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20화 (220/849)

〈 220화 〉 #31. 휴식 (1)

* * *

“너무 기대돼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안 돼요! 아직 미치면 애들 못 보잖아요.”

모처럼 티켓팅의 승리자가 되었는데 이대로 못 보고 죽을 수는 없다.

“조금 있으면 우리 차례에요!”

“오늘 저 막지 마세요. 지름신 제대로 내려왔어요!

“오늘을 위해 개고생하며 일한 거죠. 싹 다 살 거에요!”

서로 죽이 잘 맞는 것이 누가 보면 죽마고우처럼 보였을 거다.

하지만 그녀들은 팬질을 하면서 만난 사이였다.

더군다나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

서로를 낯설게 여길 수 있는 사이였으나 공통으로 사랑하는 것이 존재하는 그녀들에겐 낯가림은 존재 하지 않았다.

“어쩜 좋아! 너무 귀여워! 꺄악!”

“인형 좀 봐요. 미쳤다. 너무 귀여워. 눈물 날 것 같아요.”

“이건 무조건 사야 하는 거네요.”

“꺅! 우연이 교복 입은 사진이에요! 하, 진짜 이 미소 어쩔 거야.”

팬들을 위해 회사에서 준비한 굿즈.

대형 기획사의 준비력은 남달랐고, 비싸긴 해도 퀄리티 있는 굿즈들이었기에 지갑을 여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아아! 이러면 예산 초과인데….”

“진짜 너무 잘 뽑았다. 허니 엔터 왜 이렇게 일을 잘해요? 도저히 포기가 안 돼요.”

“그러니까요. 어떡하죠? 이것도 사고 싶고, 이것도 포기 못할 것 같은데….”

그녀들처럼 굿즈를 앞에 두고 발을 동동 구르는 팬들이 굉장히 많았다.

굿즈를 처음 내는 건 아니었지만, 콘서트를 앞두고 회사 직원들이 각성이라도 한 것인지 굿즈를 사지 않고서는 못 베길 것들로 뽑아놔서 그랬다.

“나, 나는 그냥 다 지를래요. 이거 못 사면 후회할 게 분명해. 카드도 된다고 했으니까….”

“카드! 카드…역시 그렇죠? 카드밖에 답이 없을지도….”

그녀들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왕창 구매해 묵직해진 두 손과 미래의 내가 감당해야 할 카드 값이었다.

“흐흑…! 후회가 안 돼요. 어떡하죠? 프북도 좋고, 사진도 너무 예뻐요.”

“허니 엔터에 악마가 있는 게 분명해요. 사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어!”

다음 달 카드 값을 두려워하면서도 캐릭터가 된 에어플레인 멤버들의 스티커를 핸드폰이 부착하고 있는 그녀들의 마음은 행복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더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가고.

“오! 리허설 하나 봐요. 소리 들린다.”

“우와앙!”

벽에 귀를 대고 필사적으로 애들이 리허설 하는 걸 훔쳐 듣다가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입장하겠습니다!”

드디어 공연장 안에 들어가는 시간이 왔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 겨우 공연장 안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드디어!! 꺄악! 어떡해! 심장 터질 것 같아요.”

“와~ 돌출 무대랑 가깝다! 애들이랑 눈 마주칠 수 있겠죠?”

“헉! 상상만 해도 넘 좋아요.”

“슬로건 가져 왔다고 했죠?”

“네!”

슬로건을 꺼내서 흔들면서 행복감에 젖어들고 있을 무렵.

쿠웅!!

드디어 콘서트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 됐다.

“10!!!”

“9!!!!8!!!!7!!!!!6!!!!!5!!!!!4!!!!3!!!2!!!!”

“1!!!!!!!!!!!!!!!”

“꺄아아아아아아악!!!”

펑펑펑펑펑~!

콘서트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폭죽이 터진다.

그녀들은 잠깐 이성을 날려버리고 오로지 에어플레인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꾀꼬리가 되어 소리를 내질렀다.

멋지게 꾸미고 무대 앞에 나타난 에어플레인이 레드카펫을 밟는 듯 워킹하며 팬들을 향해 걸어나왔다.

? ? ?

“헉, 헉, 아이고 허리야.”

“발목에 파스 좀 뿌려주세요.”

“발목 아파?”

“살짝 삐끗했어요.”

치이이익­! 치익!

“눈에 뭐 들어 간 것 같아요. 약 좀 주세요.”

우당탕!

정신없는 스테이지 밖.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마지막 무대까지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 아픔도 잊고, 흐른 땀만 서둘러 닦아낸 뒤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꺄아아아아아악!!!

에어플레인사랑해!!!

팬들의 외침에 귀가 먹먹해진다.

화려하게 수놓는 불빛들이 우리의 노래에 맞춰 파도를 이룬다.

