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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41화 (241/849)

〈 241화 〉 #34. 잠자리 (2)

* * *

“네가 안 나타니까 그렇지. 재깍재깍 나타났어봐. 내가 왜 네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냐고.”

작은 까칠한 나비족.

포니는 날개를 팔팔팔 흔들며 본인의 심기가 아주아주 불편하다는 것을 표현했다.

[네가 쓸데없는 걸로 자꾸 부르니까 그렇지! 공간 이동하면 멀미가 얼마나 심하게 나는지 알아? 아무튼 이번에는 왜 불렀어?]

“여자들한테 만이라도 내 능력에 대해 말해주면 안 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절대 안 돼. 내가 말 했잖아. 들키는 순간 네가 받고 있는 혜택들이 싹 회수 될 거라고.]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딜을 좀 쳐봐.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귀찮게 굴지 마. 안 되는 일이야.]

“너 내 담당이잖아. 담당이 일을 안 하겠다고 하면 나는 어떡해야 하냐? 내가 다이렉트로 위쪽이랑 얘기해?”

[야!]

“나 그냥 담당 바꿔?”

[씨! 해줄게! 해준다고! 해주면 될 거 아냐!]

내가 강하게 나가면 금세 깨갱할 거면서 꼭 저렇게 반항부터 한다.

“어떻게 해줄 건데?”

[네 여자들한테만 비밀을 발설할 수 있게 했으면 한다는 요청을 올릴 거야. 그럼 위에서 알아서 결과를 보내주겠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건의밖에 없다는 걸 알아두라고.]

“그렇게 성의 없이 건의사항을 올려보내면 잘도 들어주겠다. 안 되겠다. 선배인 내가 좀 알려줘야지. 여기서 보고서 작성하고 가.”

[뭔 개소리야?!]

“너 능력도 부족한 놈이 보고서도 제대로 작성 못하면 상사가 널 어떻게 보게 되는지 알아?”

[…!!]

포니가 내 말에 찔리는 게 있는지 움찔 몸을 굳힌다.

“상사한테 찍히는 거야.”

[이런 사소한 보고서로 그럴 리 없어!]

“아니지. 상사는 이런 사소한 보고서들로 평가해야지. 왜? 큰 프로젝트에 능력 없는 놈을 꽂아 넣을 순 없으니까.”

내가 회사 생활을 몇 년을 했는데 윗사람들의 생각을 모를까.

포니는 내 말에 안색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이놈은 이미 한 번 비리를 저지를 뻔하다가 위에 걸린 적이 있다.

그런데다 나한테 보였던 태도를 보면 보고서를 작성하는 걸 잘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런 사소한 보고서들을 모아서 아~ 이놈이 제법 쓸모가 있네? 키워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거나 아~ 이놈은 이런 사소한 것도 제대로 못하는 능력이 부족한 놈이구나? 그럼 큰 사고 쳐도 상관없는 뒤처리를 맡겨야겠네? 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데?]

“하는 건 없는 주제에 바라는 것만 많은 네 태도를 바꿔.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남 뒤 닦는 일이나 하다가 비리 저지른 거 걸려서 쓸려나갈 걸?”

[…….]

내 말을 듣고 나서 뭔가 걸리는 게 있었는지 포니는 한동안 말풍선을 만들어내지 않고 고민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 정리가 끝났는지 말풍선으로 내게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넌 내가 어떻게 해야 윗선에 잘 보일 수 있을지 알고 있다는 거겠지?]

“내가 회사원이었던 거 잊었어? 노하우를 말해줄 수는 있지. 대신 그건 알아둬. 우리 사이에 공짜는 없다는 거.”

쟤도 나를 위해서 공자로 해주는 일이 없는데, 나라고 저 녀석을 위해 공짜로 노하우를 전달해줄 의리는 없었다.

포니는 내가 이렇게 나오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며 조건을 걸라고 말했다.

“너는 내가 오늘 말한 걸 확실하게 해결해와. 그럼 나는 상사에게 잘 보일 수 있는 팁을 줄 테니까.”

[만약 거래를 했는데 소용이 없으면 가만히 안 둘 거야.]

하나도 무섭지 않았으나 저 협박이 먹히고 있는 척은 해야 했다.

그래야 포니가 거래를 할 테니까.

“해보고 말해. 멍청아.”

[흥!]

포니가 새침한 말풍선을 나에게 날려 보내곤 뾰로롱~ 하고 사라졌다.

거래를 하기로 했으니 성의 없이 건의 사항을 틱 올려 보내고 입 닦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여튼 사람 귀찮게 만드는데 뭐 있다니까.

