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40. 결승 (3)
* * *
내가 란나씨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멤버들은 무기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연습실 바닥을 허우적거렸다.
“자자, 일어나요. 한 번만 더 맞춰보고 끝내자고요.”
“그거 몇 분 전에 들었던 말인데?”
“자꾸 실수를 하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해놓고 도중에 실수가 나오면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우리 메인 댄서 우연이가 야무지게 투덜대는 멤버들을 다독였다.
제일 젊어서 그런가?
체력도 엄청나다.
우연이가 으쌰으쌰해서 기어코 마지막으로 춤을 맞춰봤다.
이번에는 실수가 없어서 그런지 만족하고 연습 종료를 선언한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으아아~ 피곤해.”
사실 이번 무대는 다른 무대보단 쉽게 익혀내고 있는 중이었다.
젝슨 빌과 비교했을 때 우리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었고, 이미 무대 구성이 전부 나와 있는 상태였기에 진도가 빠르게 나가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다만 젝슨 빌은 한 사람이고 우리는 6명이 모인 팀이라는 점에서 무대 구성을 바꿀 필요가 있기는 했다.
“다들 좋아해줄까요? 별로라고 하면 어떡하죠?”
호텔로 돌아가는 차안.
결승 무대를 앞두고 애들이 센치해진 건지 새삼스러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깎인 정신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무슨 그런 소릴 해? 우리 무대 좋아.”
기우연은 젝슨 빌을 아주 좋아했고, 쉽게 따라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댄스에 녹여 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우연이의 도움을 받아 나날이 젝슨 빌과 비슷해지고 있는 중이다.
안무를 바꾸는데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주었는데, 덕분에 진도가 팍팍 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얘가 너무 많은 것을 손대서 그런지 유난히 걱정을 많이 한다는 거였다.
“또 저러네. 아니라니까!”
“아니, 그래도…. 뭔가 자꾸 부족해 보이고 그러니까.”
우물대는 기우연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이번 무대도 잘 될 거야. 안무 진짜 잘 짰잖아.”
“제가 괜히 건드려서 무대가 망하는 건 아닌가 걱정 돼요.”
“쟤 징징대는 거 받아주지 마. 계속 받아주니까 해도 되는 줄 알고 징징대잖아.”
아무래도 우연이가 막내고 성격도 살갑다보니 조카 다루듯이 우쭈쭈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강준이 딱 잘라버린다.
사실 우연이가 약한 소리를 한 게 이번 주만 해도 10번이 넘는다.
젝슨 빌을 오마주한 무대를 만드는 게 많이 부담이 된 모양이었다.
“준이 형, 너무 차가워!”
“네 징징이 더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독무를 그렇게 멋지게 뽑아놓고 엄살 부리니까 그렇지. 그거 기만이다. 기만.”
남은규가 강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우연이를 몰아간다.
남은규와 강준은 자주 싸우지만, 가끔 이렇게 뜻이 맞을 때는 누구보다도 죽이 잘 맞았다.
‘정말 막바지구나.’
부디 어메이징 스타가 더 큰 논란 없이 마무리 될 수 있기를.
마지막 무대는 그렇게 조금씩 삐걱대면서도 순조롭게 진행 됐다.
? ? ?
어메이징 스타 시즌11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결정 짓기 위해 파이 피디가 심사위원으로 대단한 사람들을 섭외했다.
노래를 내기만 했다 하면 빌보드 차트에 들어가는 스타들을 심사위원으로 초대한 것이다.
결승 무대에 걸맞는 심사위원이 자리했습니다!
와아아아아!!!
관객들도 화려한 심사위원의 등장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요즘 어메이징 스타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음을 인정하는지, 심사위원 자리 섭외를 흔쾌히 받아줬다고 한다.
MC짐이 본격적인 결승 무대의 시작을 알린다.
순서는 다른 참가자들의 특별 무대와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스타들의 축하 공연이 먼저였다.
관객들은 어스타의 결승 무대를 축제처럼 즐겼다.
축제와도 같았던 순간이 흐르는 사이.
무대 뒤에서는 결승을 앞둔 줌베이와 에어플레인이 긴장감과 초조함에 몸을 이완시키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잘해보자.
나는 잔뜩 긴장해 있는 줌베이에게 먼저 악수를 권했다.
오늘 줌베이는 정말 예뻤다.
여전히 시선을 사로잡는 각종 장신구들을 착용한 채였는데, 베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백이 장난 아니었다.
정말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내가 이길 거야. 오빠라고 봐주는 거 없어. 알지?
