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38화 (238/849)

〈 238화 〉 #33. 어메이징 스타 (8)

* * *

어메이징 스타는 회사에서도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우리는 촬영이 끝나고 돌아온 다음날 직원들로부터 여러 정보를 얻어듣고 있었다.

그 정도 대부분 1라운드 대결을 펼칠 상대 가수 ‘페코’에 관련 된 내용이었다.

“너희들 1라운드 상대는 페코라는 여자 가수야. 성격은 굉장히 소심한 편인가봐. 그래서 그런지 언니 팬들이 많아.”

“언니 팬?”

“그러니까 귀여움을 받는 거지. 팬들한테.”

페코의 나이는 올해로 23살.

아직 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리다고 볼 순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성격이 굉장히 소심하고 아직 얼굴에 앳된 티가 많이 났는데, 예능에 나왔다가 출연진들에게 엄청나게 낯을 가리는 모습이 꽤 귀엽게 나오고 난 이후 나잇대 있는 팬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단다.

참고로 그녀는 심지어 자기 매니저에게도 낯을 가렸다고 한다.

“소심한 성격이 캐릭터가 되어버린 거네요.”

“응, 그래서 페코 팬들이 좀 극성맘들이야.”

“극성맘….”

단어만 들어도 얼마나 팬의 기세가 셀지 상상이 된다.

“솔직히 1라운드 상대 보고 만만하다고 생각했지?”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잘못 생각한 거야.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으….”

“진짜 올리비아 트리에 정신 팔려 있었으면 큰일 날 수도 있겠네요.”

“어메이징 스타에 출연했다는 것 자체가 만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라는 뜻이거든. 대결을 할 때마다 온 힘을 다해야 할 거야.”

어메이징 스타의 승패 결정에는 3종류가 영향을 미친다.

1. 시청자 투표 [30%]

2. 현장투표 [30%]

3. 전문가 투표 [40%]

여기서 현장 투표를 할 수 있는 방청객은 매우 까다롭게 뽑는다.

연령 별, 선호하는 음악 장르 별, 인종 별 등등.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서 최대한 공평하게 선별을 했다.

더불어 다양한 나라 출신의 가수를 출연시켰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인종 차별’에 반대한다는 선언서에 싸인까지 해야 했다.

물론 이런 절차로 완벽하게 인종차별 하는 사람을 거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 속마음을 완벽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런 절차를 밟으면서 경각심은 가질 수 있지.’

인종차별은 옳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페코 무대를 싹 모아왔거든? 적을 이기려면 정보를 알아야 하잖아? 일단 너희들은 여기서 페코 무대만 주구장창 봐봐.”

“하루종일 무대 하는 걸 보면 우리 무대는 언제 만드는데요?”

“일단 봐봐. 그래야 어떤 무대를 만들면 페코를 씹어먹을 수 있을지 아이디어가 나올 테니까.”

씹어먹기까지 해야 해?

어쩐지 우리보다 의욕이 더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직원들을 보며 순순히 재생 된 페코의 무대 영상에 집중했다.

저런 작은 몸에 저런 울림을 주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정말 상큼한 노래를 부르네요.”

“페코가 먼저 무대 하니까 그것도 생각해야 돼.”

어스타는 대결 상대를 뽑은 뒤 바로 우리를 퇴근시켜주지 않았다.

무대 순서를 결정해야 했고, 누가 배운 변태 아니랄까봐 순서 결정으로 분량을 뽑아먹었다.

그렇게 잠시 방송국의 노예가 되어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첫 무대로 압살해버릴 것인지, 다음 무대로 앞의 무대를 기억에 지워버릴지.’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페코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가 빵빵 터트려서 분위기를 한껏 올려놨는데 뒤에서 저런 상큼하고 귀여운 노래를 부른다?

아마 관객들은 힘이 쭈욱 빠져버릴 거다.

물론 우리의 선택이 페코를 배려하는 마음 때문인 건 아니었다.

순전히 관객들을 힘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우리랑 무대 스타일이 너무 다른데.”

“조용조용한 무대를 하시는 분이야.”

