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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49화 (249/849)

〈 249화 〉 #36. 라운드 (4)

* * *

촬영을 한 날은 푹 쉬고 다음날 아침에 회의를 시작했다.

며칠은 쉬어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으나.

“그런 말까지 해놨는데 밥이 넘어가고, 놀고 싶어지냐?”

“…당장 회의 하자.”

내가 올리비아 트리에게 선전포고를 해놨다는 말을 듣고 쉬겠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다들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 좀 꺼내봐.”

“저요!”

기우연이 가장 먼저 의욕적으로 의견을 냈다.

“Goant 노래 Superpower 어때요?”

“오, 그 노래 괜찮지.”

“노래 자체는 좋긴 한데, 장르가 너무 마이너해서 표를 많이 받기 힘든 노래야. 표도 생각을 해야 돼. 상대는 올리비아 트리잖아. 적어도 여기에선 그 사람들 팬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흐음, 그럼 밴더 One more night는?”

“우리가 그 노래 부르는 걸 소속사에서 잘도 허락해주겠다.”

처음 만나는 여자와 밤을 보내고 그게 너무 환상적이어서 우리 하룻밤만 더 함께 보내자고 유혹을 하는 노래다.

성행위를 비유하는 가사가 많아서 아이돌인 우리들이 부르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야~ 강준, 너 이런 노래 좋아해?”

“…노래는 괜찮잖아. 가사가 좀 그래서 그렇지.”

“다른 노래는 없어?”

이후로도 꾸준히 여러 노래들이 후보로 나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퇴짜를 맞았다.

그러던 중 나는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어 멤버들에게 말했다.

“우리 이번에는 비주얼로 확 압도해버릴까?”

“응? 비주얼?”

“실력이 아니라 비주얼을?”

“잘 생각해봐.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실력이고, 잘 생긴 건 반칙인가?”

“…그건 아니지.”

“비주얼도 우리 능력 중에 하나야. 우리가 노력 없이 잘 생긴 건 아니잖아. 물론 태어나길 잘 생긴 것도 있지만, 가꾸느라 고생한 것도 노력으로 쳐줘야지.”

소속사에서 우리들의 비주얼을 관리하기 위해 쓰는 돈이 얼마인가?

피부샵에서 보냈던 시간들, 마사지샵에서 보냈던 시간들, 예쁜 몸을 위해 헬스장에서 땀 흘렸던 나날들까지.

“솔직히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잘 생긴 거 믿고 나댄다는 말 들을 때마다 짜증나.”

“맞아!! 노력을 안 하면 바로 티가 난다고!!”

활동할 때도, 활동하기 전에도 항상 먹고 싶은 것을 자재해야만 했다.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 고통인지 아는가?

식욕, 색욕, 수면욕은 인간의 기본 3대 욕구이다.

이 중 하나인 식욕을 제대로 채워 넣지 못하는 고통을 참아내면서 비주얼을 관리한다.

그런데 우리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잘 생긴 걸로 쉽게 산다며 혀를 차고는 했다.

“근데 해솔이 형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 않아? 저 형은 너무 사기잖아. 우리 중에 제일 관리 안 하면서 피부는 제일 좋고.”

“난 또 왜 돌려?”

“형이 비주얼을 얘기를 하니까. 이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형이 부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멤버들은 비주얼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코인이라는 사기적인 미모 유지 화장품(?)이 있어서, 좋은 게 있으면 멤버들에게 양보를 하는 편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형이 하고 싶은 노래가 뭐야?”

“올리비아 트리를 이기려면 1라운드에서 보여줬던 걸로는 부족해. 우리가 제일 잘난 게 뭐야? 비주얼이잖아.”

에어플레인은 데뷔할 때도 실력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비주얼에 가장 먼저 주목을 했고, 좋아해주었다.

즉, 우리에게 가장 큰 무기는 실력보단 비주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라운드에서 실력을 보여주길 잘 했어. 덕분에 2라운드를 비주얼로 밀고 나가도 실력 없단 소리는 안 들을 수 있잖아.”

“분하지만 잘 생긴 게 제일 큰 무기라는 건 인정이야.”

“올리비아 트리를 상대해야 하는데 자만하고 있을 순 없지.”

멤버들도 비주얼을 내세우자는 내 의견에 긍정을 해오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것에 모두들 동의했으니 이제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 어떤 노래를 부를지를 생각해야 했다.

