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15화 (215/849)

〈 215화 〉 #30. 콘서트 준비 (2)

* * *

“그때가 운이 좋았던 거야. 만약 운이 나빠서 실수로 들키면? 그땐 내가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들고 다니니?”

“누나!”

“아무튼 난 싫어. 그러니까 절대 따라오지 마. 병원 나 혼자 다닐 거야. 애도 아니고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

복순 누나의 단호한 고집을 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나는 누나의 고집에 백기를 들었다.

“저 이제 콘서트 준비 때문에 바빠질 거에요.”

“그래서 아까부터 내 건강에 예민했던 거구나? 네가 신경 못 써줄 것 같아서.”

“시간 있을 때 최대한 챙겨둘 수 있는 부분은 다 하고 싶었어요.”

“사실 오늘 이렇게 시간 낸 것도 너한테는 무리였던 거지? 콘서트가 어디 하루이틀 준비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거든.”

인기의 척도에 따라 다르겠으나 일괄적으로 가수들이 가장 바빠지는 때가 있는데 보통 축제 시즌이나 연말 방송 무대가 있는 날이다.

물론 그것도 섭외가 될 정도의 급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말이다.

그럴 때를 제외하고 가수들이 가장 바쁜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바로 콘서트 직전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현재 내가 바로 그 기간에 걸쳐 있었다.

“이번에 하는 게 첫 콘서트인 거지?”

“네. 콘서트 비슷한 걸 많이 해봐서 어색하진 않아요. 그래도 첫 콘서트다 보니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연습을 빡세게 하고 있죠.”

“너는 잘 해낼 거야.”

가수에게 콘서트는 굉장한 기쁨이다.

우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우리의 노래를 듣고 즐기기 위한 자리가 마련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마워요. 누나.”

복순 누나를 꼭 끌어안았다.

한동안 둘이 껴안고 시간을 보낸 우리는 입술이 닳도록 뽀뽀를 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그나저나 이사는 어떻게 해야 되나 싶네. 물건이 이미 다 들어와 있어서 지금 쓰는 건 전부 버려야 할 것 같아.”

“쓰는 물건들만 가져와요.”

“이거 가구들 하나같이 비싼 브랜드 제품인 것 같은데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요. 알면 다쳐요.”

집은 내 돈으로 한 게 아니지만, 가구는 내 돈으로 했다.

그렇기에 가구에 있어서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세지만, 나중에는 내 돈으로 집을 구해서 자가로 아파트를 넘겨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아마 다음 정산쯤이면 되지 않을까?

현재는 전세로 구해놨지만 다음 정산 때 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괜찮은 수준이라면 자가로 구매하는 것까지도 생각해둔 상태였다.

? ? ?

쿵쿵! 삐걱­! 삐걱­! 쿵!

댄스와 박자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짜악짜악짜악 세 번의 박수를 칠 순간 댄서는 그 박자 안에서 쪼개고 쪼개면서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박자 위에서 수영으로 물을 밀어내듯 박자를 밀어버릴 때도 있고,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면서 각 잡힌 움직임을 보여야 할 때도 있다.

그런 걸 보면 노래를 부르는 것과 댄스는 큰 공통점을 갖게 된다.

그 두 가지 모두 박자를 얼마나 잘 가지고 노느냐에 따라 실력이 판가름 되니 말이다.

문제는 중력이라는 게 존재해서, 박자를 쪼개며 민첩하게 움직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거다.

댄서들은 질 수밖에 없는 중력과의 싸움에서 달래기도 하고 맞서 싸우기도 하면서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한다.

남자 아이돌 ‘에어플레인’으로서 나 또한 댄서들과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고, 파워있게 몸을 다룰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댄서가 되는 건 아니었다.

“맵시 흐트러진다! 좀 더 섹시하게! 섹시한 노래 틀어놓고 율동 추는 것처럼 추면 어떡하냐!”

벼락같은 호통이 쏟아진다.

안무팀의 호랑이 선생님으로 이름이 높은 장은새 안무가의 호통이었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이고, 이번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고용 된 선생님이셨다.

그녀는 콘서트에서 추게 될 우리의 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뒤 거침없이 안무를 고치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안무를 얼마나 형편없이 추었는지 따끔하게 지적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조’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3주.

