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80화 (280/849)

〈 280화 〉 #43. 상담사 (1)

* * *

란나씨와의 관계가 순조롭고, 태양이는 아픈 곳 없이 잘 크고 있으며, 복순 누나나 다른 여자들도 슬슬 자기 직업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순조로운 상황 속에서 큰 걱정이 없는 상황이었다.

“주인님이 저한테 너무 무심하다는 게 큰일이지 않을까요?”

비앙카가 잔뜩 삐져서 내게 연락을 해왔다.

자신을 만나달라는 요청이었다.

항상 도움만 받고 신경을 못 써준 건 사실이었기에 잠깐 시간을 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오랜만에 만난 비앙카가 내게 달라붙어 애교를 부려댔다.

“어우,너 뭔가 캐릭터가 좀 바뀌지 않았냐?”

비앙카가 애교를 부린다고?

비앙카와 실비아가 합쳐지면서 의식은 실비아가 주도하고 성격은 비앙카한테 많은 영향력을 받아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다시 만난 비앙카는 실비아를 떠올리게 만들만큼 살가운 태도를 보였다.

“보고 싶었으니까 그렇죠! 주인님이 저한테 너무 무심하시니까 실비아 자아가 강해진 거라고요.”

“둘이 융합 된 거 아니었어? 원래부터 성격이 막 휙휙 바뀌고 그랬어?”

“워낙 둘 다 성격이 세서 그런지 잘 섞이지가 않네요. 덕분에 비앙카는 이중인격이다! 라는 소문이 생겨버렸죠.”

한 몸에 두 인격이 공존하고 있으니 이중인격이라는 소문이 영 거짓말인 것도 아니지 않냐며 비앙카가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 180도로 표정이 바뀐다.

“오너에게 심각한 병이 생기면 주가에 문제가 생깁니다. 소문을 내버려둬선 안 되는데, 쓸데없이 장난을 쳐대서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도 장난치고 있는 거 알고 있거든?그런 식으로 행동하니까 이중인격이라고 오해를 하지!”

"엇, 들켰당."

정색할 때의 비앙카와 헤실헤실 능글맞은 웃음을 보일 때의 비앙카 표정이 너무 극과 극이었다.

사정을 알고 있는 내가 봐도 이중인격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완벽하게 융합 된 비앙카의 인격이 왔다갔다 할 리가 없다.

그녀가 보여준 실비아와 비앙카의 성격 변화는 순수 100% 연기였다.

“사실 이중인격으로 행동하는 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이벙 쪄 갖고 놀래는 거 보는 게 굉장히 재밌거든요.”

정말 성격 하나는 기가 막힌 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신변잡기를 하면서(대부분 사람들 괴롭힌 얘기였다)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가 나를 부른 이유를 조심스럽게 꺼내왔다.

“사실 오늘 주인님께 시간을 내달라고 한 건 멜리사 때문이에요."

"멜리사?"

"네, 멜리사가 이상해졌어요.”

멜리사에 관련 된 일은 예전에 끝난 일로 알고 있다.

아이템을 이용해서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잊은 상태인데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 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혹시멜리사가 이상해진 게 나랑 관련 되어 있는 일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비앙카가 굳이 나에게 언급을 할 리 없다.

“네, 맞아요.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무시하려고 하니까 비앙카 자아가 자꾸 커지더라고요.”

“장난 그만 치지? 둘 다 동일 인물이잖아. 아무튼,무슨 문제가 생긴 건데? 아이템으로 확실하게 기억을 제거했잖아.”

멜리사는 그날의 기억을 전부 잊었다.

기억이 없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아이템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멜리사가 망가지는 원인에 그날의 일이 없다곤 못할 상황이더군요. 만약 주인님과 관련 된 문제가 아니었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언급하지 못하게 했을 텐데 말이죠.”

망가져 가는 동생을 지켜볼 수 없는 비앙카와 멜리사의 사정 따위는 아무 상관없는 실비아.

생활하는 내내 문제가 없었던 두 인격은 멜리사에 관련 된 부분에서 크게 부딪쳤다.

주인님을 귀찮게 만들지 말라는 실비아와 동생을 위해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비앙카가 점점 대립하게 된 것이다.

비앙카는 실비아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멜리사가 망가지고 있는 이유가 그날 일이 영향을 미쳤음을.

그리고 실비아는 결국 비앙카의 설득에 넘어가 나를 불렀다.

