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화 〉 #44. 신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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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사에 관련 된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휴가가 끝났다.
연말에 바짝 방송국을 돌며 출연했던 게 바쁘게 편집 되어 연말 프로그램 방영이 된 지라 인터넷에 우리에 대한 반응이 화끈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덕분에 복귀하자마자 우리는 좋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외에서 인정받고 오니까 대우가 확 달라진다. 너희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전부 화제였어. 그래서 이 기세를 몰아보려고 준비한 게 있거든? 줌베이 쪽이랑 얘기가 생각보다 많이 진행됐어.”
“어? 그럼 줌베이랑 협업하는 거에요?”
“응. 그렇게 될 것 같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저희야 좋죠.”
줌베이와 겨뤄봤기에 그녀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와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관계가 잘 다져진 사이.
협업을 하자고 말이 나온 적이 있었기에 괜찮은 제안이긴 했다.
다만 우리에게는 한 가지 약속 된 게 있었다.
“협업 할게요. 근데 저희 다음 활동 약속하신대로 해주시는 거죠?”
“응? 약속?”
전담팀 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다.
우연이가 울컥해서는 쀼루퉁하게 말했다.
“저희 유닛 활동이여!!”
“아! 맞다.”
“까먹으시면 어떡해요!! 그게 엄청 중요한 건데.”
우연이가 잔뜩 상처 받은 표정을 짓는다.
화까지 났는지 눈물이 공일 정도였는데, 그걸 보고 모르쇠를 하던 직원이 황급히 말했다.
“아이고, 장난 한 번 쳤다가 울려버리겠네. 설마 우리가 그걸 잊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유닛 활동 준비하고 있었어.”
“정말여? 급하게 준비한 척 하는 게 아니고요?”
“믿을 수 있게 해줄게. 기다려봐.”
직원은 진짜 유닛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 시킬 생각인지 자료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어떤 컨셉이 어울리는지, 유닛 멤버는 누구로 하는 게 좋은지 등을 조사했던 흔적들이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직원들은 회사에서 이런 것들을 조사하면서 회의를 했던 것 같다.
“헉! 이렇게까지 조사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어요.”
우연이가 감동을 받아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직원들이 준비한 것들을 하나하나 유심하게 읽어보며 감동을 받았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우리도 옆에서 우연이와 함께 유닛 활동에 관련 된 서류를 읽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회의를 진행했는지 내용이 굉장히 다양했다.
“와~ 이런 쪽은 생각 안 해봤는데, 이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렇지? 우리가 생각해봤는데 그 컨셉으로 유닛 내면 정말 좋을 것 같더라고.”
“컨셉은 이중에서 고르면 될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맞는 노래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너희 정말 해솔이랑 제키한테 맡길 거야? 그래도 노래는 받아보는 게 어때?”
“형들!! 전 형들을 믿어요!! 저번에 냈던 곡처럼 좋은 걸로 만들어줄 거에요.”
“우연이 주려고 모아둔 노래가 있기는 해요.”
“그래? 그럼 한 번 추려서 와볼래?”
“네. 그럴게요.”
“저요! 저 들려주세요!”
유닛으로 활동하는 멤버는 기우연, 남은규 그리고 경태 형이다.
해외는 줌베이와 협업으로 공략을 하고 국내는 유닛 활동으로 화제를 이어가는 것이 현재 우리 그룹의 플랜이었다.
“유닛 활동 안 하는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할 거야? 뭐 하고 싶은 거 있는 사람?”
“저는 작곡 쪽으로 좀 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동안 스케치만 해놓고 완성 못하고 쌓아 둔 곡들이 많거든요.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누나, 형들이 제 곡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딱히 생각해둔 게 없는데…. 그나마 있다면 연기랄까요. 웹드라마 촬영할 때 재밌었거든요.”
제키는 활동보다는 작곡에 관련 된 일을 하고 싶어 했고, 강준은 생각해본 일이 없다며 다소 난감해 했다.
“그래, 준이는 원래부터 연기 쪽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연기 쪽으로 알아보면 되겠다. 해솔이 너는?”
“저는…휴식?”
