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 #41. 카페 점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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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타 시즌11이 끝난 것에 후련한 우리와 달리 사람들은 일주일이 지나도 어메이징 스타 얘기로 떠들썩했다.
소속사에서는 거하게 파티를 해줬던 뽕을 제대로 뽑아먹으려는 것인지 본격적으로 스케줄을 돌리기 시작했다.
3라운드, 4라운드를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곤 했던 스케줄이 이젠 쉬는 날 없이 빡빡하게 가득 찬 것이다.
대부분의 스케줄에서 어메이징 스타에서 보여주었던 우리 무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여전히 세상은 어메이징 스타의 화제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때때로 아니, 꽤 자주 우리를 향해 은근한, 혹은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국내에서 당하던 추파와 해외에서 당하는 추파의 방식이 너무 차이나서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얘네들은 일단 마음에 들면 찍어보는 게 국룰인가?’
잠깐 매니저가 방심하기만 해도 다가와서 추파를 보낸다.
그 추파가 대부분 접촉으로 시작 된다는 게 무척이나 난감한 일이었고 말이다.
더군다나 여자들과 접촉하는 게 익숙한 나와 달리 멤버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바쁘게 스케줄을 뛰고 남은 시간에는 부지런하게 다시 내 여자들을 만나러 국내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간을 더 쪼개서 란나를 만나러 온 상태였다.
딸랑~
“문에다가 종을 달았네요.”
“어? 사장님!”
일부러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카페가 마감 되는 12시쯤에 카페에 왔다.
그녀는 카페와 기계를 정리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녀는 내 깜짝 방문이 좋았는지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만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살짝 놀란 상태였다.
‘살이 엄청 빠졌네.’
학교를 다니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사탕을 주고 오긴 했지만, 많은 양이 아니라서 란나씨의 체력을 온전히 지키진 못한 것 같았다.
“시간이 좀 늦긴 했지만, 먹으면서 일해요.”
“아! 감사합니다.”
밤에 먹는 야식만큼 맛있는 게 없는 법.
그녀가 야식을 먹는 사이, 나는 카페 정리를 시작했다.
괜찮다면서 만류하는 란나씨를 억지로 테이블에 앉히느라 고생했다.
“매일 보고하는 연락, 잘 받아보고 있어요.”
“아…! 제가 너무 귀찮게 해드리죠?”
“그럴 리가요. 다만 한 가지 걱정은 되더라고요.”
“걱정이요? 어떤 게 불편하셨어요?”
“란나씨 건강요.”
란나씨가 내 말에 눈이 동그래진다.
“살 엄청 많이 빠진 거 알아요?”
“…공짜 다이어트라는 생각 때문에 나쁠 거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빠지는 건 다이어트라기보단 몸이 축나는 거죠.”
“전 정말 괜찮아요. 다만 마음이 쓰인다고 하시니까 앞으로는 건강에 좀 더 신경 쓸게요.”
“아뇨.”
그녀의 건강은 내가 책임질 거다.
“그건 제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에요. 직원이 일을 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산재인 거잖아요.”
“엣,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당연하죠. 그러니까 앞으로 란나씨 건강을 제가 챙길 수 있게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식으로 챙기시겠다는 건지….”
“건강식품은 물론, 건강검진은 1년에 한 번씩 무료로 받을 수 있게 할 생각이에요.”
“1년씩이요? 저 아르바이트생인데요!?”
회사도 아니고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이 아르바이트생 건강검진까지 챙겨주는 경우는 없다.
란나가 사색이 돼서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걸 보고 나는 능청을 떨며 말했다.
“역시 아르바이트 생한테 그 정도는 좀 오버죠?”
“네!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건강 챙기면서 가게 운영 할 게요.”
“아니요. 그게 아니죠. 앞으로 란나씨 건강 챙겨주려면 아르바이트생이 아닐 필요가 있어요.”
“네?”
“앞으로 이 가게 점장이 되어 관리해주셨으면 합니다.”
“!!!!!”
탱그랑!!
란나씨가 먹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트린다.
“란나씨가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완전히 가게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앞으로 제가 더 바빠지게 될 예정이거든요. 언제까지 란나씨가 제 허락을 받고 운영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제가 점장이 되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요?”
“일단 급료 부분이 더 확실해지겠죠? 순매출 20%가 아니라 50%로 늘려드릴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오래오래 점장으로 일해주시면 점점 퍼센트를 늘려드릴 거에요.”
