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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37화 (237/849)

〈 237화 〉 #33. 어메이징 스타 (7)

* * *

토너먼트 뽑기가 시작 되기 전.

우리는 멤버가 많았기에 누가 나가서 뽑기를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누가 뽑을래?”

“이런 거는 리더가 해야지.”

리더가 한다고 하면 기껏 챙겨 온 행운 아이템이 무용지물이 된다.

내가 뽑겠다고 먼저 나서려던 순간.

제키가 생각보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 싫은데. 다른 사람 시켜.”

“엉? 싫어?”

“어. 기왕 뽑을 사람 정해야 하는 거면 해솔이 형이 제일 낫지 않겠어? 이 형이 은근 이런 거 잘 뽑잖아. 가위바위보에서 진 적이 거의 없어.”

“어? 정말 그런가?”

“큰 거에 강하잖아. 벌칙 쎈 걸로 대결하면 꼭 이기니까.”

그거에는 사실 행운이 힘 쓴 거라기 보단 다양한 능력치들이 도움을 준 게 컸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뽑는 게 나았으므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럼 형이 뽑을래?”

“시키면 해야지, 뭐 어쩌겠어.”

“그리고 이 형이 나가서 얼빡샷 한 번 들어가 줘야 사람들이 우리를 봐줄 거 아니야.”

“오! 찬성.”

“저도 찬성이요!”

“해솔이 형! 고고!”

“…….”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멤버들이 내 얼굴을 되게 요긴하게 잘 써먹고 다닌다.

이러다간 내 얼굴이 공공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랏! 해솔몬!”

“얼굴로 싹 다 짓밟고 와!”

“이것들이 내 얼굴이 자기들 건 줄 알아…. 내가 제대로 못 뽑아 오면 어떡할 건데?”

“그 얼굴을 화면에 비추는 걸로 충분해여!”

“맞아. 최악을 뽑아 와도 아무도 원망 안 할 거야. 너 원망 할 거야?”

“아니? 어차피 라운드 계속 올라가면 대결하게 될 거잖아. 일찍 붙나 늦게 붙나 그게 그거지.”

결국 얼렁뚱땅 내가 뽑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자켓 주머니에 든 행운 아이템을 만지작거리면서 고심했다.

‘1라운드에 만날 팀이 누구여야 우리에게 가장 유리하지?’

마음 같아서는 스톤 밴드랑 붙고 싶지만 내가 파이 피디라면 절대 저 밴드와 우리를 대결 붙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조 추첨은 랜덤 아니냐고?

애석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괜히 방송은 사기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듯, 시청자들에겐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놨지만 저 상자에서 뽑을 수 있는 팀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해를 위해 설명하자면 반드시 A와 B가 대결을 하게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A는 B,C,D,E 중에 한 명과 대결을 하게 만들어놨다는 뜻이다.

‘겉모양은 똑같은 뽑기 상자가 2개 있는 이유지.’

주작이 들어갔음을 알면서도 그걸 꼬집는 출연자는 한 명도 없었다.

시청률을 완전한 우연에 기대기엔 촬영을 위해 투자 된 돈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이 정도 수작은 모두가 눈 감아 줄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누구랑 매치 되려나.’

참가자를 꼼꼼하게 고르기로 유명한 파이 피디가 붙여 놓은 것이니 누구와 붙는다 해도 화제성이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화제성 사이에서도 메인이 있고, 보조가 있는 법.

‘메인이 돼야지.’

­지금부터 토너먼트 결정을 위해 뽑기를 하겠습니다. 호명한 분은 나와서 번호를 뽑아주시면 됩니다. 애나씨, 나와서 번호가 적힌 공을 뽑아주십시오.

뛰어난 가창력으로 유력한 1위 후보 중 하나에 속하는 애나가 가장 첫 순서로 불리자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시작부터 세네.”

“누가 4번 걸릴지 몰라도 똥줄 좀 타겠어요.”

“카메라 있는 앞에서 똥줄이 뭐냐, 똥줄이.”

“어차피 이런 말은 통역도 못하잖아요.”

1위 후보와 매치되고 싶지 않은 건 공통 된 바램일 것이다.

이제 그녀가 뽑은 숫자는 최악의 숫자가 될 터.

