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86화 (286/849)

〈 286화 〉 #44. 신년 (4)

* * *

대상이다!!

“이예에~!”

“대상! 대상! 대상!”

멤버들은 어젯밤 회식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없이 잠에 들었다가 늦게 일어났다.

씻지도 않고 멤버들이 트로피장에 옹기종기 모였고, 대상 트로피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게 정말 우리 꺼란 말이지?”

“흐흐흐흐!”

“여기다가 뽀뽀해도 됨?”

“안 돼! 더럽히지 마!”

"이럴 게 아니라 사진 찍어서 SNS 올리자!"

트로피를 소중하게 껴안고 어화둥둥하던 멤버들은 1시가 되어서야 씻고 소속사로 이동했다.

소속사에서 점심을 먹고 익숙한 전담팀 회의실로 모인 우리들.

그때쯤 란나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어엉~”

애들은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회의실을 나와 전화를 받기가 수월했다.

“여보세요?”

­저에요, 사장님!

“란나씨. 잘 잤어요?”

­네에…새벽에 오셨었죠? 왜 그냥 갔어요. 깨우시지.

“곤히 자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얼굴만 잠깐 보고 가려고 했던 거고요.”

­그렇다기엔 방도 치우고 가셨던데….

잠에서 깨어났는지 란나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가요대전이 새벽에 끝났고, 겨우 짬을 내서 잠깐 그녀의 집에 들렸다.

다른 곳도 아닌 란나씨 집에 간 이유는, 연말에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내 말에 그녀가 큰 실망을 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티가 나고 이후에는 괜찮다고 덤덤하게 받아주긴 했지만, 마음이 상한 건 분명해보였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짬을 내서 들리면 서운한 마음이 좀 풀리지 않을까 싶어 한 행동이었다.

‘아이템 없었으면 엄두도 못 낼 스케줄이었지.’

그래도 노력한 보람은 있는지 통화 속 란나씨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할 뿐 서운함이 깃들어 있지는 않았다.

“숙취는 좀 어때요?”

그녀의 집에 들어갔을 때,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그녀의 친구들이 구겨져서 자고 있더라.

‘순간 대학교 때로 돌아간 줄.’

그때 여자 동기들은 군대 동기처럼 참 끈끈하고 우애가 깊었었다.

­으앗! 죄송해요. 보기 흉하셨죠? 사장님이 사다놓으신 음식 먹고 쑥 내려갔어요. 친구들도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다행이네요. 저도 아침으로 그거 먹었어요.”

맛집에서 포장해 온 설렁탕은 우리 멤버들도 아침으로 먹었다.

회식에서 술을 아예 안 먹을 순 없었기에 엄청 취하진 않았어도 알게 모르게 속이 쓰릴 정도로는 먹었기에 해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바쁜 일은 잘 해결 되셨나요? 저한테 오시느라 문제 생긴 건 아니겠죠?

“네. 일 잘 마무리 됐어요. 늦게까지 회식이 있어서 참석하고 있다가 끝나고 잠깐 시간이 날 것 같아서 들렸어요.”

­아…일하신 거였구나.

“일만 없었으면 란나씨 만나러 갔을 텐데…. 우리 첫 연말을 혼자 보내게 해서 미안해요.”

그렇다고 가요대전에 참석하지 않을 순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갑자기 MC를 한 보람이 있게도 우리는 이번 년에 최고의 상인 가요 대상을 받았다.

함께 MC를 봤던 선배님들의 추측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뭐 어쨌든 받으니까 기분은 좋았지. 특히 팬분들이 너무 좋아해서….’

어째 팬들이 우리보다 더 좋아해줘서 엄청 뿌듯하고 행복해져버렸다.

남이 잘 되는 거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좋아해주는 팬들이 신기하고, 너무 고맙더라.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거지? 진짜 대단한 것 같아.’

우리를 그렇게까지 사랑해주는 팬들이 신기할 때가 많다.

대단한 걸 해준 적이 없는데 과분할 정도로 우릴 사랑해주니 말이다.

그들의 사랑이 버겁기도 하고,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서워지기도 한다.

­아니에요. 친구들이랑 같이 나름 즐겁게 보냈어요. 사장님은 회식 하느라 많이 피곤하셨겠어요.

나는 회식하느라 정신없었다.

