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288화 (288/849)

〈 288화 〉 #45. 최면 (1)

* * *

연주 누님은 내 체질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네 주변에 있는 사람도 같이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거구나.”

“네.”

“어릴 적부터 계속 그랬고.”

“네.”

“네 체질을 아는 사람은?”

“친구들이나 멤버들은 알고 있어요. 제가 확실하게 말한 적은 없는데 같이 지내다보면 눈치를 챌 수밖에 없더라고요. 신기해 하기는 해도 제 비밀을 지켜줄 생각인지 먼저 묻는 사람이 없었어요. 물었어도 대답 안 해줬을 거고요.”

내가 진짜 특이한 체질을 가진 게 아니므로 아는 사람이 적은 게 좋다.

“잘 했어. 앞으로도 네 입으로 직접 체질 얘기는 하지 마.”

“네.”

“건강검진은 회사에서 받았지?”

“네, 거기서 건강하다고 나왔어요.”

“나도 보고 받았던 거 기억해.”

소속 연예인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활동에 큰 지장이 있기에 회사에서 꼭 챙겨야 하는 부분이었다.

“이런 체질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어디로 연결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굳이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그래야 할까요?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 없잖아요.”

건강에 해가 된다는 게 확인 된 것도 아니고,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있는 체질.

특별하긴 하지만 그걸 꼭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

“…정말 그 외에 다른 건 없는 거지?”

“네, 일단은요.”

“일단이라고 하니까 괜히 걱정 되잖아. 혹시 너 외계인인 건 아니지?”

“갑자기 외계인이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지라 연주 누님의 말에 살짝 뜨끔해진다.

“사실 네 얼굴부터가 워낙 말이 안 되는 수준이잖아. 넌 너무 잘 생겼어. 얼굴 좀 되는 사람이 드글드글 거린다는 연예계에서 평생을 보냈는데 말이야. 그리고 분위기도 달라. 너한테만 있는 특유 느낌이라는 게 있거든. 좀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네 분위기는 이질적이야.”

잠시 말을 끊은 연주 누님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더 시선이 가는 거려나.”

“시선이요?”

“응. 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네 멤버들이 너랑 비교하면 부족한 건 맞지만, 어디 가서 꿀릴 애들이 아니거든. 그런데 멤버들이 모여 있을 때 항상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건 너였어.”

연주 누님은 유난히 눈에 띄는 나의 존재감이 체질과 관련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속삭였다.

“마법 같은 얘기라서 좀 부끄럽긴 한데, 네가 존재감을 줄일 수 있다면 반대로 존재감을 키울 수도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거잖아?”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뭐가 달라지는 거에요?”

“많은 게 달라지지. 네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거니까.”

연주 누님은 그룹 활동 이후를 언급했다.

그러니까 또 일 얘기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네가 존재감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걸 이용해…!”

“쉿!”

나는 그녀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대고 말했다.

“이 얘기는 여기서 그만해요.”

“너한테 도움이 될 얘기야.”

“체질이 제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줄 리도 없고, 이걸 이용해서 나 혼자 튀어보겠다고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요. 전 그룹이잖아요. 혼자서 눈에 뜨이는 게 그룹을 위한 일 같지는 않아요.”

“…다른 애들은 어떻게든 튀어보려고 욕심 부려서 곤란하게 만드는데, 너희는 왜 이렇게 사이가 좋은지 모르겠다. 욕심이 없는 거야?”

“욕심이 있으니까 하는 소립니다.”

그룹으로 지금보다 더 잘 되고 싶다.

혼자 잘 되는 거는 시시하다.

원래 게임도 치트키를 너무 남발하면 재미가 없어지는 법이다.

게임조차도 그런데 현실이라고 다를까.

누군가는 쉽게 사는 게 뭐가 나쁘냐고 할 수 있다.

치트키를 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치트키로 이미 많은 편의를 얻어 온 현재의 나에게는 ‘결과’를 즐기는 것보단 과정을 즐기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 됐다는 걸 말하고 있는 거다.

