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 #36. 라운드 (1)
* * *
고민하는 그녀에게 재차 말을 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소개 안 시켜줄 거에요. 이제 사위 소개 시켜줄 때도 되지 않았어요? 저 서운해지려고 하는데.”
아무리 결혼식을 못 올리는 상황이라고 해도 절차를 너무 건너뛰었다.
딸을 임신시켜놓고 인사 한 번 하러 오지 않는 매정한 사위에게 분명 서운함을 느끼고 계실 거다.
“하, 우리 엄마는 정화 언니처럼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냥 평범한 시골 할머니란 말이야.”
“그게 뭐 어때서요.”
“…내가 안 괜찮아. 부끄럽다고.”
“가족이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에요. 왜 부끄러워하는 거에요? 저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존재인데.”
복순 누나는 장모님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임신을 했으니 시골에 계신 장모님을 부르라는 내 말에 싫다고 거절을 할 정도로 말이다.
누나는 장모님에 관련 된 얘기도 잘 해주지 않는다.
뭔가 그녀들 사이에 풀지 못한 실타래가 있어 보인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데…. 내가 철없이 투정 부리는 것 같잖아.”
“평생 얼굴 안 보고 살 순 없는 거잖아요. 기왕 만나게 될 거 너무 늦게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거에요.”
“알았어. 갈게. 한 번은 보긴 봐야지. 그래서 어떻게 가는 거야? 뭐 준비할 거 있어?”
“어…거기서 집으로 돌아오는 건 1초 만에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거기로 가는 건 제가 직접 한 번은 가봐야 해요.”
“막 좌표 같은 걸로 보고 이동하고 그런 게 아니라?”
“딱 한 번만 다녀오면 이후로는 마음껏 오갈 수 있어요.”
“영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쓴다 싶었는데 그래도 제한이 있기는 하구나?”
누나가 말하는 것처럼 원하는 곳으로 바로바로 이동하는 아이템은 너무 비싸서 구매하질 못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성능을 가진 건 가격이 너무 뻥튀기 되어 있어.’
그렇다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순간이동 아이템의 기능이 엄청 부족한 게 아니지 않은가?
그저 한 번 가서 직접 좌표를 찍어야 한다는 게 단점인데, 그 정도는 부지런을 떨면 될 일이었다.
결국 곧장 내려가진 못하고 따로 날을 잡기로 했다.
“내일 무대 실수 없이 잘 해. 응원하고 있을게.”
“네, 그럴게요. 누나도 푹 자요.”
잘 때까지 옆에 있어주겠다는 말에 사양을 하지 않은 그녀가 미리 인사를 한다며 내일 아니, 몇 시간 후에 있을 무대를 응원해주었다.
그녀가 푹 잠든 후, 도플갱어 인형을 통해 호텔로 돌아왔다.
큰일 하나를 넘은 내게 남은 일은 몇 시간 후에 있을 무대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뿐이었다.
? ? ?
어메이징 스타 촬영이 시작 됐다.
예고 된 순서에 맞춰 한 명씩 무대 위에 올라가 관객들의 귀를 호강시켰다.
때론 파격적인 의상으로, 때로는 익숙한 멜로디에 감동을 담아 관객들을 현혹한다.
멤버들과 나는 하나같이 엄지를 치켜들게 만드는 참가자들의 무대에 어깨를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아~ 콘서트에 온 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실력 하나는 진짜 깔 게 없다.”
하나같이 실력이 대단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 모두 어메이징 스타를 겨냥해서 온 힘을 다해 준비한 무대였다.
그 누구도 어설프게 준비해서 무대를 하는 팀이 없었다.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줌베이조차도 환상적인 랩을 보여주며 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내려갔다.
줌베이와 대결을 하는 상대 팀은 패배를 직감했는지 결과를 그다지 궁금해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승자는 줌베이!!
와아아아!!!
줌베이! 줌베이! 줌베이!
그녀를 연호하는 관객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우리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매혹적인 미소를 짓는 줌베이는 도저히 17살짜리 소녀라고 볼 수 없었다.
