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04화 (304/849)

〈 304화 〉 #47. 망나니 재벌들 (5)

* * *

­잘 지냈어?

­줌베이 안녕!

­엄청 예뻐졌는데?

­예이! 히히힛!

멤버들도 줌베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래퍼라서 주먹 인사를 즐겼기에 우리들은 흥겹게 이국의 문화에 맞장구를 쳤다.

싱글벙글 웃는 줌베이의 치아가 반짝거렸다.

…이빨에 도금을 했나보다.

­세상에~ 여기 서 있으니까 눈이 부셔서 뜰 수가 없네.

줌베이는 자신을 빙 둘러싼 우리들을 보더니 능글맞은 멘트를 뱉었다.

꼬맹이 주제에 하는 말이 너무 웃겼다.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 많이 바쁘다더니 성격이 더 발랄하게 바뀐 모양이다.

­못 본 사이에 작업 멘트가 대단해졌잖아?

­히히! 이건 비밀인데, 남친 생겼거든.

­꼬맹이가 벌써부터?

­이야~ 대단한데.

­줌베이! 배신이잖아.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내 너스레에 줌베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했다.

­나랑 만나고 싶으면 번호표 뽑고 기다려! 오빠라도 새치기는 안 돼.

말은 저렇게 해도 남자친구를 많이 사랑하는지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하다.

­이따가 남자친구랑 통화시켜줄게.

­남자친구랑?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어리둥절해 하자 줌베이가 슬그머니 혀를 빼물며 말했다.

­사실 남친이 질투를 좀 심하게 해.

­아?

­혹시 우리랑 같이 작업한다고 질투해?

­응. 그러더라구. 날 너무 사랑하나봐.

애들 연애는 다사다난하구나.

아직 내 여자친구의 비즈니스를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이긴 할 것이다.

­동갑이야?

­응. 난 동갑이나 연하 아니면 취급 안해.

취향이 매우 까다롭다.

­아무튼 오빠들이 전화해서 얘 좀 달려줬으면 좋겠어. 일반인이라서 이쪽 일을 잘 이해 못하더라고. 그래도 대화를 좀 해보면 질투를 덜할 것 같아.

­알았어. 어렵지 않은 일이네.

귀여운 동생의 부탁인데 못 들어 줄 이유가 없다.

다만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이미 주변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우리가 뭔가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단한 걸 찍는 것 마냥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일단 여기 빠져나갈까? 점점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데.

­줌베이, 인기 많은데?

­으엑! 언제 이렇게 모였대. 진짜 지긋지긋한 거머리들이라니까.

기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혐오의 시선을 날린 줌베이와 함께 공항을 빠져나왔다.

아직 못 움직일 정도로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었기에 서둘러 움직이니 문제 없이 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 안에 타자마자 우리는 또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오빠들은 더 잘생겨졌다. 나 이렇게 호강해도 되나 모르겠어. 곡 나오면 안티 엄청 생기는 거 아니야?

남자친구도 우리를 질투한다니까 팬들도 질투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너한테 왜 안티가 생겨? 오히려 우리한테 생길까 걱정인데. 그리고 네 팬들도 엄청나잖아.

­에이, 우리 팬들은 나 남자 사귀는 걸로 뭐라 안 해.

­우리 팬도 그…흠흠.

­헤에?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꾹 닫힌다.

우리 팬들은 우리 연애에 매우 관심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와 스캔들이 터지면 아마 난리가 나지 않을까?

난리가 나는 이유는 연애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랑 스캔들 나고 은퇴한 아이돌이 한 둘이 아니라서….’

우리가 은퇴할까봐 스캔들이 무서운 거다.

우리보다 앞서 데뷔한 수많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편견이었고, 우리는 안 그런다는 말을 하기에는 개개인의 속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다.

‘은퇴 선언 하루 전까지 팬들한테 아니라고 해명했던 놈도 있었고 말이야.’

때문에 나는 차마 거기다 대고 우리 팬도 그렇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문이 막힌 나를 본 줌베이가 히죽 웃더니 물었다.