“저는 제 체질을 이용하지 않을 거에요. 누님이 걱정했던 것처럼 괜히 잘못하다가 이 체질 때문에 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거잖아요? 과학적으로 증명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괜히 건드려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내 체질을 이용해서 뭔가 해볼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네.”

“아무튼! 본래 목적으로 돌아와서, 데이트는 어떻게 할 거에요? 제가 바라는 대로 해주실 건가요?”

“직접 증거를 보여주고 증명했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 약속을 지켜야하기도 하고.”

“앗싸!”

체질을 증명한 후에야 겨우 평범한 데이트를 약속 받았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확신을 했다.

‘연주 누님한테 내 능력을 전부 말하는 건 위험해.’

그녀에겐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능력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처음엔 내 건강을 걱정하다가 몸에 부담이 없다는 걸 알고 곧장 체질을 이용할 생각을 한 걸 봐라.

연주 누님 같이 욕심이 많은 스타일의 사람에게 섣불리 능력을 고백해선 안 된다고 본다.

욕심이 많은 그녀이기에 내 능력을 알게 되면 이용하고 싶어 할 것이다.

‘체질이라는 말에도 이용해볼 생각을 하는데, 다른 게 된다는 걸 알게 되면 엄청 피곤할 거야.’

연주 누님이 나에 대한 욕심이 과하게 커지게 될 거다.

욕심이 과한 그녀에게 내 능력은 선악과와 같을 것이다.

? ? ?

멜리사의 문제가 연말 스케줄 때문에 잠시 뒤로 미뤄졌었는데, 이젠 마무리를 할 때가 왔다.

멜리사와 상담 시간을 잡은 나는 그녀에게 쓸 아이템을 미리 준비해둔 상태다.

세뇌와 관련 된 아이템은 상점에 어마어마하게 많다.

너무 많은 선택지에 고르기가 쉽지 않았고, 설명서에 쓰여 있는 단어 하나하나 조심해서 고를 필요가 있었다.

‘멜리사한테 거는 세뇌는 이걸로 마지막이어야 해.’

이미 한 차례 세뇌에 당한 멜리사이다.

세뇌라는 게 정신을 건드려서 강제로 조작을 하는 거다.

당연히 뇌에 큰 부담을 주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뇌와 관련 된 아이템 설명서에는 항상 경고 문구가 적혀 있다.

[잦은 세뇌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부작용으로 대상이 백치가 될 수 있습니다.]

백치라는 게 무엇인가.

뇌에 장애나 질환이 있어 지능이 아주 낮은 상태를 말하는 거다.

0.01%라고 해도 멀쩡한 사람에게 큰 장애를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므로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저 경고 문구가 들어 있는 세뇌 아이템을 이미 한 번 사용해서 또 사용하기 찜찜하단 말이지.’

그래도 과거의 기억을 전부 깨워버리고 싶지는 않다.

내 딴에는 좋은 의도로 기억을 지운 거지만, 멜리사한테는 버림받은 기억밖에 되질 않기 때문이다.

그날의 기억은 묻어두는 게 서로를 위해 좋다.

“화이팅 하세요, 주인님!”

비앙카가 멜리사가 쉬고 있는 별장에 들어서는 나를 배웅해줬다.

참 쓸데없는 행동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멜리사가 예전보다 더 창백해진 안색으로 나를 맞이했다.

“얼굴이 더 안 좋아지셨네요.”

“…잠을 못 잤어요.”

“상담을 받은 이후로 변화가 있었나요?”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예전보다 증상이 더 심해졌거든요.”

멜리사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게 잘 느껴진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진한 스트레스와 짜증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나을 수 있는 건가요? 아니, 원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렇게까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였어요?”

“물론이죠. 정신 건강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약 먹을게요. 이젠 지긋지긋해요.”

정신 건강을 약물의 도움으로 호전시키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차도일 뿐,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약의 도움으로 해결을 하려는 건 옳지 못한 태도에요.”

