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 #37. 연주 누님과 (1)
* * *
어차피 욕이란 욕은 다 먹었는데, 이런 이득이라도 좀 챙겨야 덜 억울하지 않겠냐는 거다.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안 나오는 건지 연주 누님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채 침묵했다.
“다만 걱정 되는 건 이득을 챙기는 동안 해솔씨가 느낄 불쾌감입니다. 만약 해솔씨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죠.”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숨겨져 있던 작은 구멍이 나타났다!
연주 누님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해요? 해솔씨가 불쾌하면 바로 반박기사를 낼게요.”
만약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곧장 그렇게 해달라고 했겠지만, 내게는 멤버들이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 일을 인지도 올리는 거에 쓴다면 이득이 맞는 것 같았다.
다만 그 여자랑 계속 얽혀야 한다는 게 유일한 찜찜함인데….
“우리가 싫어요!”
벌떡!
기우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녀석의 뒤를 이어 다른 멤버들도 하나씩 의견을 내놨다.
“인지도는 어스타로 키우면 되는 거잖아요. 굳이 형을 희생시켜서까지 인지도를 올리고 싶지 않아요!”
“이미 스캔들을 알 사람은 다 아는 상태일 텐데, 여기서 더 인지도를 올리겠다고 대응 늦추는 것도 좀 웃기지 않나요?”
“어메이징 스타,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게요. 그런 방식은 그만둬주세요.”
인지도라는 달콤한 과실이 전혀 아깝지 않은지 멤버들은 단호했다.
“올리비아 트리를 이기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얘들아.”
“싫어요. 그런 거 안 해도 이길 수 있다고요!”
“야야. 흥분 좀 가라앉혀. 목소리 너무 높였어.”
흥분해서 씩씩대는 멤버들을 직원들이 허허 웃으며 귀엽게 봐줘서 다행이었다.
“진짜 죄송한데, 그런 자극적인 언론 플레이에 의지해야 할 만큼 저희 무대가 형편없지 않거든요. 이번에 아시잖아요. 뮤지컬, 진짜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거. 그거 좀 믿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런 식으로 인지도 높이는 것보다 훨씬 잘 해낼 수 있어요.”
스캔들을 이용하자고 했던 것도 결국 우리를 위한 일.
“애들이 이렇게까지 싫어하는데 굳이 그런 자극적인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올릴 필요는 없겠네요. 그 계획은 없던 걸로 하죠.”
연주 누님의 힘까지 더해지자 직원은 더 이상 밀어 붙일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당장 반박 기사 내는 거죠?”
“알겠습니다. 반박 기사 준비해서 바로 내겠습니다.”
몇 시간 후, 스캔들 반박 기사가 올라갔다.
예상했던 대로 반박 기사는 스캔들처럼 화제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계속 올라오던 스캔들 기사를 멈추게 하는데는 성공했다.
덕분에 난리가 났던 회사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남은 건 결국 올리비아 트리 팬들의 성난 욕설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족했다.
그리고 더 똘똘 뭉쳐서 이번 대결에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반드시 이겨서 이번 일을 복수해주고 말겠다는 게 멤버들의 생각이었다.
? ? ?
└올리비아랑 스캔들 난 동양인 남자 가수, 도대체 누구야?
└찾아보니까 빠질 만도 하던데? CG로 만든 사이버 남자 가수인 줄 알았어.
└올리비아가 이상한 놈한테 꽂혔네.
└저 정도면 빠질 만 하지 않냐? 잘생겼잖아. 그거면 끝 아니야?
└전 남친도 맛있어 보이던데, 이번 남친도 장난 아니네. 쓰읍 좋은 것만 먹고 다니는구나, 부럽다!!! 인생은 올리비아처럼!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반박기사 났는데 아직도 이 얘기 중임?
└‘아직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겠지.
└아니면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거나?
└올리비아는 매번 공개 연애했잖아.
└이번엔 상대가 아이돌이잖아. ‘아이돌’은 공식적으로 애인 만들면 은퇴해야 한다는데?
└오우,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일이람?
스캔들의 여파는 어메이징 스타가 방영 되는 순간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럴수록 더 빡세게 연습했다.
정말 꼭, 미치도록 이기고 싶은 상대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올리비아 트리라고 대답하리라.
“팝코오오온!”
“치킨!”
“김치 갈비찜!”
“족발!”
맥주가 맛있다는 걸 모르는 애들은 콜라를, 술맛을 아는 제키와 경태형 그리고 나는 맥주를 한 캔씩 손에 들었다.
