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30. 콘서트 준비 (4)
* * *
“혹시 힘들어서 그래요?”
“네?”
“이번에 애들 스케줄이 빡빡해서 관리하기 힘들죠?”
“아닙니다, 이사님. 힘들지 않습니다.”
힘들지 않다고 했으나 그게 사실인 건 아니다.
노래가 상상 그 이상으로 뻥 뜨는 바람에 전담팀은 거의 한 달 가까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다.
“확실히 근래에 많이 바쁘긴 했죠. 근데 이 정도 체력으로 애들 전담 계속 할 수 있겠어요? 콘서트 끝나면 이제 해외일 건데. 애들은 계속 크는데 여러분들은 그걸 따라가질 못하고 있으니까 난 걱정이 드네.”
“걱정 하실 일 없게 더 노력하겠습니다.”
“인원이라도 늘려줘요?”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에어플레인은 이제 동양권을 넘어 서양권 나라까지 영향력을 펼치게 될 것이다.
동양권인 자오와 윈푸오에서는 저번의 활동으로 충분히 인기를 얻었다.
이제 새로운 영역으로 뻗어나갈 때다.
애들만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을 서포터 해주는 직원들의 힘도 만만치 않게 필요했다.
“애들 관리는 기초 중의 기초에요. 기초가 흔들리면 다 무너지는 거에요.”
“네.”
“만약 진해솔한테 문제가 생겼는데 해결을 못하겠다 싶으면 나한테 보내요. 그래도 나름 이사라는 직함이 있는데 나한테까지 뻗대지는 않겠죠. 그러니까 문제 있으면 숨기지 말고 나한테 보고부터 하고 움직이는 겁니다.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직원들의 기강을 잡은 조연주가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며 회의실을 나갔다.
“후아.”
조연주 이사가 나가고 나서야 숨을 쉬는 전담 직원들.
그녀들은 숨을 고르다가 슬슬 속에 담아두었던 불만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우리가 애들을 엄청 신경 안 쓰는 줄 알겠어요. 지금까지 걔네들 케어하느라 집에 가지도 못하고 한 달이 넘게 야근했는데!”
“어쩌겠니? 우리가 참아야지. 워낙 유능하신 분이라 우리들이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드실 수밖에 없을 거야.”
“그나저나 너는 무슨 생각으로 거기서 계속 변명을 한 거야? 그냥 네네 하고 넘어갔어야지.”
“이사님이 저희를 너무 한심하게 보시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반박해버렸어요. 저희 정말 열심히 했잖아요. 근데 이사님은 우리가 하는 일이 전부 마음에 안 드신가 봐요.”
“우리가 참아야지 어쩌겠니. 이사님한테 욱해봤자 너만 손해야. 그냥 네네 하는 게 나아. 이사님이 젊어 보인다고 진짜 젊은 사람이 아니야. 꽉 막힌 옛날 분이라고.”
“…죄송해요.”
조연주 이사는 유능하다.
문제는 그 유능함을 따라가지 못하면 굉장히 한심한 취급을 한다는 거다.
전담팀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최선이 조연주 이사의 기준에 합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외에서 엘리트들로 이뤄진 팀원들이랑 일하다가 평범한 우리랑 일하려니까 답답하신 거야.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자. 애들도 잘 따라 와주고 있잖아.”
“그렇긴 하죠. 애들까지 문제 일으키면 정말 힘들었을 거에요.”
이젠 신인이었을 때처럼 네네거리지는 않지만, 현재 누리고 있는 인기에 비하면 애들이 순한 편에 속하는 건 맞다.
직원들은 오늘도 쏟아지는 각종 일거리에 한숨을 푹 쉬며 샷추가한 커피를 시켰다.
에어플레인이 스케줄 없이 콘서트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고 해서 전담팀이 쉴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며칠 후에 일어났다.
믿었던 멤버들 중 한 명이 거하게 사고를 쳐버렸다.
? ? ?
