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03화 (303/849)

〈 303화 〉 #47. 망나니 재벌들 (4)

* * *

이래도 되나 싶어서 양심이 좀 아프긴 했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드라마에 출연 계약을 맺기로 했다.

물론 출연하고 싶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100% 확률로 배역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각자 개인과 소속사의 사정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누군가가 실패해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세계에선 이런 내용의 드라마가 인기인 걸까.’

얼떨결에 선택하게 된 드라마는 「아가씨들의 남자」 라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제목을 가진 드라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남자 주인공이 두 명의 여자를 사귀고 결혼 약속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남자는 곧 결혼을 해서 평생 자신과 함께 할 여자들이었기에, 서로를 소개시켜주고 싶어진다.

‘당연히 남자는 여자들을 소개시키면 잘 지낼 거라고 생각하고.’

세상이 중혼을 허락했다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이성적으로 조절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여자들은 남자의 해맑은 제안에 싫은 티를 내지 못하고 약속을 잡는다.

드디어 내 남자를 두고 3자 대면을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두 여자는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잘 지내길 바라는 남자의 바램과 달리, 두 여자는 굉장히 사이가 나빴다.

만나기만 하면 이를 바드득 가는 사이였는데 한 남자를 두고 나눠야 하는 사이까지 됐으니 하하호호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근데 이놈의 남자주인공은 두 사람 사이가 나쁘다는 걸 눈치 못채지.’

여자 주인공들은 차마 남자 주인공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억지로 사이 좋은 척 연기를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남자를 두고 찌질 하게 싸우는 내용이에요.”

다만 여자들끼리 하는 싸움이 고구마 같은 느낌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어딘가 웃긴데다가 공감을 느낄 수 있게 현실적이고 찌질해서 매력이 있었다.

“이걸 연기하겠다고? 네 성격이나 이미지랑 너무 다른데?”

인간적인 매력을 보이는 여자 주인공과 달리 내가 연기할 남자 주인공은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잘 생긴 외모, 뛰어난 능력과 재력을 갖추며, 다정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굉장히 눈치가 없고, 머리가 꽃밭인 편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두 여자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사이좋은 관계라고 철썩 같이 믿는다는 점에서 다소 답답함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드라마는 남자 혼자서 행복하고 동화 같은 세상에 사는 것을 재미 포인트로 삼았다.

또한 여자들이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사이 나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애를 쓰는 게 드라마의 재미 포인트다.

“상상이 안 가긴 하죠?”

시종일관 헤실거리면서 웃는 남자.

마치 동화 속을 사는 것 같은 남자.

자칫 잘못 연기하면 밉상이 될 수 있는 캐릭터였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잘 할 수 있겠어? 너무 위험한 캐릭터인데.”

직원은 놀랍게도 내가 가져 온 작품 시나리오를 이미 읽어본 듯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언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해보겠어요?”

“쓰읍, 어쩐지 말에서 자신감이 느껴지는데? 너라면 이런 캐릭터도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직원이 정곡을 찔러온다.

계획대로 주아 누나와 민영 누나가 캐스팅 된다면 현실과 픽션을 넘나드는 재밌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런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데 필요한 연기력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하.”

내가 대답하지 않고 웃으니 직원이 덩달아 웃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그럼 이쪽 관계자한테 접촉해볼게. 그런 자신감이면 뭔들 못하겠니. 호호호! 우리 해솔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주아, 민영 누나와 함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없었다면 아마 이런 역할을 하겠다고 말하진 않았을 거다.

그런 작품을 선택했음에도 직원은 반대 한 번을 하지 않고 순순히 내 선택에 힘을 보태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연기력에 자신감도 있지만, 제 이미지랑 달라서 선택한 점도 있어요. 원래 연기라는 게 그런 재미인 거잖아요.”

“그치그치. 네가 이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지 기대 된다. 워낙 멋있는 애라서 찌질한 연기를 해도 멋있을 거야. 네 성격이 진짜 이랬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고.”

