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30. 콘서트 준비 (3)
* * *
“너 장은새 안무가랑 뭐 있어?”
“응?”
연습을 끝내고 돌아와서 숙소에서 각자 쉬고 있는 중이었다.
볼 일이 있다며 숙소에 들어오기 전 사라졌던 남은규가 늦은 새벽에 숙소에 들어오다가 우연히 나와 마주쳤다.
나도 도플갱어 인형을 두고 태양이를 보러 갔다가 온 상태인지라 남은규랑 마주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간 적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물을 마시러 나온 척 하며 남은규에게 물었다.
“장은새 안무가랑 있었던 거 아니야?”
“…아닌데요?”
“여자 만나는 게 뭐 죄 짓는 거냐? 갑자기 왜 존댓말을 써? 눈치 보지 않아도 돼.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근데 취향은 좀 독특하긴 하다.”
남은규가 입술을 꾹 다문다.
대답하기 싫은가 보다.
나라도 같은 멤버가 내 연애에 참견하면 부담스럽고 싫었을 거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믿는다. 알아서 잘 처신해. 어디가서 너 연애한다는 소리 할 생각 없으니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연애하는 거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원나잇?”
“형!!”
남은규와 기우연이 장은새 안무가에게 관심이 많다는 건 눈치 채고 있었다.
그 관심이 ‘여자’로서의 관심인지 ‘안무가’로서의 관심인지는 알 수 없었는데 남은규는 전자였고 기우연은 후자였던 모양.
그리고 남은규가 장은새 안무가와 결국 꼬시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아니, 여기서는 남은규가 꼬신 게 아니라 장은새 안무가가 은규를 꼬신 게 되는 건가?’
둘 중 누가 먼저 손을 뻗었는지 모르겠으나 남은규가 남자가 된 건 확실해보였다.
녀석은 모르고 있으나 입술에 여자 립스틱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짜식. 뭐가 됐든 어른이 된 거 축하한다.”
“악! 형!! 아니라니까!”
“소리 지르지 마. 애들 깬다. 그리고 뭐 그런 거에 부끄러워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암튼 형은 응원해. 파이팅!”
춤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에 구릿빛이 맴도는 피부까지.
장은새 안무가는 여자로서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다만 입만 열면 확 깨게 만드는 성희롱 때문에 남자들이 질색을 하게 되는 스타일 일 뿐.
만약 그녀가 멀쩡한 성격을 가졌다면 제법 남자들을 울리고 다녔을 것이다.
일단 능력이 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남은규가 부디 장은새 안무가를 꽉 잡아서 성희롱 하는 입버릇을 고쳐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런 내 짐작이 전혀 틀렸다는 것을 다음날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늘도 엉덩이가 탱글탱글하게 꽉 차 있구나.”
“??”
다음날 연습에 도착한 날 보자마자 장은새 안무가가 인사를 하듯 성희롱을 했다.
내 엉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는지라 부담스러움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문제는 어젯밤 만리장성을 쌓은 남은규를 앞에 두고 나한테 껄덕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 못할 일이었기에 자연스레 내 시선이 남은규를 향했다.
놀랍게도 남은규는 입술을 깨물고만 있을 뿐 항의를 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진짜 애인이 아닌 건가? 원나잇이었다고?’
어제 분명 입술에 립스틱이 묻어 있었기에 일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지금 남은규의 반응만 봐도 무슨 일 있었던 여자는 장은새 안무가가 확실하고.
‘아무리 원나잇이었다고 해도 저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입술을 부볐으니 썸인 것은 확실한 것.
나는 괘씸한 마음을 담아 장은새 안무가를 단호하게 쳐냈다.
“성희롱인데요.”
“후후후! 앙탈부리기는. 귀여운 녀석.”
“그럴 생각 조금도 없어요. 꿈 깨셔요.”
오늘도 단호하게 철벽을 쳐주고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남은규는 장은새 안무가를 힐끔힐끔 쳐다 보는 게 눈에 보이느데 꿋꿋하게
“스트레칭 도와줄까?”
“어…괘, 괜찮습니다.”