당연하지. 우릴 이기는 게 쉽진 않을 거야. 각오 단단히 해놔.
히히히! 끝나면 승패 따지지 말고 서로 안아주기다?
그래그래.
무대 순서는 줌베이가 먼저였다.
줌베이가 무대를 하러 떠나고, 우리도 그녀의 무대를 즐기기 위해 무대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줌베이가 자기 몸집의 몇 배는 될 넓은 무대 중앙에 섰다.
무섭지도 않은지 무대 위에 오른 줌베이의 눈빛엔 카리스마가 가득했다.
심사위원은 결승전 무대를 보러 온 것에 한 점의 후회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어메이징 스타를 발판으로 더 위대해질 줌베이의 무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어머니는 말했지, 나 아버지의 옆구리에 붙은 날개였다고.
둥탁! 둥타탁! 둥타탁!
그렇게 줌베이가 어메이징 스타에서 보여줄 마지막 무대가 시작 됐다.
? ? ?
짝짝짝짝!!
와아아!!
줌베이! 사랑해!
박수 소리가 쏟아진다.
줌베이의 결승 무대를 본 심사위원들은 그녀가 1등을 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녀가 아닌 1등은 인정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난 아니네.”
“관객들도 그렇고 심사위원분들도 그렇고 다들 줌베이한테 홀딱 넘어갔어.”
“이길 수 있을까?”
“이겨야지.”
“우리 젝슨 빌이잖아. 젝슨 빌이면 약한 소리 하면 안 돼.”
줌베이는 무대를 끝내고 심사위원에게서 쏟아지는 찬사를 활짝 웃으며 듣고 있었다.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무대 뒤로 다시 이동한 우리는 완전히 줌베이에게 넘어간 분위기에 굳어진 몸을 억지로 이완시켰다.
“보여주자. 1등은 우리 꺼라고.”
손을 하나로 모았다.
“하나 둘 셋!”
“““날자, 에어플레인!!”””
무대로 향하는 계단으로 다 함께 이동했다.
무대 위에는 줌베이의 만들어낸 열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동요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우리의 준비가 끝나자 파이 피디가 음악을 틀었다.
젝슨 빌 「we」
관객들의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드는 선곡이 시작 되고 있었다.
웅성웅성
진짜 이 노래를 한다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이 노래를 모를 수가 없었다.
탕! 탕! 탕! 탕! 탕! 탕!
놀라서 웅성대는 관객들 사이로, 어두운 무대에서 6개의 스포트라이트가 켜진다.
은색 꽃수를 놓은 검정색 수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6명의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6개의 스포트라이트가 1개의 스포트라이트로 좁혀지고, 의자에서 일어난 기우연이 모든 주목을 받았다.
심장을 두들기는 음률이 무대를 장악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기우연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꺄아아악!
젝슨 빌!!!
맙소사!
기우연의 춤은 놀랍게도 그들이 아는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한 때 어메이징 스타에 출연한 적 있던 전설이 시즌11에 와서 다시 무대 위에 나타난 상황이었다.
관객들은 뛰는 심장에 비명을 내질렀다.
어메이징!!!!
나 이 무대 본 적 있어!!
관객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오프닝에 비명을 내질렀다.
이건 도저히 입 다물고 있을 수가 없는 무대였다.
왜 이 무대가 이토록 심장을 뛰게 하는가.
그 이유는 금세 밝혀졌다.
이건 시즌1 결승 무대라고!
어메이징 스타의 골수팬들이 시즌1의 결승 무대를 잊었을 리가 없었다.
에어플레인이 젝슨 빌을 오마주한 무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다!
상황 파악을 끝낸 관객들이 에어플레인의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
팝의 황제, 팝스타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슈퍼스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싫어할 이는 없었다.
더군다나 전설을 오마주한 무대가 기존의 무대를 뛰어넘는다면 더더욱!
저 친구, 정말 대단한데? 젝슨 빌이 환생해서 나타난 줄 알겠어!
기우연의 독무를 시작으로 에어플레인의 군무가 시작 된다.
이 곡이 군무로 만들어질 줄은 몰랐는데.
이런 스타일도 나쁘지 않네.
화려한 군무로 이어지던 중, 곡의 하이라이트가 찾아온다.
기우연이 다시 무대 중앙에 서고, 그의 독무가 시작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시즌1 때 젝슨 빌이 보여주었던 독무와 똑같이 닮아 있었다.
음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추는 춤은 뛰어난 박자 감각을 갖고 있는 젝슨 빌과 똑같았다.
관객 중 누군가의 말처럼 젝슨 빌이 환생했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정말 우리 곁으로 빌이 돌아 온 것 같네.
