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33. 어메이징 스타 (4)
* * *
스톤 밴드가 저 정도 실력이라면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은 어떨까?
나는 1등을 확신하고 왔는데, 자칫 실수하면 그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동영상으로 보는 거랑 라이브로 듣는 거랑 차이가 크긴 하다."
"쟤들도 음원보단 라이브가 강한 것 같지?"
"차원이 달라."
"우리 너무 쫄고 있잖아. 1등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1등 해야지. 기왕 나왔는데!"
"쫄지말자. 다음 무대 해야지."
무대를 앞둔 상황에서 머릿속이 복잡한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메이징 스타 첫 방영 때, 시청자들에게 우리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나가게 될 무대다.
즉, 이번 무대가 시청자들에겐 첫 인상이 될 거라는 뜻이다.
무대를 위해 몸을 풀었다.
저들이 내려오면 다음 무대가 바로 우리였다.
잠시 후, 스톤 밴드는 만족스럽게 무대를 끝마치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무대 아래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와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낄낄 떠들어대면서 지나간다.
뭐라고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쟤네들 또 뭐래는 거냐.”
“우리 무대 구경하고 가자고 하니까 뭐하러 보냐고 하는데. 볼 것도 없을 텐데라고.”
“아주 그냥 열심히 비웃는구나. 우리랑 무슨 원한이 있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수많은 참가자들에게 다 저런 태도를 보일 생각인 건지, 아니면 우리만 눈에 뜨여서 저렇게 시비를 거는 건지.
스톤 밴드의 알 수 없는 적의가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다.
에어플레인!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올라가자.”
무대 정리가 끝났는지 우리 차례가 됐다.
커다란 무대 위에 서서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 쪽에 스톤 밴드가 모여 있는 게 보인다.
툭
“쟤네들 저쪽에서 보고 있는데?”
멤버들에게 눈짓으로 스톤 밴드가 있는 곳을 가리키자 어처구니없어 하며 옆에 있는 다른 멤버들에게 알렸다.
“진짜 우리 무대 보고 들어갈 모양인데?
“차라리 잘 됐어. 우리 무대 보고나서도 입 터는지 보자고.”
“이래서 파이 피디님이 서로 싸우는 걸 방치한 건가봐. 뭔가 막 끓어올라.”
“감정싸움이 들어가니까 더 불 타오르기는 하다.”
대놓고 싸우라고 돗자리를 깔아 준 판에서 몸을 사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우리는 굳이 이 감정을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저렇게 밟히고 싶다는데 안 밟아줄 순 없지.”
다 함께 불타오르자!
무대에 진형대로 서자 익숙한 우리 노래가 들려온다.
저놈들의 높은 콧대를 단숨에 낮춰줄 것이다.
? ? ?
‘시발.’
‘존나 잘 생겼네.’
‘저렇게 생긴 놈들이 여기에 나온다고? 이럼 상황이 안 되는데.’
꽃미남 밴드 ‘스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들이 미남이었기에 많은 팬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거였다.
어메이징 스타에 나가는 게 무섭지 않았던 것은 본인들의 얼굴로 어느 정도 팬을 확보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본인의 얼굴을 단숨에 압도하는 그룹을 만나고 말았다.
그래서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견제한 거였다.
어떻게 무대를 하는지 보기 위해 굳이 시간을 낸 것도 그 때문이었고 말이다.
못 할 거야. 저런 얼굴 가진 놈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러니까 내가 참가자들 좀 미리 알아보고 오자고 했잖아.
남자 참가자는 딱 두 그룹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 설마 저렇게 잘 생겼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냐.
열 여섯 팀의 참가자 중 남자 그룹은 스톤 밴드와 에어플레인이라는 말은 들었다.
고작 두 그룹이었기에 남은 그룹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질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실력에 자신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잘 생긴 얼굴 덕이 크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미남이라는 것만으로 실력에 상관없이 사랑해주는 팬들의 맹목적인 사랑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알고 있는 그들은 그걸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든 저놈들부터 1라운드 때 떨어트려야 했다.
망해라. 망해라. 망해라.
야야, 그럴 필요 없어. 쟤네들이 아무리 잘해봤자 우리보다 잘 할 리 없잖아.
어디에 박혀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가수야. 긴장 풀어.
그들에겐 듣보잡에 불과한 그룹의 무대가 시작 된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연신 에어플레인을 낮잡아 보는 말을 하면서도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고 손톱을 물어뜯거나 발을 초조하게 동동 구르던 그들은 무대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시발.
참지 못하고 튀어나온 욕설.
믿겨지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게 뭔….
KPOP이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알고만 있었을 뿐, 직접 KPOP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스톤 밴드는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경악했다.
설마 라이브야?
말도 안 돼.
저건 좀 심한데. 저걸 라이브라고 우긴다고?
격렬한 군무를 추면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6명의 남자.
사람인 이상 저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냥 서서 노래를 불러도 숨이 찬다.
그런데 저런 군무를 하면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다?
스톤 밴드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분명 라이브인 척하는 게 분명하다.
때문에 스톤 밴드는 곧장 피디를 찾아갔다.
그리곤 자기네 나라 말로 떠든 게 언제냐는 듯 능숙하게 영어로 스탭에게 말을 걸었다.
피디님!
무슨 일입니까?
에어플레인의 무대가 끝나고 정리를 하느라 바쁜 상황.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등장한 스톤 밴드는 에어플레인의 무대를 지적했다.
라이브가 아니었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죠? 라이브가 아니라니.
