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30. 콘서트 준비 (6)
* * *
회사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 온 조연주 이사가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오늘 있었던 회사 일을 쭈욱 떠올려 보다가 문득 진해솔을 떠올렸다.
사실 일 생각을 하면 자연스레 진해솔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예리하단 말이지.”
그녀는 자신의 멍든 손등을 확인했다.
장은새 안무가는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양아치였고, 결국 좋지 않은 방법까지 사용하고서야 얌전하게 되돌려 보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작은 부딪침은 그녀로서도 바라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녀는 잠들기 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요?”
아직 얌전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가씨.
“쌩 양아치던데 아마 한 번 경고한 걸로는 부족할 거에요. 계속 따라 붙고, SNS 같은 거 주시해서 문제 생길 만한 걸 올리면 바로 손써요. 어차피 그년 묻을 수단은 많으니까.”
예, 아가씨. 여기는 저희들한테 맡기시고 편히 주무십시오. 아마 당분간은 몸을 사리긴 할 겁니다. 호되게 당했으니까요.
“응. 고마워요, 이모. 믿고 맡길게요.”
전화를 끊은 조연주가 드디어 베개에 편하게 고개를 묻을 수 있었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서 운동 좀 해야겠어.’
어중간하게 몸을 풀어서 오히려 몸이 더 근질거린다.
흘린 땀에 흠뻑 젖고 싶은 날이었다.
내일은 주말이었기에 그렇게 해도 됐다.
바쁘게 일정에 치여 살다가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주말은 조연주에겐 굉장히 소중한 날이었다.
내일 일정을 떠올리며 스르르 잠이 든 그녀.
조연주는 그날 꿈에서 진해솔을 만났다.
? ? ?
“해솔이가 준 인형 말이야.”
“인형? 아~ 해솔이가 걱정인형이라고 사준 그 인형이요? 인형 너무 귀엽던데요. 감촉도 되게 좋고.”
“응, 그거. 이게 그냥 플라시보 효과인가 싶다가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신기해.”
“걱정인형이면 언니 걱정 대신 먹어주는 뭐 그런 거잖아요. 악몽을 먹어주는 거.”
“응. 해솔이가 사준 인형을 머리맡에 둔 이후로 잠자리를 설쳐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요즘 유난히 운이 좋아.”
“운이랑 걱정인형이랑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에요?”
“해솔이가 그랬거든. 이 걱정인형을 갖고 있으면 운이 좋아진다고.”
“에이~”
아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안 돼요.”
“흐음, 너는 해솔이한테서 이상함이라고 해야 하나, 특별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거 느껴본 적 없어?”
“특별함이야 매번 느끼죠. 해솔이는 정말 대단하니까요.”
“아니, 그런 일반적인 특별함이 아니라 정말 특별한 거를 말하는 거야. 뭐랄까, 초능력? 그런 거 말이야.”
“네? 초능력이요?”
“에휴, 아니다. 내가 둔감한 너한테 뭘 묻는 건가 싶네.”
“저도 알건 다 알거든요? 해솔이가 언니한테 초능력이라도 썼어요? 사실 해솔이가 갑자기 외계인이라고 고백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긴 해요. 워낙 대단한 아이잖아요.”
“…해솔이가 외계인인 것 같단 소린 안 했거든? 됐어. 밥이나 먹어.”
로즈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아현이에게 더 이상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티를 내지 않았으나 진해솔의 특별함을 눈 여겨 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 특별함을 명확히 꼬집을 증거가 없어서 티를 내지 않았던 거였다.
‘일단 걔는 정력부터가 말이 안 돼.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섰다고.’
다른 애들은 해솔이가 처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모르는 것 같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확실히 알았다.
진해솔의 정력은 남달라도 너무 남다르다.
만약 그런 쪽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진해솔의 정력을 알게 된다면 분명 연구하고 싶어 했을 거다.
“아! 그러고 보니까 민영 언니도 해솔이를 약간 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민영이가 어쨌는데?”
“되게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말할 때가 있어요. 처음에는 해솔이를 엄청 사랑하는구나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해솔이한테 엄청 의존한다는 거요. 꼭 해솔이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이 굴어요.”
“그건 좀….”
아무리 해솔이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이 군다?
평범한 관계라고 볼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맞다.
“해솔이가 못되게 구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혼자서 되게 쩔쩔 매더라고요. 뭔가 같이 얘기 하다 보면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답지 않게 자존감이 되게 낮은 것도 이해할 수 없고.”
한민영과 친하게 지내지 않은 탓에 로즈는 아현이가 말하는 미묘함을 단숨에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로즈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낸 해솔이에게 특별함이 있다는 걸 좀 더 확신했다.
해솔이의 특별함을 파고들어서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걸 알아봤자 뭐하겠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긁어 부스럼이 되면 어떡해? 더군다나 해솔이가 외계인이어도 지금와선 못 무르는데 말이야.’
아직 아이가 생겼다는 게 티가 나진 않는다.
하지만 뱃속에는 그녀와 해솔이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진해솔의 여자가 된 것이다.
로즈가 배를 손으로 감싸자 그걸 본 아현이 재빠르게 물었다.
“배 아파요?”
“아니, 그냥 습관적으로 만진 거야.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더라고. 조심스러워지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죠. 그나저나 아직 입덧은 없죠?”
“응. 그리고 엄마한테 들어보니까 엄마는 먹덧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먹덧할 수도 있어. 보통 엄마랑 닮는다고 하더라.”
“빨리 성별 나왔으면 좋겠어요. 태양이도 너무 예쁘던데….”
화제가 자연스럽게 바뀌어서 버렸고, 아현이는 깊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로즈는 머릿속 한켠에는 오늘 있었던 일을 넣어둔 로즈였다.