우연이의 화려한 춤이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무대였기에 관객과 심사위원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에어플레인 무대를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특히 방송으로 보는 사람들은 파이 피디의 센스로 시즌1 결승 무대와 비슷한 카메라 워크를 통해 그 당시의 감동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들어줬다.
└난 무조건 이 친구들이야!! 불멸의 제국을 했을 때부터 알아봤다고.
└이런 감동적인 무대를 보게 될 줄 몰랐는데. 어떻게 젝슨 빌 무대를 할 생각을 했지?
└그가 너무 그리워. 젝슨 빌! 돌아와 줘요! (oTT)?
└이번에도 라이브로 한 걸까?
└이렇게 높은 음을 저렇게 격한 안무를 추면서?
└저 격렬하게 뛰는 가슴을 봐.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
└여기다가 침 흘리지 말게, 친구.
└제일 작은 친구가 젝슨 빌 환생한 것처럼 춤추던 그 아이 맞지? 저렇게 순둥하게 생겼을 줄이야! lol
└놀라고 있지만 말고 당장 투표하자구. 저 친구들을 패배하게 할 셈이야?
└다들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줌베이가 이길 거라고 하더니 :( 줌베이 팬들 다 어디로 간 거지?
└꼬맹이가 잘한 건 맞지만, 젝슨 빌이잖아! 에어플레인이 치트키를 들고 왔어. (o´ω`o)
└맞아, 저건 이길 수 없는 무대야. 줌베이는 좀 더 영악하게 무대를 준비했어야 했어.
줌베이는 에어플레인의 무대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저 오빠들, 장난 아니네. 여기서 젝슨 빌을 꺼내 올 줄이야.
젝슨 빌을 오마주한 무대는 너무너무 많다.
워낙 대단한 사람이어서 너도 나도 롤모델로 그를 손꼽으며 닮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젝슨 빌을 오마주한 무대를 결승에서 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너무 많이 소비 된 분야였기에 자칫 잘못했다간 관객들에게 지겨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해도 너무 잘하잖아.’
하지만 에어플레인은 어메이징 스타 시즌1 결승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젝슨 빌의 무대를 오마주하면서 의미도 잡고,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아버렸다.
저렇게 잘한 무대를 지겨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는 실력 있는 무대는 대결하는 상대방의 의욕을 꺾어버릴 정도였다.
그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조차도 이 무대를 즐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젝슨 빌이 빙의한 것처럼 독무를 추던 기우연도 놀라웠고, 거기에 더해 나머지 5명의 춤꾼들이 보여준 군무 또한 압도적이었다.
‘그냥 오마주 한 것도 아니고, 더 업그레이드 시키면서도 젝슨 빌에 대한 예의는 철저하게 지킨 무대야.’
6명의 젝슨 빌이 무대에 설치 된 계단을 차례차례 오른다.
젝슨 빌의 결승 승패를 좌지우지 했던 그 장면이었다.
카메라가 그들의 현란한 무대를 정신없이 찍어댔다.
그리고 계단을 이용해 멋진 군무를 선보이며 마지막까지 관객들의 혼을 쏙 빼버린 에어플레인의 무대가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와아아아!!!
휘이이익~~!
끝내주는 무대였어!
사랑해, 에어플레인!!!
너희들 미쳤어!
당장 내 표를 받아!
젝슨 빌이 환생해서 무대 위를 놀다 가는 기적을 보여준 무대가 끝이 났다.
관객들의 반응만 봐도 누가 결승에서 승리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줌베이의 표정조차도 승패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있었으니 오죽할까?
무대 멋졌어, 오빠들.
베이! 너도 멋있었어.
맞아. 줌베이, 진짜 멋지더라.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어.
줌베이는 결승 무대에서 보여준 무대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랩이었다.
어릴 적 엄마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금은 가족이 해체 되어 가고 있는 핵가족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핵가족’이라는 단어는 한 쌍의 부부와 미혼의 자녀만으로 구성 된 가족 관계를 뜻하는 지구와 달리 아빠 없이 엄마와 미혼의 자녀만으로 구성 된 가족을 뜻한다.
줌베이의 자전적인 랩은 관객들의 마음에 쏙 들어왔지만, 젝슨 빌의 무대만큼 어필 되지 못했다.
어메이징 스타 시즌 11!! 드디어 무대의 주인공이 가려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무대 위에 우리와 줌베이가 나란히 섰다.
MC짐이 결과 발표를 앞두고 목소리를 낮춰 의미심장하게 서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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