매니저 누나의 특별한 허락하에 진수성찬을 차려두고 TV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통역 잘 해줘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어메이징 스타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우리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음 방영 때는 이렇게 편하게 TV 앞에 앉아 있을 수 없을 테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메이징 스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한다!”
“집중집중!”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메이징 스타 시즌11이 시작 됐다.
“우리 나왔어요! 뭐라고 해요?”
“우리 소개하고 있어. 그때 봤던 VCR나오잖아.”
“오, 그러네!”
“뭔가 가슴이 두근두근해.”
“내가 어스타에 나오다니…. 너무 감격스러워.”
특히 경태 형은 어메이징 스타의 골수팬이어서 그런지 어스타에 나온 자기 모습에 과할 정도로 감동을 받고 있었다.
“여기가 어메이징 스타 팬페이지거든? 실시간으로 반응이 올라올 거야.”
“이렇게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걸 보라고요?”
기우연은 경태 형의 패기에 놀람을 넘어서서 경악을 했다.
실시간 반응을 민낯 그대로 본다는 게 결코 쉽게 결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 안 되나?”
“형 견딜 수 있어? 우리 얘기 적나라하게 다 할 텐데?”
“그치만 이게 꿀잼인 건데….”
어메이징 스타를 볼 때마다 항상 실시간으로 반응이 올라오는 팬 페이지를 하면서 봤단다.
그래서 이번에는 본인이 참가자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팬 페이지를 꺼내 든 것이다.
“안 돼요. 저건 포기해요.”
“일단 좀 보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끌게. 같이 보자는 소리 안 할 테니까 그건 괜찮지?”
“나도 같이 봐. 반응 궁금했거든.”
“그래, 너는 멘탈 튼튼하니까 봐도 되겠다.”
“아이! 이럼 저도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요!”
결국 멤버들은 용기를 내서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는 팬 페이지를 보기 시작했다.
“영어라서 해석이 너무 어려워!”
“번역기 돌리면 돼. 잠시만.”
“오오오! 해석 된다.”
“우리 얘기 있나?”
어메이징 스타의 명성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팬 페이지에 올라오는 글의 언어가 굉장히 다양했다.
그 중에는 해석할 수 없는 언어도 있었지만, 내가 아는 언어들도 충분히 있었다.
“우리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전부 얼굴 얘기하는데?”
잠깐, 방금 스쳐간 남자 봤어? 저 귀여운 친구들은 도대체 누구야?
“아…다른 얘기는 없어요?”
“우리 팬분이 계시나봐. 여기 봐봐.”
“오오오!! 진짜네?”
게시판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어메이징 스타에 나오는 참가자들을 향한 관심이 대단했다.
“와~ 우리뿐만 아니라 나오는 참가자들 정보가 다 올라오는데?”
“네티즌들 정보력이 엄청난데?”
어메이징 스타에서 참가자들의 무대가 하나씩 나오고, 드디어 우리 무대도 방영이 시작 됐다.
“오, 우리 좀 잘했는데?”
“아~ 저 부분에 팔 각도가 좀 내려갔었네. 왜 몰랐지?”
“아니야, 크게 티 안 나. 너니까 보이는 거지 보는 사람들은 모를 걸?”
“진짜 힘 빡세게 줬다는 게 티가 나.”
“고생한 만큼 잘 나왔다.”
“쩔었구만 쩔었어!”
우리가 무대를 잘 한 것도 있는데, 카메라가 굉장히 잘 잡아줬다.
무대에 진심인 편인 파이 피디님의 노력이 담긴 연출일 것이다.
“무대 장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
“반응은 좀 어때요?”
“반응이…오오오, 나쁘지 않아! 아니, 좋은데?”
“저 무대로 우릴 씹는 건 오버긴 해. 저걸로 씹어 먹었잖아.”
“다시 봐도 완전 잘 하긴 했어.”
우리 무대가 진행 되는 사이사이에 관객을 비춰주는 카메라.
관객들이 무대를 입 벌리고 보고 있는 모습은 우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게 만들었다.
저 모습을 보려고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거 아니겠나.
└쟤네가 올리비아랑 스캔들 난 걔 있는 팀이지? 굉장하잖아!
└파이 피디가 이를 악물고 준비했네. 시즌11은 엄청나게 흥할 거야.
└글쎄, 난 별론데. 마음이 가는 참가자가 없어.
└에어플레인 탈락해라. 탈락해라. 탈락해라.
└에어플레인이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 무섭네;
└올리비아 팬인가보지. :(
└얼굴이 저렇게 맛 집인데 저길 안 간다고?
└너 어스타 팬 아니지? 어스타가 언제부터 남자 얼굴보고 표 줬냐? 진짜 진흙탕 다 됐네.