“진짜 우리가 앞에 하겠다고 했으면 큰일 났었겠다.”

빵빵 터트리고 쿵쿵 뛰면서 난리 칠 텐데, 그렇게 뛰어놓은 무대에서 잔잔한 노래를 한다?

‘울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나저나.

“목소리가 너무 좋은데?”

“음악 색깔이 확실해서 이런 쪽 음악에 푹 빠지면 답도 없을 것 같아.”

우리는 페코의 무대를 계속 시청하며 그녀의 장점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게 워낙 다양한지라 우리처럼 빵빵 터지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페코처럼 잔잔하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화려하게 무대를 터트린다고 해서 100% 우리가 승리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퍼포먼스를 크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 않아? 솔직히 우리 퍼포먼스는 이번에 찍은 무대로 충분히 보여줬잖아. 1라운드는 가창력으로 밀고 가보자.”

“가창력 VS 가창력을 하자는 거네?”

“응. 우리가 페코보다 실력이 못하지 않잖아?”

“완전 정면대결인데?”

“못할 게 뭐야.”

첫 번째 무대를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은 춤만 잘 추는 애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수는 때때로 립싱크 논란에 휩싸이곤 하는데, 해외라고 다를 게 있을까?

분명 립싱크일 거라고 뾰족한 시선으로 우릴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당당하게 노래 실력을 선보여 눈도장을 쾅! 찍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우리한테 빠지는 거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늪이 될 것이다.

“노래부터 결정하자.”

“아무래도 커버곡이 좋겠지?”

어메이징 스타는 최고의 무대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해도 괜찮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무대에서 커버곡을 하든,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서 보여주든 아무것도 제재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선택한 노래에 대한 결과 또한 본인이 책임져야 했다.

“낯선 노래로 관객들한테 공감을 만들어내긴 힘들지.”

관객들은 아는 노래, 익숙한 노래가 나올 때 더 큰 집중력을 발휘한다.

더군다나 그 노래가 자신이 평소 즐겨듣는 좋아하는 노래라면?

‘노래 자체에 호감을 갖고 있으면 표를 받을 확률이 높아.’

그런 이익을 버리고 새로운 노래에 도전하는 건 미련한 일이다.

“근데 무슨 노래를 부르지?”

“음…그 노래 어때? Struggle.”

“그거 고음 장난 아닌 노래잖아.”

파워풀한 보이스가 독보이는 락팝송이다.

솔로 여가수가 부른 음악이라 우리가 부르려면 편곡을 거쳐야 할 노래이기도 했다.

“진짜 실력으로 정면 대결 하겠다는 거구나?”

투쟁(Struggle)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쓴 만큼 가사 내용은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맞서 싸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사의 화자는 소년이다.

이 소년에게는 고아이고, 길거리를 떠돌며 살고 있음을 덤덤하게 내뱉는다.

저음으로 내뱉는 가사는 어딘가 쓸쓸하기도 하고 조금은 떨리고 있기도 하다.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소년은 과거를 회상한다.

길거리에 멀뚱히 서서 부모를 기다리다가 늦은 밤이 되고, 자신이 버림받았음을 서서히 깨달을 무렵.

나이 많은 무서운 형들이 소년에게 다가온다.

그들은 소년에게 악마와도 같았다.

자신을 구원해줄 천사가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어야 한다고 소년은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그날 소년에게 찾아 온 천사는 없었다.

그때부터 소년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내뱉는다.

죄악을 운반하고, 질투를 훔치고, 평범을 빼앗긴다.

나는 그렇게 서서히 악마가 되어가고 있음을, 이렇게 만든 것은 세상이라는 것을!

훌륭한 악마가 된 소년이 울부짖으며 노래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들어도 좋네. 역시 명곡이야.”

그리고 악마는 마지막에 말한다.

Struggle!

투쟁하라고. 악마가 되지 말라고.

빛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가사가 슬퍼서 좋은 것 같아.”

“뮤비가 잘 나오기도 했고. 이건 진짜 리메이크 해볼 만한 곡이긴 하다.”