포니에게 내 건의 사항을 올려보내고 며칠 후.

이 녀석이 몸이 꽤 닳았는지 제법 빠르게 결과물을 받아냈다.

“뭐냐.”

[뭐긴 뭐야. 저번에 네가 말한 거 결과 나와서 찾아 온 거지.]

“벌써?”

[내가 좀 유능하거든!]

너무 뻔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댄다.

지가 유능했으면 내 말에 넘어가서 이렇게 빨리 결과를 받아내고 오진 않았을 거다.

“허락 받았어?”

[조건부 허락이야.]

“그럴 줄 알았지. 조건이 뭐야?”

공짜로 내 건의 사항을 받아 줄 놈들이 아니다.

기대도 안 했다.

[상부에서 내건 조건은, 지정 대상 임신이야.]

“…임신? 진짜 그게 조건이야?”

[‘지정 대상’이 중요한 부분이야. 우리가 지정해준 사람을 임신시켜야 해.]

인상을 팍 찌푸렸다.

“하, 이 새끼들은 진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을 해. 세계 멸망을 막는 위대한 일이야. 결과가 좋은데 왜 마다하려고 하는 거야? 너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보상인데.]

나야 말로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임신을 뭐로 생각하는 건지 말이다.

은연중 느꼈던 게 있는데, 포니는 ‘인간’ 자체를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포니를 좋아할 수가 없는 거다.

“보상이 좋든, 모두를 위한 결과이든 무슨 상관이야. 내 기분이 좆같다는데.”

[애초에 네가 여기에 온 건 여자를 임신시키기 위해서야!]

“그렇다고 해도 모르는 여자들을 홀랑 임신시키라는 건 좀 너무하지.”

[계약을 지켜.]

“언제까지 그 계약서에 휘둘려야 하는데? 죽을 때까지 모르는 여자들 임신시키고 다녀야 돼? 끝이 없다는 게 문제잖아.”

모든 계약서에는 기간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술 처먹고 싸인을 했던 계약서에 과연 기간이 존재했던가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물론 내 쪽에 유리한 부분도 있기는 하다.

‘어떤 여자를 임신시킬지에 대한 것은 내 자유라는 거.’

헌데 이것들이 내 건의사항에 올타꾸나! 하고는 여성을 지정해서 임신 시키라는 조건을 걸어왔다.

이걸 들어주면 나는 얘네들한테 바라는 게 생길 때마다 여자를 임신시켜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미션으로 은근히 밀어 넣을 때부터 알아봤어.’

쉽게 할 수 있는 미션은 지금도 종종 깨는 편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적은 보상을 주는 미션이라도 될 때 깨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서 꾸준히 갱신되는 미션을 확인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대상을 임신시키라는 미션이 대량의 코인을 보상으로 내걸려 있곤 했다.

물론 한 번도 그 미션을 수락한 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미션창 목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걸 여기다가 붙이네.’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걸고, 반드시 얻어내야 할 걸 걸어 놨다.

‘어쩐다?’

마음 같아서는 안 한다고 거절하고 싶었으나 보상을 포기할 순 없었다.

“조건이 이런 것밖에 없어? 이런 조건이면 나한텐 그냥 하지 말라는 수준인데.”

[어렵게 생각하지 마. 네가 생각한 것만큼 어려운 일 아니야.]

“너희가 지정해준 여자는 뭐 금태라도 둘렀냐? 왜 여자를 지정해서 임신시키라는 거야? 이게 정말 멸망을 막을 방법이야? 차라리 내 여자들 중에 한 명을 임신시키는 걸 조건으로 거는 거면 받을게.”

[아무 여자는 소용없어! 우리가 지정한 그 여자여야만 해. 우리가 이유도 없이 너한테 엉뚱한 여자를 임신시키라고 할 것 같아? 여기에는 네가 상상도 못할 깊은 의미가 있는 거야.]

“임신하게 된 여자는 어떻게 되는데? 태어난 아이는 또 어떻게 살게 되는 거고?”

[그것까지 너한테 책임지라고 하지 않아. 네 아이를 임신 하게 될 여자는 이해하기 쉽게 네가 아는 단어로 표현하면 ‘성녀’같은 거야.]

“성녀?”

[성모 마리아 같은 거. 예수를 탄생시킨 위대한 어머니!]

“하, 뜬금없이 웬 종교 얘기야?”

[물론 진짜 그 여자가 성모 마리아라는 건 아니고, 네가 알아듣기 쉽게 표현한 거야. 네가 임신시킬 여자가 부담 되는 거면 걱정 안 해도 돼. 네가 그 여자를 임신시켜도 누가 자길 임신시켰는지 기억하지 못할 거니까.]

