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62화 (262/849)

〈 262화 〉 #39. 사장님의 유혹 (1)

* * *

란나는 21살의 붉은 머리를 가진 여대생이다.

여느 또래 여성들처럼 연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고, 나도 언젠가는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해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평범한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기대한 것만큼 행복하지도,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지도 않았다.

일단 뭔가 해보려면 님을 봐야 하는데, 그 님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고 그녀의 주변에는.

‘저 지긋지긋한 년들밖에 없으니까.’

깔깔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날 좋은 주말에 만난 친구들이 깔깔대며 웃고 떠들었다.

그녀들 모두 남자와는 연이 없는 모태솔로들이었다.

“너희들은 남자 안 만나?”

란나가 입맛 뚝 떨어지는 말을 해버렸다.

자기가 말해놓고도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들의 눈빛이 섬뜩해진다.

“저년이 왜 뜬금없이 시비야?”

“디질래? 남자를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못 만나고 있는 거잖아.”

“그렇게 깔 거면 남자 소개나 시켜주고 까라?”

란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친구들의 성난 눈초리에 찔끔해 목을 움츠렸다.

“아니, 까려는 뜻으로 물어 본 게 아니라 왜 우리가 연애를 못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물어 본 거야.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멀쩡하게 생겼잖아.”

다들 하자 없는 여성들인데 남자랑 사귀질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왜 자신들이 남자를 사귈 수 없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고치길 바랐다.

생활고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보면 숨이 막히곤 하는데, 남자라도 만나야 그 답답함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뭘 그렇게 고민해? 누가 봐도 답은 나와 있는데.”

“답을 알아?”

“응. 우리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하나야. 주변에 남자가 없어.”

“!!”

“!!”

“확실히 네 말을 들어보니까 맞는 말이긴 한 것 같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남자가 없어.”

“대학교 가면 남자 만날 수 있다던 선생님 말은 역시 거짓말인 거지?”

“선생님이 대학교에 다녔을 땐 이 정도로 남자가 없진 않았을 걸.”

“요즘 심각해지긴 했어. 뉴스에서 매일 얘기하잖아. 남자가 부족하다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다가 남자를 발견해도 이미 임자가 있다는 거야.”

“맞아. 남자를 꼬시려면 임자 있는 여자를 옆에 두고 유혹을 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냐고.”

친구들이 진지하게 얘기하기 시작한다.

역시 란나의 생각처럼 남자친구를 못 만드는 이유를 우리 스스로에게 찾기 힘들었다.

우리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건 남자의 숫자가 극단적으로 적어서인 것이다.

“정부에서 해결책이라고 정자 기증 의무화 정책? 뭐 그런 걸 만들었던데.”

“지금 그걸 시작해도 우리 짝은 없지 않아?”

“내 남편이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니. 충격적인데?”

친구들은 남자와 연애를 하는 걸 거의 포기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국제결혼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난 그거 한 번 해볼까 싶어.”

“국제결혼이면 동남아 쪽? 그쪽에 남자 좀 있대?”

란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좀 평범하게 연애를 하는 건 불가능한 거야?’

많은 걸 바란 게 아닌데, 현실은 평범함조차도 불가능해져버렸다.

“야, 우리 이러고 시간 보낼 게 아니라 여기 한 번 가볼래?”

“어디?”

“여기 카페 주인이 남자인데, 직접 커피 타준대.”

“헉! 사장님이 남자라고? 뭐하니? 당장 일어나지 않고.”

“아니, 그 전에 제일 중요한 걸 물어봐야지. 잘 생겼냐?”

“말해 뭐해! 당연하지. 근데 여기 카페 오픈이 복불복이야. 여는 날도 있고, 안 여는 날도 있거든. 사실 안 여는 날이 더 많기도 해.”

“자기 마음대로 열었다가 닫았다가 그런다고? 장사를 뭐 그런 식으로 해?”

말도 안 되는 장사법이다.

란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자신은 돈을 벌겠다고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고 산다.

그런데 남자라는 이유로 불성실하게 일하면서도 잘 먹고 잘 산다고 하니 불쑥 거북감이 들었다.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있는 란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안 갈 거야?”