­오빠들은 연애하는 사람 없어? 내가 괜찮은 언니들 소개시켜줄까? 쭉쭉빵빵해서 옆에 데리고 다니기 쪽팔리지 않을 거야.

­아니, 마음만 받을게.

멤버들은 자신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여자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하고 있다.

굳이 여자를 소개 받는 식으로 만날 이유가 없었다.

­오빠들은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구나?

사랑에 흠뻑 빠진 래퍼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전파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첫사랑은 씁쓸한 법인데, 부디 줌베이가 크게 상처받지 않는 연애를 하길 바래본다.

그렇게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곡에 대한 것이 화제에 올랐다.

­노래 좋더라. 작곡가 보고 깜짝 놀랐잖아.

­맞다, 엑몬! 작곡가님이랑 만날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그 정도도 못 할까! 내가 운을 띄우니까 엄청 좋아하던데? 그 사람이 오빠들 팬이래.

­우릴 알아?!

제키가 깜짝 놀란다.

어스타 효과가 빌보드 작곡가한테도 미칠 줄은 몰랐다.

줌베이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번에 만나서 선물로 곡을 줘도 괜찮은지 물었을 정도인 걸?

­엑몬 작곡가님 곡이라니! 당연히 환영이지.

­와~ 그거 되게 영광인데.

­흥! 너무 기대하진 마. 내 곡이 더 좋을 테니까!

새로운 곡을 받을 생각에 기뻐하니 셈이 좀 났는지 줌베이가 말했다.

우리가 킥킥 웃자 줌베이가 얼굴을 붉히며 다시 한 번 외친다.

­왜냐면 이번 노래 가사를 내가 썼거든. 곡뿐만 아니라 가사까지 완벽한 노래란 말씀!

이번 노래의 가사를 줌베이가 썼다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신감이 대단한데? 이번 곡으로 1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는 거야?

­물론! 다들 1위 할 거라고 그랬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곡이 너무 잘 빠졌잖아. 그리고….

­그리고?

­오빠들도 도와줄 거고.

물론이다.

줌베이와 함께 곡을 내는 건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테니 말이다.

­2위하고 나서 많이 분했어. 근데 한편으로는 부럽더라. 서로가 서로한테 의지 되고,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아서. 사실 이번에 협업하는 걸 요청한 것도 무서워서가 커. 이대로 노래를 냈는데 실패하면 어떡하나 싶었거든.

만약 우리도 줌베이와의 협업이 계획되지 않았다면 유닛 활동을 하기 전에 곡 하나를 냈어야 했을 거다.

그래야 어스타로 얻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에잇! 나 원래 이렇게 약한 소리 잘 안 하는데….

줌베이가 짜증난다는 듯 앙탈을 부린다.

아직 아이였기에 그녀의 투정이 눈살 찌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애가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걱정이 됐다.

살짝 묘해진 분위기 속에서, 때마침 차가 멈췄다.

­다 왔으니까 내려. 다들 마스크랑 모자 쓰고.

줌베이의 매니저가 도착했다고 말을 한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음식점이었다.

­여기가 맛집이라는 거지?

­응, 맛있는 집이야. 내 최애 맛집! 들어가자.

우리가 줌베이와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고 있는 사이.

공항에서 찍은 우리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어스타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던 팬들이 1등과 2등의 만남에 기대감을 높였다.

└에어플레인이랑 줌베이랑 같이 노래 내는 거임?

└어스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예!!!!!!!!

└둘이 무슨 노래를 낼까? 영어로 불러주겠지?

└당연히 영어로 하겠지!

└줌베이 노래에 남자를 끼얹는다라. 그렇게 안 봤는데 줌베이도 타락했네.

└???? 얜 뭔 이상한 소릴 하고 있냐.

└1등한 에어플레인이 뭐가 아쉬워서 줌베이랑 협업하냐고. 오히려 줌베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님? 혼자서 내봤자 1위 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1등에 얹혀가겠다는 거잖아.

└왜 이렇게 싸우는 거야? :(

└나는 줌베이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괜히 이상한 물들어서 망가지는 모습 보기 싫다고.

└근데 줌베이는 변할 수밖에 없지 않나? 요새 연애하느라 바쁘잖아.