3주 만에 같은 안무를 추어도 그녀의 손이 닿기 전의 우리와 닿은 후의 우리 모습은 차원이 달라졌다.

눈에 띌 정도로 퀄리티가 상승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코인으로 뻥튀기 해놨던 내 댄스 능력이 그녀와 만나 비로소 제 능력을 보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자들이 환장을 하는 남자가 그렇게 순수해서 되겠어? 몸으로 표현을 하란 말이야! 난 지금 너랑 섹스하고 싶어서 이 춤을 추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서 내게로 와. 섹시해죽겠지? 코피날 것 같지? 나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추란 말이야!”

문제는 장은새라는 안무가의 입이 매우, 심하게 걸걸하다는 점이었다.

실력은 인성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따로 없다.

여자들을 가르쳤다면 장은새 안무가의 섹드립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녀가 하는 섹드립은 남녀를 가리질 않았다.

‘저러고 다니는데도 멀쩡하게 잘 다니는 건 압도적인 실력 때문이겠지.’

더군다나 성희롱은 하지만, 성적인 터치는 하지 않는 만큼 정해진 선을 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어서 더 그렇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킨다고는 하는데 영 못 믿겠단 말이지.’

장은새 안무가를 처음 봤을 때 단번에 눈치 챘다.

이 여자는 어마어마하게 음기가 강하다고.

그냥 근처에만 있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가 내뿜는 색기가 대단했다.

성희롱이 문제일 뿐,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는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그녀는 언제든지 남자를 따먹을 준비가 되어 있어 보였다.

“그만! 10분 휴식.”

“와악!”

“으아아아~!”

“주, 죽을 뻔 했다.”

“물! 제발 물 좀 줘.”

멤버들이 휴식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닥에 뻗었다.

하지만 곧 꾸물꾸물 움직이면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매일매일 몸을 혹사당하는 상황에서 스트레칭을 제대로 안 해줬다간 큰일 날 수도 있었다.

“수고 많았어. 이제 슬슬 태가 좀 나더라. 댄스에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정말 달라졌어요?”

“내가 말했잖아. 가르치는 대로 따라오면 너희들 어디 가서 춤으로 욕먹는 일 없게 해주겠다고. 그리고 너희들이 부르는 노래 춤도 제대로 못 추면 쪽팔려서 얼굴 들고 다닐 수 있어? 적어도 내 춤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춘다는 프라이드가 있어야지. 휴식 끝나면 촬영 할 테니까 방금 전보다 더 잘 춰야 된다. 알겠지?”

“헉!”

“조금만 더 연습하면 안 될까요?”

카메라 촬영을 하게 되면 그 영상은 이번 콘서트를 담당하고 있는 전담팀과 더불어 그 위에 있는 조연주 이사에게 올라가게 된다.

적어도 제일 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게 우리였기에 최대한 미루고 싶은 게 우리들의 마음이었다.

“콘서트 준비하다가 1년 보낼래? 아직도 자신감이 없어?”

“자신감이 있긴 했었죠. 안무가님이 추는 걸 보여주기 전까지요.”

그녀의 춤은 특별하다.

남자의 춤과 여자의 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의 소화력을 보여주었다.

저 춤이 정말 우리가 추던 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저게 바로 클래스(class)가 다르다는 거였다.

“춤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당연히 너희들보다 잘 춰야지. 아무튼 너희들도 재롱 수준에서 벗어나서 이젠 춤으로 먹고 살아도 될 정도야. 자신감 가져도 돼.”

불과 3주 만에 일어난 변화와 인정.

우리들은 모두 뿌듯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해솔이 넌 진짜 너무 아깝다. 왜 진작 내 눈에 안 띄었던 거야? 아이돌 하기 전에 이쪽으로 끌어들였어야 했는데.”

“에이! 그러기엔 형 얼굴이 너무 아깝죠.”

“춤 실력도 얼굴만큼 아까워! 그동안 이 대단한 춤 실력을 도대체 어디에 숨겨두고 있었던 거야? 나 진짜 너 때문에 쌀 뻔했잖아.”

