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32. 제안 (3)
* * *
“그리고.”
그리고?
“여러분한테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이요?”
“나쁜 소식만 전해주면 서운하잖아요. 그래서 준비했죠. 사실 얘기가 좀 더 진전 되면 그때 알려주려고 했어요. 너무 섣부르게 설레발치다가 안 되기라도 하면 실망스럽잖아. 근데 이젠 알려줘도 될 만큼 얘기가 진전 됐고, 좋지 않은 일 있었으니까 상쇄도 할 겸 말해주는 거에요,”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 멤버들 모두 눈을 반짝였다.
아침부터 좋지 않은 얘기로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조연주 이사의 활약으로 일이 잘 해결 됐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좋은 일까지 생긴다고 하니 다들 눈이 반짝인다.
“좋은 곳에서 섭외가 왔어요. 혹시 ‘어메이징 스타’라는 프로그램 아는 사람 있어요?”
‘어메이징 스타’라는 말에 쫑긋 귀를 세우는 녀석이 있었다.
강경태가 바로 그 멤버였는데, 꼬박꼬박 어메이징 스타를 챙겨보는 팬이었다.
“알아요!”
“경태 형이 그 프로그램 완전 팬이에요. 매번 챙겨 보거든요.”
“그래요?”
“네, 제가 정말 팬입니다.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다 봤어요.”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긴 하죠.”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해서 서로의 실력을 겨루니까요!”
컴백하기만 하면 무조건 빌보드 차트 100 안에서 시작하는 유명한 스타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섭외가 들어 온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겨야 할 정도의 프로그램으로, 현재 시즌 10까지 제작 된 상태였다.
‘지구로치면 좀 많이 업그레이드 된 나가수+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이지.’
시즌이 10이나 된 만큼 과거처럼 어마어마한 스타들만 섭외하는 건 불가능 했고, 현재는 그 위상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긴 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센스있게 프로그램의 방향을 살짝 바꿔서 이제는 유명세를 뒤집어놓을 만큼 실력 있는 재야의 고수들을 섭외해서 스타로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즉, 과거에는 엄청난 팬을 거느린 스타들만 섭외 했다면, 이제는 스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단, 참가자의 성장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 얼굴을 알리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기에 미래가 기대 되는 재능 있는 참가자보다 당장의 실력과 끼가 있는 사람이 선택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설마 거기에 우리가 섭외 된 거에요?”
그런 프로그램을 지금 언급했다는 건 우리가 그곳에 섭외 됐다는 뜻이 된다.
강경태는 혹시나 하면서도 믿을 수 없어 하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조연주 이사는 싱긋 웃어주며 말했다.
“짐작한대로 그곳과 얘기를 진행 중이에요.”
“!!”
“아니, 어쩌다가 그게 됐어요?”
“진짜 거길 우리가요?”
상상도 못해 본 프로그램에 섭외 된 것이었기에 우리들은 듣고서도 쉽사리 믿지 못했다.
우리가 그 프로그램에 섭외 될 급이 되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섭외 됐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죠? 어메이징 스타에 출연하는 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될 거에요. 거기서 여러분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해외 진출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결정 되는 거죠.”
꿀꺽
정말 엄청난 기회가 맞지만, 그 기회를 제대로 붙잡는 건 우리의 역량에 달렸다.
프로그램에 참가한다고 해서 전부가 대단한 스타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잘 할 수 있어요!”
“기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어요.”
내가 가면싱어에 출연해서 실력을 내보였을 때, 멤버들 모두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오길 바라는 눈치였었다.
그런데 어메이징 스타는 멤버들이 바라는 걸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럼 시즌11 제작하는 거에요?”
“아직 대외비에요. 멤버를 섭외하는 중이라서요.”
“저희 출연은 확정 된 거죠?”
“맞아요. 확정 된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대신 미리 알려줬으니 준비는 해야겠죠?”
“네!”
“근데 준비는 뭘 해야 되는 거에요?”
기우연의 질문에 조연주 이사가 대답하지 않고 경태 형이 말했다.
“당연히 공연 준비 해야지.”
“공연?”