“저게 맞는 말이거든. 얼굴 보고 표주고 그러는 곳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어스타가 이렇게 된 거지? 시즌10 때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물이 흐려졌어.”
경태 형은 게시판 분위기가 자꾸 흐려지는 지금 상황이 불편한지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근데 우리 이번에 비주얼로 밀고 가기로 했잖아.”
“아니지! 우린 다르지! 화려하게 꾸민다는 거지 실력이 똥망인데 얼굴만 믿고 뻐겨보자는 게 아니잖아.”
“아니, 형.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그렇게 느끼면 어떻게 해야 되냐는 거지.”
“우린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잖아. 지금도 게시판 보면 얼굴 얘기 쏙 들어가고 실력이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있어.”
몇 개는 정말 라이브가 맞냐고 의심하는 글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의 라이브 실력이 믿을 수 없이 대단했기에 그런 거라 생각한다.
“끝났다아!”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생각보다 엄청 재밌었어, 그치?”
단순히 참가자를 소개하는 영상만 봤는데도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워낙 편집을 잘 해놔서 소개 영상만 봤음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파이 피디는 보통 1화를 통해 시청자들이 참가자에게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시청자들이 참가자들에게 ‘정’을 붙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스타가 끝나고 난 이후.
소식이 국내까지 빠르게 전달이 됐는지 내 핸드폰과 멤버들 핸드폰에 불이 났다.
지이잉 지잉
♪~♪~♪
“난리 났네.”
“넌 누구한테 연락 왔어?”
“엄마한테.”
“오~ 문자 쌓인 거봐.”
가족한테 연락이 오기도 하고, 친구한테 연락이 오기도 하고.
연예계에서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은 사람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을 받기도 했다.
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잉 지잉 지잉
‘연주 누님까지 문자를 해주셨네.’
가장 많이 문자를 보낸 사람은 민영 누나였고, 주아 누나는 잘 봤다는 말과 함께 태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냈다.
그 외에도 어메이징 스타를 잘 봤다며 다양한 곳에서 온 문자들을 열심히 답장해주고.
가장 마지막으로 연주 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멤버들이 없는 곳을 찾아가서 말이다.
“바쁘세요?”
신호음이 오래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 됐다.
아니, 어메이징 스타 모니터링 하는 중이었어. 잘 해줬더라. 고생 많았어.
“저희보단 직원 분들이 잘 해주셨어요.”
스캔들 아직도 신경 쓰는 건 아니지?
“아…무대 준비하는 게 바빠서 잊고 지내고 있어요.”
사실 오늘 어스타 팬 게시판을 봤을 때,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탈락하라느니, 프로그램에서 꺼지라느니 하는 식의 악플은 꾸준히 달렸다.
계속 그렇게 해. 네 커리어에 문제없을 거야. 매니저한테 말해놨으니까 촬영 시작해도 멀리 돌아다니지 말고 붙어 있고.
“설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저희한테 접근하려고요.”
우리가 연락을 넣어 놓긴 했는데 워낙 막나가는 성격이라 확신을 못하겠네? 파이 피디도 어메이징 스타에 스캔들이 끼얹어진 걸 좋아하지 않아서 올리비아 트리 쪽에 얘기를 넣었다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래도 걱정 되니까 조심하라고 말한 거고.
“다음에 만났을 때 저희가 이겨서 탈락시킬 거니까 괜찮을 거에요.”
올리비아 트리의 영향력을 팬 페이지에서 확실하게 알았다.
대부분 에어플레인을 언급할 때 ‘올리비아의 걔?’ 라고 우릴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지금의 무대를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당당하게 실력으로 올리비아 트리를 탈락시켜서 더 이상 우리를 언급할 때 ‘올리비아의 걔?’ 라는 단어를 쓰지 않도록 할 거다.
“멤버들 의지가 대단해요. 지금도 잠깐 쉬고 대사 맞춰보기로 했어요.”
아…그럼 잠깐 시간 못 내는 거니?
“…누님이야 말로 시간 내실 수 있는 거에요?”
연주 누님과 보냈던 밤 이후로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난 날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위치가 위치다 보니 나와의 만남 자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 눈치도 많이 봤지만, 정확히는그녀와 내 시간이 맞는 날은 거의 드물었다.
나도 시간이 안 나서 새벽에서야 겨우 잠잔 척 하며 자리를 비우고 있지 않은가?
오늘 어스타 첫 방영 날이라서 연습을 일찍 그만두고 호텔로 들어왔기에 연주 누님을 만나려면 오늘만큼 알맞은 날이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