장은새 안무가는 나를 한 입에 삼켜버릴 것 같이 탐욕을 담아 바라봤다.

내가 코인으로 올렸던 능력치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녀의 손을 타고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된 탓이었다.

좀 더 진지하게 춤에 집중해서 배운다면 정은새 안무가와 비견 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하, 저 때문에 그럴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전 지금이 행복하고 좋아요.”

“넌 너무 철벽이야!”

“해솔이 형 꼬시지 마세요오~!”

“우리 형 데리고 가시면 안 돼요.”

“저렇게 맛있는 게 내 앞에 있는데 건드리지 말고 보기만 하라고? 너무하잖아! 자위 정도는 허락해달라구!”

그쪽 성희롱이 더 너무한데요.

진짜 요즘 세상에 당당하게 저러고 다닐 수 있는 용기가 너무 대단하다.

저런 성격이니 우리나라에선 활동을 많이 못하고 외국에서 자주 활동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거 진짜 좋은 기회니까 잘 생각해봐. 세계 대회에서 수상을 한 아이돌이면 네 이름값도 올라갈 걸?”

“바빠서 시간이 날지 모르겠어요.”

“바빠도 이 정도 급이면 시간을 내야 하는 거야!”

사실 그녀가 나한테 매달리고 있는 이유가 있다.

이번에 나를 가르치면서 내 춤 솜씨가 심심치 않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자기 제자가 출전하는 댄스 경연 팀에 합류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한 것이다.

이 제안을 받고 우연이와 남은규에게 얼마나 부러움을 샀는지 모른다.

‘남은규는 원래 유명해지고 싶어서 낄 수 있는 곳은 싹 다 끼는 기질이 있고, 우연이는 우리 중에서 춤에 제일 진지하긴 한 녀석이니까.’

애들 말을 들어보니 댄서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대회라고 한다.

그 대회에서 짱을 먹으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나?

기회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전 댄서가 아니라 아이돌이에요. 그런 대회에 인맥으로 끼어들었다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요? 아이돌은 방송 무대에 나가서 재롱이나 부리라고 욕 먹겠죠. 제가 끼어들 곳이 아니에요.”

“걔네들 불만은 네 실력 보여주면 입 닥칠 거라니까?”

“저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냐는 입장인 거에요. 대회를 나가는 건 그쪽 분들한텐 엄청난 기회겠지만, 저한테는 그게 엄청난 기회라고 부를 정도의 일은 아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굳이 내가 참가해서 욕을 먹고, 그걸 또 입 닥치게 실력행사를 하기까지 해서 쟁취해야 할 일일까?

대단한 기회인 것은 사실이나 나는 바란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그와 비견 되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쉽다. 네가 나가면 대회 씹어먹었을 텐데.”

장은새 안무가가 이렇게까지 내게 매달리는 건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자신의 ‘제자’라고 소개하기 위함이다.

현역으로 대회에 나가기엔 급이 너무 올라갔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이름값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건 제자들을 키우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가르친 제자들 중에 진정으로 그녀의 후계자라 부를 수 있는 댄서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날 제자로 만들어서 자기 명성 올리려고 하는 건데, 이용당해 줄 이유가 없지.’

세계적인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명성이 내게 큰 도움이 되는가.

장은새의 후계자이자 제자라는 명성이 과연 내게 도움이 되는가.

내 이름값이 올라가는데 유용하게 쓰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시간이 안 나서 행복이와 태양이 곁에 있어주지도 못하는 내 시간을 그런 명성 얻자고 쓰는 건 너무 아까웠다.

“결국 오늘도 못 꼬셨네.”

“안 넘어가요. 이제 그만 하세요.”

“튕기는 남자를 자빠뜨리는 건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법이지.”

“와~ 진짜 저런 말을 하고 다니면서 고소 안 당하는 게 신기하다니까.”

“헉! 혀엉…!”

“건방진 맛도 나쁘지 않아.”

장은새 안무가에게 점점 더 거침없이 말하는 나를 보며 멤버들은 사색이 되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녀가 너무 마이웨이였다.

봐라, 지금도 내 말을 듣고 혼자 불 타 올라선 혀를 낼름거리고 있지 않은가?

상변태가 따로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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