에이, 진짜 이런 성격이면 좀 그렇지.

그건 내가 싫다.

“혹시 대본 나와 있는 게 있을까요? 미리 보고 연습해보고 싶은데.”

“글쎄다. 그것도 알아볼게. 대본은 외부에 함부로 유출 안 시키거든.”

“아~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 그리고 상대편은 누가 캐스팅 될 예정인지도 알아봐주세요. 어떤 분이랑 연기하게 될지 궁금해서요.”

“OKOK.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그 부분도 꼼꼼하게 알아봐줄게. 걱정하지 마.”

주아 누나와 민영 누나가 무사히 캐스팅 될지 걱정 돼서 한 말이었는데, 직원은 엉뚱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네?”

“현장에서 계속 얼굴 봐야 하는데 질 나쁜 배우가 캐스팅 되면 네가 힘들잖아. 다들 너보다 선배일 텐데 거절하는 것도 한두 번일 테고. 우리 회사가 가수 전문이지만, 연기 쪽으로도 힘이 꽤 있어. 문제 생기지 않게 사전에 체크할게.”

남자를 많이 밝히는 여자가 상대 배우가 되면 현장에서 연기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

실제로 그로인해 한 남자 배우가 스캔들을 터트렸던 적이 있었다.

성희롱을 심하게 당했는지 남자 배우가 방송에서 나와 같은 작품에 출연했던 여배우를 저격한 것이다.

그 배우가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더럽게 구는 바람에 연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는 저격이었다.

‘남자가 배우를 할 정도면 나름 생긴 편인 경우가 많아서 여자들 접근이 많을 수밖에 없지. 나 같은 경우는 말 할 것도 없고.’

웹 드라마에서는 나보다 인지도가 더 높은 사람이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추파를 던지는 경우는 있어도 협박까지 가는 경우는 없었다.

더군나나 내 상대역은 민영 누나였다.

덕분에 큰 문제없이 현장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다음 현장에서도 마냥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됐다.

더군다나 이번에 출연할 작품은 공중파 드라마.

소속사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질 수 있다.

그 남자 배우의 저격으로 경각심이 생겨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접근하는 사람은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미 버릇이 든 사람이 자제를 한들 오래 갈 리 없었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버릇은 시간이 약이라는 듯 다시 야금야금, 스물스물, 지긋지긋하게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더 같이 하고 싶은 거기도 해. 적어도 추파 때문에 피곤해질 일은 없으니까.’

현장을 한 번 경험해봤다지만, 웹 드라마 현장과 지상파 드라마 현장이 같다고 볼 순 없다.

낯선 현장이니까 누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무척 든든할 거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래도 누나들과 고른 작품이 굉장히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직원이 반대하지 않은 걸 보니 말이다.

그렇게 나와 소속사 모두 만족스러운 차후 활동이 결정 되었다.

? ? ?

나와 멤버들의 개인 활동에 관련 된 일이 착착 진행 되고 있는 사이.

줌베이와의 협업도 빠르게 구체화 되고 있었다.

협업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곡’이 나오는 거였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곡이 우리들에게 전달 된 것이다.

보내 준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도 노래가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좋은데?”

“리듬이 누가 봐도 줌베이 노래네.”

“그러게, 노래 자체가 걔가 부른다는 걸 염두하고 만든 것 같아.”

음악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줌베이 맞춤 음악이구나 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평소 우리가 부르는 노래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도.

“근데 오히려 좋지 않아? 이런 노래를 우리가 언제 불러보겠어.”

“다시 한 번 들어보자.”

우리는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부분이 발견 된다.

작곡가의 수준이 높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음악은 아는 게 많은 상태로 들으니 생각할 게 많았다.

“이 노래에 우리 목소리가 더해지면 어떤 곡이 만들어질지 기대되는데.”

“이럴 때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도 해보는 거지.”

“확실히 나쁘지 않다.”

