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 #47. 망나니 재벌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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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 클럽은 생각보다 훨씬 큰 클럽이다.
대외적인 이미지는 ‘망나니’들이 모여서 만든 한심하고 사고만 쳐대는 구재불능의 클럽이지만, 구성원들을 자세히 살며보면 의외로 이 사람이 왜?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인물도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구성원 사이에서 급(class)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크 클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그룹은 가문의 직계들이다.
이들은 문제를 일으키기 보단 그저 유흥을 즐기는 편이다.
크게 눈에 띄는 짓을 하지 않고, 큰 범죄에 끼어들지 않으며 아슬아슬하게 선을 유지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지킬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직계다 보니 가문에서 챙겨 준 게 있어서 먹고 살 걱정은 할 필요 없고, 그렇다고 진지하게 일을 하면 후계자의 경계심을 받는다.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유흥을 즐기는 일 뿐.
그렇기에 스네이크 클럽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다.
경계하는 후계자에게 「나는 후계 싸움에 관심 없다.」 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진 돈도 많고 어느 정도 권력을 이용할 수 있어서 쉽게 건드리면 안 됐다.
그렇게 1티어로 직계 출신이 있다면 2티어로는 방계들이다.
2티어부터는 질이 확 낮아지게 되며, 그만큼 질이 나쁘기도 하다.
방계 출신인데다 그 재산도 온전히 물려받지 못한 떨거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격지심도 심하고 각종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그 범죄의 달콤한 부분을 1티어 직계들과 공유하며 원만한 관계를 다지는데, 이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의 권력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으로 3티어.
이들은 일명 ‘강아지’라는 멸칭으로 불리는데, 스네이크 구성원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며 그들의 유희에 한 발 걸치면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2티어가 먹고 남긴 찌꺼기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남는 찌꺼기라 해도 그들 입장에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2티어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지낸다.
또한 이들은 사법이 얽힐 정도의 일이 터지면 얼굴 마담으로 잡혀갈 수 있었다.
‘고기 방패’ 같은 느낌이랄까?
그들도 그것을 알지만 이미 유흥에 뇌가 절여져 버려서 끊을 수가 없는 상태다.
“이번 사냥감 누군지 알아?”
2티어들이 사냥감을 결정하면 1티어가 품평을 한다.
손을 댈 만한 가치가 있다면 사냥에 합류하고 흥미가 생기지 않으면 사냥을 구경한다.
임자 있는 남자를 사냥감으로 삼아서 강간해 큰 문제를 만들었던 적이 있는지라 2티어들은 이번 사냥에 심열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또 사냥 놀이 하는 거야? 난리 난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는 잘 조사해서 결정했어. 아직 손댄 적 없는 숫총각들이야.”
“그런 거면 더 관심 없어지네.”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건 그럴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그녀의 말에 2티어 그룹에 속해 있는 우이민이 다급하게 말했다.
“에어플레인이라고 이번에 어스타 출연했던 가수라서 유명해진지 얼마 안 됐거든. 사진 보면 분명 마음에 들 걸?”
“어스타에 출연한 가수?”
그렇다면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것이 충분히 납득 된다.
그녀는 흥미가 생기고 있음에도 아닌 척하며 말했다.
“저번에 너무 쉽게 빼줘서 간이 커진 건 아니지? 또 사고 치면 이번엔 쉽게 안 빼줄 거야.”
남자 사냥이 유행이 됐을 때부터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가 터졌을 때 빠르게 수습을 했고, 그 때문에 2티어 그룹이 간이 커졌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나, 오해하지 말고 내 얘기 좀 들어 봐. 곧 네 생일이잖아. 지금 네 생일 파티 준비로 바쁜 거 알고 있지?”
“알아.”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3티어가 꽤나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거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이 남자 중에 최고로 괜찮은 남자를 네 생일 선물로 줄 생각이야. 분명 네가 보면 단숨에 마음에 들걸?”
“내 생일 선물? 나 이제 남자는 귀찮은데.”