살짝 조심스럽게 아주 솔직한 마음을 털어놔봤다.
소속사에서 휴식을 준다면 정말 알차게 쓸 수 있을 거다.
하루가 24시간인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개인적인 부분에서 시간이 많이 필요한 나다.
“어허, 어림도 없지. 해솔이도 연기 나쁘지 않았잖아. 준이랑 같이 연기하는 거 어때?”
“형, 벌써 쉴 생각을 하면 안 되죠!”
“저번에 했던 웹드라마 연기 좋았잖아. 같이 연기하자.”
“…….”
강준은 연기 쪽으로 생각이 있는 애라서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연기 쪽으로 생각해본 일이 없다.
그렇다고 소속사가 해준다는데 싫다고 하기도 뭐하다.
남들은 기회를 얻고 싶어도 못 얻어서 안달이 나 있지 않은가?
그래도….
“음,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좀 더 생각해볼게요. 연기가 싫은 건 아닌데, 그게 최선일 것 같지는 않거든요.”
“흠, 알았어. 그럼 일단 연기는 준이만 하는 걸로 할게. 마음 바뀌거나 하고 싶은 일 생각나면 언제든지 얘기해야 한다?”
“넵.”
멤버들 모두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는데, 유일하게 나만은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황에 내가 시간을 너무 안일하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너희 8일에 옷 맞추는 날인 거 알지? 중요한 스케줄이니까 꼭 기억해둬.”
“이사님이랑 같이 가는 그 파티 말씀하시는 거죠?”
“응.”
“으악!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죠?”
올리비아가 사과를 하고자 우리에게 연결해주었던 스케줄.
향수 촬영을 하는 것보다 파티 초대장이 더 값어치 있다고 말했던 그 파티에 입고 갈 옷을 맞추는 날이었다.
소속사에선 파티를 앞두고 우리를 단단히 준비시킬 생각인 듯하다.
“파티장 매너에 관련 된 수업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그런 수업도 있어요?”
“기본적인 사교 매너 배우는 거야. 거기서 깔깔대면서 웃고 떠들면 안 된다 뭐 이런 거 알려주는 거지.”
“그 정도는 저희도 알거든여!”
“수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같아서 한 소리야. 그런 곳에서 실수하면 큰일나니까. 기껏 좋은 기회를 얻었는데 아는 게 없어서 쭈뼛대다가 오는 것도 아깝잖아.”
직원들은 기왕 파티에 참석하는 거, 우리가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분을 쌓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너희들이 뭐가 부족해서 거기서 쭈뼛대야 되는데? 어메이징 스타에서 우승한 대단한 가수잖아. 당당하게 어깨 펴고 기죽지 말고 다녀와야 해.”
“그래봤자 얼굴마담 아니에요?”
향수 브랜드에서 우리에게 초대장을 주는 것도 얼굴 마담 하라고 부르는 거다.
우리뿐만 특별하게 초대장을 준 게 아니라 매번 자기 회사 제품을 홍보한 연예인들에게 초대장을 줘서 파티에 참석하게 했던 것이다.
“너희가 그런 태도로 참석하면 얼굴마담이 되는 거고, 주도적인 태도를 보이면 제대로 된 참석자가 되겠지?”
친분을 쌓는 건 연주 누님 같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직원은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너희들 대충 시간만 때우다가 올 생각이었잖아.”
“이사님이 같이 가니까요.”
이사님이 해주겠지가 현재 우리의 공통 된 생각이다.
“욕심 좀 내자, 얘들아~ 그리고 배워두면 나쁠 거 없어. 거기서 실례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고.”
얌전히 있다가 오기 위해서라도 파티장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파티장은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장소였다.
만약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밉보이기라도 한다면, 괜히 뻥 뚫린 길에 장애물을 만드는 긁어 부스럼을 내는 효과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파티장에 가기 전에 너희들한테 무기 하나씩 들려놓고 보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
“무기요??”
“웬 무기?”
“설마 총을 들려보내겠다는 건 아니죠?”
“쯧쯧!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 너희들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게 뭐야. 물을 필요도 없이 이거 아니야?”