“지금 같이 중요한 때에 이런 짓을 하고 다니면 어떡하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은규야. 우리 아직 갈 길이 멀어. 너희들 목표가 고작 국내 최고가 전부였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일탈을 하면 곤란해. 너만 곤란해지는 게 아니라 우리 팀 전부랑 멤버들 모두한테 민폐가 되는 거라고.”
“…….”
“더군다나 하필이면 상대가 장은새? 그 여자 관련 된 소문 다 들려줬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랑 만난다고? 너 어쩌려고 이래? 하필이면 만나도 왜 그런 여자를 만나!!”
“제가 잘못한 건데 은새씨 욕하지 말아주세요. 은새씨는 그냥 절 받아준 것밖엔 없어요.”
“어휴! 답답해. 너 때문에 혈압 올라서 쓰러지겠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빨리 들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들키지 않고 만남을 갖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은 알지만….
‘이놈이 여자한테 미쳐 가지고는…!’
남은규가 팀장님에게 호되게 혼나고 있는 것이 문을 타고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황을 알게 된 멤버들도 복잡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왜 하필 장은새랑 그런 거래?”
“혹시 그분이 은규 형을 덮친 거 아닐까요?”
“에이, 그랬으면 경찰 불러야지. 남은규가 혼날 이유도 없고.”
“많고 많은 여자 중에 왜 그런 여자를….”
처음에 얘기를 들은 멤버들은 남은규가 장은새 안무가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걸 믿을 수 없어했다.
왜 그런 여자랑?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좀 생겼다 싶은 남자들에게 매번 치근덕대는 여자.
결코 진지하게 사귈만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직원한테 딱 걸렸다던데 진짜야?”
“어. 회사에서 둘이 붙어 있는 걸 딱 들켰대.”
“와~ 은규 대담하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장은새 선생님한테 이제 못 배우는 거야?”
“아마 그렇겠지? 둘이 그러고 있는 걸 봤는데 계속 고용하려고. 무조건 떼어놓겠지.”
“그럼 우리 콘서트는.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
“…….”
멤버들 사이에서 서늘한 침묵이 돈다.
“은규 나오면 그런 말 하지 마. 충분히 혼나고 나온 애한테 우리까지 더 보탤 필요 없잖아.”
“맞아요. 우리는 은규 형 위로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잘못한 게 벼슬도 아니고 왜 위로를 해줘? 별로 위로해주고 싶지 않은데.”
“에이~ 경태 혀엉~ 왜 그래요.”
준이나 우연이는 장은새 안무가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게 이해는 안 되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을 안타까워했는데, 강경태는 남은규의 행동에 화가 난 상태였다.
“만약 회사 사람한테 들키는 게 아니라 기자한테 들켰어봐. 스캔들 났으면 콘서트는 무조건 취소되고, 앞으로 활동도 문제가 커졌을 걸? 여자는 만날 수 있어. 근데 사귈 거면 들키지 않게 조심했어야 하는 거 아냐? 근래에 연습에 집중 못하고 자꾸 실수한다 싶더니 여자한테 한 눈 팔리고 있었다는 거잖아. 나는 그것도 괘씸해. 우리는 콘서트 멋지게 해보자고 으쌰으쌰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회사 사람에게 들켰다는 것 자체가 남은규가 얼마나 부주의 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남 눈치 볼 생각 없는 장은새 안무가는 상관없는 일이었겠지만, 남은규가 알아서 조심을 했어야 하는 게 맞았다.
“회사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었던 것도 어처구니가 없어, 난.”
“우리 여자 만나는 거 서로 이해해주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요?”
“여자 만나는 걸 이해 못한다는 뜻이 아니잖아. 나는 걔 태도에 실망한 거라고. 더군다나 하필이면 상대가 성희롱이나 하고 다니는 여자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걔는 왜 그러는 거야?”
제키가 한 때 멜리사에게 반해서 플러팅을 날릴 때도 경태 형은 별 다른 말없이 응원을 해줬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콘서트를 앞두었다는 점에서 시기가 좋지 않고, 상대방도 도저히 응원을 해줄 만한 사람이 아닌 게 문제였다.
