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 #43. 상담사 (3)
* * *
멜리사에게 이상이 생긴 건 생각보다 오래 된 일이었다.
“그날은 일어났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어요.”
내 몸에 말 할 수 없는 변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라고 멜리사는 천천히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이상했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었나요?”
“처음에는 가볍게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별 거 아니었죠. 그냥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증상이 점점 심해졌나요?”
“네. 일상생활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어요.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밥을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계속 고프다고 해야 할까요?”
허전하다는 알 수 없는 감각이 굶주림처럼 그녀를 괴롭혔다.
남자는 그녀의 말에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굶주림이군요.”
“맞아요, 제가 아귀가 된 것 같았죠.”
아귀지옥이라는 말을 아는가?
목마름과 배고픔이 가득 찬 세상에 사는 것은 ‘지옥’이라 표현 될 정도의 고통이다.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허전함 때문에 미치다니, 너무 황당하지 않아요? 자존심이 상했어요. 내가 고작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에 흔들린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죠.”
내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다가 생긴 기이한 변화.
원인이라도 알았다면 억울하진 않았을 거라며 멜리사가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잠깐 흔들린 거라고, 내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단순한 감정에서 망상까지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망상 때문에 잠깐씩 정신을 놓을 때 빼고는 그녀의 정신이 너무나도 명료했다는 거다.
“그래서 역으로 생각해봤어요. 내가 진짜 뭔가를 잊어버렸고, 그래서 이렇게 고통 받는 건 아닐까.”
“좋은 행동은 아니었을 것 같네요.”
“…신기하네. 확실히 전문가라서 다른가? 맞아요,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어요.”
상담가의 말을 들은 멜리사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증상이 몇 배로 심해졌거든요.”
두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됐고, 단순히 허전함을 주던 감각은 망상을 만들어냈다.
어디서 오는지 모를 허전함이 누군가를 잃어버린 탓이라는 망상.
그 사람을 만나야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확신.
“불편하지 않다면 어떤 망상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
선뜻 입이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멜리사는 움직이고 싶지 않은 입술을 움직였다.
“그냥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망상이에요.”
“그 사람은 멜리사씨한테 어떤 존재죠?”
“없는 사람인데 그게 중요한가요?”
멜리사는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다른 사람이 아는 것 자체가 거북했다.
상담사가 아니었다면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일도 없었을 존재였다.
“멜리사한테 그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면 대화를 나눌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물은 겁니다. 불편하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상담사는 멜리사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녀에게 부담을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상담사의 그런 태도에 멜리사의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대충 좀 중요한 존재에요.”
“긍정적인 사이인가요, 부정적인 사이인가요?”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상담사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래서 전문가인가?’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한 얘기는 절대 입 밖으로 내놓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렇게 조심스럽고 두루뭉술하게 정보를 원해오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당장 대답하기가 곤란해요.”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게 정의를 내려두는 게 좋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데요?”
“멜리사씨 안에서는 존재하는 사람이잖아요.”
“…….”
“너무 부정하려고도, 긍정하려고도 할 필요 없어요. 가볍게 생각해보는 겁니다. 멜리사씨를 아프게 만드는 사람이니 부정적인 존재겠죠?”
상담사가 그녀 안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을 너무 당연하게 긍정해줄 거라고 생각 못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할수록 심한 두통이 와요. 그래서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존재함을 긍정해주고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해보라고 하니까 한 번 해볼게요.”
불쑥불쑥 이상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 사람’은 사실 멜리사에게 너무 특별한 존재였다.
굳이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멜리사와 그의 관계는 이미 정의 된 상태다.
다만 그녀가 그 관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그도 그럴게, 망상 속에서 그 사람은….
‘내 주인님…이니까.’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어떻게 그런 존재가 부정적일 수 있을까!
대답은 이미 결정 된 거나 다름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준 상담사에게 멜리사가 대답했다.
“그 사람은 제게 매우 긍정적인 존재에요.”
? ? ?
이런, 낭패다.
꿈틀꿈틀!
멜리사의 대답에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인형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내기에서 이긴 덕분에 소리없이 주머니 안에서 환호하고 있을 거다.
이러면 절로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이~!!!’
당연히 부정적인 존재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 때문에 정신병이 생긴 거잖아!!
도대체 왜???
멜리사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당신을 아프게 만드는 원인이잖아요. 왜 긍정적인 거죠?”
“그건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게 매우 긍정적인 존재라고만 아시면 돼요.”
“…….”
마음 같아서는 구체적으로 따지고 싶다.
어떻게 그 사람이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일 수 있냐고.
정신병을 유발한 사람을 긍정한다고?
‘이러니까 문제가 생기지!!’
비앙카와 한 약속이 다시 떠오른다.
결과가 나오면 서로 두 말 없이 승복하기로 한 상태였다.
‘이건 진짜 예상에 없던 일인데.’
이제 정신 나갈 것 같은 건 멜리사가 아니라 나다.
“일단 알겠습니다. 긍정적인 존재….”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머리가 아파서 더 이상 못할 것 같네요.”
멜리사가 시기적절하게 상담을 끝냈다.
나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해서 머리가 안 돌아갔기에 그녀의 뜻대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또 오실 건가요?”
“…네. 그럴 생각입니다.”
“내일은 제가 스케줄이 있어서 여기에 없을 거에요. 삼일 뒤에 오세요.”
“휴가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한 달 정도는 푹 쉬려고 했는데 계획처럼 쉴 수가 없네요. 제가 꼭 확인해줘야 하는 일들이 있거든요.”
멜리사는 아이템 부작용 때문에 계속 두통이 심해지는지 얼굴에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있었다.
