금만 불리해져도 튀는구만.”
다음에 수작질을 부릴 땐 증거를 찾아서 빼도박도 못하게 만들리라.
저 녀석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척 하는 녀석이다.
아마 약점을 잡아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을 거다.
그나저나.
“50만 코인으로 뭐하지?”
생각하지 못했던 포상금.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행복한 시간이 되돌아왔다.
? ? ?
“이, 이게 다 뭐야?”
“선물이요. 행복이 임신한 거 축하한다는 의미로 준비해봤어요.”
“너 도대체 돈을 얼마나 번거야?”
“그냥…대충 좀 많이?”
내 돈으로 한 게 아니었기에 양심에 찔리기는 했지만, 비앙카의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이라는 생각으로 떳떳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앞으로 이 집에서 태교하세요. 그리고 시골에 계신 어머님도 괜찮으면 부르시고요. 임산부가 혼자 있는 거 안 좋아요.”
“엄마를 여기에?”
“싫으세요?”
“농사 지어야 한다고 안 올라오려고 할 텐데.”
딸이 임신을 했는데 농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우리 엄마는 엄청 옛날 사람이야. 올라와도 나한테 스트레스를 주지 도움 안 돼.”
“그럼 누나 돌봐주실 분을 제가 고용해드려도 될까요?”
“날 돌봐주는 사람? 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임신했을 뿐인데 굳이 그런 사람이 필요해? 집에 낯선 사람 있으면 불편할 것 같은데.”
“제가 옆에 항상 있어주는 게 아니잖아요. 낯선 사람이 불편하면 시간 좀 널널한 친구 분을 고용하는 것도 괜찮아요. 누나가 괜찮다고 하는 사람으로요.”
“나 이런 거 사양 안 하는 성격이야.”
“거절하지 말아줘요. 누나랑 행복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어서 그래요. 이렇게라도 해야 제 마음이 덜 무거울 것 같거든요.”
비앙카가 구해준 보안 좋은 집은 주변 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다 학원과도 거리가 가까웠다.
차로 30분 거리이니 말이다.
그뿐인가?
비앙카는 센스 있게도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해서 안전성이 높은 브랜드의 차를 한 대 뽑아줬다.
차와 아파트를 난데없이 선물 받게 된 복순 누나가 황당해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부담 되지 않는 선이라면 얼마든지 해줘. 나는 이런 거 받으면 좋아. 행복이한테 아빠 노릇 하고 싶다는데 내가 막는 것도 웃기잖아.”
뭔가를 해주는 입장에서 저렇게 기뻐하며 받아주는 것이 훨씬 좋다.
너무 부담스러워하면 뭘 선물해주려고 해도 찝찝해지니 말이다.
“근데 말야,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뻔뻔하게 받는 거야. 설마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으로 계속 선물해줄 건 아니지?”
“집이랑 차 수준으로 선물을 해주고 싶지만 계속 이 정도로 주지는 못할 거에요.”
“그래, 네가 나랑 행복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어. 아니, 그 이상이야. 임신했다고 집이랑 차 선물 받은 여자는 아마 나밖에 없을 걸?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복 받은 년인 거 알겠으니까 적당히 하자. 알았지?”
“넵.”
선물한 거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 결국 끝에 하는 말은 적당히 하라는 소리를 한다.
내가 이번에 준 선물이 너무 쎄긴 쎘던 모양.
문제는 아직 내가 준비한 선물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근데 선물이 더 있어요.”
“…여기서 또?”
“이 두 개가 제일 좋은 거였고, 지금 주는 건 소소한 거에요.”
“소소한 거면 언제든 환영이야.”
복순 누나의 허락에 자켓 주머니 안에서 꺼내는 척 하면서 아이템을 꺼냈다.
“인형이네. 후후, 귀엽다. 행복이 거야?”
“아뇨. 누나 거에요. 이게 그냥 인형이 아니라 걱정인형이거든요.”
“머리맡에 두고 자는 그거?”
“네.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향도 곁들어져 있어서 머리맡에 두면 좋을 거에요. 잠도 잘 올 거고, 걱정도 싹 사라지게 되겠죠?”
돈으로 살 수 있는 걱정인형이 아니라 코인을 주고 산 코인 아이템이다.
누나에게는 걱정 인형이라고 말했지만, 정확히 이 녀석의 이름은 행운 인형이다.
이 인형은 진짜 꿀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녀의 행운을 높여주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행운이라는 정확히 정의되지 않는 능력을 올려주는 것이라서 허황되어 보이겠지만, 코인을 주고 산 물건의 성능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나에게 이 인형으로 행운이 가득해져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매했다.
‘고작 손바닥 만한 인형 주제에 28만 코인이나 하는 녀석이라고요.’
오늘 그녀에게 준 물건 중에서 가장 비싼 걸 따져보면 이 인형일 것이다.
비싼만큼 행운이라는 것의 가치가 높은 것일 테고 말이다.
“이게 저라고 생각하고 꼭 침대 맡에 두고 자요. 알았죠?”
“요 작은 녀석이 널 얼마나 대신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잠이 잘 오는 향기가 난다니까 써야겠지?”
“한 번 써보면 만족할 거에요.”
“응. 고마워~ 잘 쓸게. 오늘 너무 예쁜데 어쩜 좋으니. 요 예쁜 걸 못 잡아먹네.”
임신으로 조심해야 하는 누나이기에 잠자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몸은 어때요?”
“확실히 느낌이 달라. 나는 좀 예민한 편인가 봐. 자기가 임신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확 변화가 느껴져. 잠도 늘고 몸도 축축 늘어지고. 아직 입덧이 생긴 건 아닌데 어쩌려고 이러나 싶다니까.”
“병원은요?”
“저번에 가서 검진 받았어. 괜찮대.”
“그래도 저랑 같이 한 번 가요.”
“병원에서 너 알아보면 어쩌려고? 됐어. 나 혼자 가도 돼.”
내가 안 들킬 자신이 있다고 했지만, 복순 누나는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게 싫다면서 딱 잘라 거절을 했다.
“초음파 사진 나오면 보여줄게. 그걸로 참아. 알았지?”
“정말 안 들킬 자신 있는데….”
“됐거든? 앞길 창창한 남자 발목 잡기 싫어. 숨기기로 했으면 철저하게 숨기는 게 좋아.”
주아 누나 때도 함께 병원을 다니곤 했다는 말을 해도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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