? ? ?
[에어플레인 5분 만에 콘서트 완판! 대세돌의 위엄!]
[사이트 터질 뻔한 에어플레인, 이 정도야?]
[에어플레인 첫 단독 콘서트, 순식간에 예매 완판]
[품절의 아이콘 되나? 에어플레인 굿즈 상품도 덩달아 완판!]
[에어플레인 콘서트, 팬들의 성화에 추가 기획 중.]
[앙코르 공연까지 가나...? 첫 단독 콘서트에 전석 매진! 대세 아이돌의 위엄]
[“압도적 티켓파워”...에어플레인, 첫 단독 콘서트 주목해야 할 부분은?]
콘서트 티켓이 완판이 되고, 추가 공연까지 모두 팔렸다는 소식이 전달 됐다.
나는 누나들과 아현이에게 내 티켓을 골고루 보내주었다.
아직 너무 어린 태양이를 콘서트에 부르지 못하는 건 참 아쉬웠는데, 내 여자들 중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콘서트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보여주어 참 고마웠다.
바쁜 스케줄에 눈 코 뜰 세가 없는 민영 누나조차도 내 콘서트는 꼭 가겠다며 약속을 한 상태였다.
티켓이 완판 됨으로써 우리들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완판을 한 만큼 팬들이 우리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틀렸잖아!”
“미안! 미안!”
우리는 장은새 안무가를 계속 고용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거부하고 모험을 하겠다고 말하며 잘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 상태였다.
잘 할 수 있다고 한 만큼 그 말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래야 은규도 얼굴 들고 다닐 수 있고, 우리도 회사에 할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짊어진 멤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의욕적으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장은새 안무가의 뚜렷한 특징이 많이 희석 되고 우리의 느낌으로 춤이 바뀌었다.
“예전이 더 낫지 않아?”
“흠…미묘한데.”
물론 전문가의 솜씨가 들어간 춤을 굳이 우리 식으로 바꾸는 것이 마냥 정답인 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장은새 안무가가 만들어주었던 춤 느낌이 훨씬 좋은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느낌을 춤에 섞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왜냐면.
“그 부분은 이렇게 바꿔보자. 이런 식으로.”
내가 뒷수습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 이러면 확 괜찮아 지는데? 한 번 해볼게!”
“진짜 형 실력 엄청 늘었다.”
“누가 메댄인지 모를 지경이에요.”
“그냥 흉내만 내는 거야. 흉내만.”
장은새 안무가의 노하우를 쪼옥 빨아먹고 다양한 능력치의 도움까지 받은 나는 장은새 안무가와 비교는 아니라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는 수준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우리는 장은새 안무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무 연습을 잘 해내고 있었다.
호언장담 했던 것을 책임지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모두 반납하고 연습에 몰두한 결과.
콘서트가 있을 무대 위에서 리허설을 진행하는 내내 큰 문제없이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무대를 해낼 수 있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한 게 느껴지네요.”
조연주 이사는 약속대로 리허설을 할 때 직접 찾아와서 현장에 도움을 주었다.
없을 수 없는 무대 장치 문제를 우리가 먼저 건의하기도 전에 척척 지적해서 고치는 유능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우리가 보여주는 무대 위의 모습을 치켜 세워주었다.
“후우, 후우…! 감…사합니다.”
“생각보다…후우, 무대가 커서…동선을 좀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리허설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우리는 실전처럼 무대를 했다.
그래야 디테일한 부분을 어떻게 수정할지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대를 하는 것을 카메라가 모두 찍고 있는 중인데, 저기에 찍힌 것을 모니터링 해서 디테일한 부분을 수정할 생각이었다.
아마 완성도 높은 콘서트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호흡은 괜찮아?”
“허억, 허억, 허억…아뇨.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리허설인데 너무 힘 많이 주는 거 아니야? 적당히 해도 될 텐데.”
“이렇게 해야…실전에서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알 수 있잖아요.”
“후우, 다음 무대 얼마나 남았어요?”
“60초 정도.”
“허억, 허억…물 좀 주세요오!”
“체할 수 있으니까 천천히 마셔.”
“네엡…꿀꺽 꿀꺽!”
우리는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체력을 점검했다.
첫 콘서트에 쏟아 부은 노력을 팬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었다.
때문에 나는 체력 주머니도 준비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애들이 꼴깍 넘어가려고 할 때, 체력 주머니를 사용할 생각이다.
리허설 때 최선을 다 하고 있긴 하지만 팬들을 직접 눈앞에 뒀을 때 흥분을 하게 되면 분명 체력이 닳는 걸 염두 하지 못하고 흥분해서 체력을 팍팍 쓸 게 뻔했다.
나는 무대에 집중하는 멤버들보다 더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언제 체력 주머니를 사용하면 좋을지 계산을 하고 있었다.
‘행운 아이템이 비싸지만 않았어도 멤버들한테 전부 줬을 텐데.’
그뿐만이 아니라 나는 성공적인 콘서트를 위해 행운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구매했다.
복순 누나로부터 ‘기분 탓인지 몰라도 걱정인형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라는 말을 들어서 큰 마음 먹고 하나 마련한 것이다.
‘행운’을 올려주는 아이템의 효과가 그렇게 대단하다는데 안 쓸 이유가 없었다.
그만큼 첫 콘서트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준비와 나만이 할 수 있는 준비까지 더해 ‘완벽에 가깝게준비 된 콘서트'가 되어갈 무렵.
언제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났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 우리의 첫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 밝았다.
두근 두근
다음날 있을 콘서트에 대한 기대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어난 우리들은 채 해가 뜨지 않았을 때 콘서트장에 도착해 준비를 시작했다.
다들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 있었고, 스태프들 또한 앞으로 있을 콘서트 무대에서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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