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화 〉 #40. 결승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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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놀라 굳어진 가운데, 유일하게 사태파악을 하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다리 한 쪽을 꼬아 앉아서 몰래 킥킥 웃었다.
‘역시 아이템이 최고야.’
성능 쩌는 아이템 효과를 경험할 때마다 정말 짜릿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톤 밴드는 선을 넘었고, 그런 놈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꼴을 두고 볼 순 없었기에 아이템을 쓴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 손을 안 썼으면 쟤들은 인성질 하면서도 잘 먹고 잘 살았겠지.’
사실 이렇게 몰락시킨다고 해도 저놈들이 못 먹고 살지는 않을 거다.
그들에겐 결혼이라는 또 다른 대비소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가수로 떵떵거리면서 살진 못할 거야.’
스톤 밴드는 나를 너무 성가시게 했다.
차라리 몰락시켜서 아예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냥 놔두면 무척 성가실 텐데, 저놈들을 무너트리는데 드는 필요한 건 겨우 아이템 하나였다.
결국 결심을 했고, 바로 실행을 했다.
‘이렇게 바로 잭팟이 터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내가 쓴 아이템의 효과는 간단하다.
일정 시간 동안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거다.
‘하여튼 입벌구 새끼들.’
얼마나 인성이 파탄 났으면 입에서 진실만 나오기 시작하자 폭탄을 터트린단 말인가?
적어도 무너지기까지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힐끔하고 파이 피디를 살펴보니 그녀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하다.
스톤 밴드는 피디의 얼굴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 채 여전히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주둥이를 놀리고 있었다.
결승은 우리를 2라운드에서 이긴 줌베이가 할 거야. 분하지만, 그녀의 실력은 진짜였거든.
사실 승부조작이 아닌가 의심을 하긴 했지. 우리가 저런 비실비실한 꼬맹이한테 진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우리가 패배한 건 팬들 잘못이 커! 왜 좀 더 투표해주지 않은 거야? 젠장, 쪽팔리게! 그리고 기왕 괴롭힐 거면 좀 더 확실하게 괴롭히던가. 어중간하게 들켜서는, 쯧!
결승을 할 줌베이의 실력이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그녀에게 진 탈락자의 무능함이 덮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의외로 그녀의 실력을 칭찬한다.
그러다가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폭탄을 한 번 더 터트려 버린다.
‘가관이구만, 가관이야.’
줌베이는 스톤 밴드 팬들에게 당했던 괴롭힘이 떠올랐는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와락 일그러졌다.
마침 내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줌베이를 다독였다.
진정해, 베이. 알아서 자폭을 해주고 있는데 굳이 끼어들어서 저 폭탄에 다칠 필요가 없잖아.
젠장, 저 새끼들은 진짜 개자식들이야.
피디님 얼굴을 봐. 그럼 네 속이 좀 시원해질 걸?
피디님 얼굴?
난리 났지?
씩씩대던 줌베이가 파이 피디의 얼굴을 확인하고 속이 시원하다는 듯 찌푸렸던 미간을 풀었다.
저놈들은 이제 끝이야. 우리가 손쓰기도 전에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고. 괜히 휘말리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자. 저놈들한테 신경 쓸 바에야 결승 무대에 집중하는 게 더 생산적이잖아.
…그러게.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 쟤네들 저러고 있는 꼴 보니까 힘이 쭉 빠져버렸어.
기특하게도 줌베이는 내 말을 듣고 얌전히 있어줬다.
MC짐은 스톤 밴드가 내뱉은 자폭을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었다.
프로그램 MC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MC짐이 자기네들이 저지른 실수를 수습해주고 있다는 걸 모르는지 스톤 밴드는 자신들이 한 도발에 만족하며 득의양양해져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우리가 화라도 낼 줄 알았던 모양이다.
‘잘 가라. 배웅 멀리 안 하마.’
득의양양해 하는 표정이 어쩐지 안쓰러워 보여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은 순간이었다.
? ? ?
