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38. 여파 (1)
* * *
푸욱!!!
오우! 드디어!
나이스! 잘했어! 잘했다고!
역시 저럴 줄 알았어!
불멸왕의 등에 칼이 박히는 순간, 한껏 집중하고 있었던 관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불멸왕과 함께 주인공을 죽일 듯이 몰아붙이던 톰은 싸우는 와중에도 고뇌하고 있는 게 보였다.
관객들은 톰의 고뇌를 답답해했다.
불멸왕이 네 아들을 죽였잖아! 왜 그를 돕는 건데! 당장 뒤통수를 갈기라고!
관객들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톰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단검은 단숨에 불멸왕의 등에 꽂힌다.
화려한 춤을 추던 불멸왕이 쓰러지고,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성주 톰이 외쳤다.
내 아들은 어디 있는가!! 다니엘~! 다니엘~!!!! 나의 피를 이은 위대한 후계자! 그 아이는 어디에 있고, 너는 누구이기에 내 아들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가! 더 이상 현혹 되지 않을 것이다. 내 아들의 원수를 갚으리라!!!! 악마여!! 내 아들을 내어놓지 않으면 지옥 끝까지 따라가 이 깊고도 깊은 원한으로 저주할 것이다!!!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숨을 어떻게 쉬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속사포로 쏟아지는 아버지의 분노.
비로소 아들을 잃었다는 믿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자각한 톰이 피를 토해내듯 불멸왕을 저주했다.
톰이 등에 박혀 있던 단검을 빼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두 손으로 단검을 잡고 쓰러진 불멸왕의 심장을 향해 들어올렸다.
단검이 불멸왕의 심장에 박히려던 순간.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컥!
톰의 가슴에서 갑자기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입에서는 피를 토해냈고, 본인의 몸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톰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린다.
털썩!
‘안 돼!’
불멸왕의 검은 망토가 조금씩 꿈틀거리다가 서서히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이미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불멸왕의 부활은 절망감을 가져왔다.
물론 모두가 절망한 건 아니다.
‘꺄악! 부활했어!’
‘너무 멋있어!’
‘다 죽여버려욧!!!’
일부러 대비효과를 주기 위해인지 다니엘이었을 때의 의상과 180도 다른 의상을 입고 있는 불멸왕이다.
다니엘은 순백의 정갈한 제복에 화려한 금색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고, 불멸왕은 커다란 흑색 망토를 눌러쓰고 그 안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얼굴색도 일부러 좀 하얗게 만들어서 창백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여자들의 심장에 콱! 하고 박혀버렸다.
의도치 않게 창백한 피부가 ‘병약 미청년’이라는 키워드를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악당이 너무 잘 생긴 탓에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었다.
쓰러진 톰과 다시 일어선 불멸왕.
두둥 두둥 탁! 두둥 두둥 탁! 두둥 두둥 탁!
심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음악이었다.
부활한 불멸왕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검은 연기가 불멸왕의 주변에 깔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불멸왕이 후드를 벗고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내가 바로 불멸왕이다.
? ? ?
어쩔 거야?
몰라.
올리비아와 트리아는 팔짱을 낀 채로 에어플레인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녀들은 무대를 확인하고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걸 어떻게 이겨?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이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생각 없이 스캔들 냈으니까. 화나서 저렇게 이 갈고 나온 거 아니야.
스캔들 없었어도 어차피 쟤네들은 저렇게 나왔을 거야.
그걸 어떻게 장담하는데?
…1라운드 때도 느꼈는데, 얘네 엄청 독한 애들이야. 2주 만에 저런 무대를 만든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도 트리아는 말도 안 되는 퀄리티의 무대가 2주 만에 완성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뭔가 비리라도 있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쟤네가 저걸 완성시키려고 얼마나 독하게 연습 했겠냐고. 연습량에서 몇 배는 차이 났을 텐데, 뮤지컬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겼을 것 같아?
…….
압도적인 연출, 화려한 비주얼, 넋을 놓게 만드는 강렬한 음악까지.
뮤지컬을 이 정도로 준비했는데 다른 무대를 준비했다고 해서 이겼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우린 쟤네들한테 질 수밖에 없었던 거야.