‘이런 소리 하면 철컹철컹 인데…….’
섹시하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파워풀한 목소리가 리듬을 타고 노는 모습을 보였으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녀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MC짐이 다음 무대를 꾸며 줄 대결자의 이름을 호명했다.
다음은 페코 VS 에어플레인의 대결이 있겠습니다!
페코!! 언니가 격하게 응원한다아아악!!!!!!!
관객 중에 대결 상대인 페코의 팬이 있었는지 우렁찬 목소리를 내지르는 게 들렸다.
무대에 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무대 뒤편에 대기 중이었는데, 거기까지 팬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페코씨는 너무 긴장해서 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마이크를 손에 들고 덜덜 떨고 있었다.
‘성격이 좀 소심하다더니, 많이 긴장하네.’
우리는 덜덜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페코씨, 파이팅입니다.
하으으…! 아, 안녕하세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오늘 예쁘십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정신을 못 차린다.
나는 다른 멤버들에게 물러나 있으라고 손짓을 하고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 괜찮아요?
으음, 괜찮아요오…. 이겨내야죠오.
무대 위에 서는 걸 무서워해서는 가수를 할 수 없다.
그녀는 덜덜 떨면서도 의외로 강단 있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
나는 기꺼운 마음에 그녀의 어깨를 두들겼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힉! 네, 네네!!
페코씨! 올라와주세요.
나름 힘내라고 응원해준 건데, 어째 나 때문에 더 긴장한 것 같아 보여 걱정이 됐다.
“괜히 말 걸어서 신경 거슬리진 않았을까 걱정 되네.”
“무대 아래에선 엄청 떠는데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싹 바뀐다며. 괜찮겠지.”
“으으아!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큰일 났어요!! 다음 무대란 말이에요!”
우연이가 긴장감에 몸부림 치기 시작한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온갖 끼를 다 부릴 거면서 아닌 척 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멤버들 중 녀석의 호들갑에 반응해주는 이는 없었다.
사실 어제 그녀들을 찾아갔던 건 오늘을 위해서였다.
큰 무대를 앞두고 긴장감을 풀기 위해 그녀들의 위로와 응원만큼 효과적인 건 없었다.
페코!!! 페코 사랑해!!!
귀여워어어엇!!!!!!
“밖에 장난 아닌데?”
“팬이 극성이라더니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많나봐.”
“이러다가 지는 건 아니겠지?”
“솔직히 좀 쫄린다.”
올리비아 트리보다 쉬운 상대라고 생각해왔으나 그녀의 무대와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니 긴장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 팬도 왔을까?
“어우, 목소리 너무 좋다.”
“가창력 대박.”
무대 뒤에서 듣는데도 페코의 엄청난 목소리에 압도가 된다.
마침내 페코씨의 무대가 끝나고, 그녀가 바들바들 떨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내려왔다.
무대를 잘 해내놓고 그런 적 없다는 듯 오들오들 떨던 그녀는 차츰 긴장감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는 우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고 계단을 올랐다.
대결을 펼쳐야 하는 적이 먼저 무대 위로 올라 관객을 홀딱 반하게 만든 상황이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을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아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있었다.
뚜벅 뚜벅
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나는 여유롭게 관객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떨린다며 호들갑을 떨던 기우연도 온갖 잔망을 다 떨고 있다.
페코의 무대에 감격을 했던 관객들이 새로운 가수를 기꺼이 반겨주었다.
그들은 우리의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모든 관객들이 우리에게 호응을 해준 것은 아니다.
관객들 중 페코의 팬이라 자처하는 이들이 팔짱을 끼고 어디 한 번 재롱 부려봐라 하면서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에어플레인!!!!!!! 사랑해!!!!!!!!!!!
꺄아아아아악!!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목 놓아 부르는 팬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자연스레 시선이 팬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와준 거야?’
가슴이 뜨거워진다.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로 가슴이 꽉꽉 채워진 기분이었다.
우리를 응원해주는 팬이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데 무엇이 무서울까?