“드라마 OST를 부르는 거 어때?”

“드라마 OST?”

“그거 있잖아. 판타지 드라마. 엄청 유명한 거.”

“아! 불멸의 제국?”

“응. 그거. 거기 출연진으로 우리가 꾸며서 연기를 하는 거야. 무대 위에서 한 장면을 연출하는 거지.”

“하…나쁘지 않은데?”

워낙 유명한 드라마라서 안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전설의 드라마다.

제국의 한 가문이 권력 다툼을 하다가 우연히 불멸왕이라는 악마를 소환시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재 시즌 6까지 방영이 됐고 현재 시즌7이 제작에 들어간 상황.

시즌이 많아서 OST도 많았지만, 그 드라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메인타이틀은 존재했다.

“근데 그 노래에는 가사가 없잖아.”

“우리가 만들어야지.”

“뮤지컬 같은 느낌인가?”

“오! 뮤지컬도 괜찮을 것 같다.”

어메이징 스타에서 뮤지컬 무대를 보여준다고 해서 룰을 어긴 거라고 나올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관객들이 만족할 무대만 보여줄 수 있으면 만사 OK인 사람이 메인 피디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뮤지컬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지 않아?”

“4분으로는 부족하지. 적어도 한 10분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누나, 파이 피디님한테 시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물어봐주세요. 최대한 많이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알았어. 그건 나한테 맡겨. 무슨 수를 써서라도 10분은 꼭 받아 올게.”

“아! 근데 이거 저작권 같은 거 괜찮을까요?”

“그 부분도 파이 피디님한테 물어볼게!”

매니저 누나가 제법 든든한 말을 해왔다.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도전해볼 생각에 들뜬 건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멤버들 모두 하고 싶어 하는 캐릭터를 뽑기 시작했다.

“나는 덴버 역 할래.”

“덴버는 나도 하고 싶었는데.”

“겹치는 사람은 가위바위보해서 결정해. 어쩔 수 없어.”

“등장인물 또 누가 있지?”

“나나! 용술사 아오문.”

“야, 너랑 이미지가 너무 안 맞잖아.”

“솔직히 용술사는 해솔이 형이 해야지. 제국 최고의 미남인데.”

“아냐, 우연이 하라고 해. 우연이면 제국 최고 미남 할 정도는 돼.”

“흐흐흥~ 역시 행님이 짱이에요!”

기우연이 오랜만에 행님이라 부르며 내게 달라붙었다.

“불멸왕은 누가 해?”

“내가.”

사실 우연이를 위해서 역할을 양보한 게 아니다.

노리고 있는 역할이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불멸왕.

불멸의 제국에선 최종 보스, 최고 악당을 맡고 있었다.

“오!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불멸왕은 포스가 있어서 연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하잖아.”

“불멸왕 하고 싶은 사람 없어? 지금 말 안 하면 내가 한다?”

“없어.”

“근데 왜 하필이면 불멸왕이야? 악역이잖아.”

불멸왕이 저지른 끔직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굉장히 유명한 장면도 있다.

사람들을 거꾸로 매달아서 목을 자른 뒤 욕탕 위에 걸어두고 그곳에서 떨어지는 피로 목욕을 하는 씬인데, 그때 불멸왕을 연기했던 연기자가 엄청난 포스를 보여줬다.

‘역대급 등장씬으로 유명하지.’

여태까지 등장인물의 대화 속에서만 나왔고, 직접 얼굴이 나온 적이 없다가 그 씬에서 처음으로 등장 한 거였다.

압도적인 연출로 수많은 드라마 팬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불멸왕이라면 모두가 그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 장면을 무대 위에 올리면 진짜 대박일 텐데.”

“에이, 너무 유명한 건 손대는 거 아니야. 비교당한다고.”

“맞아. 잘하면 평타고 못하면 죽어라 까일 걸?”

불멸의 제국을 이름으로 걸어서 만든 2차 창작품은 굉장히 많다.

게임, 소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되어 많은 돈을 제작한 사람들에게 안겨줬다.

다만 2차 창작한 모두가 성공을 한 건 아니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 문제였는데, 투자금만 왕창 넣고 원작을 초월하기는커녕 원작을 망쳐버린 연출로 팬들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망해서 이후로는 불멸의 제국에 손을 대려는 곳이 없는 걸로 알아.”

“우리 진짜 잘 해야겠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가?”

