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06화 (306/849)

〈 306화 〉 #47. 망나니 재벌들 (7)

* * *

떨떠름한 셰인과 함께 식사를 끝냈다.

놈의 옆에 앉아 신상을 하나하나 캐다보니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얘가 X­Monster의 동생이었다니.’

엑몬 작곡가가 줌베이에게 곡을 써준 것도 비즈니스로 인연이 닿아서가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작곡가님이랑 약속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 한 거였구나?

­히히. 이만큼 쩔어주는 인맥이 없으니까. 실제로 언니가 흔쾌히 만나겠다고 해줬어.

­마음에 안 들어. 우리 누나랑은 왜 만나자고 한 거야? 수상하다고!

내 지적은 순순히 받아들였으나 경계심을 완전히 치우지는 않은 셰인이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작곡하는 사람이면 엑몬 작곡가랑 만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흠, 우리 누나가 좀 대단하긴 하지.

셰인이 자기 누나 칭찬에 콧대를 세운다.

의외였던 남매 관계가 나쁘지 않은 듯하다.

­어디까지나 작곡가대 작곡가로 만나는 거겠지? 혹시나 우리 누나한테 손대려고 하면 가만 안 둬. 물론 누나가 너희들한테 넘어가지도 않을 테지만 말이야!

참 질투심이 많은 꼬맹이다.

누나한테도 저러는 걸 보면 태생적으로 자기 것에 대한 욕심이 많은 듯했다.

­인간적인 인맥이 되길 바라고 있지, 다른 뜻은 없어.

­누나 능력이 워낙 좋아서 남자들이 얼마나 많이 들러붙는지 알아? 누나가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라고.

곡을 내기만 하면 빌보드에 오르니 곡의 가치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니 콧대 높은 남자라고 해도 그녀 앞에서는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을 거다.

더군다나 동생이 저 정도로 생겼으면 누나도 제법 외모가 괜찮을 터.

엑몬 작곡가 정도 되면 남자를 귀찮아 할 수 있는 위치가 맞았다.

­나도 얘도 작곡하는 사람인데, 곡을 받아서 뭐하겠어. 음악적으로 교류하고 싶을 뿐이야.

­흥, 난 나 말고 다른 남자는 안 믿어. 그렇게 떳떳하면 내 앞에서 만나는 걸로 해.

­그 정도로 팍팍하게 군다고?

­내가 만나지 말라고 하면 누나는 너희 절대 안 만날 걸? 그러니까 선택해. 내가 있는 곳에서 누나를 만날지, 아니면 만나지 않을지.

셰인이 선택권이 없는 선택지를 준다.

이 정도면 그냥 만나지 말라는 얘기인데….

아까 내가 뭐라고 한 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꽁해있는 것 같다.

엑몬 작곡가와 만나고 싶어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제키였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제키를 바라봤다.

“어떻게 할 거야? 저 꼬맹이가 제대로 꼬장 부리고 있는데.”

저 꼬맹이가 있는 상황에서 만나면 편하게 대화 나누기는 글렀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엑몬 작곡가와 친해지는 꼴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 의지를 내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만나고 싶은데. 쟤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아.”

“그럼 이렇게 하자. 만나서 내가 쟤를 맡고 있을게. 너는 그분이랑 대화에 집중해.”

“형은 엑몬 작곡가한테 관심 없어?”

“응. 딱히 만나서 할 말도 없어.”

“…그럼 부탁할게.”

­뭐라는 거야! 영어로 말해!

­상의 좀 한 거야. 어떻게 할지.

­그냥 포기해! 그럼 서로 편하잖아.

­싫어. 너 때문에 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냐? 네가 끼어도 돼. 아직 어려서 누나 따라다녀야 하는 동생이라는데 어쩌겠어. 이해해야지.

­뭐?!

씩씩거리는 셰인의 어깨에 다시 팔을 얹었다.

식사하는 게 불편해 보여서 풀어줬는데 하는 거 보니까 다시 꽉 잡아둬야 할 것 같다.

­이익! 무거워!

­내 팔이 무거워? 힘이 너무 약한 거 아니야? 줌베이는 너 이런 약골이 이상형이었어?

­셰인 괴롭히지마아~!

내 옆구리에 끼어서 괴로워하는 셰인을 바라보는 눈빛에 안쓰러움이 가득하다.

괘씸한 짓을 했으니 그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식사자리가 끝날 때까지 놔주지 않고 계속 괴롭혀댔다.

셰인도 내 괴롭힘에 점점 적응해나갈 무렵.