뮤비의 장면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둠이 가득한 공간에 새하얀 옷을 입은 흑인 소년이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식은땀을 흘리며 달리는 장면이다.

뮤비에 출연한 흑인 소년의 눈이 정말 예쁜데, 뮤비 감독도 흑인 소년의 눈이 예쁘다는 걸 알았는지 눈에 포커싱을 맞춰서 촬영을 했다.

“저 연출을 우리가 무대 위에서 재연 할 수 있을까?”

“형은 저 장면이 마음에 들어?”

“적어도 이 노래를 무대 위에서 할 거면 저런 임팩트는 줘야 한다고 생각해.”

화면을 리플레이 해서 흑인 소년이 어두운 공간을 뛰고 있는 걸 재생했다.

탄탄한 음정으로 폭포처럼 와라락 쏟아내는

“역시 저 장면,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어.”

“해솔이 형은 이 곡에 완전 꽂혔네.”

“꼭 이 곡으로 하자는 건 아니야. 더 좋은 곡이 없으면 이 곡으로 하고 싶다는 거지. 일단 각자 좋은 곡 몇 개 뽑아봐야지.”

“그래도 이 곡이랑 분위기가 비슷한 걸 고르고 싶은 거지?”

“어.”

“이걸 라이브로 부르는 걸 보여주면 확실히 뒤집어지긴 할 것 같네.”

페코의 무대를 계속 시청하면서 우리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추천곡을 적어 내려갔다.

“총 12곡이네.”

“여기서 이제 추려야지.”

“근데 다행인 건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무대 스타일은 비슷한 건 같아. 그치?”

“응.”

하고 싶은 무대가 너무 다르면 의견이 모이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이도 우리들 모두 비슷한 무대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럼 여기서 뽑힌 노래 쫙 들어보고 버릴 곡을 추슬러보자.”

작곡에 관련 된 능력을 올려둔 덕분에 노래를 들으면서 어떻게 편곡을 하면 좋을지 감이 좀 잡힌다.

“이 노래는 곡 자체가 편곡하기 어려워.”

“그럼 이 노래는 탈락.”

곡 하나가 탈락 된다.

“아~ 이거 완전 명곡이지.”

“나쁘지 않긴 한데….”

“별로야?”

“어떤 무대로 꾸밀지 확 떠오르는 게 없어.”

“그럼 탈락 후보로 세모.”

다음 곡은 애매해서 세모.

오랫동안 거르고 걸러서 뽑힌 12곡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4개의 곡으로 좁혀졌다.

“세모는 그냥 다 버릴게요. 4곡으로 추려놓고 보니까 나머지 곡들은 비교가 안 되네요.”

기우연의 말에 멤버들 모두가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팩트면 임팩트, 곡의 인지도면 인지도, 편곡 편의성 등등.

추려진 4개의 곡 중 어느 한 부분도 부족하지 않은 좋은 곡들이었다.

“네 곡은 우리가 직접 불러보고 직원 분들한테 제일 좋은 곡을 선택해달라고 하자.”

4개의 곡까지 추려졌으면 이제 이 노래가 우리와 잘 어울리는지 진짜 불러보는 것만 남았다.

“근데 우리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그러게 벌써 노래를 다 골랐네.”

“이렇게 빠르게 해도 부족해. 2주 금방 가는 거 알잖아. 그나마 이번에 춤을 격하게 안 출 예정이라 시간이 넉넉해진 거고. 다음 무대 생각하면 뭐든 빠르게 해보는 게 좋아.”

“근데 이렇게 무대 준비 하는 거 좀 재밌다.”

어메이징 스타에 출연하기 전에는 부담감 때문에 재미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출연을 하고 무대를 준비하게 되자 이제야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맞아요. 콘서트 할 때 생각나지 않아요?”

“콘서트 때 생각하니까 심장 뛴다. 진짜 재밌었는데.”

“당시에는 엄청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또 하고 싶고 그러네.”

콘서트를 한지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 콘서트가 그리워질 줄 누가 알았을까?

몸이 힘들긴 했지만 팬들에게 얻은 무형의 에너지는 엄청났다.

어메이징 스타에서도 그런 특별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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