“구체적으로 얘기해줘. 멜리사가 어떻게 망가지고 있다는 거야?”

정말 그날 일로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비앙카의 생활에 위협을 만든다면 정리를 해주는 게 맞았다.

그녀에게 받고 있는 도움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은가.

비앙카는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자 안색이 밝아졌다.

그러다가 불쑥 표정을 바꿔선.

“칫! 주인님을 귀찮게 만드는 종이라니. 비앙카는 나 없으면 주인님한테 버림받았을 거야. 주인님이 자비로우시다는 걸 이용하고 있잖아. 주인님! 이 일이 끝나면 비앙카를 잔뜩 혼내주세요.”

이미 들켰다는데도 꿋꿋하게 장난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기가 차다.

“…비앙카가 너 스스로라는 건 알고 하는 말이지?”

“당연하죠. 저는 좀 혼나야해요. 감히 주인님께 이런 못된 짓을 하다니!”

“적어도 지금 너는 실비아 자아가 강하다는 건 알겠다. 벌 주세요가 아니라 섹스해주세요겠지.”

"헤헤, 섹스하고 싶어요. 거미줄 쳐졌단 말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섹무새다.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거침없이 말하는 비앙카.

비앙카의 말에 맞장구를 쳐서 혼을 내겠다고 하면 냉큼 침대 위로 올라가서 엉덩이를 들이밀 게 뻔하다.

“흐응~ 주인님은 저를 너무 잘 아시네요. 엉덩이부터 깔 거라는 건 어떻게 아셨지?후훗! 주인님이 엉덩이 때려주는 거 완전 포상♥”

비앙카의 인상이 무척 차가운 편이라서 저렇게 말하면서 윙크하는데 정말 적응이 안 된다.

도도하고, 차가운 미녀인 비앙카는 애교가 참 안 어울리는 외형을 갖고 있었다.

“우리 진지해지자. 제발. 네 동생 얘기하고 있었잖아.”

“질색하는 주인님 귀여워♥”

“...귀여워하지 말아줄래?”

비앙카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멜리사에 대한 얘기를 드디어 들을 수 있었다.

“기억을 지웠으니까 금방 예전으로 돌아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얘가 자기 몸에 뭔가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 채버린 거에요!"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날 밤의 일로 멜리사는 더 이상 처녀가 아니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멜리사는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었다는 걸 예리하게 캐치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멜리사가 천천히 고장이 나기 시작한 것이.

“자기 몸에 뭔가 일이 있었던 건 맞는데, 기억이 안 나니까 환장할 지경인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템 효과가 걔를 미치게 만드는데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사라진 기억에 의문을 갖지 않는 가벼운 세뇌가 걸려 있는 아이템인데, 멜리사가 그런 아이템에 저항을 하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아이템 효과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고 봐야할지, 멜리사의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몸에 뭔가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아이템 효과 때문에 상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최악인데, 그거.”

말만 들어도 굉장히 정신에 좋지 않아 보인다.

“제 말이 바로 그거에요. 자기한테 정신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저한테 도움을 요청했어요. 분명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맞는데 자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거죠. 결국 본인이 합리화한 것 같아요. 자기한테 정신병이 생긴 거라고요.”

멜리사의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설득해보진 않은 거야?”

“본인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애에요. 이미 본인 자체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납득해보려고 발버둥 쳐본 상태인 거죠.”

말로 설득한다고 수긍하고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좋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거 확실하게 이해했어. 그리고 이런 심각한 문제였으면 나한테 말을 했어야 하는 게 맞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비앙카 쪽 인격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물어보는 게 새침하다.

“응. 그리고 해결 방법은 같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뭐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

“사실 아이템을 사용했다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편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럼 그런 경우 대응 방법도 있겠네?”

실비아를 사용하면서 아이템을 잘못 사용하면 큰일 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었다.

효과가 너무 좋아서 사용할 때는 위험성을 무시하게 된다.

“자기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멜리사를 구하려면 걸려 있는 아이템 효과를 삭제시키는 방법이 있고, 좀 더 확실하게 강한 세뇌를 걸어버리는 방법도 있어요.”

“아이템 효과를 삭제시키면 기억이 다 돌아오는 거지?”

“네.”

“그럼 그건 안 되겠네.”

“더 강한 세뇌를 하는 쪽으로 하실 건가요?”

