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46. 파티 초대 (3)
* * *
오랜만에 보는 조안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제대로 꾸민 모습이라서 낯설게 느껴진 것도 있겠지만, 인상 자체가 많이 변했다.
그녀는 뭐랄까.
‘많이 예뻐졌네.’
그녀는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과 안면이 있는지 사람들 사이로 능숙하게 끼어들었다.
참석자들도 그런 조안나를 매우 환영해주고 있었다.
나와 섹스하고 나서 광기 서린 모습으로 디자인을 하던 그녀가 새삼 떠오른다.
천재와 괴짜는 한 발작 차이였고, 조안나는 내 곁을 떠나 능력을 한껏 펼쳐 보이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와 재회하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이젠 내 능력을 알려도 되잖아? 굳이 피할 필요 있어?’
그럴 필요 전혀 없다.
능력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먼 거리에 있는 조안나와 교류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재회하는 가장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녀를 향해 움직일 순 없었다.
내가 개인행동을 해버리면 남아있는 멤버들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애들아.”
“제키형!”
얼마나 파티장에서 버텼을까?
우리에게 가벼운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거절을 듣고 다른 곳으로 쿨하게 향했고, 이제 남은 것은 좀 더 끈적한 욕망을 갖고서 접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친구는 몇 살이야? 영어 할 줄 아나?
“예? 어….”
귀여워라. 내 애인 하지 않을래? 잘 키워줄게. 일단 같이 짠 한 번 할까? 술 마실 수 있는 나이는 맞지?
우연이를 붙잡고서 끈질기게 달라붙는 여자 한 명.
너 근육 멋지다. 운동 잘해?
경태 형의 잘 단련 된 근육에 관심을 주며 접근하는 여자들도 있다.
다른 멤버들이라고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멤버들이 저런데 나라고 편하고 혼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술은 마시지 않기로 해서요. 중요한 자리니까요.
가볍게 마시는 건 상관없지 않아요? 까탈스럽게 굴지 말아요. 친하게 지내면 서로한테 좋은 일 아닌가?
노골적인 성적 유혹이 이어진다.
슬쩍슬쩍 팔을 터치하는 손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빈도가 높아져서 불쾌감을 주기 충분했다.
분위기가 아예 나쁜 곳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강준이나 남은규는 둘이서 똘똘 뭉쳐서 적당히 예의를 차리는 괜찮은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찜을 한 상대를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건 예의에 어긋나나보다.
진상을 부리던 여자들을 겨우 떼어냈을 무렵.
또각또각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지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또야? 슬슬 상대하기 피곤해지는데….
노골적으로 우리 몸을 노리고 접근하는 저런 사람들과 안면을 트는 게 과연 우리한테 도움이 되는 일일까 의문이 든다.
해솔씨, 맞죠?
!!
여자들의 접근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인연.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역시나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끄러웠던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그녀와 나밖에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서로에게 할 말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주변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녀와는 형식적으로 인사만 나눌 수 있었다.
작업을 함께 한 적 있어서 안면이 있는 멤버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는데, 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서도 조안나가 무척 의식 됐다.
그녀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경태 형은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슬그머니 내 옆구리를 툭 건들고 말했다.
“다녀와.”
“괜찮아.”
“그런 얼굴 해놓고 뭐가 괜찮아? 여긴 내가 커버하고 있을게. 이젠 진상들 다 다녀가서 큰일도 없을 거야.”
준이랑 은규가 생각보다 잘 해주고 있어서 경태 형이 신경 써줘야 할 사람이 우연이 하나뿐이었기에 내가 자리를 비워도 큰 문제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준이랑 은규 잘 봐줘. 여자들이 끌고 가려고 하면 막아줘야 돼.”
“알았어.”
나는 고민 끝에 경태 형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파티장에는 사람들이 먹고 떠들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좀 더 은밀하게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존재했다.
고객들의 요청으로 그런 장소가 필요할 때가 종종 있어왔기 때문이다.
조안나가 먼저 직원에게 조용한 장소를 요청해서 들어갔고, 나는 그녀의 뒤를 은밀하게 뒤따랐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조안나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조안나.
해솔!
조안나는 다행이 나와의 재회가 기뻤는지 미소를 보여줬다.
이런 장소에서 다시 보게 될 줄 몰랐어요.
사실 난 알고 왔어. 이 파티에 르불 모델 에어플레인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당연히 우연으로 만들어진 재회라고 생각했다.
절 만나러 온 거라고요?
우리 오랜만인데 인사도 안 해주는 거야?
조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가까이로 다가왔다.
살까지 섞었는데 그녀가 뭘 바라고 있는 건지 모를 순 없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내려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쪽, 쪼옥, 쪽!
혀는 섞지 않고 가볍게 입술을 빨고 떨어지자 조안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진하게 해주면 안 돼?
나중이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죠. 지금은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안 되겠어요. 정말 절 만나려고 파티에 온 거에요?
응, 맞아. 내가 못 참겠더라고. 이렇게라도 잠깐 만나서 힘을 받고 싶었어.
조안나가 회사를 나와서 새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안나’라는 브랜드에서 저희 그룹에 협찬을 주기도 했고요.
협찬 받은 거 괜찮았어? 네가 나 잊어버릴까봐 걱정 돼서 나 기억해달라고 협찬 제의 보낸 거야.
조안나가 손을 써서 협찬 제의가 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일을 하다 보니 생긴 우연인지 궁금했었는데 지금에서야 시원하게 비하인드가 밝혀졌다.
그 협찬 또한 조안나의 손길이 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안도가 됐다.
나와 헤어지만 조안나가 나를 잊지 않았고, 나와의 끈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제가 왜 조안나를 잊어요? 그럴 리 없죠. 항상 그리워했어요, 조안나를.