‘더군다나 큰 돈 주고 부른 사람인데, 은규 때문에 빠져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까.’
아직 그녀에게 배울 게 많다.
그녀가 직접 가르침으로서 우리의 춤이 한층 더 뛰어나졌다는 게 체감 된 이상 이대로 흐지부지 끝나는 건 모두가 반대 할 결말일 것이다.
안무는 이미 짜와져 있지만, 그녀가 직접 가르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가 분명하니 말이다.
우리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달칵!
팀장님에게 잔뜩 혼난 남은규가 침울해진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
우리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확인한 남은규가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미안하다. 깜짝 놀랐지?”
“괜찮아. 팀장님한테 잔뜩 혼난 것 같은데 우리한테까지 사과 할 필요 없어.”
“난 사과 받아야겠는데? 너 때문에 지금 연습 올 스톱 됐어. 그뿐이야? 회사에서 너랑 얽힌 여자를 계속 쓸 리 없으니 계약 파토내고 돌려보낼 텐데, 아직 배울 게 산더미처럼 남은 상황이잖아. 이런 민폐는 좀 아니지 않냐?”
“정말 미안해, 형.”
“많고 많은 여자들 중에 왜 하필 그런 여자를 사귄 거야? 너도 봤잖아. 매일 우리들 성희롱하는 거. 하필 꽂혀도 저질에 변태인 여자한테 꽂혀서는….”
“은새씨는 아무 잘못 없어. 내가 잘못한 거야. 그리고 수업은 계속 하기로 했어. 내가 앞으로 절대 사적인 만남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거든. 그러니까 형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무언가를 꾹 눌러 참은 채 남은규가 깜짝 놀랄 소릴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은규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고 장은새는 오는 남자 안 막는 스타일이라 받아준 것뿐이었다고 한다.
즉, 남은규가 장은새를 사적으로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면 장은새는 감정이 섞인 만남이 아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강경태도 남은규가 그런 소릴 할 줄 몰랐는지 더 이상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여러모로 속이 편하지 못할 텐데 콘서트를 하는데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큰 결심을 한 것이니 말이다.
“네가 어떤 여자를 사귀든 상관없는데, 여자 문제로 일에 민폐를 끼치는 건 상관할 수밖에 없어. 오늘 내가 너무 서운하게 말한 것 같은데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은규가 이렇게 나오니 경태 형도 더 이상 뾰족하게 대응할 수 없었는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도 안 서운해. 적반하장도 아니고 여기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오히려 민폐 끼쳐서 정말 미안해. 이번 일로 실망 많이 했을 텐데 위로해주려고 해서 고맙고,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노력할게.”
“짜식, 정신 차렸나보구나?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솔직히 네가 너무 아깝잖아. 뭐가 부족해서 그런 질 안 좋은 여자를 만나냐? 형이 진짜 진국인 여자로 소개시켜 줄게. 원래 여자는 여자로 잊는 거야. 딱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경태 형이 은규의 말에 만족했는지 어깨에 팔을 둘렀다.
평소 경태 형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스타일이고, 남자답게 풀 때는 확 푸는 뒤끝 없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딱 보니까 쟤는 아직도 속앓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뭔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는 건지….
남은규는 장은새 안무가를 완전히 정리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속은 그렇지가 않은 듯했다.
이대로 계속 얼굴을 보고 지낸다면 장은새 안무가를 정리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난 좀 반대인데.”
“반대? 뭐가?”
“장은새 안무가한테 계속 배우는 거.”
“어…왜요?"
"은규가 정리하겠다고 했잖아. 믿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딱 한 번한 실수잖아.”
“아니아니,은규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장은새 안무가가 꼭 필요한지 모르겠어서 그래. 실력이 좋은 건 맞는데 충분히 배웠다고 보거든.”
"???"
내 말에 멤버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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