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39. 사장님의 유혹 (2)
* * *
사장님의 이름은 ‘진’이었다.
너무 사기 캐릭터다.
어떻게 된 게 이름도 잘 생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잘생긴 사장님은 너무 바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거지?”
자신에게 가게 열쇠를 맡기고 연락이 없다.
뭐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기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 온 자신을 온전히 믿고 가게를 맡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을 너무 믿는데. 아니면 상관이 없는 건가? 하긴, 건물이 자기 건데.”
이런 곳에서 버는 돈은 그에게 코 묻은 돈일지도 몰랐다.
그나마 아예 신경을 끈 건 아니라서 가게에 좀 더 나은 일인 것 같으면 자신에게 상의를 하지 않고 바꾸는 대신 자신에게 메시지를 넣어달라고 했다.
전화는 바빠서 못 받을 확률이 많아서 메시지를 남기면 나중에 읽고 확인하겠다는 거다.
“에휴, 모르겠다. 일이나 하자.”
사장이 독특하긴 한데 무슨 상관이랴?
그녀는 돈이나 벌면 됐다.
란나는 본격적으로 카페를 운영하기 전 가게에 물건을 대주는 거래처와 담판을 했다.
까다롭게 원두를 다시 고르고, 더 다양한 레시피의 음료를 추가시킨 후에야 가게를 다시 열었고 그녀는 예상했던 것처럼 가게 주인을 찾는 손님들의 질문 세례를 해쳐나가야 했다.
“어?! 가게 주인 바뀌었어요?”
“아니요. 아르바이트생이에요.”
대부분이 사장님을 찾았고.
“아~ 뭐야, 다른 사람이잖아? 여기 사장님 어디가셨어요?”
“안 오세요.”
“언제 오는 데요?”
“저도 잘 몰라요. 가끔 들리시는데 그분 스케줄을 제가 알지 못해서요.”
꼬치꼬치 사장님 스케줄을 캐묻는다거나.
“혹시 아르바이트생 더 구하진 않나요?”
“아직까진 그럴 예정 없습니다.”
“여기 알바 어떻게 되신 거에요? 알바생 언제 구하는지 몰랐는데.”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많았다.
사실 알바생을 더 구하기는 해야 했다.
학교는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았고, 때문에 수업이 끝난 오후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방학을 하기 전까지는 누군가가 오전동안 가게를 맡아줘야 하는데….
솔직한 심정으론 다른 사람을 지금 구하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웬만하면 그녀 혼자서 꾸려나가보고 싶었다.
‘방학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버텨보자. 지금 알바생을 구해도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사장님 보려고 들어오는 걸 텐데 뭐.’
괜히 들어와서 분위기나 안 흐리면 다행인 거다.
알바생 관리를 해본 적 있어서 일하는 것보다 알바생 관리하는 게 더 짜증나고 힘든 일이라는 걸 잘 아는 란나는 혼자서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볼 생각이었다.
‘죽 쭤서 개 줄 순 없지.’
지금은 다른 사람을 더 구해서 짐을 더는 것보단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의 능력을 사장님에게 보여줄 시기였다.
카페를 열고 그녀 혼자서 장사를 시작하자 손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기존의 손님들은 모두 사장님의 얼굴을 보러 온 여자들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란나는 줄어드는 손님 중에서 오로지 ‘맛’으로 가게에 올 손님을 만들어야 했다.
“사장님이 안 계시는 건 좀 아쉬운데, 커피 맛이 확 좋아졌더라고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원두도 더 좋은 걸로 바꾸고, 메뉴도 추가하니까 손님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동안은 메뉴가 좀 단조롭긴 했죠. 저는 라떼만 마셔서 상관없었지만요. 아무튼 맛에 신경 써줘서 전 좋네요. 제가 맛에 좀 예민해서 입에 맞는 곳을 찾는 게 쉽지 않거든요. 가격도 내 마음에 쏙 들고.”
그녀의 노력을 다행이도 손님이 알아줘서 점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온 손님들이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영 시간이 짧았던 걸 문을 늦게 닫는 걸로 대체했다.
밤 12시까지 장사를 하고 카페를 정리한 뒤 집에 돌아오면 새벽 1시가 됐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잠에 들었다가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으며 공강 시간에는 과제를 하는 식으로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힘들다.’
당연하지만 여유가 없는 삶은 버티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성취감이 있었다.