실패했을 때 위험성이 크지만, 올리비아 트리를 이기기 위해서 이것만큼 좋은 아이디어는 없어 보인다.

“내가 제안한 건 일단 끝내고, 다른 거 제안 좀 해봐. 아직 확실하게 결정 된 건 아니고, 파이 피디님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어서 적어도 후보는 2~3개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생각이 안 나는데.”

“뮤지컬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과연 있을까?”

이미 내가 제안했던 아이디어에 다들 홀려서 더 이상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질 않고 있었다.

“와~ 우린 해솔이 형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1라운드 때도 그렇고 2라운드도 해솔이 형이 다 캐리하잖아.”

“내가 좀 대단하지. 그러니까 알아서 잘 모셔라.”

결국 그날 회의는 잡담으로 시간을 질질 끌다가 뮤지컬보다 좋은 의견이 나오지 않은 채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몇 가지 괜찮아 보이는 의견이 나오기는 했으나 ‘불멸의 제국’ 뮤지컬 무대보다 좋아 보이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방송에서 ‘불멸의 제국’ 뮤지컬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파이 피디와 얘기를 나누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 됐다.

? ? ?

“파이 피디님 반응은 일단 좋아. 10분도 충분히 빼줄 수 있대. 근데 저작권 관련해서는 그쪽이랑 얘기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하시더라.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저쪽에 확답 받아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시네.”

“오! 역시 화끈하시다.”

“지지부진 하게 시간만 끌다가 못하게 되는 게 제일 최악인데 그건 면할 수 있겠다.”

“파이 피디님이 해주겠다고 하셨으니까 저희 준비해도 되는 거죠?”

파이 피디는 어스타 무대 준비에 너무 진심인 사람이어서 피드백이 굉장히 빨랐다.

매니저 누나의 전화를 받고 자기 재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대답을 해줬고, 알아봐야 하는 일은 늦어도 내일까진 확실하게 결론을 내서 알려주겠다는 말을 해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파이 피디가 해내보겠다고 한 일은 가능하다는 얘기와 같아 보였다.

“파이 피디님이 해보겠다고 하셨으니까 준비하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오예!”

“사실 저희들끼리는 아까부터 계속 회의하고 있었어요.”

각자 연기 할 캐릭터는 모두 결정해놓았기에 어떤 장면을 뮤지컬로 만들면 좋을지 상의하고 있었다.

방송 가능 결정이 내려오고 나서부터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미 뮤지컬 무대에 꽂힌 멤버들의 기대감은 막을 수 없었다.

시작은 내가 했어도 무대를 꽉 채우는 건 애들에게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소속사 직원들까지 합류해서 본격적으로 회의를 하니 훨씬 빠르게 진도가 나갔다.

어떻게 무대를 꾸밀 것인지, 의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메이크업은, 노래의 가사는 어떤 식으로 할지…등등.

회의할 건 넘쳐났고 시간은 한정 되어 있어서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 ? ?

내 능력을 고백한 이후로 국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큰 부담을 덜었다.

무대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늘 여자들과 만나는 시간은 늦은 새벽쯤이 되어야 했지만, 그것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 팬들 장난 아니게 까탈스러울 텐데…. 그래도 성공하기만 하면 반응은 죽여줄 것 같네. 방송 될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진짜 기대되긴 한다.”

우리가 준비 중인 무대 이야기를 들은 복순 누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녀도 위험성이 있지만, 무대를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올리비아 트리는 무조건 이길 거라는데 동의를 했다.

1라운드는 현장 투표와 전문가 투표만 방영하여 승패가 갈렸지만, 2라운드부터는 생방송인데다 시청자 투표까지 받기 때문에 무대를 준비하는데 신경이 많이 쓰였다.

실수를 하면 그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는 거다.

편집도 거치지 않은 채로!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생방송은 콘서트에서 하는 실수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을 준다.

‘그런 무대에서 뮤지컬을 하겠다고 했으니 파이 피디가 미치려고 하지.’

그 여자, 처음 봤을 때부터 ‘무대’에 대한 광기가 느껴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고 하니 눈이 뒤집혀서 어떻게든 무대를 성사시켜보려고 날뛰는 중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이런 화끈한 시도를 한 참가자는 없었다며 환호했다고...

그쪽과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 받고 있는 매니저 누나가 스태프로부터 전달 받은 내용이었다.

덕분에 준비를 하던 우리들의 어깨에는 커다란 부담이 묵직묵직하게 얹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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