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24화 (224/849)

〈 224화 〉 #31. 휴식 (5)

* * *

아찔했던 밤이 지나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주아 누나를 쓰러트리고 민영 누나를 쓰러트린 후 아현이까지 쓰러트리고서야 자유를 찾은 것이다.

한숨을 돌리고 쓰러진 여자들 몸에 묻은 것들을 대충 닦아내고 내 몸도 닦아내니 창밖에 해가 뜨고 있더라.

결국 섹스하느라 날밤을 새버린 것이다.

뒤늦게 피곤함이 밀려왔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현타가 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 자면 다음날까지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침대를 차지한 여자들을 밀어내고 잘 수 없었기에 결국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밖을 나섰다.

몇 시간 후에 잠에서 깨어난 여자들이 자기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긴 했지만, 호기심보단 피로를 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일부러 더 친해지라는 의미로 옷을 입혀두지 않았으니 깨어났을 때 꽤나 난리가 날 것이다.

‘직접 보면 개꿀잼이었을 텐데 살짝 아쉽네.’

숙소로 돌아오니 애들 모두 깊게 잠들어 있었다.

해가 뜨긴 했지만, 피로가 가득한 지라 일찍 깨어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드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초였다.

? ? ?

그 사건이 있고 몇 시간 뒤.

깨어나니 내 핸드폰은 여자들로부터 온 연락으로 뜨끈뜨끈해져 있었다.

도망을 쳤던 게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개꿀잼.’

아침에 눈을 뜬 여자들끼리 난리가 난 건 당연한 일.

더군다나 이 사건(?)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는 내가 혼자서 홀랑 나르는 바람에 모든 원망이 나에게로 향했다.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그녀들 덕분에 내 수명이 꽤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나중에 만났을 때의 후환이 무척 두려웠지만, 당장 그녀들과 다시 만날 일이 없었기에 의연해질 수 있었다.

더군다나 막콘 준비 때문에 무척 바빠 여자들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콘서트가 끝나면 바로 해외로 가기 때문에 그녀들과 다시 만날 때까지 시간이 넉넉하기도 했다.

나는 깔끔하게 이번 일의 후폭풍을 미래의 나에게 미뤘다.

그리고.

'아, 죽어도 안 울려고 했는데! 젠장.'

시간이 흘러 마지막 콘서트가 끝났다.

나는 끝에 결국 눈물을 보였고, 그것 때문에 침대에서 이불을 찰 예정이었다.

다른 애들이 펑펑 울 때도 나는 끝까지 버텼는데, 막콘에서 팬들이 우리를 위해 역으로 노래를 준비해 불러준 것 때문에 마지막을 참지 못해버렸다.

창피하게도 눈물을 쏟아냈다.

나 혼자 운 건 아니었기에 생각보다 크게 창피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좀 분하긴 해. 애들 울 때 엄청 비웃고 놀렸는데.‘

이젠 애들 놀리는 건 못할 것 같다.

나도 울어버렸으니 말이다.

막콘에서 모든 감정을 다 털어내고.

우리는 대기실에 널브러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더욱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된 거다.

스태프들은 콘서트가 끝나도 사람들을 퇴장시키랴 무대 치우느랴 바빴고, 덕분에 우리는 잠시 방치 당할 수 있었다.

“콘서트 끝나니까 확실히 알겠어. 시원섭섭함은 잠깐이고 엄청 편해.”

“…인정.”

“이제 당분간 콘서트는 없겠지?”

“진짜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한 것 같아.”

“그래도 좀 아쉽긴 하잖아. 실수 했던 게 자꾸 생각나서.”

“다음에는 진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팬들과 헤어지는 것은 확실히 섭섭한 일이다.

하지만 올해에 가장 큰 짐을 하나 해결했기에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약 1시간 정도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매니저 누나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일어나! 숙소 가야지.”

“오오...일어날 힘이 없어요.”

“빨리 가서 안 쉬고 싶어?”

“헉! 당장 일어나겠습니다.”

“근데 누나, 우리 해외 스케줄 엄청 많아요?”

“응? 해외?”

“네. 좀 쉬고 싶은데...비행기 타고 나가자마자 막 스케줄 뛰고 그래야 하는 거에요? 쉬는 날 없이?”

“에이~ 설마 그럴까. 그쪽 사람들이 우릴 알 리가 없잖아.”

“어머, 어림도 없어. 너희 해외 스케줄 장난 아니야.”

“엑?”

“진짜요?”

“왜요?”

“스케줄 많으면 좋은 거지, 왜냐니? 너희들 본인을 너무 과소평과 하는데, 너희들 해외에서도 인기 엄청 많아.”

“뭐했다고 해외에서 우릴 알아요?”

“진짜 모르나보네. 유티비 있잖아.”

“…유티비요?”

거기에 올린다고 우리들이 뭔가를 할 때 꾸준히 카메라를 들이댔던 게 떠올랐다.

“벌써 구독자가 200만이 넘었어.”

“에에엑?”

“200만이면 많은 거야?”