“…….”

[난 이해를 못하겠어. 왜 이 의뢰를 거북해 하는 거야? 섹스만 하면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잖아. 얼마나 편해! 임신시키고 책임을 지라는 것도 아닌데.]

“아무런 책임도지지 말라는 것 때문에 거북해 하고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하나 보네.”

[이씨! 그게 어떻게 거북한 이유가 될 수 있어!!]

“내 피를 이은 아이를 데리고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까.”

[그렇게 치면 너 내년에는 어떻게 하려고? 정자 기증 의무화 잊었어? 그거랑 이게 뭐가 다르다고 거북해 해?]

남자가 너무 태어나지 않아 결혼을 하는 경우도 줄고, 그로인해 출산률이 너무 급감해서 정부에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시행하는 법이었다.

초반에는 23세 이상 30세 이하 남성이 9개월에 한 번씩 정자 기증을 의무화 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법이 재정 됐을 땐 좀 더 범위가 넓어졌다.

‘20세 이상~40세 이하의 남성이 1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정자 기증을 해야 한다. 거지 같은 법이지.’

이러한 법이 재정 될 수 있었던 것은 여자들이 기증 된 정자로라도 임신을 하고 싶어 한 덕분이었다.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한데,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남자가 없는 거다.

결국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낳고 가정을 만드는 것밖에는 없었다.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기까지 책임질 거야?]

“…….”

[거봐! 그건 싫잖아. 그거랑 이거랑 다를 게 뭐냐구! 결국 기분 탓인 거잖아!]

그동안 내게 당한 게 있어서 그런지 이 녀석도 오늘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모양이다.

아니면 내 말을 듣고 생각이라는 걸 해서 이번 기회에 본인의 쓸모를 상부에 증명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 제법 그럴 듯 해. 이번에는 나름 설득력이 꽤 있네. 속달거리는 솜씨가 기가 막혔어. 그래도 안 돼. 어림도 없어. 절대 못해.”

[에이씨!!]

포니가 얼굴이 팍 찌푸려진 이모티콘을 말풍선에 띄우더니 나를 향해 휙 던져버렸다.

퐁~!

“어이어이? 이거 폭력이야.”

내 몸에 부딪친 말풍선이 연기처럼 화라락 허공으로 사라진다.

내게 위협을 할 수단이 없는 포니는 말풍선을 던지는 것으로 화를 푸는 듯했다.

[그렇게 꼭 다 가져가야만 했냐!!]

“그딴 조건을 가져 온 것부터 네가 무능하다는 증거야. 일 좀 똑바로 해.”

[야이!@#!%!@#!]

한참 씩씩대며 화를 내던 포니가 지쳤는지 날개를 축 늘어트리며 묻는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포기할 거야?]

“조건이 그거 하나만 있는 건 아닐 거 아냐. 다른 선택지 좀 말해봐.”

[아니거든? 이것밖에 없거든?]

“진짜 이것밖에 없는 거면 너 정말 무능한 거다.”

[이익!]

내 말에 뼈라도 맞았는지 포니가 얼굴을 빨갛게 붉히더니 말했다.

[그래, 네 똥 굵다! 나쁜놈아. 사실 다른 선택지 있어.]

“당연히 그래야지. 말해봐.”

[개자식....다른 조건은…악!!]

포니가 다른 조건을 말하려던 순간.

녀석이 돌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본 듯 경악하며 몸을 굳혀버린다.

“뭐야, 왜 그래?”

[나...나....나아...아악..!]

날개가 정신없이 파르륵 파르륵 떨리고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서린 가운데.

돌연 픽­! 하고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억? 야!"

나는 황급히 두 손을 모아 추락하는 포니를 낚아챘다.

내 손바닥 위에 쓰러진 포니는 끙끙 앓더니 이내 픽 기절해버린다.

“아니, 얘 왜 이래. 포니? 포니!!”

멀쩡하던 애가 왜 이러는 거야?

얘를 데리고 병원에 간들 치료를 해줄 수 있는 의사가 있을 리 만무하다.

어쩔 수 없이 침대 위에 포니를 내려놓았다.

배게 가운데를 차지하고 기절한 포니를 보며 난감함에 이마를 매만지는데, 뒤에서 갑자기 기척이 느껴지더니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몸을 돌려 낯선 침입자를 확인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사생팬이 들어 온 건 아니었다.

어쩌면 사생팬이 들어오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저거 잠자리 날개 아니냐….’

낯선 침입자의 등 뒤에 심상치 않은 게 달려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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