“그럼 어쩌라고요! 증상은 점점 심해지는데, 해결 방법은 없잖아요.”

“멜리사씨의 병을 고쳐보려고 한 가지 준비한 게 있습니다.”

“…정말 방법이 있어요? 지긋지긋한 두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네, 있습니다. 멜리사씨한테 도움이 될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확신까지 한다라…. 말해봐요. 가져 온 치료 방법이 뭔지 들어보고 싶네요.”

최대한 초조하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멜리사의 얼굴엔 이미 다급함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내가 바빠서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그녀가 경험한 일들이 내 예상보다 많이 끔찍했던 모양이다.

이런 상태라면 내가 준비해온 방법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최면입니다. 아마 TV에서 전생 체험 같은 걸로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최면? 지금 최면이라고 했어요? 내가 아프다니까 우습게 보였어요? 조롱하려는 거에요?”

점점 숨이 거칠어지고, 목소리가 격해진다.

분노로 인해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최면은 오랫동안 연구 되어 온 학문입니다. 멜리사씨의 무의식에 숨겨져 있는 기억을 되찾아보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그 기억이 멜리사씨를 괴롭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말해놓고 최면에 걸리는데 실패하면 체질 탓 하는 건 아니고요?”

“제 최면은 좀 특별합니다. 실패가 없거든요.”

“…….”

“화를 내도 경험 해보고 하시는 게 어떨까요? 실패한다면 겸허하게 비난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너무 당당하게 해보고 말하라고 하니 멜리사 입장에선 의심스러우면서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 것 같았다.

아이템을 갖고 있는 한 내 최면은 실패할 일이 없다.

“…좋아요, 최면을 실패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에요. 대신 성공한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죠. 당신이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겁니다.”

“솔깃하게 만드는 말씀이시네요. 고생해서 치료 방법을 알아 온 보람을 느끼게 되겠군요.”

“…최면이 걸리면 그 이후에 뭘 해서 절 치료할 건지 듣고 싶어요.”

“최면을 통해 멜리사씨의 깊은 내면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곳에서 멜리사씨를 괴롭히는 기억의 시작이 어디인지 확인해볼 거에요.”

“최면에 빠지면 그 과정을 제가 잊게 되나요?”

“아뇨. 전부 기억하실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겠죠. 저는 멜리사씨의 입에서 거쳐 나온 정보만 기억할 수 있습니다.”

티를 내진 않아도 멜리사는 최면이라는 걸 거북해하고 있었는지 내 말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주인님’이라는 존재를 타인에게 말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기억을 찾는다고 해서 제 증상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요?”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알게 된다면 구체적인 치료 방법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치료 방식은 어떤 게 있죠?”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떠올린 기억을 완전히 떠올릴 수 있게 하던가, 아예 기억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진다면 멜리사씨가 괴로워할 이유가 없죠.”

괴롭기 이전으로 돌아간다?

멜리사는 꿀꺽 침을 삼켰다.

깨끗하고 맑은 정신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게 언제 적인지 기억이 희미하다.

“해보죠. 준비할 게 있나요? 말만 하면 다 준비할게요.”

“괜찮습니다. 이미 준비를 전부 해왔거든요. 멜리사씨가 마음을 먹기만 하면 됩니다.”

“난 이미 준비 끝났어요. 당장 해요.”

멜리사의 눈에 의지가 깃든다.

‘미안해요, 멜리사.’

최면은 두통을 확실하게 해결해주겠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거기다가 앞으로 멜리사는 비앙카의 메이드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

‘한 번 놓친 적이 있으니까 비앙카는 절대 멜리사를 놔주지 않을 거야.’

비앙카의 멜리사에 대한 집착을 잘 알고 있다.

소파에 편하게 누운 멜리사.

나는 그녀의 눈앞에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촛불?”

“생각보다 간단하죠?”

초에 불을 켰다.

적용 대상은 멜리사였기에 초에서 나오는 향기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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