“줌베이 음색을 떠올려보면 노래랑 찰떡궁합이야.”

제키가 작곡가를 확인하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노래가 왜 좋은가 했더니 이번에 신경을 엄청 쓴 것 같네. X­monster작곡가가 만든 노래야.”

“엄청 유명한 작곡가 아니에요?”

“맞아, 빌보드 1위를 밥 먹듯이 하는 작곡가야.”

기우연이 깜짝 놀라고 다른 애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X­monster’라는 작곡가는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한참 아현이와 작곡에 관련 된 공부 자료를 공유했을 때 X­monster가 만들었던 음악을 교보재로 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X­monster의 곡은 굉장히 세련되고 트렌드해서, 작곡을 공부해서 상업적 작곡가가 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의 곡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엑몬이 이번에 스타일을 바꿨나보네.”

“이 노래 나오면 또 아류작들 잔뜩 나올 듯.”

“장르를 선도하는 작곡가니까. 근데 이럼 우리 엑몬 작곡가랑 만날 수도 있는 거야?”

“헐, 그랬음 좋겠어요.”

“제키 형 눈이 반짝이는데?”

“X­monster랑 만날지도 모르니까. 한 번쯤 만나서 대화해보고 싶었거든.”

이번 작업을 통해 X­monster와 인맥을 쌓을 수 있다면 큰 이득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끼리 얘기만 하지 말고, 줌베이랑 연락을 해볼까?”

줌베이의 연락처를 알고 있어서 내가 대표로 줌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움…안녕.

한참 신호음이 가다가 연결이 됐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자다가 깬 목소리였다.

“자고 있었어?”

­으응, 이제 일어날 시간이어써. I’m OK.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노래 받아서 듣고 전화한 거야.”

­아~! 어땠어? 마음에 들어?

곡을 받아서 들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줌베이의 목소리에 생기가 깃들었다.

“엄청. 멤버들 전부 마음에 들어 했어.”

­다행이다! 너무 내 색이 짙어서 싫어하면 어떡하지 했거든.

줌베이도 우리가 했었던 생각을 비슷하게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오히려 그래서 좋았어. 평소 하지 못했던 분야에 참여해볼 수 있는 거잖아.”

­마음에 들어해줘서 고마워! 나 이번 주에 녹음 들어갈 거야.

“우리는 다음 주에 들어갈 거야.”

­다음 주에 만나겠네!

“응. 그리고 노래 확인하다가 알게 됐는데 작곡가가 X­monster더라고.”

­그 사람 엄청 유명한 작곡가야. 노래 잘 만들어. 내 마음에 쏙 드는 음악을 만들어줬어.

“어, 그분 명성은 여기서도 유명해. 혹시 작업할 때 만난다거나 그럴 일은 없는 거야? 우리 멤버 중에 그분 팬이 있거든.”

­어, 정말? 나 그 사람 전화번호 알아. 한 번 물어볼게.

줌베이가 흔쾌히 엑몬 작곡가와 연결을 해주겠다고 한 덕분에 우리는 다음 주에 있을 해외 방문을 기대할 수 있었다.

녹음을 하고 뮤비 촬영도 할 예정이라서 엑몬 작곡가와 교류를 하는 시간은 충분하다고 봤다.

줌베이의 노래를 한참 멤버들과 연습하고, 해외로 출국했다.

­짜잔, 환영해!!

­줌베이?

그리고 우리가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줌베이가 불쑥 튀어나와 환영을 해주었다.

공항에 줌베이가 나타날 줄 몰랐기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환영해주려고 왔지!

줌베이는 여전히 화려한 장신구를 여러 개 몸에 착용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서 우리랑 만나자마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일어났다.

‘기사 터지겠는데?’

해외로 출국을 했는데, 줌베이가 마중을 나왔다?

누가 봐도 줌베이와 비즈니스가 있을 게 분명한 모양새다.

어차피 작업을 하고나면 홍보가 필요했기에 이런 식의 화제가 나쁜 일은 아니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