“엄청 많은 거임.”

멤버들 중에서 유티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애들은 200만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선 아니어도 지구에선 유티비를 꾸준히 보아왔던 사람이다.

200만이라는 구독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닌 것이다.

“조회수도 엄청 잘 나와.”

“도대체 뭘 올렸기에 구독자가 벌써 200만이 돼요?”

“일단 너희가 자오에서 터졌잖아. 거기 사람들만 몇 명인데 이 정도로 놀래? 해외 활동 한참 할 때 구독자 수가 하루에 몇 만씩 올랐었어.”

“와~ 근데 우린 왜 몰랐어요?”

“바빴으니까. 그리고 말해주긴 했었어. 너희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겼잖아.”

우리가 그랬나?

새삼 기억을 떠올려보니 유티비가 잘 되고 있다는 소리는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회사에서 우리들에게 댓글을 보게 하는 걸 지양했기에 여태까지 들어가서 확인하는 경우는 없었다.

“한 번 확인해볼까요?”

“잠깐만! 기왕 확인할 거면 반응 좀 찍자. 카메라 가져올게.”

“엥? 그런 걸 왜 찍어요?”

“구독자 200만 감사 인사 영상 한 번 찍으려고 했었어. 겸사겸사 하는 거지, 뭐.”

“우리 그러지 말고 차라리 라이브 방송을 하는 거 어때요? 유티비에서도 라이브 방송 할 수 있긴 하죠?”

“어…지금? 할 수 있긴 한데 괜찮겠어? 안 힘들어?”

“콘서트 끝나고 나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거든요. 팬들한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못해서요. 라이브 방송하면 그때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근데 라이브 방송을 유티비에서 해도 되나 모르겠네. 너희들이 라이브앱이랑 계약을 해놓은 게 있으면 유티비에서 방송 못할 수도 있어.”

“실장님한테 여쭤봐 주세요.”

“너희들 정말 안 피곤한 거 맞아?”

막콘이 끝나고 난 상태였기에 우리들 모두 피곤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팬들과 있었던 여운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피곤하긴 한데 팬들이랑 만나고 싶어요.”

“맞아요. 아까 못했던 얘기, 지금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콘서트에 못 오신 팬 분들도 많잖아.”

“고고고고!!”

콘서트에 오지 못해 서운해 하고 있을 다른 팬들에게 라이브 방송은 선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콘서트 후기를 보며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팬이 분명 있지 않겠나?

잠시 후.

어디서 뚝딱 방송 장비를 가져 온 매니저 누나 덕분에 원활하게 라이브 방송이 시작 되었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1빠1빠1빠1빠

­진짜 에어플레인임?

­오빠사랑해!!!!!!!!!!!!!!!!!!!!!!!

­에어플레인 에어플레인 에어플레인

­I love you

­Las voces se oyen tan angelicales

­The visuals and talents that Air is holding is unbelievable♥

심심치 않게 여러 나라의 언어가 올라온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전에 라이브 방송을 했을 때와 차원이 다른 속도로 채팅창이 올라오고 있었다.

“와, 채팅창 왜 이렇게 빨라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hi!

귀엽게도 팬들이 우리 인사를 받아준다.

“오늘로 콘서트가 끝났어요.”

“오늘이 막콘이었죠. 콘서트 와주셨던 분들 집에 잘 도착하셨나요?”

­네에!!!!!!!!!!

­네

­아직 못 들어갔어요!

­?してます。

­나는 자오 사람입니다. 하지만 콘서트에 참가하고 싶어요.

­S'il vous plaît, mariez­moi.

­벌써 콘서트가 끝난 거 너무 아쉬움.

­콘서트 꼭 가보고 싶었는데 표를 못 구해서 결국 못 갔어요.

­난 아주 많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설프게 번역을 해서 채팅을 치는 외국 팬도 있었고, 자기네 말로 채팅을 치는 사람도 많았다.

아주 빠르게 채팅이 스쳐갔기에 우리의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

“너무 빨라서 뭐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해서 봐봐. 눈을 가운데로 모는 거야. 그럼 잘 보여.”

“눈을 가운데로 모은다고?”

남은규의 장난에 강준의 눈이 모아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돼 강준아ㅋㅋㅋㅋㅋ

­준이 못 생겨지는 중

“엇! 야! 너!”

“푸하하! 하란다고 진짜 하냐.”

뒤늦게 채팅을 본 강준이 은규가 장난 친 걸 깨닫고 주먹을 들었다.

­ㅋㅋㅋㅋㅋ주먹나왔쥬ㅋㅋㅋㅋ

­싸운다 싸워ㅋㅋ

“방송 중이잖아. 왜 싸워? 싸우지 말고 팬분들한테 집중해!”

경태 형이 장난을 치는 둘에게 따끔하게 혼을 냈다.

애초에 시작부터 장난을 담고 있었기에 순순히 싸움을 접고 팬들을 향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남은규 쟤가 자꾸 저 괴롭혀요! 혼내주세요.”

“아니거든? 진지하게 조언해준 거거든?”