다시 내가 방금 했던 작곡 얘기가 나왔다.

­방금 작곡을 했다고? 어디 한 번 들려줘봐. 내가 특별히 괜찮은지 봐줄게.

­네가 뭘 안다고?

­셰인도 작곡가야!

­작곡가? 진짜?

셰인이 작곡가라는 것도 놀랍지만, 아직 미성년자인데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더군다나 미성년자 남자는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물론 그 전에 누나가 엑몬 작곡가이니 돈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남자이니 얼마나 오냐오냐 예쁨 받으며 컸겠는가?

­프로 작곡가는 아니고, 아직 지망생이야.

­지망생이라니! 언니랑 같이 낸 노래가 몇 곡인데. 언니도 널 인정했잖아.

셰인이 줌베이의 다소 팔불출 같은 칭찬을 해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칭찬이 의외로 엄청난 정보를 알려줬다.

셰인은 작곡을 하는 것보다 듣는 귀가 엄청 좋았던 것이다.

­셰인이 좋다는 곡은 전부 떴어. 그래서 언니는 곡을 내기 전에 무조건 얘한테 들려주고 미리 검증을 받아. 별로라고 하면 절대 곡을 주지 않는 거지.

곡을 내기만 하면 빌보드에 올라가는 건 정말 엄청난 재능이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 곡을 만드는 건 엑몬이 해도 검증은 동생인 셰인이 담당했던 모양이다.

­듣는 귀가 좋으면 작곡도 편해지지.

­응! 그러니까 방금 작곡한 곡 들려줘봐. 후회하지 않을 걸?

누나 아래에서 많은 음악을 듣고 자랐을 테니 그런 쪽으로 재능이 생길만도 하다.

제키도 줌베이의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녀석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자기가 가진 능력의 귀중함을 알고 있는지 팔짱을 끼며 여유를 되찾은 셰인이 말했다.

­특별한 기회니까 영광으로 알라고.

하여튼 얄미운 녀석.

그래도 쓸 만한 귀를 가졌다는데 그걸 사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결국 뼈대만 만들어 놓은 멜로디가 멤버들과 셰인, 줌베이 앞에 드러났다.

­방금 만들어서 멜로디만 들으면 돼. 그리고 이 부분은 첼레스타로 시작하고 싶어.

첼레스타(celesta).

업라이트 피아노와 모양이 비슷한 소형 건반악기인데, 해리포터의 대표 OST에서 쓰였던 악기라고 하면 다들 알 것이다.

호두까기 인형 ‘사탕요정의 춤’에서도 쓰여진 바가 있는 악기이다.

그 악기로 도입부를 준다면 특별한 시작이 될 것 같았다.

셰인이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악기 부분을 설명 들으며 제법 진지하게 감상을 해주었다.

셰인은 아무 말 없이 멜로디를 3번 정도 반복해서 들어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후.

­이게 네가 만든 멜로디라고?

­응.

­여기서 작업하면서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yes.

­…나중에 다 만들어지면 들려줘. 어떻게 완성시키는지 들어볼래.

­그게 감상평 전부야? 좀 더 제대로 된 감상평은 없어? 3번이나 반복해서 들었잖아.

­고작 멜로디로 뭘 더 바라는 건데? 완성 된 게 궁금하다고 했으면 된 거지.

그게 정말 감상의 끝?

실망감이 팍 몰려오는데, 줌베이가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셰인이 다 만든 걸 들어보고 싶다는 건 기준에 통과했다는 뜻이야.

­아~ 그런 식으로 평가를 하는 거야?

나는 좀 구체적인 말로 평가를 해주는 줄 알았다.

어떤 부분이 좋고, 어떤 부분은 형편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작곡가 지망생이라고 하니 음악적인 지식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단 번에 통과 받은 거 되게 대단한 거야. 언니도 셰인한테 한 번에 좋단 소린 거의 못 들어봤댔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이게 왜 쓸데없는 소리야? 오해하기 전에 설명해줘야지. 빨리이~

저런 반응이 저 녀석 나름의 ‘통과’ 반응이었다고?

줌베이의 애교에 셰인이 얼굴을 붉히더니 툴툴대면서 말했다.

­나쁘지 않았어. 네가 설명하는 악기로 상상해보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도 되고.

­지금도 괜찮지만, 제키의 손을 거치면 더 대단해질 거야. 기대해.

­네가 완성하는 게 아니야? 왜 이런 곡을 남한테 주지? 아깝지도 않아? 그러다가 곡을 망쳐버리면 어쩌려고.