대표님이 우리의 첫 대상에 금일봉과 함께 회식비를 내려줬던 것이다.

직원들이 금일봉을 받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문득 과거 내 회사 생활이 생각날 정도였다.

“아무래도 그렇죠. 회사 사람들이 마냥 편한 게 아니니까. 란나씨랑 같이 있었다면 훨씬 행복한 시간이었을 텐데 아쉽네요.”

­아! 저도 그랬을 거에요.

“형!! 이사님 오셨어!”

그때, 우연이가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일 중간에 잠깐 시간을 내서 나온 거라 오래 통화하는 게 불가능했다.

“일하는 중이라 오래 통화 못할 것 같아요. 시간 날 때 연락할게요.”

­네에.

“문제 있는 건 아니죠? 목소리에 힘이 없어요.”

­아니에요! 저도 마침 카페 출근해야 했어요.

“고생하겠네요, 날씨 추우니까 따듯하게 입고 출근해요.”

­네. 사장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통화가 끊기고, 멤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누군지 물어봐도 돼?”

“친구야.”

“흐응~ 오키. 이사님한테 인사 드려.”

“어. 그래야지. 안녕하세요, 이사님.”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연주 누님이 보인다.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눈빛으로는 좀 더 친근하게 바라본다.

연주 누님은 능숙하게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기에 화답을 받지는 못했다.

우리는 절대 누군가에게 들켜선 안 되는 사이였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나요? 다들 얼굴이 좋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나쁠 이유가 없죠. 상도 받고, 이제 새해잖아요.”

“에어플레인은 내년에도 더 성장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사랑 받게 될 거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방송국에 관련 된 얘기를 들었어요.”

“앗.”

“제가 알아보니까 대상 받은 걸로 대충 넘길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방송국이랑 사이 틀어져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라는 식으로요. 그쪽도 그걸 알고 뻗댄 걸 텐데, 제가 따로 국장이랑 만나서 얘기를 나눌 생각이에요.”

연주 누님이 방송국 국장이랑?

국장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되는 거에요?”

멤버들은 내게 미안한 마음이 컸는지 연주 누님의 말에 솔깃해 했다.

하지만 나는 대상을 받았기에 이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전 괜찮은데요, 이사님. 이미 끝난 일인데 굳이 그걸 다시 꺼내서 서로 불편해질 필요가 있을까요?”

내 말에 연주 누님은 꽤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안 괜찮습니다. 이번 일은 우리 회사를 무시한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장님이랑 친분이 있어서 제가 얘기를 하면 아마 그분도 화를 내실 겁니다. 일개 피디가 윗분들이 결정해서 끝낸 일에 잡음을 만들었으니까요. 원흉한테 사과를 꼭 받아낼 겁니다.”

“음…알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사의 연주 누님, 도대체 어디까지 유능할 셈인가?

“감사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미안할 일이죠.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무능해서 제대로 처리 못하고 여러분들한테 책임을 떠넘겼으니까요.”

어쩐지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분들한테만 하는 소린데, 이번 일은 대표님도 알고 계십니다. 연말이라서 직원들한테 뭐라고 하진 않으셨지만, 굉장히 화가 많이 나셨죠.”

대표님이?

“대표님은 소속 아티스트를 굉장히 아끼시거든요.”

그렇게 말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여주는데, 우연이가 그 미소를 보고 무서웠는지 움찔 몸을 떤다.

“그 일은 여기까지 얘기하고, 파티 관련 된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어요.”

“아…파티요.”

파티장에 가기 전에 사교 매너를 배우기로 했었던 걸 말하려나 보다.

“처음에는 다 함께 입장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 중에 한 분은 제 옆에서 에어플레인의 얼굴이 되어줘야 합니다. 제 파트너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에요.”

“파트너…!”

“뭔가 상상만으로도 어려워 보여요.”

애들의 얼굴에 난감함이 스친다.

그녀의 파트너가 된다면 파티장에서 엄청난 고생을 할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연주 누님 자체가 편하지 않고, 그녀와 함께 만나게 될 상대도 만만치 않게 불편할 거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구죠?”

“우연이 은규는 거의 못하고 해솔이랑 저는 능숙합니다. 경태 형이랑 준이는 능숙하진 못해도 의사소통은 할 수는 있고요.”