매일매일 번 돈을 관리하면서 내가 받게 될 돈을 확인하면 피곤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당으로 계산해서 돈을 받을 때는 시간을 때우는 게 가장 중요했는데, 순매출 퍼센트로 월급을 받게 되니 손님 한 명 한 명이 소중해졌다.
그날도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 카페를 열었을 때였다.
“꺄악!!”
“아, 깜짝아.”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웅성대는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가게 문쪽에 시선을 주었다.
“너무 잘 생겼어!”
“미쳤다. 미쳤어.”
웅성웅성
여자들의 꺅꺅대는 소리와 함께 강아지 상의 엄청난 미남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
“란나씨!”
그는 남성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 엄청난 의상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세, 섹시하다.’
강아지도 섹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던 것 같다.
“잘 지냈어요?”
“쿨럭, 네, 네. 사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꺄악! 어떡해!! 나 실물로 보는 거 처음인데 존나 잘 생겼어!”
“미리 말하고 올 걸 그랬나요? 저녁은 먹었어요?”
“어…네. 대충 먹었어요.”
“사람 맞아? 종이 다른 것 같은데.”
“세상에, 저 얼굴로 일반인이라고?”
“연예인은 아니겠지?”
“연예인이면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든든하게 못 먹었을 것 같아서 샌드위치 사왔어요. 먹으면서 일해요. 그나저나 얘기를 듣긴 했는데, 카페가 정말 많이 바뀌었네요.”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그를 보며 경탄하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려왔다.
그런 사람들의 호들갑이 익숙했던 건지 사장님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덤덤하게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어서 먹어요. 가게는 제가 보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건네준 샌드위치는 엄청 맛있었다.
거짓말 안치고 란나가 평생 먹었던 샌드위치 중 제일 맛있더라.
‘사장님 얼굴이 옆에 있어서 맛있는 건가?’
그녀는 오물오물 샌드위치를 먹었고, 사장님은 정장 자켓을 벗고 앞치마를 걸친 후 음료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근데 사장님, 정장을 입으셨네요. 일하다가 오신 거에요?”
“네. 일하다가 시간이 잠깐 나서요.”
란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장님이 정장을 입고 있는 건 범죄인 것 같아요.’
여러 사람 죽일 것 같은 압도적인 비주얼이다.
저 모습으로 일을 했다니.
그와 함께 일한 동료의 정신건강이 걱정 됐다.
“가게를 잘 운영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요. 혼자서 가게 운영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요?”
“아뇨! 전혀 안 힘들어요. 요즘 일이 너무 재밌어서 학교 수업을 받고 있을 때도 카페 생각밖에 안 날 정도거든요.”
“학교 수업 중요한데….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저는 가게가 유지 될 정도로만 운영 되도 괜찮아요.”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돈도 그만큼 벌고 있고요.”
“음, 그럼 이거 비타민 사탕 같은 건데, 피곤할 때마다 하나씩 먹어요. 다른 사람 주지 말고 혼자만 먹어야 해요? 비싼 거거든요.”
“아…!”
사장님이 사탕이 담긴 병을 건네주며 잔망스럽게 윙크를 한다.
당연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애교에 란나의 심장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의 잔망짓은 직업병 때문임을 모르는 란나는 거칠게 뛰는 심장과 벌게진 얼굴에 쉽사리 진정하지 못했다.
그녀가 마른세수를 하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완전 반칙이짆아. 나랑 사귀어줄 것도 아니면서.’
처녀 가슴을 얼굴로 두들기다니!
저런 남자가 자신을 꼬실 생각을 할 리는 없을 테니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 분명하다.
‘그게 더 악질이지.’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가 된 기분을 느낀 란나가 화끈거리는 얼굴을 겨우 진정시키고 사장님을 다시 바라봤다.
“사장님, 그렇게 얼굴 쓰시면 제가 많이 곤란…!”
꺄악!
“사장님!!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사장님의 자각 없는 악질적인 행동을 그만둬달라고 말하려던 순간.
엄청난 수의 손님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진짜 있어!”
“꺄아아악!”
“정장 입으셨네요? 너무 잘 생기셨어요!”
“아~ 나 코피 날 것 같아.”
찾아오는 손님들은 사장님이 카페에 떴다는 걸 알고 온 듯했다.
‘뭐 연락책이라도 있는 건가?’