파이 피디가 단단히 화가 났다고 해도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했던 말이 방송 되지는 않았다.
그녀 스스로가 내세운 룰에 맞지 않는 행동임을 알기에 자제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의 분노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들이 방송에서 보여주었던 안하무인의 태도와 대화 내용은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기자들의 귀에 들어가 기사로 재생산 되었던 것이다.
[스톤 밴드, 최악의 태도 논란! 오냐오냐해줬던 팬들의 잘못인가?]
[줌베이 괴롭혔던 극성팬들, 그것밖에 못하냐고 한 스톤밴드의 경악적인 인성.]
[줌베이 팬들이 뿔났다! 스톤 밴드에게 살벌한 경고 남겨!]
그쪽 소속사에서 애걸복걸을 했을 텐데, 스톤 밴드의 입이 너무 큰 화를 불러왔다.
진실의 입은 기간이 한 달이었으니 사건 사고들을 실시간으로 터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아이템 효과가 떨어지고 난 이후에 자신들이 저질렀던 일을 자각할 때쯤이면 이미 모든 일이 수습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진실의 입 아이템에는 약간의 최면이 걸려 있어서 자기가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스톤 밴드는 정리 됐으니 이제 남은 건 4라운드인가.’
한 그룹이 뜨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금전은 어마어마하다.
반면 한 그룹이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 적당한 인성 논란으로 충분했다.
“기왕 결승까지 왔는데 이겨야지?”
“줌베이 팬들이 이번에 스톤 밴드 일로 똘똘 뭉쳤던데. 1등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난리도 아니래.”
“역시 우리가 좀 불리한가?”
3라운드에서 임팩트를 보여주었던 줌베이는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기엔 이번 주에 우리 노래 순위 올랐던데?”
3라운드에서 보여주었던 자작곡이 빌보드에 올랐던 건 저번 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자작곡은 다음 주인 현재 몇 단계 더 올라 73위를 기록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의 노래가 나오는 이곳에서 63위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사실 이젠 결승전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미 원하던 인지도는 충분히 얻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자작곡 할까?”
“두 번은 좀 선 넘었지.”
“나 생각해본 게 있는데 젝슨 빌을 오마주해서 무대를 꾸며보는 건 어떨까?”
“젝슨 빌이면 어메이징 스타 시즌1 우승자인데.”
“응, 그래서 일부러 선택한 거기도 해.”
전설적인 가수, 슈퍼스타이자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는 별이 된 팝스타.
남은규는 그가 결승전에서 보여주었던 그 무대를 우리가 꾸며보자는 것이었다.
“어…나쁘지 않은데?”
팝가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를 뮤즈로 해서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워낙 대단한 사람이었으니까.
“난 좋아.”
“나도 좋음.”
“찬성!”
“이걸 안 받을 사람이 있기나 한가?”
다들 생각이 비슷해서 남은규의 의견이 순식간에 채택되었다.
남은규는 그럴 줄 알았다며 자기가 준비해 온 영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와~ 이걸 구해왔어?”
“사실 경태 형한테 부탁했지. 경태 형이 시즌1부터 시즌11까지 전부 영상을 갖고 있거든.”
“역시 찐덕이라는 건가?”
“어스타 무대 말고도 화질이 좀 안 좋은데 무대 영상 구해왔으니까 다들 봐봐.”
전설의 무대를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10년이나 된 영상인데 지금 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 무대 직관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평생 추억으로 남는 거지.”
“우리는 이것보다 더 잘해야 돼. 자신 있지?”
“실력에는 자신 있는데, 우리가 이정도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
우리 실력이 ‘전설’에 뒤질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쌓아 올린 커리어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를 똑같이 따라할 순 없는 법이었다.
그가 전설로 살아 온 경험과 노하우를 따라한다 해도 결국 어설픈 어린아이 장기자랑에 불과할 거다.
‘그래도 해보지 못할 것까진 없잖아?’
“해보자. 시도는 해봐야지.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잖아.”
“어쩐지 이번 무대도 장난아니게 힘들 것 같은데.”