란나씨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돈 부분을 확실하게 어필해줬다.
“오, 오십 퍼면 사장님이 받는 돈이 너무 적지 않나요?”
“제가 드리는 만큼 란나씨가 가게에 더 많이 신경 써주실 거라고 생각해서요.”
“20%만 주셔도 충분히 그랬을 거에요!”
“고작 20%로요?”
“가게세가 없잖아요.”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했어야 할 가게세를 이곳은 내지 않는다.
건물주인이 나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음료 가격도 싸게 판매할 수 있었고, 순이익도 나쁘지 않은 효율을 보였다.
그런데 그 매출 중 50%를 그녀가 가져버린다면 건물 주인이자 카페 주인인 내 입장에선 너무 적은 이득이 된다.
“아무리 돈 벌려고 하는 가게가 아니라지만 사장님한테 너무 큰 손해에요. 이 가게를 유지할 이유가 안 되잖아요.”
차라리 카페를 하지 않고 가게를 다른 곳에 세를 주는 게 더 편하고 돈이 되는 일이었다.
“너무 저한테 신경 써주실 필요 없어요. 전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고 아무런 불만도 없거든요. 곧 방학일 텐데, 그땐 좀 더 카페 운영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란나씨?”
“그리고 방학 끝나고 내년부터는 취업계를 쓸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해봤는데 취업계를 내면 카페 운영에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갑자기 왜 불안해하는 거에요? 저는 란나씨한테 좋은 제안일 거라고 생각해서 한 건데….”
분명 나는 그녀를 위해 점장을 제안한 건데, 란나씨는 이상하게도 불안해했다.
“좋은 제안인 건 알아요. 제가 걱정하는 건 사장님한테 카페가 어느 정도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카페를 잘 운영할 자신은 있지만, 그게 사장님한테 큰 이익이 될 것 같지가 않아요. 그럼 결국 이 카페는 사장님한테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될 거에요.”
“…….”
“돈 때문에 카페를 하는 게 아니라고 하시니까 제가 너무 막막해요. 그나마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금전적으로 이득을 주는 것뿐인데, 사장님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니까요.”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건가?
란나씨의 얘기를 들으니 그녀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이해됐다.
나는 카페를 온전히 그녀에게 맡겨서 애정이 생기게 만들려고 했는데, 란나씨 입장에선 내가 카페의 모든 걸 맡겨버리는 게 방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카페에 대한 애정 사라져서 접겠다고 해버린다면?
‘직장을 갑자기 잃게 되는 거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지. 멍청하게 생각이 짧았잖아. 돈을 막 퍼주는 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서….’
돈을 너무 많이 줘도 란나씨는 이별을 하는 사람이었다.
첫 단추를 잘 꿴 것 같아서 긴장을 너무 풀어버렸다.
겸허히 실수를 인정하고 불안해 하는 란나씨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미안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어요.”
“아니에요. 제가 뭐라고…. 주제넘은 짓이었어요. 죄송해요.”
여기서 입을 잘 털어야 했다.
잘못 삐끗했다간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가버릴 수 있었다.
그럼 수습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진다.
나는 그녀를 임신시켜야 하는 어려운 미션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잠깐 생각을 정리하면서 란나씨가 이해하고 넘길 수 있을 만한 변명을 만들어냈다.
“사실 오늘은 제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아요. 너무 앞뒤 안 가리고 조급하게 행동했어요. 란나씨가 일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카페를 란나씨도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서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뭐라도 더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
“뭘 해주지? 내가 뭘 해주면 란나씨가 좋아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생각했던 게 오늘 말씀드렸던 그거였어요. 란나씨가 가게 점장이 되고, 여기서 일하면서 돈을 좀 더 많이 벌게 된다면 지금보다 카페를 더 사랑해줄 거라는 계산이었죠.”
“…….”
어느 정도 내 진심이 담겨 있는 변명이었다.
카페에 좀 더 애정이 생길 수 있게,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서 남자친구를 만들어도 될 여유를 만드는 것.
내 목적을 적당히 꾸며서 전달하니 란나씨에게 잘 먹혀들어갔다.
“…정말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네. 다시 사과드릴게요. 란나씨한테 그런 부담을 주려던 게 아니었어요.”
“전 몰랐어요.”
