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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79화 (279/849)

〈 279화 〉 #42. 연말 (7)

* * *

란나가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

나는 그녀의 친구들로부터 부담스러울 정도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의외로 란나씨가 친구들에게 나에 대한 얘기를 제법 했던 모양이다.

일단 친구들은 내 얼굴에 감탄부터 했다.

“와~ 가까이에서 보니까 진짜 숨이 턱 막히네요. 너무 잘 생겼어.”

“걔는 간덩이가 얼마나 크면 이런 남자를 만날 생각을 한 거지? 난 1초도 못 견딜 것 같은데.”

“야야, 정신 차려. 사람 앞에 두고 뭐하는 거야?”

“앗!”

“저희가 좀 실례 되게 행동했죠? 죄송해요. 사장님이 너무 잘 생기셔서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저 그렇게 어려운 사람 아니에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친구들이 내게 사과를 해왔다.

사람을 앞에 두고 얼굴 구경을 했으니 확실히 실례이긴 했다.

“커피는 어떠세요?”

“맛있어요!”

“여긴 점점 더 맛있어지는 것 같아요.”

“란나씨가 다 직접 발로 뛰어서 얻은 결과물이에요. 제가 운영할 땐 되게 주먹구구식이었거든요.”

괜찮은 곳에서 물건을 떼오니까 커피 맛부터 확 바뀌더라.

그동안 가게가 잘 된 건 모두 내 얼굴 덕분이었던 거다.

맛없는 커피를 내 얼굴 보겠다고 잘도 사준 여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하자.

“란나가 도움이 많이 되나 보네요.”

“네. 란나씨가 없으면 안 될 정도에요. 정말 든든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친구들이 왜 찾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다소 무례하게 쳐들어와서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거다.

‘세 명이서 날 어떻게든 파헤치려고 난리가 났네.’

내가 생각해도 나 같은 사람이 수상하긴 할 것 같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카페 사장님.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지도 않고,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란나씨가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게 특이한 거야.’

질문하지 않는 란나씨 대신 친구들이 날 파헤치고 싶은 듯 했다.

그래도 예의를 지키면서 할 생각이었는지 호들갑을 떨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갑자기 얘한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더군다나 애인이 그 유명한 사장님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못 믿었어요. 얘가 장난친다고 오해했거든요.”

“근데 진짜였지. 그때 받았던 충격이란….”

란나씨는 친구들이 갖고 있는 걱정이 무엇인지 아는 눈치였고, 그래서 친구들이 무례할 정도로 나에 대해 캐물으려고 할까봐 걱정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친구들은 나에 대한 신상정보를 캐묻는 것보단 란나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저 친구가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부족한 게 많을 거에요. 그래도 정말 진국인 친구거든요. 책임감이 엄청 강해요. 그래서 그런지 선 안에 들어간 사람한테 정말 잘해주고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 안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친구들은 굳이 안해도 되는 부분까지 걱정하며 오지랖을 떨었다.

“란나가 지금은 좀 그런데, 조금만 신경 써서 꾸미면 나름 예쁠 거거든요. 저희가 책임지고 예쁘게 만들어놓을 게요.”

“적어도 같이 다닐 때 창피하지 않을 수준으로 만들어드릴 게요! 저희만 믿으세요.”

이걸 칭찬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란나씨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건 확실했기에 덤덤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란나씨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예쁩니다. 불만 없어요.”

“우와악! 대박!”

“닭살!”

“이게 커플인가! 훈훈하구만.”

“사장님이 란나를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네요.”

예쁘게 꾸민다고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될 것도 아니고, 예쁘지 않다고 그녀를 싫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사장님! 사실 란나를 알바생으로 고용하기 전부터 이미 마음에 두고 있었죠?”

“!!”

“꺅! 나 이거 엄청 궁금했어.”

“맞아맞아.”

순간 정곡을 찌르는 친구의 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나는 일단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는 척 했다.