“전설이 한 무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건데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3라운드보다는 훨씬 빠르게, 결승 무대의 방향이 결정 되었다.
시즌1 결승 무대에서 보여줬던 젝슨 빌의 압도적인 무대를, 우리가 시즌11 결승 무대에서 선보이게 된 것이다.
파이 피디는 우리의 무대 컨셉을 듣고 굉장히 좋아했다.
10년이 지난 무대를 재연한다라…. 정말 의미 있는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파이 피디는 10년 전 시즌1 결승 무대를 이번 기회에 다시 보게 됐다며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죠! 그때 카메라 무빙을 그대로 재연해보겠습니다. 그럼 아마 보시는 시청자분들이 더 좋아할 거에요.
젝슨 빌이 고인이 된 게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그의 팬들은 젝슨 빌 특유의 감성과 퍼포먼스를 그리워하고 있었고, 후배 가수들은 그를 롤모델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먼 나라에서 온 청년들이 그를 존경해서 만든 무대를, 사람들이 모나게 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 ? ?
“어스타 끝나면 좀 덜 바쁠까?”
“스케줄만 하고 이 정도로 연습은 안 할 테니까 그렇지 않을까?”
“진짜 빡세다. 넘 피로해.”
멤버들 모두 피곤을 호소하고 있었다.
2주마다 새롭고 특별한 무대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달이 넘는 기간을 긴장하면서 지냈으니 체력이 부족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소속사도 그걸 알기에 우리에게 최대한 휴식 시간을 주려고 했다.
‘그래도 꼭 필요한 스케줄을 하게 했지만.’
누가 봐도 좋은 기회로 보이는 곳에서 우리를 불렀다는데 가지 않을 순 없었다.
그건 멤버들도 모두 동의한 스케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스케줄과 어스타를 함께 치르다 보니 골병이 들지 않은 멤버가 없었다.
부상에 관련 된 것은 내가 최대한 관리를 해주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는 해결해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어요.”
“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
“그래도 더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은 걸요.”
“사실 나도 그래.”
무기력을 앓기 시작한 멤버들.
나라고 마냥 사정이 좋은 건 아니었다.
아이템으로 체력을 충전하고 있지만, 그 체력조차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팍팍한 스케줄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에는 몸이 3개로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하게 됐다.
‘연습도 연습이지만, 란나씨 신경 쓰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네. 하루가 24시간에서 48시간으로 늘어났으면 좋겠어.’
그나마 연주 누님은 스스로가 바빠서 내 쪽에서 시간을 내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원래 누님 스타일이 먼저 관심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였던 것이다.
반면 란나씨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써줘야 했다.
그녀가 개인적인 관심으로 나에게 연락을 하는 게 아니었다.
‘카페 운영하는데 신경 써야 할 게 이 정도로 많은 줄 몰랐지!’
란나씨는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서 가게를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생으로서 주인에게 카페에 관련 된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 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바쁘니까 알아서 하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해 죽겠네.’
은근히 돌려서 가게에 좋은 쪽이면 내게 말하지 않고 바꿔도 된다고 했음에도 꼼꼼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허투루 일 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정산에 관련 된 것들을 메시지로 보내서 확인시키고, 물건을 구매한 내역도 꼼꼼하게 정리해서 보냈으며 바꾼 부분은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렸다.
‘일단 적성에 맞는 일인 건 확실한데….’
그녀를 얻기 위해서 마련한 카페였기에 란나씨의 그런 행동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카페가 란나씨의 인생에 중요한 공간이 되어야 내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락이 너무 잦은 건 확실히 문제가 있어보였다.
‘몇 달 정도는 터치 안하고 내버려두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렇게 된 거 아예 그녀를 직원으로 고용하고 아예 매니저로 만들어버려야겠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일도 누군가에겐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는 법이고, 카페 문제는 란나씨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니 아예 온전히 카페를 그녀에게 맡겨서 연락 빈도를 줄이고, 이빨을 좀 까서 그만큼 당신을 믿는다고 호감도작을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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