이 모습은 볼 때마다 감격스럽고, 사랑스럽다.

아마 가수라면 누구나 이 광경을 그리워하고, 설레어하며 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콘서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꽉 차 있었던 체력 주머니는 오늘도 제 할 일을 끝내고 텅텅 비어졌다.

“따듯한 물 마셔.”

“하, 진짜 오늘이 특히 힘들었던 것 같아.”

“중간에 우연이 휘청한 거 봤어?”

“해솔이 형이 부축 안 해줬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저.”

귀가 먹먹하고 목이 칼칼하다.

우리는 무대에 아낌없이 몸을 갈아 넣었다.

멤버들 중 내가 제일 튼튼할 텐데 이 정도로 피곤한 거면 멤버들은 정말 많이 힘들 거다.

처음하는 콘서트라서 체력 관리를 하지 못하고 무대 하나하나에 온 힘을 다 쏟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그랬다.

“목은 좀 어때, 준아?”

“형이 준 거 먹고 많이 나아졌어. 효과 좋더라. 고마워, 형.”

콘서트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중반을 넘어서고 마지막 콘서트를 앞두게 됐다.

그동안 나는 코인을 아끼지 않고 멤버들 체력을 보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일회용 건강식품을 구매해서 줄 만큼 말이다.

보컬인 준이는 멤버들 사이에서 가장 체력이 부족하고, 목도 많이 약해서 자주 챙겨줘야 했다.

앞으로도 계속 코인을 써가며 콘서트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첫 콘서트라는 점에서 양보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우리가 할 무대의 이미지가 이번 콘서트를 통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어떤 것 같아요?”

“밖에 분위기 엄청 좋아. 걱정하지 마. 너희들 오늘 최고야.”

“숨 쉬기 어려운 사람 없어?”

“괜찮은 것 같아요.”

이런 내 노력 덕분인지 인터넷에 올라 온 콘서트 후기가 굉장히 호평이었다.

콘서트를 한 번만 보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회 보러 오는 사람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매회 영혼을 갈아 넣는 퀄리티를 보여주는 우리들에게 감탄했다는 후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때문에 마지막까지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고 팬들이 모두 만족해서 돌아가는 것이 현재 나의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후반부에 목이 나가서 제대로 라이브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아까운 코인을 펑펑 멤버들에게 베푼 것이다.

같은 돈을 내서 온 만큼, 첫날 콘서트에 온 관객과 마지막 콘서트에 온 관객은 같은 수준의 공연을 볼 자격이 있었다.

“오늘은 큰 실수 없었던 것 같아. 그치?”

“어, 다들 되게 잘 했어.”

“체력이 어디서 쑥쑥 나오는지 모르겠어. 딱 죽겠다 싶으면 갑자기 더 할 수 있어질 것 같이 몸이 가벼워지더라고.”

“어? 너도 그러냐? 나도 그런데.”

“아드레날린인가 그거 분비 돼서 그런 거 아닐까?”

“난 팬들 보면서 힘이 솟은 건데?”

“와~ 혼자만 이러기야?”

멤버들이 참 신기하다며 재잘대는 것에 딱히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쟤네들이 저런 소릴 한다고 해서 내가 한 짓이라는 걸 알아챌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기이한 체력 회복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멤버는 한 명도 없었다.

‘예리한 사람이면 진작 의문을 제기했겠지.’

한참 축제 시즌 때 스케줄을 다니면서 자주 체력주머니를 사용했었다.

그때도 애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헤죽거리고만 다녔다.

“이제 막콘만 남은 거 맞지?”

“으아아~!마지막이 오긴 오는구나!”

“진짜 끝난다고? 이렇게? 뭐 했다고 벌써 끝나?”

“시원섭섭하다. 이대로 영원히 안 끝났으면 하면서도 몸이 너무 힘드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첫 콘서트라서 그런지 몰라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막콘 때 울면 어떡하지? 나 울 것 같은데.”

“막콘은 막콘이고, 오늘 열심히 했으니까 밥 좀 먹자. 배고파 죽을 것 같아.”

“회식! 회식! 회식!”

막콘은 오늘로부터 삼일 후에 있기에 편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콘서트가 끝나면 바로 호텔로 이동해서 쥐 죽은 듯이 잠을 잤지만, 오늘은 스태프들과 함께 전체 회식을 하기로 했기에 바로 쉬러 들어갈 수 없었다.

“크~ 이거지.”

“힘들 땐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니까.”

조연주 이사님의 찬란한 법카가 이번 회식 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콘서트를 하면서 쌓인 추억들이 엄청나게 많았기에 회식을 하는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함께 고생을 하다보면 없던 정이 생기는 게 당연했다.

“이번 콘서트는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사고가 터질 뻔했는데, 그게 전부 터지기 전에 발견 돼서 문제없이 진행했잖아요.”