“아니야. 꿀꺽!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그녀의 껄떡거림은 나로 끝나지 않았다.
목표가 금세 강경태로 바뀌어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장은새가 스트레칭을 도와주기 시작한다.
과한 터치를 하지는 않지만,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충분히 호강하는 중이다.
헬스를 빡세게 한 강경태의 몸은 여자라면 절로 꿀꺽 침을 삼킬 만큼 근육이 잘 잡힌 몸이었다.
넓은 어깨와 굵은 팔뚝. 거기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뿔뚝뿔뚝 튀어나오는 핏줄까지.
그걸 넋 놓고 훔쳐보고 있는 장은새 안무가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툭
나는 슬금슬금 움직여 남은규 가까이로 가 옆구리를 팔꿈치로 살짝 찔렀다.
남은규가 나를 바라보자 고개 짓으로 그녀를 찍은 뒤 물었다.
“뭐야?”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정말 잠깐 만난 거야?”
“그런 거 아니라고. 괜히 선생님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어떻게든 표정 관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한 말 때문에 감정이 북 받친 것 같다.
남은규는 일그러진 얼굴로 입술을 우물우물거리다가 한숨을 푹 쉬더니 화장실 다녀오겠다며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졸지에 애를 울려버린 못된 형이 된 것 같아 뒤통수가 얼얼했다.
‘설마 쟤가 매달리는 쪽이야? 왜? 뭐가 부족해서?’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남은규의 여자 보는 눈에 절로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은규는 어디 갔어?”
“잠깐 화장실.”
“이제 시작하겠다고 하셨는데….”
“금방 올 테니까 내버려둬.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아…그래? 어쩔 수 없겠네. 화장실에서 큰일 보는데 방해하면 죽일 놈이지.”
강준은 남은규가 화장실에 간 것을 다른 이유로 오해를 한 것 같았지만 그 오해를 풀어주진 않았다.
여자 때문에 속이 상해서 우느라 화장실로 갔다는 말보다야 큰일(?)보러 갔다는 말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한 명 어디 갔어?”
수업을 시작하려는 장은새 안무가의 물음에 강준이 본의 아니게 트롤짓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은규가 오랜만에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갔어요.”
“음, 그럼 어쩔 수 없겠네. 일단 은규 빼고 시작하자.”
…차라리 울러 갔다는 말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 ? ?
“장은새 안무가는 예의 주시하고 있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애들한테 과하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항상 매니저 대동시키고 있습니다.”
“틈 보이지 말아요. 실력은 끝내줘도 언제 손대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예, 근데 애들이 의젓해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실 겁니다.”
전담 팀의 말에 조연주 이사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그쪽으로는 아무리 주의하고 또 주의해도 부족하고 또 부족합니다. 애들이 얌전하다고 방심하지 말아요. 걔네들 한창 때 남자아이에요. 여자들이 어떻게든 한 번 자빠트려 보겠다고 눈이 벌게져서 접근하는 상황이고요. 근데 애들이 얌전하니까 괜찮을 거라는 말이 나옵니까?”
“…….”
“앞으로 그 아이들로 벌어들일 돈이 얼마인지 알잖아요? 지금 스캔들 나면 모든 스케줄 엉망 되는 겁니다. 관리 부실로 수십억 아니, 미래를 생각하면 수백억이 날아가는 거에요. 그럼 그 책임 누가 져야 하는 거죠? 애들한테 전가할 건가요?”
“…아닙니다. 잘 살피겠습니다.”
“그런데 이사님, 이제 애들이 많이 커서 저희들이 강하게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멤버들 중에 만만치 않은 멤버도 있고요.”
쿡쿡!
그냥 순순히 네네 하면 되는 일을, 눈치 없는 직원이 나서버리자 다른 직원이 황급히 옆구리를 치며 만류했다.
“…….”
그 직원도 아예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 작게 “그냥 저희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려고 했던 건데….”라고 웅얼대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만만치 않은 멤버라면 제키를 말하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더 열심히 관리하겠습니다.”
“아뇨. 말 나온 김에 들어봐야겠어요. 누가 그렇게 관리하기 힘든지.”