우리는 긴장감을 가득 담아 그녀가 선택할 숫자를 기다렸다.

애나가 공 하나를 뽑아내고 카메라를 향해 번호를 보였다.

우리가 앉아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가 않았는데, 곧 MC짐이 공 숫자를 확인하고 말했다.

­애나씨는 3번을 뽑아주셨습니다.

“4번 뽑으면 절대 안 돼!”

“어? 약한 모습?”

“크흠.”

“최악으로 뽑아와도 괜찮다며. 말이 갑자기 달라진다?”

“흠흠. 난 형의 센스를 믿어.”

이 자식들이?

1번이 2번과 대결을 하고, 3번이 4번과 대결하는 식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었기에 애나가 3번을 뽑은 순간 4번은 최악의 숫자가 되었다.

MC짐이 호명하는 대로 한 명씩 번호를 뽑는다.

그 결과 만들어진 대진표.

은근히 웃는 사람도 있고, 최악의 대진표에 인상을 굳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애석하게도 전자와 후자의 상황 중 후자에 속해 있었다.

“욕해도 돼.”

“…아니, 욕 안 해. 근데 조~금은 더 괜찮은 걸 뽑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긴 해.”

남은규의 말에 강준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묻는다.

“말 바꿔? 이길 자신 없어?”

“이길 자신 있거든? 근데 편한 길을 내버려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가야한다는 게 조금 아쉬운 거야. 솔직히 상대가 세긴 세잖아.”

“하필이면 그 길에 오르막길이 쭉 펼쳐져 있다는 게 유감인 거지. 체력 닳는 게 다르니까.”

“다들 힘내요! 못 이길 거 없잖아요!”

사실 나도 결과가 아쉽긴 하다.

행운 아이템을 너무 믿었나보다.

“당장 대결하는 건 아니니까 시간 두고 생각해보자. 이길 방법을.”

우리가 걱정하는 상대는 1라운드 팀이 아니었다.

1라운드에서 승리를 하고 토너먼트에서 올라가면 2라운드에 상대해야 할 팀이 하필이면 1위 후보들 중 하나인 올리비아 트리였다.

올리비아 트리.

어메이징 스타 반응을 살펴보면 올리비아 트리는 우승 후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팀이다.

또한 올리비아 트리의 팬은 ‘광팬’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 광팬들은 어메이징 스타의 투표율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아마 올리비아 트리가 어메이징 스타 참가자 중 가장 밸런스가 안 맞는 팀일 것이다.

“저쪽은 아예 포기하는 눈치인데?”

2라운드에서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는 우리보단 당장 올리비아 트리와 대결을 해야 하는 팀이 더 난리가 나있는 상태였다.

솔로 가수라서 왜 그 번호를 뽑았냐고 원망할 대상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본인 손으로 뽑은 결과였으니 책임질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는 걸 알긴 하는지 한숨을 푸욱 쉬고는 표정 관리에 들어간다.

이런 표정을 지어봤자 프로그램 시청률을 위해 쓰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본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도 저 사람이랑 다를 게 없잖아?’

힘내자고는 했으나 2라운드에서 마주칠 올리비아 트리에 대한 걱정이 한 가득인 멤버들을 보며 이런 모습을 보여 봤자 좋을 것 없다는 결론이 빠르게 내려졌다.

“잠깐만. 2라운드는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1라운드를 어떻게 치를지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 1라운드?”

1라운드 대결 상대는 솔직히 우리가 이길 자신이 있는 팀이었다.

그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모두가 확신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라운드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니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그나마 눈치가 빠른 제키가 멤버들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주의를 주고 내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형이 맞는 말 했네. 2라운드 걱정할 때가 아니라 1라운드 이길 생각을 해야지.”

“1라운드도 우리한테 엄청 중요해. 우리가 여기서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이제 4번 남은 거잖아. 대결에 신경 쓰다가 무대 대충 할 거야?”

“절대 그럴 순 없죠!”

무대 대충 할 거냐는 말에 멤버들의 눈이 재빠르게 번뜩인다.

대결의 승패에 관련 된 고민은 부가적인 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된 무대를 해내고, 팬들에게 우리를 알리는 것이었다.