“…아니, 가야지.”

여자는 잘생긴 남자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

카페는 다행스럽게도 문이 열어져 있었다.

닫힌 날이 대부분이라더니 운이 좋았다.

문제는 이미 사람들에게 이 소식이 퍼졌는지 카페 앞에 줄을 서고 있는 인파가 어마무시하다는 거다.

“와~ 줄 선 것 좀 봐. 징그러울 지경인데.”

“얼마나 잘 생겼으면 저 지경이 나?”

그녀들은 상상 이상의 숫자로 줄이 선 걸 보며 경악했다.

아무리 잘생긴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라지만, 상식을 넘어서는 줄이었다.

잘생긴 남자가 운영하는 가게가 이곳 하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대감 주고 실망스러우면 안 되는데….”

“나만 믿어. 진짜 장난 아니래. 얼굴보고 성불하는 줄 알았대.”

“근데 줄이 너무 길잖아. 기다려도 못 보는 거 아니야?”

“여기 테이크아웃만 해서 금방금방 줄어들어. 메뉴도 간단한 것들만 하고.”

만들기 힘든 메뉴는 뺐고, 간단한 것들을 위주로 장사를 하며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와 테이블을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현명하네.”

“그거 만들었으면 자리싸움 오지게 했을 듯.”

줄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가게 주변에 몰려있는 사람의 수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커피를 받아놓고 또 줄을 서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또 줄을 서는 경우에는 무언가를 떠올리는지 몽롱한 표정으로 히죽거리면서 커피를 소중하게 홀짝홀짝 마셔댔다.

“저 사람들 기분 나쁘네. 웩­!”

“가게 주인한테 홀려서 그래. 우리도 나중에 저런 얼굴로 줄 서고 있을지도 몰라.”

앞에 있는 줄이 줄어든 것 이상으로 그녀들 뒷줄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란나와 친구들의 차례가 되었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

“…….”

“…….”

“…….”

네 사람은 일제히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으로 가게 주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사, 사람이야?’

그녀는 자기가 CG를 보고 있는 건가 싶어 두 눈을 비볐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눈을 아무리 비벼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살아있는 남자였다!

가게 사장님은 그녀들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싱긋 웃으면서 친절하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손님? 주문 도와드릴게요.”

“아…헉! 죄, 죄송해요. 너, 너무 놀라서….”

“괜찮습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서요. 하하.”

이 남자, 목소리까지 환상적이다.

란나는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에서 억지로 목구멍을 열어 주문을 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게 사장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그와 대화를 나눠본 건 란나가 유일했다.

“어? 아르바이트 구하세요?”

사장의 얼굴에서 겨우겨우 시선을 떼고 친구들을 챙기려던 란나는 문득 시야에 들어 온 글귀에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물었다.

가게 사장은 커피를 만들면서 능숙하게 란나의 질문에 응답했다.

“네. 제가 따로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어요. 혹시 생각 있으세요?”

“아~ 따로 일을 하시는구나. 그래서 카페를 여는 시간이 유동적이셨던 거군요.”

“사실 이 카페는 제 오랜 꿈이었어요. 취미 같은 거랄까요? 먹고 살려면 일을 그만둘 순 없고, 이대로 있으면 평생 못 이룰 꿈이겠다 싶어서 시간이 안 될 걸 알면서도 저지른 거죠. 시원하게 말아 먹으면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근데 예상과는 달리 장사가 너무 잘 되는 거다.

여는 시간도 불규칙하고, 장사하는 시간도 짧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란나는 사장님의 말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얼굴로 장사를 하시는데 가게가 망할 리가 없잖아요.’

아마 그가 존재하는 이상 카페는 절대 망하지 않을 거다.

“혼자서는 도저히 가게를 관리하기 힘들어서 접으려고 해도 손님들이 여는 시간은 상관없으니까 장사만 해달라고 하셔서요. 생각한 게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거였어요.”

“사장님이 안 계시면 이 가게가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아마 손님들이 훅 줄어버릴 거다.

“가끔 와주기만 해도 된다고 해서…. 힘드려나요?”