“힘들지 않습니다. 에어플레인이면 굉장히 편하게 관리 하고 있는 게 맞습니다.”
“지금은 제가 에어플레인을 관리하는 사람이에요. 솔직하게 말을 해줘야 제가 상황에 맞게 판단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여러분들과 감정싸움 할 생각이 없어요. 우리 감정싸움 하지 말고 일을 하죠.”
조연주 이사의 확고한 말에 어쩔 수 없이 전담팀 직원이 얘기를 꺼냈다.
“대충 보면 제키가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정작 실세는 해솔이에요.”
“맞습니다. 애들이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도 해솔이입니다.”
“…당연히 리더인 제키나 나이가 가장 많은 강경태를 언급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해솔이가 말을 안 들어서 관리가 힘들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뭐랄까….”
“만만치 않다?”
“아! 맞습니다. 이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만만치가 않습니다.”
조연주는 자신과 독대를 했던 진해솔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그날 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도 떠올렸다.
‘확실히 그런 편이기는 하지.’
자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이.
결코 순진하지도 않고, 본인에게 해가 되는 일을 순순히 따를 아이도 아니었다.
“연예인 한 둘 관리해봅니까? 언제부터 우리 직원들이 순진한 사람들만 골라서 관리하고 싶어 할 만큼 나약해진 거죠? 연예인들 꼬장 부리는 거 어르고 달래면서 관리하던 시절 잊었어요? 확실히 다들 요즘 살만들 한가보네.”
“…죄송합니다.”
“애들이 만만치 않은 게 흠인가요? 걔네들만 변한 줄 알죠? 여러분들도 변했다는 걸 아셔야지. 옛날이었으면 내 앞에서 그런 소리 할 수 있었겠어요?”
아직 허니 엔터가 자리를 잡지 못했을 시절.
그때 관리를 했던 연예인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또라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이름값이 생겨 그러지 못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직원들이 연예인들에게 강하게 나가지 못해 비위를 맞춰줘야만 했다.
철저한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해왔던 기억이 있는 직원들은 절로 한숨을 푹 쉬었다.
특히 에어플레인 전담팀을 총괄하는 팀장은 조연주 이사가 현역으로 뛸 때 막내로 들어왔던지라 생생하게 그날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 생기지 않게 관리하는 게 우리가 돈 받고 일하고 있는 이유잖아요.”
“예, 맞습니다. 이사님.”
“계속 힘 좀 써줘요. 아직 변하지도 않은 애들 갖고 벌써부터 변명거리 만들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급이 높아진 에어플레인에게 접근하는 어두운 손이 한 두 개가 아닐 것이다.
그걸 잘 막아 줄 생각을 해야지, 애들 핑계대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려는 전담팀 팀장에게 쓴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 바닥에서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능한 것은 맞으나 이런 식의 안일한 대처는 큰 실망감을 주는 일이었다.
‘어디 내 앞에서 뻔히 보이는 수작질을 해?’
방금 전 전담팀에서 한 행동은 만약 에어플레인이 사고 치게 되면 그건 우리들 탓이 아니라 쟤네가 인기에 취해서 변한 탓이라고 변명하려고 밑밥을 깔고 있었던 거다.
‘하여튼 요즘 직원들은 의지가 부족하다니까, 의지가.’
그녀가 바란 대답은 이런 변명이 아니었다.
문제가 생긴다 해도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 것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이사님.”
옛날에는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허니 엔터 이름값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쉽게 가능해져버렸다.
그래서 그런가?
‘직원들이 하나같이 전부 수동적이고 의지박약이야.’
조연주가 에어플레인을 위해 준비해둔 것들은 이제 시작이었다.
국내에서 활동은 조연주 이사의 힘이 닿는 곳이 별로 없었다.
그녀의 진짜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은 해외.
에어플레인의 국내 콘서트가 끝나고 난 이후를 계획하고 있는 중인 조연주다.
이제 하늘 위로 날아올랐으니, 본격적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그동안의 고생을 털어버리고 자유를 만끽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더 열심히 의욕을 내야 할 전담팀이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이니 조연주 이사는 전담팀에게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