1등을 한다 해도 만족스러운 무대를 해내지 못한다면 이겨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무대부터 해치우는 것이 중요했다.

? ? ?

­어우, 시발…어쩌지?

페코는 자신과 1라운드 때 대결할 상대를 확인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대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저렇게 잘 생긴 남자들이 6명이나 있는데, 어떻게 이기냐고!!’

VCR 영상으로 봤던 것도 새삼 떠오른다.

당시에는 대결이 결정 되지 않아서 누가 저 팀과 싸우게 될지 모르겠지만 참 불쌍하게 됐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나일 줄이야.’

망했다.

누가 봐도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풋풋한 미남들에게 표를 줄 게 분명하다.

‘나부터가 나한테 표주기 싫을 지경인데!!’

­안녕하세요.

­헤~ 핫! 네, 네! 아, 안녕하세요.

페코는 화끈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허겁지겁 가렸다.

누가 봐도 그녀가 긴장하고 있는 게 보였을 것이다.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었기에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다.

‘너무 잘 생겼어!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미치겠네.’

젖꼭지가 뾰족하게 서고, 아랫배가 찌르르 울린다.

가랑이 사이가 근질근질거려서 자꾸만 허벅지를 비비게 된다.

킁킁­

‘내, 냄새도 좋아. 미치겠다. 어떻게 하지? 뭐라고 해야 돼? 저, 전화 번호 물어볼까? 서,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미친년아! 그게 되겠냐고!’

사실 그녀는 기가 잔뜩 죽어 있는 상태였다.

그녀가 노래를 잘 부르는 건 맞다.

얼굴도 적당히 예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시골 학교에서 항상 전교 1등만 하던 똘똘한 친구가 도시로 전학을 갔는데 그곳에선 전교 10등에도 들기 힘들어졌다더라.’

그녀가 생각하기에 본인이 바로 이 케이스인 것 같았다.

자기가 좀 먹어주는 우물 안에선 잘 나간다.

하지만 우물 밖을 벗어나는 순간 개구리는 화들짝 놀라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덜컥 겁을 먹어버리는 거다.

‘아무래도 잘못 나온 것 같아!!’ 라면서.

가뜩이나 주눅 들어 있던 페코에게 압도적인 매력을 가진 6명의 남정네들이 주는 자극은 너무 강렬했다.

모든 전의를 잃고 백기를 들어 올리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았다.

‘또 소심해졌어!’

당당하게 대결에서 이겨 보이겠다고 선전포고를 해도 부족할 판에 쫄아서 쭈뼛대다니.

이 꼴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우울한 감정에 휩싸일 무렵.

­괜찮으세요? 몸이 불편하신가요? 제작진 불러드릴까요?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위로가 그녀의 귓가에 박혀온다.

­어? 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앞에 별빛이 쏟아졌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어디 불편한 거 아니에요?

­누, 눈이….

­눈이 아프신 거에요?

‘너무 예뻐!’

왜 하늘에 있어야 할 별들이 이 남자의 눈동자에 박혀 있단 말인가?

다소 팔불출 같은 생각을 한 그녀가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안 아파요. 그냥 긴장을 해서 잠깐 속이 울렁거렸던 거에요.

­물이라도 드실래요?

­…그,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최대한 용기를 쥐어 짜내서 눈동자에 별을 담고 있는 남자의 이름을 물었다.

그가 ‘에어플레인’이라는 그룹의 멤버 중 하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멤버들의 이름을 세세하게 알지 못했기에 꼭 이 남자의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다.

­진해솔이에요.

남자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해주었다.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이 남자와 잘 어울리는!

­자, 잘 부탁드려요! 아니! 그러니까 조, 좋은 대결이 됐으면 한다는 의미로….

­물론이죠. 좋은 대결이 됐으면 좋겠네요.

남자 아니, 진해솔의 대답에 페코의 얼굴이 또 다시 새빨개졌다.

어차피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의욕이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자신과 좋은 대결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램을 외면할 순 없었다.

얼떨결에 진해솔은 대결 상대에게 의욕을 잔뜩 안겨주고 말았다.

‘절대절대 망치지 않을 거야!’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여자가 있을까?

페코는 어스타에 출연한 목적이 변질 되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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