우리의 노래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뛰게 만들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둥~ 둥~ 둥~ 둥~
지이이잉! 지이이잉!
우리가 대열에 맞춰 무대 위에 우뚝 서자 신호를 받은 스태프가 MR을 틀었다.
비트가 관객들과 무대 위를 격렬하게 휘젓는다.
관객들의 귀를 파고드는 드럼, 기타 소리가 음률을 만들었다.
드디어 우리의 음악이 시작 된다.
쿵! 쿵! 쿵! 쿵!
내 심장 소리인지, 드럼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잠시 압도적인 음향과 관객의 환호에 압도 되었다가 인이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맞춰 입술을 떼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를 서왔지만, 관객을 앞에 두고 무대를 시작할 때면 설렘이 가득하다.
그들에게서 얻어내는 열정과 열기가 몸을 뜨겁게 달굴 때면 이 무대를 위해 연습실에서 보냈던 시간이 아깝지가 않다.
삐걱 삐걱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바닥이 미끄럽다.
리허설을 할 때 이미 확인해둔 상태였기에 당황스럽진 않았다.
보컬에 집중하기 위해 선택한 곡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장점 중 하나인 퍼포먼스를 완전히 버릴 생각은 없었다.
펑! 펑!
촤아아악~!
불꽃이 터지는 것처럼 무대 양 옆에 설치 된 기계가 불꽃을 내뿜는다.
조명이 우리의 춤을 한층 더 화려하게 꾸며주고 있었다.
평소 우리가 해내곤 했던 무대만큼 화려한 안무는 아니었지만 무대 연출과 더해진 적당한 안무는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잔뜩 힘주었던 보컬이 스피커를 통해 쏟아지자 관객들이 쩌억 입을 벌린 채 경악한다.
‘더 환호해! 날뛰어도 돼! 우리가 준비한 무대를 즐겨!’
무대 위에 서기 전 멤버들의 완벽한 컨디션을 위해 목캔디를 하나씩 애들에게 돌렸는데 그게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연습할 때보다 더 잘 하네.’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멤버들의 호흡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얘네들이 나 몰래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니었는지 멤버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이라면 평소보다 조금 더 욕심을 내도 될 것 같았다.
허억! 허억! 허억!
와아아아아!!!!
관객들이 보내주는 열기가 우리의 심장을 터질 듯이 뛰게 만든다.
‘조금 더 빡빡하게 해볼까? 따라 올 수 있는 거지?’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과 멤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은 같을 수가 없다.
본인의 노래 실력에 흠뻑 빠져서 지 잘났다고 노래를 불러댄다면 과연 관객들은 쟤 참 노래 잘 부르는구나 하며 환호해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노래를 부를 땐 밸런스를 맞춰야 하고 호흡을 맞춰야 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본연의 실력을 모두 노래에 담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빡세게 간다! 너도 준비해!’
본인의 실력을 뛰어 넘는 무대를 보여주었으니 그에 화답하는 게 맞다.
나는 멤버들의 성장에 맞춰 좀 더 목소리에 진심을 담았다.
때마침 내가 부를 부분이 온 힘을 다해 내질러야 하는 파트였다.
“!!!!”
카랑카랑하고 시원시원하게, 그리고 끝없이 뻗어나가는 내 목소리에 강준이 나를 쳐다본다.
내 다음을 받아야 하는 게 강준이었기에 난감하긴 할 것이다.
제대로 받지 못하면 한껏 고양 되어 있던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주게 될 터.
녀석이 나를 왜 저렇게 보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믿는다. 할 수 있어!’
‘끝나고 면담이야, 젠장!’
‘엄살 피우지마. 할 수 있잖아?’
잔뜩 엄살을 부린 녀석이 입술을 뗐다.
강준의 매력적인 보이스가 무대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씨익~
‘거봐, 할 수 있으면서.’
강준이 보란 듯이 내 다음을 받아친 것이다.
관객들이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폭발적인 보컬에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쓸려가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페코씨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승리는 처음부터 우리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