“…아르바이트생을 잘 고르셔야 할 것 같아요.”

사장을 찾는 손님들이 한 둘이 아닐 거고, 그걸 아르바이트생이 다 감당하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

사장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순진하게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가게를 잘 꾸려주면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많이 신경을 못 쓰다 보니까 자기 가게처럼 일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직원이요?”

가게를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직원을 구한다고?

사장은 바빠서 잘 신경 못 쓰고?

‘그거 좀 꿀알바 아닌가?’

더군다나 사장과 직원 관계가 되면 저 얼굴을 적어도 손님보단 더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저 얼굴만 있다면 복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수준이었다.

“페이는 어느 정도 되나요?”

“글쎄요, 가게를 전적으로 믿고 맡겨야 하니까 순매출의 20%정도 주면 만족할까요?”

“수, 순매출 20%요?”

“그래야 더 열심히 운영해주지 않겠어요? 다행히도 건물이 제 거라서 유지비가 크게 들진 않거든요.”

“!!”

건물이 사장님 거라고?

그런데도 순매출로 월급을 주고?

란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대학교를 나온다고 해도 취업은 힘들다.

아니, 그렇게 취업을 한다 해도 이곳 직원이 돼서 벌게 될 돈보다 많이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장님을 찾는 사람들이 들락거리기만 해도 하루 매출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차라리 이 카페를 내 가게처럼 열심히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그녀는 카페를 운영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자아~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음료가 나와버렸다.

좀 더 많이 시킬 걸!

란나는 초조함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두 주먹을 꽉 쥐고 충동적으로 말을 뱉었다.

“저, 저! 아르바이트 하는 거 관심 있는데 어떻게 지원하면 될까요?”

“아! 정말요? 관심 있으세요? 어…그럼 일단 안으로 들어와 주시겠어요?”

“네?! 지금요?”

“네! 지금요.”

가게 사장은 행동력이 엄청났다.

직원을 뽑아야 한다며 가게문을 거침없이 닫아버렸고.

앉은 자리에서 그녀가 이력서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그 과정에서 란나 또한 친구들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면접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이 잘생긴 CG 사장님은 카페 운영에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걸 본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눈치였다.

“와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오래하셨네요. 저보다 아는 게 더 많으시겠어요!”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는 대부분 알아요. 물론 가게 사정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요.”

미성년자일 때부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렇게 일한 기간은 무려3년이었다.

그 정도 다녔으면 카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부분 알게 된다.

아르바이트생이 3년이나 다녔으면 사장님도 많은 것들을 믿고 맡기게 되기 마련이니까.

“저는 되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거래처가 있기는 한데, 좋은 곳인지도 잘 모르겠고….”

“음, 제가 조언을 좀 드려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음, 일단 커피가 맛이 없어요.”

“윽!”

“원두는 어디서 거래하세요? 아무래도 커피는 원두가 진짜 중요하거든요.”

이 가게가 잘 된 건 순전히 가게 주인의 얼굴빨이었다.

커피는….

‘가성비를 생각해봐도 별로야.’

가게 주인은 그녀의 예리한 지적에 전전긍긍하며 명함 하나를 꺼내왔다.

“어…여기 이분한테 전적으로 믿고 맡겨서 물건을 받아쓰고 있어요. 제가 물건을 주문 넣으면 가져다주세요.”

그녀는 주문서를 받아들고 단가를 확인했다.

커피 맛에 비해 원두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들쭉날쭉한 장사 시간에 버려지는 원두도 많았다.

한심하다.

차라리 돈을 바닥에 버리는 게 더 생산적인 활동이 될지도 몰랐다.

란나는 순간 열이 올라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식으로 장사하면 안! 되는…거에요오.”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사장님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의 화가 푸시식~ 식어버렸다.

‘너, 너무 귀여워!’

180cm는 훌쩍 넘어 보이는 큰 덩치에 결 좋아 보이는 밝은 갈색 머리에 강아지상 얼굴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그런 사장님이 그녀의 호통에 시무룩해진다?

당연하지만 굉장한 파급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장님이 사랑스러워서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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