“어~ 맞아. 확실히 운이 좋았어. 보통 사전에 체크를 다 해놔도 공연 시작 되면 문제 터지는 경우가 있잖아.”

“그쵸그쵸.”

“근데 이번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 덕분에 큰 소리 낼 일이 없었잖아.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이 착착 되면 얼마나 좋겠냐고.”

“감독님! 그럼 저희 다음 콘서트도 맡아 주시는 거에요?”

“으응? 얘기가 갑자기 왜 그리로 튀어?”

“저희랑 일하는 거 좋다고 하셨잖아요.”

“뭐…기회가 된다면 생각해볼게.”

“오오! 하신다는 걸로 알아듣겠습니다.”

구매했던 행운 아이템이 톡톡히 제 값을 다 한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우리 콘서트에 있었던 문제들이 행운 능력치에 영향을 받고 해결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콘서트가 잘 돼서 기분이 참 좋다. 다 같이 건배 한 번 할까?”

“좋죠! 여기 맥주 추가해주세요!”

유티비에 올라갈 왁자지껄한 회식 모습을, 카메라가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 ? ?

콘서트를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

진주아, 이아현, 한민영, 로즈까지.

그녀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터덜터덜 거리를 걸어갔다.

해솔이에게 꽃이라도 전해주고 갈까 고민했으나 남들 시선이 걱정 되어 그러지 못하고 문자만 남기고 콘서트 장을 나온 상황이었다.

그녀들은 콘서트 장에서 봤던 해솔이의 빛나는 모습이 잊히지가 않았다.

결국 근처 카페를 찾아 앉은 그녀들.

음료를 시키고 네 명의 여자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진정이 좀 됐는지 로즈가 침묵을 뚫고 입을 열었다.

“해솔이가 무대 위에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인데, 되게 낯설다.”

“참! 언니, 몸은 좀 괜찮아요?”

“어. 멀쩡해. 아니, 오히려 개운한데? 힘이 팍팍 솟아. 좋은 걸 봐서 그런가? 오늘 진해솔 진짜 멋있었지?”

“반짝반짝 빛났어요.”

해솔이 멋있다는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한민영이었다.

오늘 네 여자들이 모이긴 했지만 서로 사이가 친한 게 아니다.

따로 만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현과 민영까지 합세해서 만난 게 오늘 처음이었다.

아직 서로서로가 어색한 가운데, 콘서트의 열기에 힘입어 조금씩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장난 아닌 비주얼이었는데 무대 화장 하니까 사람 같지가 않더라고요. 미의 신이 있으면 해솔이가 바로 그 신이었을 거에요.”

한민영은 두 손을 마주잡고 몽롱한 표정으로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던 진해솔을 상상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그 남자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언니, 해솔이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아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민영의 푹 빠진 망상에 태클을 걸었다.

물론 이런다고 한민영의 ‘진해솔 찬양’이 끝나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태클을 걸어줘야 폭주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도 알아….”

아현이의 태클에 시무룩해진 민영이 반항을 했으나.

“안다는 사람이라기엔 방금 언니 한 말이 심상치가 않았다고요. 정신 차려요.”

“근데 오늘은 민영씨가 좀 이해되긴 해. 너무 멋있었어.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서 찐하게 키스하고 싶었다고.”

로즈의 거침없는 솔직한 발언에 이아현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런 소릴 막 하면 어떡해요. 여기 해솔이 팬들로 가득하다구요.”

카페의 다른 자리엔 콘서트를 보고 나온 팬들로 북적북적한 상태였다.

함부로 말을 했다가 팬이 듣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수 있었다.

“아차차~ 실수.”

“언니는 진짜 괜찮은 거 맞죠? 몸 조심해야 하는 시기인데….”

“나 그렇게 연약한 스타일 아니거든? 내가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임신 했다고 문제 생기겠니. 의사 선생님도 나 엄청 튼튼하다고 했어.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잘 챙겨. 아무튼 해솔이는 언제 시간 된대? 이제 막콘만 남은 거잖아. 막콘 끝나면 시간이 좀 날까?”

“막콘 끝나면 해외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전 그렇게 알고 있는데.”

대화를 하던 그녀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주아를 향했다.

그녀라면 해솔이의 일정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아는 다른 여자들보다 해솔이의 스케줄을 잘 알고 있었다.

“막콘 끝나면 바로 해외로 출국한다고 알고 있어요.”

“바로요? 얼마나 바로요?”

“막콘 끝나면 하루 쉬고 바로 다음날 출국한다고 알고 있어요.”

“뭐?그렇게 빨리 간다고?”

콘서트를 보며 욕구불만을 느끼던 로즈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고, 그녀의 목소리가 뾰족하게 높아지는 건 당연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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