란나가 그동안 노력해서 정상적인 카페로 만들었던 가게가 다시 사장님 얼굴을 보러 돈 팬사인회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장님은 왜 연예인을 안 하시는 거지?’
이런 영향력이라면 카페나 다른 일을 할 게 아니라 연예인을 했어야 하는 게 맞다.
란나는 순식간에 생긴 줄에 질색하며 손을 벌벌 떨면서 음료를 만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장님이 란나의 보조를 해줬다.
사장님이 있으니 한결 편하기는 했다.
‘그냥 돌아가주는 게 더 나을지도.’
여기 모인 손님들은 커피를 마시러 온 게 아니라 사장님이랑 어떻게든 한 마디라도 하고 싶어서 온 손님들이다 보니 그가 사라지면 줄도 없어질 게 분명했다.
‘사장님한테 돌아가 달라는 소릴 어떻게 해?’
그리고 그녀도 사장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몸과 정신이 피로하나 사장님 얼굴만 보면 피로가 싹 사라진다.
숨 쉴 틈도 없이 음료를 만들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손님은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다행인 것은 손님이 안 줄어도 시간은 줄어든다는 거였다.
‘와~ 벌써 12시야?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지?’
영업이 종료 될 시간이 오고서야 아쉬움을 가득 담은 손님들이 사라졌다.
란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가게 문에다가 close 팻말을 걸었다.
그리고 음료를 만드느라 엉망이 된 카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와~ 많이 벌었네요.”
“얼마나 벌었어요? 헉! 이거 진짜에요? 평소에 거의 4배인데요?”
그녀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사장님이 돈을 확인했다.
평소 가게 매출의 4배가 뛰었다.
이벤트를 한 것도 아니고 고작 사장님이 가게에 왔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장님이 계속 가게에 계시면 돈 장난 아니게 많이 벌겠어요.”
“아쉽게도 바빠서 안 돼요. 그래도 최대한 시간 내서 자주 올게요. 혼자서 일하기 많이 힘들죠?”
“사실 사장님이 안 계신 날은 이렇게까지 손님이 많지 않아요.”
“어…그럼 제가 안 오는 게 더 나은 걸까요?”
사장님의 말에 란나가 고개를 격렬하게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니죠. 가끔 오셔서 매출 올려주셔야 해요.”
“하하, 그럼 다행이에요. 제가 방해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거든요.”
“전 오히려 사장님이 여길 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걸요.”
가끔 오는 사장님의 얼굴이 있어야 일할 맛 나는 거 아니겠나?
그의 얼굴은 직원복지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가게를 모두 정리하고, 사장님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가게를 나섰다.
차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그가 끌고 온 차가 비범했다.
‘역시 돈 많은 게 맞았네.’
어색하게 차에 올라탔다.
집 주소를 알려주니 사장님이 능숙하게 차를 몰았다.
“매일 이렇게 늦게 들어가는 거에요? 피곤하겠다.”
“학교 때문에 오전에 열지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보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역시 제가 사람을 잘 골랐네요. 란나씨가 가게를 잘 운영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전 사장님이 절 너무 믿으셔서 당황했어요.”
“그냥 이 사람이면 제 가게를 잘 운영해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직감이 좀 잘 맞는 편이거든요.”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세 집에 도착했다.
란나는 벌써 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주 천천히 안전벨트를 풀어냈다.
‘하, 일어나기 싫다.’
저 남자가 내 남자가 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란 것이다.
물론 몸은 피곤해서 당장 집에 들어가서 쉬라고 외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내일 하루 종일 집에 처 박혀서 쉴 예정이었기에 얼마든지 더 피곤해도 되는 날이었다.
‘미친년.’
란나는 이상한 상상을 한 스스로를 욕하며 아쉬움을 털어내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말했다.
“저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사장님.”
사장님은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처럼 자신을 잡아주지 않을 거다.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여자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꾸벅 인사를 한 뒤, 차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건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어깨에 사장님의 손이 살포시 얹어졌다.
“란나씨.”
“에네?!”
화들짝 놀란 란나가 고개를 돌려 사장을 바라봤다.
그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 주말인데 뭐할 거에요?”
“어…아마 집에서 쉬겠죠?”
“아하, 그럼 약속 없다는 거네요? 잘 됐다. 혹시 안 피곤하면 야식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그녀의 평범했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드라마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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