아직 우리 무대는 안 보여줬거든?
저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올리비아는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고, 트리아는 그래도 아직 무대를 보여주지 않았으니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쟤네는 노래로 승부한 게 아니라 이상한 연출을 다 갖다가 붙여놨잖아. 이런 식의 무대는 불공평해!
노래만으로도 강렬한 무대였을 텐데, 연기까지 섞여 있었으니 아마 끝나면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들 거다.
너 귀 먹었어? 노래만 들어도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하는 수준이었어.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렇게 할 수 있었어!
파이 피디는 하지 말라고 한 적 없어. 우린 하겠다고 한 적이 없고. 그리고 거짓말하지 마. 저걸 시킨다고 우리가 할 것 같아? 뺀질뺀질대면서 놀러 다니면서 시간 다 쓸 거잖아.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성실함의 문제다.
그녀들은 에어플레인이 저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의 노력을 해내기엔 너무 게을렀다.
그럼 정말 이대로 져?
져야지. 어쩔 수 없어. 우린 이미 불청객이야.
최고의 컨디션으로 레전드 무대를 성공시킨다 해도 저 무대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오랜만에 정말 제대로 얼굴 구기게 생겼어.
무대 위에 오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가수도 사람인지라 무대 위가 즐겁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우리가 저 관객들에게 불청객 취급을 당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무대는 하이라이트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부활한 불멸왕은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노래를 부르며 레파신과 덴버, 하얀 매를 압도했다.
관객들은 불멸왕의 노래에 입을 쩍 벌린 채 굳었다.
나의 자랑스러운 군대여! 일어나라! 자비로운 불멸왕의 아래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라! 지옥에서 올라와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리니!
불멸왕은 관객들을 마치 자신의 군대인 것처럼 팔을 휘저었다.
사람들은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외형에 넋을 놓고 생각했다.
‘정말 이대로 병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너무 잘하잖아.’
‘소름 끼친다. 어우! 귀르가즘!’
‘그냥 이대로 불멸왕이 이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하지만 불멸의 제국 팬들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불멸왕은 이곳에서 주인공 일행의 활약에 의해 봉인 당하게 된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하얀 매가 특별한 힘을 사용하여 불멸왕의 힘으로부터 대항하기 시작한다.
‘지면 안 돼! 그 얼굴은 봉인 당하기엔 너무 아깝다고!’
점점 패배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하자 분노하는 불멸왕.
그의 카리스마에 팬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화내는 게 저렇게 멋있어도 되는 거야?’
‘짜릿해!’
이런 관객의 상황을 모르는 무대 위에선 약속한 대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 되고 있었다.
보여 줄 수 있는 무대가 10분인 만큼, 이야기는 무척이나 빠르게 진행 될 수밖에 없었다.
하얀 매가 시간을 끌고, 덴버의 도움으로 각성하는데 성공한 레파신.
그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불멸왕과 싸우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이제 불멸왕은 쓰러질 순간을 앞두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으나 체력주머니는 이미 중간에 멤버들과 나에게 고루고루 쓰고 텅 비어 있었기에 사용할 수 없었다.
무대 위는 레파신역을 하고 있는 강준과 덴버 역을 하는 남은규가 화려하게 마지막을 수놓고 있었다.
현대 무용을 접목한 춤이었다.
새하얗고 긴 천을 들고 두 명의 남자가 유려한 몸선을 이용하여 춤을 선보여주고 있었다.
‘둘이 엄청 연습하더니, 깔끔하게 잘 하네.’
나는 잠시 무대 뒤에서 의상을 교체하고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동안 관객 반응을 살폈다.
‘오.’
관객들 대부분이 딴 짓을 하지 않고 무대 위에 날뛰고 있는 강준과 남은규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저렇게까지 집중해주는데, 나도 더 열심히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실수가 한 번도 없었던 건 기적이었다.
워낙 연습 기간이 적다보니 자잘한 실수는 어쩔 수 없이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간 큰 것까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자잘한 실수조차도 없었다.
‘역시 우리 팀이 실전에 강하다니까.’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이제 마지막을 화려하게 꽃 피우러 가야 했다.
? ? ?