슬슬 엄마가 그녀를 결혼시킬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함부로 애인을 만들었다가 약혼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그녀가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우이민은 칸나가 흥미를 보이지 않자 마음이 급해졌는지 사진을 꺼내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번 보고 생각해. 정말 괜찮은 애들이야. 이런 수준은 구하기 쉽지 않다고.”
우이민의 부탁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칸나가 사진을 확인했다.
확실히 우이민이 장담한 것처럼 사진에 나온 ‘에어플레인’이라는 남자들은 그녀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긴 하네.”
“만족스럽지? 나쁘지 않지? 근데 얘네들은 네 생일 선물이 아니야.”
“얘네가 아니라고? 그럼 누군데.”
“짜자잔! 네 생일 선물은 바로 얘야. 이름은 진해솔. 내가 여태까지 봤던 남자 중에 비주얼이 최고야. 이런 남자는 다시 구하기 힘들 걸?”
우이민이 내민 또 다른 사진.
칸나는 사진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로 눈을 깜빡였다.
“이게 진짜 존재하는 사람이야? 나한테 지금 장난치는 건가? 나 그럴 기분 아닌데?”
말도 안 되는 미모를 가진 남자였다.
분명 포토샵으로 조작해서 만들어진 얼굴일 거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 사진은 실물을 못 따라간대. 설마 내가 조사도 안 하고 너한테 보여주는 거겠어?”
“…….”
우이민이 한 말 중에 50%만 사실이어도 이 남자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
미인을 차지하기 위한 암컷들의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욕심 나.’
갖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느끼는 소유욕이었다.
가족과 다투는 것이 싫어서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고 나왔을 만큼 재물에 대한 욕심이 적었던 그녀가 갖기엔 낯선 감각.
‘위험하다.’
칸나는 감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는데, 이 남자를 보자마자 감각이 곧추섰다.
저 남자를 한 입에 털어먹으려고 하다간 입이 찢어지고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다.
‘사지가 찢길 것도 모르고 헤헤 웃는 꼴이라니.’
자신이 이런 한심한 녀석과 말을 섞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혐오스러워졌다.
결심을 한 칸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폭탄선언을 했다.
“오늘부로 난 여기 탈퇴하겠어.”
“뭐?!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뭐 불쾌하게 했어? 실수라도 한 거야? 생일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
“너희들 꼴통이라는 소리 자꾸 듣더니 진짜 꼴통이라도 된 모양이야. 이런 허접한 모임이 여태까지 살아남은 게 용했지.”
“잠깐만! 말이 너무 심하잖…야!”
그녀를 애타게 붙잡는 우이민을 외면하고 스네이크 클럽 아지트에서 벗어났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꼴이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비슷해 보인다.
문제라면 불나방 무리에 자신도 발을 담그고 있다는 점인데….
저 녀석들이 사고를 치고 뭔가가 터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수습을 해놔야 했다.
칸나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로 스네이크에서 탈퇴했으니까, 그곳에 관련 된 제 흔적, 전부 지우세요.”
예, 아가씨.
간단하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후환을 없앤 그녀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스네이크에 탈퇴한 걸 도전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가족 중 가장 발 빠르게 후계자 경쟁에서 빠지며 손해를 보지 않고 빠지는데 성공한 자신을 언니가 유난히 경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칸나다.
‘내가 뭐 때문에 여기에 있었는데….’
얌전히 살고 있다는 걸 언니한테 어필하기 위해 소속 되어 있었을 뿐, 스네이크 클럽 활동에 진심이었던 적 없다.
안전을 위해 가입했던 곳인데, 정작 그 클럽이 자신의 안위를 위협한다면 계속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이미 그 남자를 가지려고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런 와중에 스네이크 클럽이 손을 대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지에 따라 스네이크 클럽의 미래가 좌지우지 될 것이다.
칸나는 그 보복에 자신의 안위가 다치는 일은 없길 바랐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의 감이 정답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네이크 클럽이 뉴스기사에 오르락내리락 하기 시작했다.
???
[재벌 가문 망나니들의 모임이 있다? 비밀리 운영 되던 클럽, 베일을 벗다!]