“네?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카페에서 알바생 구한다고 했으면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었거든요. 근데 아무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런 일 들은 적 없다고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을 해봤어요. 왜 하필이면 란나한테 알바해볼 생각 없냐고 하셨을까!”

“연인이 됐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알 것 같았어요. 첫 눈에 반해버린 거죠? 란나를 본 순간!”

꺄악꺄악!

친구들은 내가 일부러 란나씨에게 접근했다는 걸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하긴, 평범한 사람이 그런 걸 상상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란나씨에게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어…약간은 맞는 소리 같네요. 란나씨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좋았거든요.”

“오오오!”

“알바생으로 고용을 하고 난 이후에는 그 느낌에 확신을 받게 됐고요. 란나씨가 정말 잘 해줬거든요.”

“꺄아아~ 로맨틱해!”

“저돌적인 남자, 완전 내 스타일인데!”

“그럼 역시 사장님이 먼저 다가가신 거죠?”

“네, 란나씨가 저한테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얘기를 하다 보니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따가워지고 있었다.

찌리리릿­!!!

‘사람들 시선이 장난 아니네.’

카페에 내가 떴다는 소식을 듣고 온 손님들이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황송해서 감히 접근하지 못했던 사장님이 낯선 여자들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배알이 뒤틀리고 질투가 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무시하고 계속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란나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음료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어우,얼굴이 좀 따가운 것 같은데. 나만 느껴?”

“사실 나도 아까부터 등이 되게 따갑더라. 뭔가 싶어서 고개 돌려봤다가 식겁했어.”

“사장님이랑 얘기해서 그런가 봐.사람들이 우리 존나 째려봐. 길가다 돌 맞는 거 아니야?”

슬슬 신변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 친구들.

나도 계속 여기에 앉아 있을 순 없었다.

내가 테이블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손님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설마 그러려고요. 그래도 자리는 여기까지만 앉아 있어야겠어요.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란나씨를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아! 네네. 그러세요.”

“너무 짧아서 아쉽다. 혹시 시간 나는 날 없으세요? 좀 편하게 만나서 찐하게 대화 좀 나눠봤으면 좋겠는데...”

“야야, 적당히 해야지. 그건 선 넘은 거야. 얘 말은 무시하세요!저흰 이제 가볼게요!”

친구들은 다행이 더 귀찮게 굴지 않고 깔끔하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불쑥 찾아 온 것처럼 후다닥 사라진 친구들 덕분에 쏟아지던 따가운 시선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친구 분들은 돌아갔어요.”

“걔네들이 좀 철이 없어서... 혹시사장님한테 무례하게 행동했나요?”

“그냥 란나씨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만 하던걸요?”

“치잇, 주책없기는…. 걔네들이 이상한 소리 했으면 흘려들으세요.”

“좋은 얘기만 나누다가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친구들이 돌아간 이후 몰려든 손님을 쳐내고, 계획한 대로 일찍 카페 문을 닫았다.

손님들이 많이 와서 일찍 카페를 닫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대단했다.

“그으럼...우리 이제 데이트하는 건가요?”

여태까지 별로 긴장한 기색이 없었던 란나씨가 데이트를 앞두고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왜 이렇게 긴장해요?”

“그러게요. 저 왜 긴장 되죠?”

본인 스스로도 긴장 되는 이유를 모르겠는 모양이다.

“같이 영화보고 좀 근사한 곳에서 저녁 먹는 간단한 코스인데 란나씨가 긴장하니까 뭔가 더 대단한 걸 준비했어야 했나 걱정 되네요.”

“아니에요! 저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그, 근사한 곳이면 우리 스테이크 써는 거에요?”

“란나씨가 나쁘지 않다고 하신다면요.”

“좋아요. 가요! 영화 보러!”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준 란나씨와 함께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관에서 놀라웠던 건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던 란나씨가 영화관을 굉장히 낯설어 했다는 거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는 걸 즐긴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서투름을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가 서운 모습을 보였다는 걸 알았는지 고백을 해왔다.

“사실 영화관에 자주 다니진 않았어요. 아주 어릴 때 와본 게 전부거든요.”