셰인은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는 호구 보듯이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나는 녀석의 이마에 꿀밤을 놔주며 말했다.

딱콩!

­악!

­너한테는 남이어도 나한테는 형제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전혀 아깝지 않아. 오히려 내가 만든 곡에 날개가 달릴 거다.

이후로 왜 때리냐며 셰인이 발작하는 일이 있었지만, 썩 나쁘지 않은 만남이었다.

? ? ?

진해솔이 줌베이와 협업으로 해외로 출국한 사이.

조연주는 멤버들과 함께 해외로 돌아오지 못하고 국내에 남았다.

그녀가 국내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스네이크 클럽’ 때문이었다.

‘이게 뭔 날벼락 같은 소리야.’

스네이크 클럽 조사 과정에서 에어플레인이 범죄에 연류 될 뻔했다는 소식이 소속사로 들어갔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소속사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조연주 이사가 상황파악에 나섰다.

더군다나 스네이크 클럽과 에어플레인이 함께 언급 되는 일을 막아야만 했다.

유능한 조연주 이사답게 상황을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더불어 ‘에어플레인’이라는 먹잇감을 노리는 육식 동물들이 잔뜩 깔려있는 상태라는 것도 말이다.

‘멍청하긴, 안일해도 정도가 있지…!’

그제야 조연주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에어플레인은 여태까지 그녀가 관리했던 아이들과 수준이 달랐다.

데뷔하고 지금까지 에어플레인은 한 번도 그녀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외모면 외모, 실력이면 실력, 성격이면 성격.

뭐 하나 부족한 점이 없는 그들이 그녀에게 보석과 같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갖고 싶어질 만큼의 값진 보석이었던 거다.

만약 운 좋게 스네이크 클럽의 범죄 행각이 고발 되지 않았으면 그녀가 손을 쓰기도 전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터.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조심시킬 생각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에어플레인을 노리는 좋지 않은 손길이 여전히 존재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에 누군가가 개입을 한 흔적이 있었다.

그걸 굳이 숨기려는 생각도 안 하는 듯했다.

애초에 스네이크 클럽이 여태까지 문제없다가 갑자기 고발당한다는 게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스네이크 클럽은 재벌 가문의 망나니들을 모아둔 쓰레기통.

가문 입장에선 이곳저곳에서 물 흐리지 않고 지들끼리 모여서 사는 게 훨씬 관리하기가 편했다.

그러니 스네이크 클럽이 해체 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의도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그리고 월척이 걸렸지.’

아니, 정확히는 저쪽에서 먼저 조연주 이사에게 접촉을 해왔다.

그녀가 스네이크 클럽에 관련 된 인물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놓고 나섰다는 건, 본격적으로 에어플레인을 노리겠다는 거겠지. 다른 사람이 차지하기 전에 가져야 할 테니까.’

망나니라고 해도 재벌 가문 출신이다.

그들을 해체 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에어플레인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지불했을 테니 그에 따른 대가를 받아가려고 할 거다.

그녀가 아는 재벌들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도와준 건 도와준 거고, 자기 마음대로 도움을 주고 대가를 받으려고 하면 곤란하지.’

단단히 마음을 먹은 조연주는 스네이크 클럽을 해체시킨 주범인 ‘비앙카 케이’와 대면하게 되었다.

무얼 대가로 받으려고 한들 쉽게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조연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인물’과 마주할 수 있었다.

심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고 있는 비앙카 케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허니 엔터 조연주입니다.”

“네, 비앙카 케이입니다.”

비앙카 케이.

그녀의 이름을 들은 조연주는 단숨에 한 인물을 떠올렸다.

에어플레인의 진해솔을 노리다가 어느 순간 접근을 하지 않았던 투자자.

‘관심을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아직도?’

멜리사 케이가 아니라 비앙카 케이가 나타난 것에 조연주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만약 ‘비앙카 케이’가 아니라 '멜리사 케이'가 나왔다면 이렇게까지 생각이 꼬이진 않았을 거다.

“성함을 듣는데 떠올려지는 분이 계시군요. 예전에 멜리사 케이라는 분께서 저희 회사에 투자를 해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 투자를 제가 넘겨받기까지 했으니까요.”

“...기억하고 계시는 군요. 투자금을 회수하진 않으셨지만, 이후로 다른 연락을 하신 적이 없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니었던 것 같네요.”

“우리 같은 사람이 관심을 주는 건 감사해야 할 일이죠. 이번처럼 회사가 수습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해주니까요. 그리고 이번 일은 멜리사가 부탁해서 한 일이 아니에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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