“혹시 멤버들 중에 야심이 좀 큰 사람 있나요? 쉽게 보기 힘든 사람들이 올 거에요. 좋은 관계를 다지면 분명 여러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죠. 그런 야심이 있는 사람이 제 파트너가 되길 바라요. 영어가 좀 서툴러도 제가 통역을 해주면 되니까 문제는 없을 겁니다.”

언어 실력보다는 야심을 보겠다는 것 같다.

그녀의 파트너로 함께 파티장에서 움직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긴 할 거다.

각오가 부족한 사람에겐 주기 아까운 기회이기도 했다.

“부담 갖지 말고 솔직한 마음을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제 파트너를 하려면 정말 힘들 거에요. 뭔가 바라는 게 있다면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연주 누님이 미리 굉장히 힘들 거라고 으름장을 놓아서 그럴까?

우연이와 남은규는 제일 먼저 포기를 선언했다.

“저는 기권할게요.”

“저도 죄송하지만 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가요.”

이어서 강준이 고개를 저었고, 경태 형도 마찬가지로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다만 하고 싶은 사람이 없을 때는 자신이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아무래도 큰 형이다 보니 책임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모두가 사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사람은 제키와 나였다.

사실 우리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해주는 게 제일 낫기는 했다.

언어가 통한다는 건 연주 누님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다.

“제키야, 솔직하게 말해봐. 하고 싶어? 하고 싶지 않은 거면 내가 할게.”

“또 형이 하겠다고? 언제까지 짐을 형한테 넘겨야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해.”

연주 누님이 말했던 것처럼 야망이 있어서 하겠다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해도 돼. 이사님이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

“억지로 하는 거 아니야. 거기 참석자들이 다 대단한 사람들이라며. 연을 만들어두는 것도 좋겠지. 나 작곡 프로듀서 쪽으로 관심이 많잖아. 인맥을 만들어주면 도움이 될 거야.”

제키가 마음을 굳힌다.

“이사님, 제가 하겠습니다. 언어도 통할 테니 이사님한테 부담이 덜 하니 편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그럼 제키씨는 저랑 옷을 맞춰서 입어줘요.”

“예.”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한테 당부해두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파티장에 있으면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에요. 아무래도 눈에 많이 뜨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솔직하게 말하면 꽤 추잡한 제안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

“…….”

연주 누님이 언급하고 있는 말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유혹에 섣부르게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지 말아요. 그리고 단순히 유혹만 받고 끝난다면 좋겠지만, 협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저한테 말하세요.”

“!!”

“혀, 협박이요?”

멤버들이 분주하게 눈알을 굴린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주는 술, 함부로 먹지 말아요. 질 나쁜 사람은 거기에 약을 탔을 수도 있어요. 함부로 이것저것 마시다가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면 모르는 침대 위에서 깨어날 겁니다.”

“…!!”

멤버들의 얼굴에 충격이 깊어진다.

이후로도 연주 누님의 걱정이 담긴 경고와 조언이 이어졌다.

거기서 당하면 답이 없다.

억울해서 화를 내도 소속사는 해결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저희는 어떡해야 해요?”

“스스로를 지키는 건 스스로밖에 없어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변에서 띄워준다고 헤헤거리면서 들뜨지 말아야 해요.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 양을 잡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연주 누님의 살벌한 경고에 멤버들의 멘탈이 무너졌다.

일이 있다며 돌아간 연주 누님.

그녀가 남기고 간 여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멤버들은 몇 시간 내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무서워여.”

“우리 파티장에서 떨어지지 말고 붙어있자.”

“화, 화장실도 같이 가는 거 어때?”

“거기서 화장실을 가려고?!”

“긴장 돼서 마려울 것 같은데….”

“그럼 다 같이 가는 걸로 해.”

“그러자.”

멤버들이 충격과 공포 속에서 찾아 낸 방법은 똘똘 뭉쳐 있자는 것뿐이었다.

그게 과연 마음대로 될진 모르겠으나 애들이 덜덜 떠는 게 제법 귀여워 허허 웃었다.

‘설마 진짜 뭔 일이 나려고.’

만약 진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나서서 막아 줄 것이다.

‘제키가 연주 누님 파트너를 한 게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네.’

어린 양들의 살점이 뜯어 먹히지 않도록, 파티장에서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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