“아~ 그랬어요? 저도 영화관은 오랜만이에요. 그동안은 일하느라 바빠서 영화관 올 일이 없더라고요.”

“사장님도요?”

“제가 일을 빨리 시작한 편이라서요.”

나도 그렇고 란나씨도 처음 해본 영화관 데이트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가 바랐던 것처럼 스테이크를 썰러 레스토랑에 갔고, 그곳에서도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살짝 한 란나씨가 술에 취해서 들뜬 모습을 보였다.

“친구들이랑 오거나 혼자 와서 영화를 봤으면 이렇게까지 즐겁진 않았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뭔가 이런 상황이 오래도록 계속 됐으면 좋겠어요. 요즘처럼 삶이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전 옛날부터 제가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사장님과의 미래를 자꾸 상상하게 돼요. 사장님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하, 나 너무 주책맞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입에서 이렇게까지 긍정적인 말이 나오는 건 정말 큰 보람이었다.

란나씨와 미래까지 함께하기 위해 고심했던 게 얼마인가!

그녀가 나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였다.

“저는 좋은데요? 란나씨랑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상상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아요.”

“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장님이 너무 착해서 그냥 제 장단에 맞춰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럼요. 란나씨가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돼서 무척 설래요.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시간에 상관없이 란나씨랑 미래를 그려보고 싶어요.”

란나씨를 임신시키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나와의 미래를 그렸을 때가 최적의 타이밍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임신을 시키면 란나씨가 떠나는 결말이 온다.

혼자 아이를 책임지는 미래가 90% 확률인 것이다.

란나씨가 임신하는 순간은 그녀가 먼저 나와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노력한 보람이 있네. 이대로만 쭉 가면 임신도 금방이겠어.’

카페는 충분히 안정적인 상태다.

요즘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서 가르치는 중인데, 몇 주만 버티면 카페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거다.

란나씨가 나와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호소식을 알게 됐으니 좀 더 확실하게 생각을 굳힐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근데 한 편으로는 너무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주제 넘다뇨? 그런 생각을 왜 해요.”

“제가 너무 부족하잖아요. 전 평범한 여대생이고, 사장님은 건물주에 얼굴까지 완벽하세요. 도대체 왜 저 같은 거랑 어울려주시는 거에요?”

이런 반응은 예상했던 부분이라 당황스럽진 않았다.

란나씨가 나를 부담스러워 할 게 뻔해서 아예 평범한 얼굴로 바꿔서 만나는 것도 생각했을 정도다.

얼굴을 평범하게 만들지 않았던 건, 그렇게 한다 해도 란나씨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점 때문이었다.

“제가 왜 완벽해요? 저 가진 거라곤 얼굴밖에 없는데요?”

“푸핫! 사장님도 본인이 잘 생긴 거 알고 계시네요.”

“설마 모를까 봐요. 이 얼굴 덕분에 편했던 적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튼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란나씨가 저에 대한 콩깍지가 많이 쓰여 있어서 그래요. 절 너무 좋아해서 제 좋은 모습만 보이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점도 보일 것이다.

일 때문에 바빠서 자주 얼굴을 보이지 못한다는 점도 그렇고, 그녀에게 다른 목적으로 접근했다는 최악의 비밀도 숨기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요. 우리 1~2년 보고 말 인연인 거 아니잖아요. 그때쯤 되면 란나씨가 너 같은 놈 만나주는 나한테 감사해! 라고 말할 지도 몰라요.”

“흐흐흐,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제 눈에 사장님은 완벽한 왕자님인데….”

우리는 아직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나와의 미래를 상상해봤다고는 하지만, 아직 확신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나에 대한 확신을 굳히려면 시간이라는 게 필요했다.

“오늘 란나씨랑 함께 있고 싶어요. 란나씨는요?”

그녀와 두 눈을 마주하고 내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자 란나씨가 얼굴을 붉히면서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우리 두 사람의 밤은 뜨거울 것이다.

그리고 그 밤들이 모이고 모여 그녀와의 미래를 만들어 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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