“저희 둘, 대화가 많이 부족한 것 같네요. 자주 시간내서 대화를 나눴으면 서로 오해하지 않았을 텐데. 앞으로 란나씨 불안하지 않게 더 자주 연락하고, 찾아올게요. 그래도 되죠?”
“당연하죠! 그렇게 해주시면 바랄 게 없을 거에요.”
겁에 질렸던 란나씨의 표정이 펴진다.
다행이다.
이런 심각한 오해를 풀지 못하고 계속 쌓아뒀으면 나중에 이별이라는 끔직한 결과가 됐을 거다.
나는 이미 그녀를 내 여자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됐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릴게요. 점장님!”
“에? 저, 점장이요?!”
“받아주신다면서요. 제 사과.”
“그거랑 이거는 다르죠!”
이렇게 우겨야 할 때 쓰는 최고의 방법이 있다.
‘연기 능력을 올려놓길 잘했어.’
웹드라마 한다고 올려놨던 연기를 실생활에서 잘 써먹고 있는 중이다.
“제발 받아주면 안 될까요? 전 악덕 고용주가 되고 싶지 않아요. 이미 란나씨는 점장이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우리 가게에 3개월 일하고 그만둘 거에요? 전 란나씨가 영원히 이 카페를 맡아서 운영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점장이라는 직위가 필요하고요.”
그녀를 아르바이트생으로 남겨두는 건 날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말 했다.
“읏!”
얼굴을 좀 들이대면서 말했는데, 란나씨에게 잘 먹혀들어갔는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계속 보고 있을 수가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숙인 란나씨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요. 그럼 점장직은 받아들일 게요. 대신 급료 50%는 취소해주세요. 지금 받고 있는 돈으로 충분해요.”
“순 매출 50%는 취소할게요. 대신 오래 근무할수록 받아가는 양을 조금씩 늘리는 건 받아줘요.”
“얼마나 늘리시려고요?”
“1년씩 근무일이 늘어날수록 3%씩 올릴게요. 대신 최대 60%까지고요.”
“갑자기 10% 늘어났는데요?!”
“60% 받으려면 카페에서 10년 이상 근무해야 해요. 그렇게 오래 근무했으면 60%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아요?”
10년 이상이라는 구체적인 근무 년도가 나오자 반박하는 란나씨의 입이 다물어진다.
카페에서 일을 한지 이제 겨우 한 달이 된 그녀가 10년이나 이곳에서 일한다는 게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모양이다.
“저도 양보했으니까 란나씨도 양보해주세요.”
“…알겠어요. 사장님 말씀대로 할게요.”
“아자!”
만족스러운 협상이었다.
이후로 그녀는 나에게 그동안 상의하고 싶었던 카페 관련 의견을 털어놓았다.
내가 카페에서 일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 가게 안에 좌석을 놓고 싶고, 2층도 쓰고 싶다는 게 그녀의 의견이었다.
사실 1층은 좀 좁은데, 2층은 굉장히 넓어서 테이블을 놓을 자리가 많았다.
“저희 카페가 다 좋은데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 게 유일한 흠이거든요. 그 부분을 아쉬워하는 손님들도 많으시고요. 또 판매 종류를 음료뿐만 아니라 제과 제빵 쪽으로 늘리고 싶어요. 아! 요즘 마카롱을 판매하는 카페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인테리어도 좀 바꾸고 싶은 부분이 많은데….”
카페 운영에 진심인 란나씨는 그 후로 약 2시간이 넘게 카페에 관련 된 내용을 나와 상의했다.
벌써 시간이 새벽 3시에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그녀의 눈빛은 아까봤던 피로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눈빛이 초롱초롱해질 뿐.
‘이 정도로 카페에 진심이면 아이템 몇 개 정도 가져다 놓는 게 좋겠는데?’
일반 제품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소품 아이템들을 이용해서 카페를 꾸민다면 적어도 장사가 안 돼서 카페를 접을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장사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만 떠올려 봐도 수십 개였다.
손님을 부르는 ‘생화초’ 손님을 불러오는 ‘복돼지’ 등등.
애초에 돈을 주려고 했다면, 이런 식으로 우회해서 건넸어야 하는 게 맞았다.
“란나씨가 카페를 어떻게 운영할지 벌써부터 기대 되네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대답하는 목소리엔 씩씩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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