└연애하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지 lol

물론 우리의 결합을 좋아하지 않는 골수팬도 있었다.

그 팬은 줌베이가 우리와 함께 작업을 해서 본인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음악을 할까 봐 걱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의 골수팬들은 좀 더 줌베이에게 믿음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하는 걱정은 모두 쓸데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팬들이 실망 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고, 우리 팬들 또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며 좋아할 것이다.

? ? ?

줌베이가 소개시켜준 음식점에서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다음 날.

본격적으로 곡 녹음이 시작 됐다.

­아주 좋아! 바로 이거야! 완전 마음에 들어!

줌베이가 흥분해선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괜찮아?

­응! 느낌 좋아!

줌베이가 좋아해줘서 열심히 연습했던 보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노래자체가 줌베이의 성향이 진하게 묻어 나오는 곡인지라 녹음이 편하게 진행 되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녹음 환경도 다르고, 장르도 달랐으며, 곡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줌베이이기까지 했다.

때문에 우리는 평소보다 과하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만큼 빡세게 연습을 해온 상태였다.

‘되게 좋아하네. 우리가 너무 지레 겁먹고 과하게 연습을 했나?’

걱정이 무색하게 다들 좋아해주니 그동안 했던 걱정이 허무해진다.

아무래도 줌베이가 빌보드를 노리고 있고, 작곡가도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녹음이 빡빡하게 진행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 걱정은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좋았어, 다음으로 넘어가자.

­그 전에 한 번 들어보자고. 나쁘지 않은 것 같거든.

엔지니어가 기계를 만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녹음을 한 줌베이의 시원시원한 랩 녹음본에 우리의 목소리가 덧붙여졌다.

­!!

­오!

­이야~

­곡이 확 사네.

줌베이의 목소리만 들렸을 때도 곡 자체는 나쁘지 않았었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 목소리가 더해지자 곡에 생명력이 더해진 것이다.

­충분한 것 같은데? 다음으로 넘어갈까?

­음…아니, 딱 한 번만 더 해볼게.

­히힛, 그럴래? 알았어, 한 번 더!

합쳐놓은 걸 들으니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알게 돼서 이대로 녹음을 끝낼 수가 없었다.

줌베이도 의욕을 보여주는 우리 모습에 기분이 흐뭇해졌는지 녹음이 길어졌음에도 좋아하고 있었다.

서로가 신나서 노래를 부르니 작업 결과물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높아져갔다.

‘거기서 녹음 끝낸 줌베이가 재녹음 선언까지 했고.’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고, 다른 음악을 했던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맞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부분은 목을 꽉 쪼여줬으면 좋겠어. 둥둥둥 여기는 약간 약에 취했을 때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죽여주는 여자라는 걸 깨달았을 때거든. 그러니까 막 질러줘야 돼. 나 개쩔어!!!! 라는 느낌이야.

­ok, 이해했어.

다소 난감한 주문을 했을 때도 우리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원하는 바를 수행해 불렀다.

그녀가 뭘 말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눈치 챈 것이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술술 불러주는 우리 덕분에 줌베이는 얼굴이 잔뜩 상기 되었다.

­오빠들 진짜 멋지다! 괜히 1등한 게 아니라니까.

­이 정도는 가볍지. 하하하!

­우리 목소리 합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작업 결과가 기대 되는데?

아직 완벽한 결과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듬에 절로 몸이 반응한다.

원래 대박 날 곡은 한 번만 들어도 계속 귀에 남는다고 하는데, 지금 이 곡이 딱 그랬다.

‘이런 스타일의 곡이라면...’

참 이상한 일인데, 빌보드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퀄리티 높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꿀리는 느낌이 안 든다.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곡을 배운 사람이다보니 이런 노래를 나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곤한다.

처음엔 만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르의 곡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자꾸 듣고 직접 작업을 해보는 과정에서 익숙해지다 보니 이 정도라면 나도 못 만들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생각으로는 뭔들 못하겠는가.

직접 결과물을 보여줄 생각이다.

‘한 번 만들어볼까?’

바빠서 한동안 작곡에 손을 떼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흥미에 의욕을 보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영감이 터졌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