방금 무대 말입니다. 라이브가 아니었잖아요. 이걸 모른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파이 피디는 잠시 얘네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다가 뒤늦게 상황파악을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에어플레인이 기대 이상으로 무대를 씹어 먹긴 했어. 시작부터 느낌이 좋은걸.’
오죽 잘 했으면 다른 참가자가 라이브가 아니라고 항의를 하러 온단 말인가?
파이 피디에게 스톤 밴드의 항의는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마치 게임을 하다가 상대편에게 ‘게임 X같이 하네!’ 라고 욕을 들으면 극찬을 받은 것 마냥 뿌듯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방금 에어플레인 무대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 라이브 맞습니다. 애초에 제가 그런 걸 허락했을 리가 없잖습니까?
라이브였다고요? 그렇게 격한 춤을 추는데?
제가 참가자를 참 잘 골랐죠? 스톤 밴드 무대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본 무대에선 더 좋은 모습 보여 줄 거라고 기대 중입니다.
파이 피디의 말에 스톤 밴드 멤버들의 입이 꾹 닫힌다.
스톤 밴드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파이 피디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어메이징 스타가 어떤 곳인지 슬슬 깨달아 가고 있는 참가자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남자라고 꿀 빨게 할 순 없지.’
시즌10 때 남자 참가자가 없다는 이유로 마음 같아서는 5:5 비율로 남녀 비율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마음에 드는 남자 그룹이 없었다.
파이 피디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그룹은 스톤 밴드와 에어플레인이 전부였다.
‘일단 대진표는 떨어트려놓고, 3라운드 정도 때 부딪치게 하면 딱 좋겠어.’
처음부터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그녀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편애는 없었다는 거죠?
실력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도 못 믿고 억지를 부리면 곤란해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경고로 끝내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아 말하니 스톤 밴드가 움찔하며 물러난다.
아무리 자기 나라에서 알아주는 스타라지만, 파이 피디 앞에서는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단순히 방송계의 힘이 대단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어메이징 스타를 해오면서 수많은 스타와 친분을 쌓았고, 음반계 쪽에서도 그녀의 입김이 굉장히 강하게 들어간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스톤 밴드는 ‘라이브가 맞다.’ 라는 파이 피디의 말에 계속 자기 의견만 우겨 댈 수가 없었다.
여러분들이 어스타에 집중해주는 것 같아서 이번 한 번은 기분 좋게 넘기겠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관련 된 건 제 자존심이 얽혀 있는 일이라 함부로 그런 억측을 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런 쪽으로 문제가 있었으면 시즌11까지 프로그램을 맡기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 프로그램을 맡은 이상 그런 문제는 절대 생길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과민하게 생각했던 것 같네요. 사과드립니다.
피디님을 의심한 건 아니었어요.
스톤 밴드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사과를 하고서 대기실로 도망쳤다.
괜히 나섰다가 파이 피디에게 부정적으로 눈도장을 찍혀버린 것이다.
젠장!
대기실에 도착한 스톤 밴드는 격해진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괜스레 주변 물건을 던지며 분노를 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편해지질 않았다.
그게 라이브였다고?
도대체 무슨 괴물을 섭외해온 거야?
우리 이러다가 1라운드에 떨어지는 거 아니야?
이럼 완전 손해인데….
괜히 나왔나?
그건 아니지. 어메이징 스타에 나오는 게 얼마나 이득인데.
이러다가 저쪽이랑 비교만 당하고 패배해서 돌아가면? 과연 그게 이득일까?
…….
굳이 어스타에 나올 필요가 없을 만큼 스톤 밴드는 자기 나라에서 잘 나가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 어스타 출연은 모험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잘 꾸며진 온실에서 벗어난 것이니 말이다.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어스타에 나가도 중간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자신들과 비교 되지 않을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남자 그룹이 등장했다.
이건 그들이 어스타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예상하고 있던 구도를 완전히 벗어난 일이었다.
저 실력이면 절대 1라운드에서 떨어질 리가 없을 텐데….
그 자식들이랑 대결하는 쪽 누나들 꼬셔서 얘기 좀 해볼까?
뭐 어떻게 하게?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는 걸 미리 알려주는 거지.
미리 안다고 방법이 서냐?
적어도 우리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 맞는 것보단 낫지.
그럼 기왕 소문 낼 거 싹 다 돌리자. 쟤네가 1등 후보라고.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자신들과 만나기 전에 에어플레인이 떨어지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가 될 거다.
서로 의기투합한 스톤 밴드가 분주하게 대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 ?
스톤 밴드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던 우리는 출연진의 모든 무대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 곳에 모두 모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쏟아지는 시선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야?”
“몰라.”
“왜 저래?”
“우리가 뭐 잘못했나?”
“잘 생겨서 보는 거…는 아닌 것 같지?”
“엄청 째려보는데여? 얼굴 뚫릴 것 같음.”
“절대 좋은 의미로 보는 게 아닌데.”
참가자 모두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를 보면 뭐 막 싸우고 싶고 그런가?”
“신기하네요.”
“시작부터 영 그렇네.”
왜 우리만 이토록 견제를 받는가.
정말 알 수가 없다.
노골적으로 견제 받는 상황에서 넉살스럽게 인사를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멤버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촬영이 시작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촬영 시작합니다!
스태프로부터 촬영 시작을 신호 받고.
어메이징 스타 시즌11의 MC를 맡은 짐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에 올랐다.
동시에 열여섯 팀의 참가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무대를 선보였던 건 시작도 되지 못한다는 듯, 본격적으로 어메이징 스타가 시작 되니 묵직한 긴장감이 몸을 굳게 만들었다.
이곳에는 시즌11을 밝혀 줄 열 여섯 개의별이 모여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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