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 #39. 사장님의 유혹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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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함락시키는 건 내게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건 그녀의 집에 몰래 침입해 아이템으로 그녀의 바램을 엿봤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란나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싶어 했고, 그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게임 같은 것이었다.
주변에서 그게 재밌다고 하니까 한 번 자기도 해보고 싶은 거다.
하지만 란나는 게임에 돈 그러니까 ‘현질’까지 해가면서 즐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발만 담가서 맛을 보고 아~ 이런 맛이구나를 알게 되면 만족하고 접을 사람인 것이다.
그런 성향이기에 포니의 상사가 그녀를 콕 짚어서 얘기한 걸지도 모른다.
‘남자가 필요 없는 여자.’
그녀의 미래를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아이템을 사용해 모든 가능성을 따져봤을 때 해피엔딩이 나오는 수가 극히 적었다는 건 그녀의 미래에도 남자가 붙어 있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 같다.
‘적어도 아무나 데려다가 찍어 놓은 게 아니라는 거지?’
그녀를 꼬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녀와 계속 된 관계를 갖도록 하는 게 문제인 상황에서 나는 한 가지 꾀를 냈다.
현질이라는 게 원래 버는 씀씀이에 따라 마음이 좁아질 수도, 넓어질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녀가 연애를 할 수 있을 만큼 주변 환경이 넉넉해진다면 연애를 오래 이어갈 수 있어진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다만 그녀는 책임감이 강해서 스스로 이룬 결과가 아니라 남자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라면 순식간에 흥미를 잃고 먼저 이별을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물론 궂은일은 죄다 비앙카한테 넘겨버렸지만.’
비앙카는 착실하게 내 명령을 듣고 110% 이상 훌륭한 준비를 해와줬다.
란나가 자주 다니는 곳의 건물을 구매하고 커피점까지 준비해준 것이다.
이제 문제는 란나를 콕 짚어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템을 몇 개를 썼는지….’
포니에게서 뜯어냈던 코인의 대부분을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드는데 사용했다.
겨우 그녀가 가게에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그녀를 홀려서 아르바이트 생으로 그녀를 고용했다.
다행이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 된 과정이 어색하진 않았는지 의문을 갖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가게 운영에 진심이었다.
내가 어메이징 스타 3라운드 무대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시간을 내서 왔을 때, 가게는 내가 어설프게 운영했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역시 사귀는 관계까지 가는 건 쉽단 말이지.’
그녀와 헤어지기 직전, 내가 제안한 데이트를 란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란나씨는 주방에서 요리 중이었다.
요리하고 있는 장소는 그녀의 자취방.
그렇다.
나는 지금 그녀의 자취방에 들어 앉아 있는 상태였다.
야식을 먹자고는 했는데 내가 이 근처에 뭐가 있는지 알 리가 없지 않나?
더군다나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가는 늦은 밤이었다.
‘남자가 이 시간에 바깥에 돌아다니다간 큰일 날 수 있어요. 무, 물론 늦은 밤에 여자 자취방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자취방보다 안전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란나는 횡설수설하면서 다른 뜻이 없는 제안이었다는 걸 필사적으로 어필했다.
물론 나는 그녀와 엉큼한 짓을 할 생각이 100%였기에 순순히 자취방으로 가는 것에 동의했다.
사실 늦은 밤 남자가 여자 자취방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녀도 눈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닌지 자취방에 들어와 나를 앉히면서도 굉장히 긴장한 티를 냈다.
‘어색하네.’
“그으…야, 야식 먹기로 했죠? 제, 제가 소시지 볶음 해올게요!”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란나씨가 주방으로 도망쳤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전부 털어오는 것인지 내가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음식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소시지 볶음을 하는 사이 나는 자취방을 구경했다.
자취방은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었다.
TV조차도 없는 방.
아기자기한 살림살이가 군데군데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되게 오랜만이네.”
나도 예전에는 이런 방에서 살았었다.
돈도 없고,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시간들.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대학을 다녔고, 취직을 위해 고생을 했다.
그뿐인가?