­둘이 싸우는 거 귀여워

­더 싸워 줘!

­몇 승 몇 패인 거야?

두 사람의 투닥거림은 팬들 사이에서 유명했고, 때문에 누구도 진지하게 싸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좀 무뚝뚝한 편인 강준이 남은규와 싸울 때는 제 나이 또래와 비슷해지곤 했기에 싸우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는 팬도 있었다.

‘팬들이랑 잘 노네.’

애를 쓰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긴 하지만,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것에 끼어들어서 놀 정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남자가 왜 이렇게 무뚝뚝하게 구냐고 애교 있게 굴라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세계가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관점의 차이였다.

“해솔아, 너 얼굴 좀 보여 달라는데?”

“어, 나?”

멤버들이 신나서 라이브를 하는 걸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팬들이 내 얼굴이 보고 싶었던 모양인지 갑자기 나를 소환했다.

“형 얼굴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얼마나 많은데 뒤에 숨어 있어요.”

“아니, 다들 얘기 하고 있으니까 좀 뒤에 있었던 건데….”

“빨리 보여줘. 얼굴.”

“짜잔~ 여러분 해솔이 형 얼굴 대령했어요!”

­캬~ 감탄밖에 안 나오는 페이스다.

­미쳤따리 눈이 멀겠어.

­해솔아 사랑해!

­That's awesome!

우수수 쏟아지는 채팅창의 향연에 나는 싱긋 눈웃음을 쳤다.

팬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이 내 눈웃음이라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꺄아아아악!

­그의 웃음은 사랑스러워

­かわいい!

“잘 지냈어요? 콘서트 때 팬분들이 저희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셨어요. 애들이 너무 울어서 저라도 끝까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울어버렸거든요. 엄청 감동적이었어요. 항상 저희가 불러줄 생각만 했지, 팬들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거든요.”

­콘서트 재밌었겠다. 부러워!!

­?のコンサトはいつ?

­Làm concert nc mình đi

­오늘 막콘 너무 감동적이었어!

­I'll sing it for you.

­결국 해솔이 울리는데 성공했지.

­뿌듯뿌듯!

­다음 콘서트는 언제야?

­팬미팅 하고 싶어.

“콘서트에서 팬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고 했는데 하질 못했어요. 그땐 깜빡하고 생각이 안 났거든요. 지금은 생각나서 말하는 건데…….”

주절~ 주절~

한 번 입이 트이니 나도 모르게 말이 줄줄줄 나온다.

팬들에게 콘서트를 하면서 느꼈던 감동과 고마움을 한껏 표현하고, 콘서트 하는 동안 우리들만 알았던 작은 사고들을 털어놓으면서 시간을 보냈고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게 1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대로 라이브 방송을 끊는 것이 아쉬웠던 우리는 몇 개의 질문을 받아 대답해주는 Q&A 시간을 갖기로 했다.

여러 질문 중에는 대답하기 힘든 개인적인 질문들도 있었지만, 다음 활동에 대해 궁금해 하는 질문이 많았다.

“대충 살펴보니 다음 활동은 언제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다음 활동 말해도 돼요?”

카메라의 뒤에 숨어서 라이브 방송을 지켜보던 직원에게 물었다.

우리가 곧장 해외로 출국한다는 건 아직 공식 스케줄에 올라가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질문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 직원이 실장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왔다.

덕분에 우리는 기쁘게 팬들에게 다음 활동에 대해 말해줄 수 있었다.

“저희 다음 스케줄은 아마도 해외 쪽에서 하게 될 것 같아요. 곧 비행기 타고 출국할 겁니다.”

­안 돼! 가지마!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나라로 와줘.

­왜 자꾸 애들을 해외로 돌리는 거야 ㅠㅠㅠㅠㅠㅠ 우리도 못 봐서 죽겠는데!

­해솔아 드라마 좀 해줘.

­준이 연기돌 해야지 ㅠㅠㅠㅠ 자꾸 어딜 나가는 거야아!

국내 팬들은 우리가 또 해외에 나간다고 하자 굉장히 슬퍼했다.

해외에 나가지 않는 상황이라면 휴식기를 가지게 됐을 거라는 걸 모르고 말이다.

“해외에서 열심히 스케줄 하고 돌아올게요.”

“유티비로 간간히 얼굴 보여드릴 거에요.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자아~ 그럼 Q&A는 여기까지 하고,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제 꺼야해요.”

“빠이빠이~”

­안 돼애!!!!!!!

­Please don't go!!

­行かないでください。

­네가 자랑스러워♡♡♡♡♡

­가지마!!

가지 말라는 팬들의 애타는 외침이 안타까웠으나 라이브 방송을 꺼야 우리도 그렇고, 다른 직원들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에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안녕~!”

“또 만나요!”

“좋은 꿈꾸고, 잘 자요~”

곧 잠에 들 시간이었기에 팬들에게 밤 인사를 하는 사이, 냉정한 직원이 라이브 방송을 종료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에게도 진정한 휴식의 시간이 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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