[단언컨대, 그들의 무대는 완벽했다. 에어플레인, 올리비아 트리로부터 승리!]
[경악스러웠던 어스타 무대. 최고의 이변이 일어났다! 에어플레인 3라운드 진출!]
[올리비아 트리 2라운드 패배! 거만이 발목 잡다.]
[밋밋했던 올리비아 트리, 도대체 2주일동안 무얼 했나?]
[스캔들 내느라 바빴던 올리비아 트리, 압도적인 무대를 준비하느라 바빴던 에어플레인.]
[도대체 어디서 온 천재들인가? 에어플레인, 6명의 아름다운 남자들에게 홀린 시청자들.]
[어메이징 스타 시즌11 최고 시청률 갱신! 이런 무대는 처음.]
[불멸의 제국 콜라보 시도한 에어플레인, 특혜인가?]
3라운드 진출.
물론 중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3라운드 진출이 아니었다.
2라운드에서 보여주었던 뮤지컬 ‘불멸의 제국’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어메이징 스타를 보지 않고 있던 불멸의 제국 팬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동양인 남자 아이돌 그룹이 뮤지컬로 만들어서 레전드 무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우리의 무대가 유티비에 올라오고, 순식간에 1,000만 조회수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3라운드에서 져도 아무 문제 없을 정도야!”
어스타 무대를 본 불멸의 제국 팬들 사이에서 진짜 뮤지컬로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진지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를 부르는 단체의 급도 2단계는 상승했으며 그 값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무대 하나를 했다기엔 너무 엄청난 변화였다.
“이게 인생샷이랑 비슷한 건가?”
“인생샷으로는 부족하지! 너희들 이제 끝났어. 해외진출 성공이라고!”
매니저 누나는 꺅꺅대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정말 우리한테 섭외가 물밀 듯이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벌써 성공이라고 쳐도 되는 거에요?”
“당연하지!! 어스타 무대 준비한다고 스케줄을 안 뛰어서 실감을 못하는 거지, 지금 장난 아니다. 너희들 팬이 어휴~ 말도 못하게 늘었어.”
“바깥에 나갔는데 막 불멸의 제국! 막 이러면서 다 알아보고 그러는 수준인 거에요?”
“진짜 그럴지도 몰라. 다들 너희들 얘기만 하고 있다고!”
마지막에 화려하게 터트려버린 우리 무대가 어스타를 점령했다.
다른 가수들의 무대는 소리 소문없이 묻혀버렸다.
불멸의 제국 뮤지컬을 넘어서는 무대가 없었다.
사람들의 박수 세례가 무척 기뻤다.
2주 동안 연습실에서 흘렸던 땀방울이 아깝지가 않은 순간이다.
“근데 올리비아 트리는 왜 저렇게 욕을 먹고 있는 거에요? 소속사에다가 따로 사과 전화까지 해줬는데 저렇게 욕 먹고 있으니까 좀 불쌍하네요.”
촬영이 있는 날, 자기도 스캔들을 낸 게 미안하긴 했던 모양인지 우리에게 접근해서 말을 걸어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우리에게 패배하고 나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패배할 줄 알았다는 듯이 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덕분에 한껏 경계하던 매니저 누나는 한시름 덜었고, 우리도 편하게 촬영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다음날 소속사에다가 직접 본인이 전화를 해서 우리에게 스캔들이 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왔다고 한다.
당시에 우리는 피곤해서 잠들어 있는 탓에 직접 연결은 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라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으니 꽁해 있던 마음이 풀리긴 하더라.
그런데 이후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언론에서 올리비아 트리를 이상하게 공격해대기 시작한 것이다.
올리비아 트리의 무대가 우리 무대가 너무 심하게 비교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 그룹’ 불성실한 태도는 유명.]
[곱게 자란 재벌 딸들, 무엇이 아쉬웠겠나? 팬들의 아쉬움은 신경 안 써.]
그녀들을 저격한 기사는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근데 사실을 따져보면 그녀들의 무대가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올리비아 트리는 평소처럼 무대를 한 거였다.
지금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와 너무 비교되는 밋밋한 무대를 한 올리비아 트리를 욕하고 싶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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