그렇게 고생해서 들어간 회사는 생각만큼 내 삶을 여유롭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학생 때는 대학교 들어가면 좀 편하게 지내겠지 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취직을 하면 좀 편하게 지내겠지 했으며, 취직을 한 이후에는 내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은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조금 더 좋은 집에 살게 됐지만, 그 집이 좋다는 걸 누릴 겨를도 없었으니까.’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 건데, 어쩐지 일을 하기 위해 먹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려고 태어났나 생각이 들 때즘.
포니를 만났고 새로운 몸에서 새로운 신분이 되어 살아가게 됐다.
지금도 일을 많이 하는 건 맞지만, 그때와 지금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빵에다가 넣어서 먹으면 맛있어요.”
란나씨가 소시지 볶음을 해왔다.
그녀는 이 소시지 볶음을 빵에다가 넣어서 먹으면 맛있다며 자신만의 레시피를 선보여줬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그렇게 먹으니 맛있더라.
“정말 맛있네요.”
“그렇죠? 제가 개발한 레시피에요. 이렇게 먹으면 하나만 먹어도 속이 든든해져요.”
그녀는 내가 마음에 들어하자 걱정하던 얼굴을 활짝 폈다.
입에 먹을 게 들어가자 둘 사이에 있던 어색함도 많이 사라졌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대화를 할 거리들이 넘쳐났다.
가게에 관련 된 얘기를 나누다가도 란나씨는 은근슬쩍 나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사장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 거에요?”
“음, 출장을 자주 다녀야 하는 일을 해요.”
“아~! 그래서 카페에 신경을 못 쓰신 거였구나.”
“사장이면서 카페를 너무 방치해서 놀랐죠?”
“솔직히 말하면 이러다가 불쑥 가게를 접어야 할 것 같아요 라고 말하실까봐 걱정 많이 했어요.”
“이 카페는 저한테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큰일이 나지 않는 이상 카페 문을 닫지 않을 거에요. 애초에 돈 보고 시작한 카페가 아니었어요. 그냥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큰 위안이 되거든요.”
란나씨가 카페에 큰 애정을 갖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그녀가 나와의 관계를 가볍게 끝내려 하지 않을 거다.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취준생들에게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다.
나에 대한 애정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자리에 대한 애정이 더 큰 스타일인 것이다.
‘살짝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한데, 나도 썩 떳떳한 입장은 아니니까.’
그녀를 온전히 사랑으로 내 옆에 묶어 둘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중이었다.
수차례 아이템을 사용해보며 느낀 절대 명제가 있다면 아이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임신을 해도 곁을 떠나고, 돈을 들이부어서 부자로 만들어줘도 떠나는 여자를 잡는 게 ‘일자리’라니!
이번 일을 계획하면서도 정말 어이가 없었는지 모른다.
‘근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그녀에게 호감이 생겨서 접근한 게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접근한 만남이었다.
그런데 란나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예상했던 것과 달리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즐거웠다.
란나씨는 적극적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가졌고,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잘 받아주기만 하면 됐다.
서로 대화하는 성향이 맞다 보니 함께 있는 시간이 편하고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것이다.
자취방에 들어 온 김에 그녀와 섹스를 하려고 했는데, 어쩐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이런 여자를 만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내가 특별해지지 않았다면 란나씨와 비슷한 스타일의 여자와 사귀었을 것 같다.
3년? 4년?
어쩌면 더 길게 사귀었다가 몇 번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경험 끝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을 거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여자들처럼 화끈하게 활활 타오르는 사랑은 아니다.
잔잔하고 포근하며 안정적인 사랑, 혹은 애정.
회사를 다니는 게 여전히 힘들긴 하겠지만,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생겼으니 마음가짐도 달라졌을 거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힘든 회사 생활이 무슨 상관일까?
아마 술에 취해 포니와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싶나?’
그건 아니다.
특별해진 지금의 삶에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다.
과거를 그리워하기엔 가진 게 너무 많았다.
‘아무튼 이런 느낌을 주는 여자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
그녀와는 특별할 것 없었던 과거의 나처럼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 템포 진도를 늦추기로 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너무 늦어서 어떡해요. 피곤하시겠다.”
“란나씨랑 대화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다, 다음엔 언제쯤 시간이 되실 것 같아요?”