나도 그랬어. 네가 많이 그리웠어. 네가 그리운 만큼 열심히 일했거든. 어떨 때는 내가 천재라는 게 싫어질 정도였어.
왜요?
그녀와 내가 헤어진 것은 각자의 분야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이 싫었던 걸까?
너와의 헤어짐조차도 나한테는 영감으로 다가왔으니까.
만약 그녀가 진해솔과 만나지 않았고 감정을 이용해서 영감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됐다면 어땠을까?
괴로움도 영감이 되었고, 그리움도 영감이 되었으며, 외로움조차도 영감이 되어 그녀를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게 했다.
일에 열정을 갖고 있는 그녀라면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스스로를 마구 몰아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해솔을 만난 조안나는 자신의 괴물같은 천재성을 경계할 줄 알았다.
편하게 괴로워할 수도 없었겠네요.
응, 그리고 나는 이런 방법보다 더 황홀하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잖아.
나와의 섹스를 말하는 거다.
그때 받았던 영감은 엄청 뿌듯하고 행복했어. 물론 지금도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주지만, 지금의 나는 만족스럽지 않아.
자연스럽게 내가 그리워졌고, 필요해졌다고 한다.
내 옆에 네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좀 이르지만 널 데려오고 싶었어. 그런데 내가 성장하는 사이 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더라.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내 활약상을 알게 된 조안나는 마음이 급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감을 자각시킬 수 있도록 ‘협찬’이라는 수단을 이용했다.
그리고 나와 재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파티에도 참석했고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너랑 영영 재회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지금이 아니었어도 괜찮았을 거에요. 저는 조안나를 잊지 않았으니까요.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어메이징 스타에서 네가 반짝이고 있는 걸 봐서 알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 조안나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네 마음은 믿지만, 상황은 믿지 못해.
상황을 믿지 못한다고?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조안나가 말했다.
역시 네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모르고 있네. 하긴, 그러니까 잘도 이 파티에 참석한 거겠지.
제가 위험하다고요?
조안나의 이어진 말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왔다.
너는 너무 아름다워.
???
새삼스럽지도 않은 칭찬이다.
오늘도 수차례 들었던 칭찬이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런 아름다움은 예로부터 지배자들의 정복욕을 자극하지.
지배자들이요?
그래, 우리 같은 사람은 손짓 한 번으로도 짓밟아 버릴 수 있는 괴물들이지. 네 얼굴이 어메이징 스타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졌어. 그냥 네 나라에서만 활동했으면 몰라도, 세계로 나온 이상 그 괴물들이 흥미를 가지긴 충분해.
예로부터 권력자들이 미남, 미녀를 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전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잖아요.
남자 연예인들이 갑자기 은퇴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뭘 것 같아? 권력자 눈에 띄어서 은퇴 당하고 애첩으로 갇혀서 살게 되는 거야. 너도 언젠가는 그런 끔찍한 짓을 당할 거야. 난 오히려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한테 눈에 띄지 않았던 게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몸을 사려도 부족할 판에 상류층 파티에 당당하게 나타났으니 앞으로 더 골치 아파 질 게 분명하다며 조안나가 재차 경고를 해왔다.
여기에서 추파를 보낸 사람들 대부분 매너 있게 행동했지? 물론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근데 대부분 앞에서 매너 있는 척 굴어도, 뒤에서까지 그렇지는 않거든. 누군가에게 꺾일 때까지 계속 협박과 유혹이 들어올 거야.
저항하고, 또 저항하다가 지치면 꺾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은퇴를 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임자가 생기면 더 건드리진 않나보네요?
그게 기본적인 예의거든. 먼저 취한 사람이 주인인 거지.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오늘 우연이가 말해줬던 남자 모델이 떠올랐다.
잘 나가던 모델이었던 그가 갑자기 은퇴하고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내가 평범하게 잘 생긴 남자였으면 확실히 그런 결말이었겠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좀 어처구니없는 방법이지만 이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이상한 존재들로부터 계약을 맺고 이곳으로 온 사람이다.
내가 중2병에 걸린 사람이었다면 스스로를 ‘용사’라는 유치뽕짝한 단어로 지칭했을 지도 모른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알려준 덕분에 미리 대비할 수 있겠네요.
대비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그녀가 말하는 대비는 소속사가 해주는 보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대비는 소속사의 도움이 아니었다.
가장 편한 방법이 내 곁에 있었다.
바로 내 귀여운 메이드들.
비앙카와 멜리사 가문이 제법 끗발 있는 가문 출신이라고 알고 있다.
그녀들에게 미리 말을 해둔다면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 걱정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 얘기 좀 해요. 오랜만에 만난 거잖아.
!!
나는 계속 내 걱정만 하는 조안나의 손을 꼭 붙잡았다.
조안나가 나를 걱정한 만큼, 나 또한 조안나를 걱정했다.
오랜만에 본 조안나는 아름다워졌긴 했지만,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살도 적당히 빠져야 건강에 좋은 법이었다.
너무 과하게 살이 빠지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
조안나, 나 당신이 많이 그리웠어요. 헤어지고 나서 많이 후회도 했죠. 굳이 그런 식으로 헤어졌어야 했던 걸까 하는.
서로 너무 일이 바쁘고, 장거리로 연애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을 먹고 인연을 너무 쉽게 떠나보냈다.
나, 나는….
그녀는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해보지 않곤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나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기에 여유가 있지만, 조안나는 아니었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 해도 장거리 연애였고, 일 때문에 얼굴을 얼마나 자주 볼 수 있을지 확신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조안나는 당황하던 것을 겨우 수습하고 입을 떼었다.
네가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경고를 해주고, 아직 나한테 마음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왔던 거였어.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려고 왔던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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