[마약, 강간, 납치…범죄의 온상이 모여 있었다.]
[여러 번 신고 되었으나 무죄로 빠져나온 것으로 드러나….]
[일명 ‘남자 사냥’으로 불리는 유흥 만들어 즐겼다. 피해자 한 둘이 아닌….]
“병신들.”
그녀도 수사 범위에서 아예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스네이크 클럽에서 탈퇴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존재했기에 가문의 힘을 빌리자 명단에서 빠질 수 있었다.
‘경고 수준으로 끝내려는 모양이네.’
칸나에 대한 수사가 간단하게 끝난 것에 비해 다른 클럽원들은 쉽사리 혐의를 벗고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비호를 받지 못한 2티어 몇 명과 3티어들이 잡혀 들어갔던 것이다.
심각한 범죄는 3티어가 뒤집어썼고, 가벼운 죄 위주로 2티어에 소속 된 이들에게 분배 됐다.
그녀와 같은 그룹인 1티어들은 가볍게 조사를 받고 혐의를 벗은 것에 비하면 제법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 일을 누가 지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네이크 클럽을 아예 해체시킬 생각인 가봐.”
무사히 혐의를 벗는데 성공한 1티어들끼리 상황파악을 위해 뭉쳤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짐작 가는 거 있어?”
“알게 뭐야. 걔네들 중에 사고라도 쳤나보지.”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거나,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렸을 확률이 높다.
칸나는 친구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다가 말했다.
“내가 뭘 좀 알아.”
“맞다, 칸나 너 타이밍 좋게 스네이크에서 탈퇴했지?”
“걔네들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그런 걸 알면 우리한테도 좀 말해주고 갈 것이지. 조사 받느라 귀찮아 죽는 줄 알았잖아. 엄마한테 또 왕창 잔소리 들었다고.”
친구들의 재촉에 칸나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또 남자였어!?”
“이래서 여자는 아랫도리를 잘 놀려야 한다니까. 쯧쯧쯧!”
“에어플레인이라고 알아?”
“알지. 걔네들 요즘 내가 눈 여겨 보고 있었던 앤데.”
“설마…아니지?”
칸나의 언급에 한 친구가 눈치를 챘는지 설마하는 눈치로 물었다.
“맞아. 다음 사냥 사냥감으로 에어플레인을 하려고 했나봐.”
“병신이네. 건드릴 게 따로 있지.”
“에어플레인이 뭔데 그런 소릴 해?”
“찾아봐. 사진 보면 내가 한 말 이해할 걸?”
호기심을 드러낸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서둘러 에어플레인을 조사한다.
그리고 사진을 본 순간 방안에는 정막이 흘렀다.
“…얘를 사냥감으로 삼았다고? 간이 얼마나 부었으면 그런 짓을 계획해?”
“특히 얘가 미쳤네. 이 미모가 실화라 이거지? 어우, 미쳤다.”
“야야. 진해솔 실물 외모 쳐봐. 영상 보면 더 죽여줘.”
“스네이크 클럽이 뒤집어진 이유가 있었네. 누가 침 발랐는지 부럽다, 시발. 얘 집에 넣어두고 일하면 절대 집중 못할 듯.”
친구들은 더 이상 거하게 지뢰를 밟아 버린 스네이크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들은 궁금해 하는 건 누가 이 ‘한 입에 삼켜도 비린내 안 날 것 같은 남자’를 가져가는지였다.
“이렇게까지 부러웠던 건 처음인데…. 지금이라도 다시 후계자 싸움 뛰어 들어?”
“병신아 뇌절 그만.”
“다른 멤버들도 찜한 사람 있을까? 난 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서라, 우리한텐 기회 안 올 걸.”
“왜! 동양인은 싫어하는 사람이 꽤 있잖아.”
그녀들이 속해 있던 스네이크 클럽이 저질렀던 범죄 행각들로 세상이 들썩였지만, 누구도 그것에 큰 근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들이 저지른 범죄는 다른 사람의 죄가 될 테지만, 그걸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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