“한동안 빡빡하게 출장이 잡혀 있어서 들리지 못할 것 같아요. 시간이 나면 연락할게요.”
“네에.”
내가 자주 오지 못할 거라는 말에 란나씨가 금세 시무룩해졌다.
“문제 생기면 언제든 메시지 보내줘요. 나 보고 싶어져도 보내도 돼요.”
“!!”
“안녕.”
내가 여운을 남긴 말에 란나씨가 넋을 놨다.
정신이 쏙 빠진 사이 나는 그녀의 자취방을 빠져나왔다.
‘뽀뽀로 도장 찍어두고 올 걸 그랬나?’
그녀를 임신시키는 게 내 목적이어서 그런지, 아직 이어지지도 않은 그녀가 이미 내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 주제에 소유욕을 느끼는 상황이 웃겨 피식 웃고 차를 타고 이동했다.
비앙카는 그녀의 자취방 근처에 내 거처까지 완벽하게 마련해줬기에 그곳에다 차를 주차하고 돌아가야 했다.
늦은 밤, 뻥 뚫린 도로에 차를 몰고 가며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 ? ?
“뻥치지마!!”
“아, 진짜라고!”
“너 소설 쓰지 마. 언제부터 작가로 직업 바꿨냐?”
“존나 흥미진진하긴 함. 그래서 제목이 뭔데 그 소설.”
란나는 분개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조금은 억울했다.
“아무튼 이거 그거 맞지?”
“뭔 그거 맞지야! 절대 아니야!”
란나의 친구들이 이토록 분개하는 이유는 지난 밤 사장님과 자취방에서 시간을 보냈던 일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연애 경험 0인 그녀는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날 그녀는 사장님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
사장님도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때문에 란나는 그때 느꼈던 교감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고 싶어 친구들에게 그날 일을 말했다.
그런데 이 년들이 상담은 해줄 생각이 없고 다 거짓말이라며 매도하고 있었다.
그녀가 상담을 요청한 친구들이 하필 사장님을 보러 카페에 같이 갔었던 그 친구들이었기에 생긴 일이었다.
“야, 봐봐라. 일단 시작부터가 말이 안 돼. 그 와꾸를 한 사장님이 왜 널 유혹하는데? 뭐가 부족해서! 주변에 널린 게 더 예쁘고 돈 많은 여자들일 텐데!”
친구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란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너희들 내 취급 좀 너무한 것 같지 않아?”
“애초에 네가 거기 알바생으로 들어간 것부터가 말이 안 돼. 난 거기 알바생 구한다는 소릴 들어 본 적이 없단 말이야! 내가 거길 들어가야 했어!”
“이씨, 친구가 연애 상담 좀 하자는데 자꾸 이렇게 나올 거야?”
괜히 연애 상담을 요청했다는 후회가 든다.
란나는 답답한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말도 안 된다며 거짓말로 몰고 가는 친구들에게 서운함이 몰려왔다.
“사장님이랑 내가 사귀는 게 그 정도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아니, 친구야. 내가 널 무시하려는 건 아닌데 정말 이건 아니야. 그냥 네가 한 번도 남자랑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설레발치는 거야.”
“남자가 의미 없이 웃어준 거에 설레발치다가 차이는 것만큼 쪽팔린 일 없다.”
친구들은 그날 그와 느꼈던 교감이 자신만의 착각이라 말하고 있었다.
란나는 억울하고 슬퍼서 다시 한 번 저항해봤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데 여자 자취방에 남자가 들어왔는데도? 만약 그 대상이 사장님이 아니라고 치면 어떡할래?”
“…그건 무조건 따먹어달라는 거지. 안 먹고 보낸 네가 미친년임.”
“거봐아!!! 그럼 맞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그럴 리 없어!”
친구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남 사장님이 평범한 란나를 유혹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이런 것들을 친구라고…. 너희 부러워서 이러는 거지?”
“나중에 착각한 거였다면서 쪽팔려 뒤질 것 같다고나 말하지 마라. 우린 분명히 말렸다.”
친구의 팩폭에 란나는 결국 깊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그때 느꼈던 그와의 교감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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