“출사표를 던지는 거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거야. 어메이징 스타를 보는 시청자랑 프로듀서 분들 앞에서.”
“팬이라고 하더니 잘 알고 있네요. 맞아요. 경태씨가 말했던 것처럼 무대 준비를 해야 해요. 여러분들이 가장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무대로 준비해줘요.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요청하고요.”
어메이징 스타에 출연한다는 말에 다들 기뻐하고 있는 중인데, 나는 한 가지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어메이징 스타에 출연하면 앞으로 해외 스케줄이 더 늘어 날 게 뻔했다.
언제 시작하게 되는지, 또 프로그램은 언제 끝나는지.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돌아갈 수나 있는 것인지.
미래 일정이 너무도 불투명했다.
“촬영 시작은 언제인가요?”
“한 달 뒤에요. 잡힌 스케줄을 다 끝낼 때쯤 어메이징 스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 될 거에요.”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한 건 별거 없어요. 여러분들이 잘 해줘서 가능했던 거죠.”
조연주 이사가 겸손하게 대답했으나 우리 모두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라는 걸 알았다.
이번 ‘어메이징 스타’ 출연권만 봐도 그렇다.
다른 직원들 모두 얘기를 듣고 놀라는 걸 보면 그녀 혼자서 진행하고 있었던 일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을 크게 자랑하지 않고 겸손을 보이니 절로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다른 멤버들 모두 조연주 이사에 대한 호감도가 max에 가까웠다.
‘포니 얘는 하필 건드려도 저런 여자를 건드려 놔서….’
만약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지금보단 훨씬 편하게 조연주 이사를 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꽤 친하게 지냈을지도 모른다.
능력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나에게 큰 도움이 됐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조연주 이사도 그렇고 서로 무언가를 하기엔 서로를 꺼려하는 감정이 컸다.
조연주 이사에 대해 조금 알아봤는데, 몸으로 데뷔조에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럴 만큼 뒤가 구린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사람 속을 소문으로 다 알 수는 없긴 하다만, 허니 엔터 대표와 조연주 이사는 그런 쪽을 정말 질색한다면서 얽힌 얘기를 들려준 얘기가 있다.
그 얘기를 듣고 정말 포니가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구나 생각했고.
‘담당하는 연예인이 스폰 사실이 밝혀지자 자살하고, 그걸 본 지금의 대표와 조연주 이사가 의기투합해 세운 회사인데 그런 회사에 몸 로비를 해놨으니….’
왜 허니 회사가 그런 쪽으로 깔끔하다고 소문이 났는지 의아했는데, 그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조연주 이사가 왜 나를 껄끄러워하는지 이해가 되는 일이기도 했다.
“오늘은 스케줄 없으니까 푹 쉬어요. 오늘 스케줄은 내일로 미뤄뒀어요.”
“어? 그래도 돼요?”
“화보 촬영 때문에 식단 관리 하느라 고생했잖아요. 여기 유명한 음식점에 예약해뒀으니까 거기서 실컷 먹고 호텔에서 푹 쉬는 거에요. 잘 할 수 있죠?”
“당연하죠!”
“와아~ 감사합니다!”
예상에 없는 휴식에 멤버들도 그렇고 밤새 고생한 직원들도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또한 휴식은 언제든 환영할 일이었다.
‘오늘 복순 누나한테 가봐야겠다.’
누나가 혼자서 고생하고 있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렸는데, 이따가 자겠다고 하고 몰래 이동해서 얼굴 보고 와야겠다.
내가 기회를 보는 사이.
조연주 이사가 예약을 했다는 음식점으로 다 함께 이동했다.
화보 촬영 때문에 식단 관리를 하느라 한동안 풀만 먹었는데, 오랜만에 눈앞에 펼쳐진 육식 만찬에 다들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오랜만에 고기 먹으니까 너무 좋아여!!”
“이거 먹고 뭐하지?”
“저기 호수 구경하러 갈까?”
“어?! 저도요! 저도 갈래요!”
“갈 사람 붙어.”
“난 사양할게. 숙소에서 쉬고 싶어. 잠이 부족해.”