직원이 손으로 우리 얼굴을 가리켰다.
“아.”
“뭔가 했더니….”
무기라는 말에 뭔 소리인가 했더니 결국 기승전 얼굴 마담이었다.
“실수해도 얼굴 보면 화가 가라앉을 정도로 꾸며줄게.”
“…….”
자신 있게 한 말치곤 썩 위로가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결국 우리에게 큰 기대는 없다는 소리를 돌려서 한 거였고, 우리가 할 일은 얼굴마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했다.
???
휴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스케줄을 하러 바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본격적으로 연말에 하는 가요대상이 시작 돼서 그곳에 참석을 해야 했던 것이다.
소속사와 딜을 해서 다른 프로그램에 미리 출연하는 대신 스폐셜 무대를 하지 않기로 했던 우리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을 하면 됐다.
공연을 아예 안 한다는 건 아니다.
팬들이 우리 얼굴을 보려고 왔는데 무대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랜만에 팬들 만나겠어요!”
“그러게. 되게 오랜만이네.”
“완전 보고 싶었어!”
해외 팬들은 자주 봤는데, 국내 팬들 앞에서 무대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는 가요대상에서 만나게 될 팬들과의 만남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와, 에어플레인 선배님이다.”
“안녕하십니까, 에어플레인 선배님!”
우리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사이에 모르는 얼굴들이 많아져 있었다.
“헉! 아,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아.”
우리는 사뭇 다른 방송국 대기실 상황에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예전에도 우리를 향해 인사를 하는 신입 그룹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땐 이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을 보는 시선은 없었다.
“예전에도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심한 것 같아.”
“부담 되네.”
“해솔아! 너는 빨리 리허설 하러 가야 돼.”
나는 오늘 가요제 특별 MC를 맡아서 멤버들이 대기실에 있는 사이 리허설을 하러 움직여야 했다.
원래 MC는 내가 아니었다.
엊그제만 해도 가요대상은 2명의 MC가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요대상에서 말을 바꿨다.
소속사와 딜해서 스폐셜 무대에서 빠지기로 하고 끝난 일인데, 자기 허락 없이 진행 된 일이었다며 MC라도 하라고 갑질을 한 것이다.
‘진짜 더러운 바닥이야.’
소속사가 방송국에 항의를 했지만, 그쪽은 이미 받아먹은 뒤라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제가 설득을 해보긴 하겠습니다만, MC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중을 위해서라도 서로 좋게 가시는 게 어떨까요?’ 라는 황당한 소릴 지껄인 것이다.
“형, 고생해요.”
“방송국 놈들 전부 양아치인 건 알았지만, 진짜 이번엔 이가 갈린다, 갈려.”
“미안하다, 해솔아.”
“MC를 하게 된 방식이 별로긴 해도 MC 하는 거 자체는 나쁘지 않아. 아무나 MC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사실 MC를 하기엔 내가 알맞다.
과하게 긴장을 하는 편도 아니고, 기억력이 좋아서 대사를 빠르게 외워서 말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안정적으로 MC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나이기에 난감해 하는 소속사를 위해 선뜻 하겠다고 말을 한 것이었다.
만약 내가 끝까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면 소속사는 절대 날 무대 위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소속사에서 날 강제로 시키려고 했다면 나도 빈정 상해서 고집을 부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니저 누나가 센스있게 말을 잘 했다.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싫다면 소속사는 끝까지 거절할 수 있다, 부담 갖지 말고 어떻게 했으면 하는지 의견 말해달라’ 라고 물어 온 것이다.
거기에 대고 ‘하기 싫어요.’ 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나?
쿨하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소속사는 선뜻 MC자리를 받아준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나를 위해 끝까지 싸워주겠다고 말하긴 했어도 부담이 안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하다.
멤버들도 상황을 설명 들었기에 미안해했고 말이다.
기존 가요대상 MC인 두 명은 모두 내 선배님들이었다.
이제 신년이 되었으니 꽉 찬 3년차, 이제 4년차에 접어 든 나한테는 아직까지 선배님들이 많았다.
다행이도 서로 안면이 있고, 대화도 짧지만 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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