“…그것도 좀 고민이야. 세뇌에 이미 저항한 걸 보면,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

멜리사한테 강하게 세뇌를 걸어놨는데 또 저항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더 큰 문제가 생긴다면?

특수 능력이 있는 아이템의 가격은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글쎄요? 저는 개인적으로 효과를 삭제시키는 게 낫다고 봐요. 주인님을 모실 메이드 자리가 여전히 비어져 있잖아요.”

“내가 메이드가 왜 필요한데? 쓸데없는 소리야.”

“기껏 열심히 훈련 시켜놨는데, 아깝지 않으세요?”

“전혀!”

“멜리사가 힘들어하는 것도 제 교육 덕분일지도 몰라요. 기억은 없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을 거에요.”

“그런 걸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지 마!”

비앙카 안에 있는 실비아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당장 해결은 못할 것 같고, 멜리사한테 도움이 될 아이템이 있을지 상점 뒤져보면서 확인해볼게.”

“네에, 저도 주인님이 해결해주실 때까지 자살하지 않게 관리해볼게요.”

“…뭐?”

자살?

대단한 걸 말하지 않은 척 덤덤하게 하는 말치고 단어가 살벌했다.

“멜리사 상태가 그렇게 안 좋아?”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주인님한텐 쓸모없는 메이드지만, 걔가 나름 프라이드가 있는 재벌 집 딸이잖아요. 자기한테 정신병이 생겼다는 충격이 엄청난 모양이에요. 지금 거의 폐인 상태에요.”

“야.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였잖아!”

그녀를 놔준 이유는 광기어린 비앙카로부터 벗어나서 잘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와 얽히지 않았을 때 멜리사는 충분히 잘 지내고 있었기에 기억만 없으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녀 스스로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비앙카는 잠시 고민하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저는 멜리사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굳이 자기 정신에 문제를 만들어서라도 주인님과 다시 만나고 싶었던 거죠.”

“선택?”

“저한테 받은 교육의 성과인 거죠! 멜리사는 지금 주인님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상식적으로 재벌 딸로 사는 게 더 낫지 누군가를 주인으로 모시는 인생을 자진해서 살고 싶어 하겠나.

그런데 비앙카는 자꾸 나를 충동질했다.

“멜리사를 한 번 만나주세요. 그럼 주인님도 생각이 바뀌실 거에요.”

자기 말이 맞을 거라는 실비아 아니, 비앙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멜리사를 보는 거다.

그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눈으로 직접 보고, 해결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멜리사는 주인님을 기억하지 못할 거에요. 주인님이 어떤 분인지 소개를 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으로 소개를 시켜드릴까요?”

“상담사로 소개해줘. 그래야 멜리사랑 얘기를 나누기 편할 테니까.”

“그럼 얼굴은 바꾸시는 게 좋을 거에요. 걔가 연예계 쪽은 빠삭하거든요.”

“따로 쓰고 있는 얼굴이 하나 더 있어. 그거 쓰면 되겠다.”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바로 멜리사를 만나러 갔다.

다행스럽게도 멜리사가 있는 곳은 정신병동이 아니었다.

진료 기록조차도 약점이 되는 세계에서 사는 사람인지라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고도 병원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그녀가 느끼는 혼란은 아이템 효과 때문이었으므로 병원에 가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얼굴을 바꾸고 멜리사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별장 안으로 비앙카와 함께 들어섰다.

“비앙카?”

“안녕, 잘 지내고 있었어? 어휴, 쩐내. 환기 좀 하고 살아!”

“아씨,혼자 쉬고 싶다고 했잖아!”

“혼자 내버려뒀다가 별장에 시체 썩은 내 날까봐 걱정 돼서 왔다, 왜!”

“내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꼴사나운 짓은 안 하거든?”

멜리사가 비앙카의 말에 굉장히 사납게 반응했다.

특히 비앙카의 옆에 있던 나를 발견했을 땐 더 그랬다.

“같이 온 저 남자는 또 누구야!?”

“널 위해서 데려 온 사람이야. 입 무거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날 위해서라고?설마 의사야?”

의사냐는 말 앞에는 정신과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비앙카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내가 어쩌다가 이런….”

“아프면 의사한테 보여야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정말 유능하신 분 모셔온 거니까 속에 있는 말 시원하게 해. 아픈 걸 고치라고 있는 게 의사잖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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