별장을 나온 나는 문 앞에서 보란 듯이 기다리고 있는 비앙카와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차에 올라 타니, 비앙카가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하…혹시 알고 있었어?”
“뭐가요?”
“모르는 척 하지 말고.”
내기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나처럼, 비앙카도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멜리사를 직접 교육했던 비앙카라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으리라.
“헤헤, 내기였잖아요.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하실 건 아니죠?”
“주인 이겨 먹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노예를 부디 가엽게 여겨주세요. 저도 먹고는 살아야죠!”
“이번만 이겨 먹은 게 아니잖아.”
관계의 우위는 나한테 있지만, 비앙카는 항상 나를 이겨먹었다.
내가 명령하면 그 상황에서 자기 몫을 확실하게 챙겨먹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명령은 확실하게 지키는 탓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편하긴 정말 편한데….’
주인을 너무 호구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찌질하게 여기서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녀와 대거리 해봤자 나만 손해일 게 뻔하고 말이다.
“내기는 내기니까 어쩔 수 없지. 멜리사 기억을 되돌리는 게 조건이었지?”
“굳이 기억을 되돌릴 필요 없어요. 지금 저 상태로 다시 세뇌를 걸어도 괜찮아요.”
“다시 세뇌를 걸라고?”
“네, 교육은 다시 시키면 돼요. 어차피 기억을 되돌려도 다시 교육을 받긴 해야 하거든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가물가물할 거에요.”
이젠 정말 멜리사를 놔줄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멜리사의 주인이 된 내가 그녀를 지켜줄 필요가 있었다.
그때는 상황을 몰라서 지켜주지 못했지만, 지금은 비앙카 옆에 멜리사를 두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 내기는 멜리사 기억을 되돌리는 거 아니었어? 넌 멜리사를 다시 교육 시킬 권한을 준 적 없어.”
“…그건 맞는 말이네요.”
기억을 되돌려도 멜리사를 비앙카 곁에 두지 않으면 상황이 좀 나아질 거다.
애초에 멜리사를 그렇게 만든 건 비앙카가 아닌가?
멜리사에게 비앙카는 해악 그 자체였다.
“주인님은 멜리사가 그날 일을 잊길 원하시잖아요. 주인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억지로 할 생각 없어요. 제가 기억을 포기할 테니, 주인님도 한 발 물러서주시면 안 될까요? 멜리사를 완벽한 메이드로 만들면 주인님한테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멜리사의 기억을 되돌리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끌리는 제안이다.
하지만 비앙카가 이번 기회로 더 심하게 멜리사를 괴롭힌다면 기억을 삭제한 보람이 없어진다.
그때와 비슷한, 어쩌면 더 끔직한 기억을 갖게 될 테니 말이다.
“멜리사도 완벽한 메이드가 돼서 주인님을 모시고 싶을 거에요.”
“비앙카랑 몸이 합쳐진 거잖아. 그런데도 멜리사한테 그런 짓을 하고 싶은 거야?”
“아…예리한 지적을 하셨네요. 사실 예전만큼 단호하게 가르치진 못할 거에요. 온전히 실비아였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제 반쪽은 비앙카거든요. 그래도 전 숙련 된 조교니까 짧은 기간에는 못해도 시간을 좀 들이면 가능할 거에요. 방식도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요.”
비앙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친동생에게 메이드 교육을 할 생각에 들뜨다니.
이 무슨 괴악망측한 취미란 말인가?
“아무튼 선택해주세요. 저는 주인님이 결정하신 대로 할게요.”
멜리사의 기억을 되돌릴 것인지, 세뇌로 멜리사의 주인님이 되어 다시 교육을 받도록 할 것인지.
“세뇌를 다시 하고 교육은 안 받는 걸로 하는 건?”
“후후후, 저는 목표한 게 있으면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랍니다.”
“…….”
저 말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몰래 멜리사를 납치해서 교육을 시켜 놓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비앙카의 폭주를 막고, 두 사람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타협점이 필요할 때였다.
“네가 멜리사를 교육해도 좋아. 대신 교육은 무조건 내 앞에서만 하는 거야.”
“엣? 교육을 주인님 앞에서요? 정말 그걸 원하시는 거에요?”
“어.”
쟤가 폭주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교육하는 걸 보고 싶어 하실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할래. 이것도 싫다고 하면 그냥 내 마음대로 명령해버릴 거야. 너랑 한 약속 전부 깨버리고 멜리사를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그럼 너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거 알고 있지?”
“…물론 알고 있죠. 애초에 전 주인님 뜻을 거스를 생각이 없는 걸요.”
지금까지 잔뜩 골치 아프게 만들어놓고 자긴 죄가 없다는 듯 배시시 순진하게 웃는다.
비앙카가 가진 외형 덕분에 그 웃음조차도 섹시했지만, 내 여자들처럼 성욕 스위치를 건드리진 못했다.
비앙카도 내가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쳇! 하고 아쉬워했다.
“출발할게요!”
“그래.”
부우웅~!
시원한 배기음을 토해낸 차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나와 얽히지 않는 게 멜리사에게 더 좋은 일일 거란 생각에 놔줬던 건데….
멜리사가 제 발로 주인을 찾아와버렸으니 더 이상 외면하는 건 그녀를 위한 일이 아닐 것이다.
저번에는 실비아에 의한 강압적인 선택이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멜리사의 의지가 담겨 있는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억이 없는데도 영향을 끼치게 만든 비앙카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이템 효과에 저항한 멜리사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 자매가 쌍으로 날 골치 아프게 하는 건 확실해.’
다시 메이드가 될 멜리사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봐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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