“진짜 저 형은 잠돌이야. 잠돌이.”
“원래 미남은 잠이 많다잖아. 우리가 이해해야지 어쩌냐.”
오랜만에 받은 휴가에 다들 기분이 한껏 상승했다.
기우연은 어깨춤을 추면서 고기를 먹었고, 경태 형은 어메이징 스타 시즌10을 다시 정주행 해야 한다면서 고기를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게 먹고 있었다.
“야! 너희들 어딜 가려고? 안 돼, 위험해.”
“경호원 분들이랑 같이 가면 되잖아요. 허락해주세요. 모처럼 휴가인데 숙소에서 잠만 잘 순 없다구요.”
“얌전히 우리 말 잘 들을 거야?”
“네에! 완전 잘 들을 게요.”
“좋아, 그럼 딱 4시간만 돌아다니는 거다? 해지면 돌아와야 돼.”
“아자! 완전 오케이에요!”
어느새 밥을 먹고 난 이후 계획까지 모두 짠 멤버들의 포크질 속도가 빨라진다.
사실 나도 빨리 먹고 누나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애들과 마찬가지로 바쁘게 젓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때문에 조연주 이사가 날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다는 걸 몰랐다.
이상함을 눈치 챈 것은 밥을 다 먹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그녀와 마주쳤을 때였다.
“먼저 지나가세요.”
먼저 지나가라고 자리를 비켜주고 기다리는데, 조연주 이사가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내 앞을 가로막더니 말했다.
“잠깐 얘기 좀 나눌까요?”
“네? 아…말씀하세요.”
“아까 들었는데, 따로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쉬겠다고 했다면서요.”
“네.”
“많이 피곤한가요?”
“그런 건 아닌데, 제가 잠 자는 걸 좋아해서요.”
“피곤해서 잠을 꼭 자야한다거나 그런 건 아닌 거죠?”
“…그렇죠.”
처음에는 휴가 줘놓고 이제와 다시 일을 시키려고 그러나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럼 오늘 휴가, 저한테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요?”
“…….”
그녀는 지금 나에게 데이트를 제안해오고 있었다.
공적인 일로 시간을 내달라는 사람이 볼을 붉히면서 말 할리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제안을 하기 전에 뭔가 시그널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았을 거다.
여태까지 사무적이고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니까 말이 바로 나오질 않았다.
머리가 데이트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었다.
“어…음…지금 저한테 데이트 신청 하신 거 맞죠?”
“일 때문에 시간을 내달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데이트가 맞긴 하죠.”
“…….”
“거절인가요?”
거절하는 게 맞는 건지, 수락하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조연주 이사가 갑자기 이러는 게 뭔가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날 일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번 기회에 찜찜하게 일을 남겨두지 않고 해결을 하는 거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조연주 이사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시간 내겠습니다.”
“…호텔방으로 찾아갈게요.”
“네.”
약속을 잡은 조연주 이사가 언제 대화를 나누었냐는 듯 쌩하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표정 관리에 힘 쓰며 멤버들에게 합류했다.
“형 정말 혼자 호텔에 있을 거에요?”
“구경하면서 쇼핑도 하고 그러지 그래?”
“싫어. 잠이 부족해. 잘 거야.”
“하여튼 저 집돌이는….”
“너희들 직원들 잘 따라다녀. 위험하게 막 혼자서 돌아다니지 말고. 길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고. 소매치기 당하지 않게 물건들 잘 챙기고.”
“예옙!”
식당에서 나와 멤버들과 자연스레 찢어졌다.
나는 호텔로, 멤버들은 관광을 위해서.
회사 직원들도 관광을 하고 싶어 하는 건 마찬가지여서 호텔로 가는 인원은 적었다.
“편히 쉬어~”
“네. 누나도 제 걱정 말고 노세요. 문 단속 잘 하고 있을 테니까.”
"오키오키. 다른 애는 몰라도 너는 믿지."
매니저 누나는 내 안전을 위해 호텔방에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고나서야 관광을 하러 갔다.
호텔방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기껏 입은 옷이 소용없어질 것도 모르고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